여자는 길을 걷다가 갑작스런 여름 소나기를 만난다. 건물 처마밑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그러나 비는 좀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들이치는 비에 옷이 젖는 것도 난감하다. 마침 서있던 남자 하나가 자신의 외투를 우산 삼아 쓰라고 건넨다. 여자는 고맙다고, 옷을 꼭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자리를 뜬다. 영화 초반부에 이런 설정이 나왔으면 옷을 돌려주는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뭐 이런 이야기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말렌 쿠시예프(Marlen Khutsiev) 감독의 1967년작 '7월의 비'는 그런 관객의 기대를 크게 비켜간다. 남자가 전화를 하긴 했다. 그런데 여자는 마침 일하던 중이라 남자에게 다시 연락달라고 하고서는 끊는다. 그러고서 그 남자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 상당히 특이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길거리의 사람들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쇼트들이 이어진다. 배경음으로 깔리는 것은 주파수가 바뀌면서 들리는 라디오의 다양한 채널 소리다. 클래식 음악부터 스포츠 중계에 이르기까지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흘러 나온다. 지나가는 일반인들이 카메라를 낯설게 응시하는 장면도 찍힌다. 그러는 가운데 주연 여배우가 등장한다. 그런데 배우가 카메라를 자꾸 의식하면서 여러 번 바라본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인데...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가 보인다. 이 영화에는 동시대의 영화 사조인 누벨바그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레나의 집은 공동 주택인데 복도에 전화가 있다. 레나가 남자 친구의 전화를 다른 날 여러 번 받는 장면에서는 점프컷으로 연속해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말을 싣고 가는 트럭을 보여줄 때는 말 울음소리에 맞추어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오'에 나오는 캉캉 음악이 흘러나온다. 스윙글 싱어즈(Swingle Singers)의 'Jazz Sebastian Bach',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장밋빛 인생'도 나온다. 음악도 아주 감각적으로 잘 썼다.

  주인공 레나는 서른 즈음의 여성으로 인쇄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의 남자 친구 제냐는 국영 연구소에 근무하는데, 친구들이 많은 그는 자주 모임을 갖는다. 레나도 제냐를 따라 모임에 참석한다. 영화는 7월에서 이듬해 5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담는다. 여름비가 쏟아지던 7월, 레나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 가을, 그리고 남자 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봄에 이르기까지 레나의 마음은 그렇게 일렁거린다. '7월의 비'에는 극적이라고 할 만한 서사가 없다. 제냐의 친구들 모임에서 쏟아지는 여러 대화들은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강 근처 교외에서 고기 구워 먹는 장면에서는 케밥(kebab)의 기원이 어디냐를 두고 티격태격한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이 독화살촉에 쓰는 개구리독 큐라레(curare)이야기며, 끝말잇기 놀이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는 그렇게 무의미하게 넘치는 대화들 속에서 진정으로 소통하기 보다는 이리저리 부유하며 외로워하는 현대인의 마음 속 풍경을 보여준다.

  말렌 쿠시예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인위적인 것 대신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세트 촬영을 배제하고 대부분 야외 촬영에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도 보인다. 실제로 쿠시예프 감독은 '자전거 도둑(1948)'을 처음 보았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모스크바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전차와 버스가 오고가는 장면, 거리의 사람들, 어느 대사관 앞에서 찍은 장면은 각국의 외교관들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풍경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를 살았던 러시아인들은 1966년의 모스크바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그 시절은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해빙기의 끝무렵이었다. 흐루시초프 집권기였던 1953년에서 1964년에 이르는 시기는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자유가 허용되었다. 이른바 '해빙기'라고 불리던 시대는 수구적인 브레즈네프의 등장으로 서서히 막을 내린다. '7월의 비'는 녹았던 얼음이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였다.

  '7월의 비'는 소련 당국에 의해서 무분별하게 서구 사조의 영향을 받은, 반동적인 작품으로 매도되었다. 영화 산업을 국가가 관리 감독하던 시대에 이 영화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짧은 개봉 기간에 이어 영화사 창고에 처박히는 운명을 맞았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장면이었다. 주인공 레나는 화창한 봄날의 전승절(5월 9일, 2차 대전에서 소련이 독일에 승리를 거둔 날로 가장 큰 국가적 경축일이다) 행사가 치뤄지는 거리를 걷는다. 참전 군인들은 서로 얼싸안으면서 기쁨을 나누는데, 그에 반해 젊은 세대들의 얼굴 표정은 다소 심드렁하게 보인다. 젊은이들은 떠들썩한 전승절 행사에 별 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 사이로 소년이 얼굴을 수줍게 내미는 장면이 영화의 끝을 장식한다. 말렌 쿠시예프는 서로 다른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화합이나 희망의 메시지 보다는 단절과 무관심을 담아냈다. 그 장면이 소련 당국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이 영화는 한동안 차가운 어둠 속에 머물게 된다.   

  솔직히 나는 '7월의 비'를 보면서 1967년에 소련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있었다는 데에 놀랐다. 말렌 쿠시예프는 당대의 사조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작가적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무척 매력적이고 도전적이기도 했다. 창작의 자유가 여유롭게 넘쳤던 평화로운 시절은 끝나가고 있었다. 주인공 레나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퍼할 때, 같은 층에 사는 소년이 사과 한 알을 건네는데 레나는 그 사과에 깃든 위로를 고마워 한다. 전승절 날, 레나는 노점상에서 산 사과를 먹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따뜻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시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 '7월의 비'는 다시 시작될 춥고 긴 겨울의 날들 앞에 선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시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newlit.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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