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db를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코너가 눈길을 끌었다. 1969년도 영화 가운데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을 투표해달라는 코너였다. 투표 목록에 올라온 영화들 가운데, 아주 낯선 영화가 눈길을 끌었다. '다이아몬드 팔(Brilliantovaya ruka, The Diamond Arm)'. 찾아보니 구소련 시대 영화였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영화를 찾아서 본 것이 꽤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니드 가이다이(Leonid Gaidai) 감독은 구소련 시절에 코미디물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이다. 이 영화 '다이아몬드 팔'은 러시아 영화 역사상 기록적인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다. 흥행 수익이 오늘날로 환산하면 영화 '타이타닉(1997)'의 그것과 견줄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소련 영화로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의 영화였길래 그토록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국영 어업 연구소 직원인 세미욘(유리 니쿨린 분)은 터키로 짧은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여행팀에는 지하세계를 주름잡는 '보스'의 부하 게샤(안드레이 미로노프 분)가 있는데, 세미욘과 게샤는 서로 친해진다. 게샤는 터키에 가는 은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비싼 보석과 금을 밀수하기 위한 것. 터키에서 조직원과 접선하려는 게샤의 계획은 틀어지고, 세미욘을 게샤로 착각한 터키의 조직원은 세미욘에게 밀수 보석을 건넨다. 그들은 세미욘의 팔을 부러뜨린 후, 석고 깁스에 보석을 숨긴다. 얼떨결에 밀수꾼이 된 세미욘. 게샤는 자신의 동료 롤리크와 함께 세미욘에게 접근해 보석을 되찾으려고 하는데, 세미욘은 번번이 그들의 시도를 무산시킨다. 세미욘의 다이아몬드 팔 속에 감춰진 보석들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이 영화는 매우 흥겹다. 주연 배우 유리 니쿨린과 안드레이 미로노프는 영화 속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잘 부른다. 그 시절 소련의 영화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 실력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세미욘 역의 유리 니쿨린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데, 영화 '핑크 팬더(1963)'의 배우 피터 셀러스 특유의 무표정 연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니쿨린은 서커스 단원으로서의 경력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몸놀림이 매우 유연하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주된 동력은 슬랩스틱이다. 세미욘에게 접근해서 보석을 되찾으려는 게샤와 롤리크, 두 사람은 마치 덤 앤 더머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연발한다. 번번히 실패하는 그들의 시도들은 무성 영화 시절의 정교하고 순수한 슬랩스틱으로 재현된다.

  '다이아몬드 팔'은 주연 배우들의 노래, 슬랩스틱 연기에 더해 나름의 잘 짜여진 서사도 갖고 있다. 세미욘은 경찰에 정보를 주고, 경찰은 세미욘을 미끼로 지하 밀수 조직의 보스를 잡아들이려고 한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세미욘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내와 아파트 자치위원들의 추적, 이에 맞서 지하 세계 보스는 세미욘에게 미인계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들이 함께 펼치는 포복절도의 합동 공연은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이미 50년 전의, 그리고 다른 문화권의 유머 코드를 갖고 있음에도 이 영화는 확실한 웃음을 선사한다. 누군가 이 영화를 두고 쓴 평에 '시간의 힘을 견뎌낸 영화'라는 표현을 했는데, 정말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팔'속에 보이는 구소련의 일상 풍경들은 무척 화사하고 밝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소련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화 속의 풍요롭고 안정된 체제의 모습은 결코 연출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관에서 이 유쾌한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소련 관객들은 나름의 삶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이후 1970년대의 경제 침체기를 겪게 된다. 구소련 시절에 이 영화가 만들어낸 기록적인 흥행은 좋았던 시대의 끝자락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 세미욘이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보여준 여유로운 미소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1969년의 구소련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사진 출처: allofcinema.com 주연 배우 안드레이 미로노프와 유리 니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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