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동생이 이런 핀잔을 주었다.


  "에휴, 무슨 쌍팔년도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건 구식이라고, 구식!"


  정확히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아주 옛날 사고방식으로 뭔가를 말했기 때문에 동생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구닥다리 같은,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어떤 것. 그런데 쌍팔년도는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을 가리키는 건가? 그 말의 어원을 찾아보니 재미가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 말은 단기 4288년인 1955년을 의미하는 말로 '구식의 시대'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실제로 당시의 신문과 소설에 이 표현이 등장한다. 이제는 시대가 흘러서 지금의 세대에게 쌍팔년도는 1988년, 그러니까 시쳇말로 '꼰대'들의 후진 마인드와 가치를 대표하는 말이 된 듯하다.


  내 기억 속의 1988년은, 온 나라가 서울 올림픽으로 들썩였던 해였다. 나에게는 아직도 그것이 최근년도의 일 같은데, 헤아려 보니 벌써 32년 전의 일이다. 기억의 왜곡된 보정이란 게 그렇다. 확실히 그 시절이 '구식'이라는 건 맞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 혁명이 오기 직전의 시대, 그러니까 아직은 아날로그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라디오 신청곡은 편지나 엽서로 신청해야 했고, 우체국 전보가 있었던 시절. 내가 이메일 계정을 처음으로 만든 시기가 1990년대 중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느려터진 넷스케이프, 천리안 PC 통신...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ness in Seattle, 1993)'은 그런 구식의,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가득찬 영화다. 가끔 케이블 영화 채널을 돌리다 보면 예전에 본 영화를 또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는 '로마의 휴일', '대부 1, 2', '쇼생크 탈출', 그리고 이 영화가 그러하다. 채널을 돌리려다가 뭔가 흠칫, 하고 멈춰서 그냥 보게 되는 영화들이다. 그거 다시 볼 시간에 새 영화를 보게 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이 영화들은 뭔가 '마법'을 걸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죄다 구닥다리 영화들이구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다보면, 영화가 보여주는 그 시대의 정서들을 요즘 세대들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청춘이 지나온 시절이라서 나는 그 시대를 잘 알고 있고, 또 이제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뭐랄까, 저런 시절이 다 있었구나, 하는 생경한 느낌이 아닐까. 상처(妻)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샘에게는 어린 아들 조나가 있는데, 조나는 자신의 새엄마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연결된 심야 라디오 프로에서 털어놓게 된다. 그 라디오 방송이 나가고 난 후에 샘에게는 '종이' 구혼 편지가 그야말로 폭탄처럼 쇄도한다. 이메일 따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샘은 아들 조나가 구혼 편지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애니를 직접 만나러 비행기 타고 가출을 감행하자 아들을 찾기 위해 생고생을 하게 된다. 휴대폰이 없는 시대니까, 휴대폰 위치 추적은 꿈도 꿀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멕 라이언이 분한 애니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가 등장하는데, 그 영화는 무려 1957년에 만들어진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 케리 그란트와 데보라 커가 주연을 맡은 그 영화는 말 그대로 구시대적 감성이 흘러내리는 로맨스 영화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떠난 여자가 어려움 끝에 마침내 사랑을 되찾는 그 영화를 보며 애니는 매번 눈물을 흘린다. 애니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그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어요."


  샘은 세상을 떠난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의 순간을 회고하면서 그렇게 말한다. 애니는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샘이 그렇게 말하는 대목에서 'magic'이라고 똑같이 말하는데, 마치 종이에 겹쳐친 데칼코마니의 형상처럼 그 두사람이 운명처럼 연결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마법'과 '운명'이란 단어로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개연성을 아름다운 로맨스로 승화시킨다.


  여러번 봐도 질리지 않게 만드는 데에는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의 연기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샘의 아들로 나온 조나 역의 아역 배우도 당당히 한 몫을 차지한다. 톰 행크스는 '터너와 후치(1989)'에서 보여주었던 코믹적인 면모를 이 영화에서도 잘 살려내는데, 나는 그가 연기 경력을 거듭할수록 드라마 장르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모범생이 쓴 시험 답안지 같은 느낌이라, 차라리 이 영화를 비롯해 그의 초기작들에서 볼 수 있는 생동감이 더 보기 좋았다. 멕 라이언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가 인생작처럼 여겨지지만, 내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배우의 연기 경력에서 모두에게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애니의 약혼자로 나온 배우 빌 풀먼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때 헐리우드의 미남 배우의 계보를 이었던 그를 얼마전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해설자로 보게 되었다. 스미소니언 채널에서 만든 '요세미티 공원의 사계'라는 다큐였다. 이제는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모습은 내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나의 청춘을 지나온 영화 속 배우들은 이제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 나는 그 시절 배우들의 최근작들을 잘 안보는데, 한편으로는 그들의 나이든 모습을 보며 내 나이를 헤아리는 것이 괴롭고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 데이 때에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케이블 채널에서 잊지않고 틀어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걸 다시 또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샘이 말했듯, 그냥 그 영화가 나에게 '마법'을 걸어둔 것이라고 하자. 김연아 선수가 2007년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연기한 쇼트 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는 당시 쇼트 점수 최고점을 갱신하며 역사를 썼었다. 내가 그 동영상을 얼마나 많이 돌려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볼 때마다 새로웠고, 김연아 선수의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좋아했었다. 그런 마법과도 같은, 매혹적인 순간들이 담긴 영상들이 있다.


  쌍팔년도, 구식 시대의 빛나는 감성들로 가득찬 이 영화를 나는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영화 속의 애니는 오래전 로맨스 영화 '러브 어페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 대신, 지나간 내 청춘의 기억들과 그 시절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한번쯤 뒤돌아 봐주길 바라는 청춘의 긴 그림자 위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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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화면에서는 태풍 예보가 계속 나오고 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는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이런날에 만두가 먹고 싶어지다니, 여자는 시장통 골목의 만두가게가 계속 생각이 난다. 그래,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괜찮겠지.


  제법 튼튼하다고 생각되는 우산을 골라본다. 문을 열자 거센 바람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우산이 펄럭거린다. 몸이 휘청거리지는 않지만, 바람의 세기가 좀 버겁게 느껴진다. 겨우 시장통에 도착했다.


  시장은 한산하다. 만두 가게의 벽면 TV에서도 태풍 소식이 쉴새없이 나온다. 이 집의 만두는 언제나 한결같은, 놀라운 맛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이렇게 태풍이 부는 날에도 만둣집에 오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가게 주인은 비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것을 보며, 오늘 장사는 영 글른 모양이군, 혼잣말을 한다. 여자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산다. 주인은 잘 살펴 가라며 인사를 건넨다.


  바깥을 나와보니, 아까보다 빗줄기도 세지고, 바람의 소리도 무섭게 들린다.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어쨌든 만두를 산 건 잘한 일이다. 손에 들린 비닐 봉투에서 만두 하나를 꺼낸다. 따뜻하다. 입에 만두를 넣고 한입 베어무는 순간, 바람에 우산이 제껴진다. 이건 정말 센 바람인 걸, 얼른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네...


  2016년 9월 27일, 태풍 '메기'가 대만에 상륙했다. 4명이 사망하고, 오백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대형급 태풍이었다. AP연합 뉴스 사진에는 타이베이 시내에서 악천후 속에서도 우산을 쓰고 만두를 먹고 있는 이 여성이 찍혔다. 이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약간의 웃음과 여러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아마도 이런 생각일 것이다.


  "도대체 태풍 부는 날, 우산까지 쓰고 저렇게 만두를 먹어야 하는 건가?"


  또는,


  "저 만두가 얼마나 맛있길래 우산이 제껴질 정도의 바람에도 만두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거지?"


  이 사진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당시에 대만에 체류했던 한국 여행객의 블로그에까지 이르렀다. 블로그에는 대만 TV에서도 이 사진의 주인공에 대한 분석(?)보도를 뉴스에 내보냈다고 쓰여 있었다. 이 여자는 누구며, 여자가 먹고 있는 만두를 만든 가게는 어디에 있는가 등등. 아무튼 이 아주머니는 대만에서 뿐만 아니라, 외신 뉴스에서 이 사진을 본 나에게까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냥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가끔씩, 이 사진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뭐랄까, 이 사진에서 아주 견고하고, 순전한 삶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작년이었던가, 이 사진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었으므로, 태풍과 만두를 연관 검색어로 입력해서 겨우 찾아냈다. 그 결과, 이 사진이 2016년 태풍 메기가 강타한 9월의 대만 타이베이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진과 관련된 인터뷰가 그 당시에 올라왔던 기억도 난다. 사진 속 아주머니는 자신의 사진이 그토록 엄청난 화제가 된 것에 약간의 창피함과 당혹감을 느꼈다고 했다. 왜 그 험한 태풍이 부는 날씨에 만두를 먹고 있었냐는 질문에, 바람이 좀 세게 불었지만 자신은 그저 만두를 먹고 싶었을 뿐이라며 다소 쿨(!)한 답변을 남겼다. 


  사진을 찍은 기자는 태풍이 부는 날, 바깥 풍경을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가 우연히 이 사진을 건졌을 것이다. 연속으로 찍은 이 사진은 매체에 따라 각각 실리기도 하고, 두 장이 같이 나오기도 했다. 나는 두 장을 같이 보는 것이 더 생동감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렇게 어렵게 찾아낸 이 사진들을 컴퓨터 하드에 잘 저장해 두었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그다지 곱지 않은 인상을 지닌 중년 여성의 만두 먹는 장면에 더러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저 만두 맛집은 타이베이 시내 어디에 있는가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사진 속 인물이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면, 이 사진은 다른 의미에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은 #대만 태풍#예쁜 처자#만두, 아마도 이렇게 올라오지 않았을까?


  어떤 면에서 다소 거칠고 우왁스럽게까지 보이는 사진 속 중년 여성의 이미지는 호감 보다는 웃음과 놀림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이 사진에서 순수한 삶의 의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전, 사진 비평 수업 시간에 보았던 수많은 유명 사진 작가의 그 어떤 사진들 보다 이 사진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태풍이 오는 날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만두를 손에서 놓지 않는 그 꿋꿋함은 조롱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대범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것이 내가 이 사진을 컴퓨터 하드에 저장하고서, 가끔씩 찾아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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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프턴 마을에는 스콧이란 청년이 있다. 술집 창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오만 구박과 멸시를 다 받으면서 자라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오물을 수거하고, 마당을 쓸며, 또 마을의 유일한 마굿간을 관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마치 클리프턴의 공인된 노비, 불가촉천민 대우를 받는데, 그건 그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콧'이란 이름만 있지 성씨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bastard, son of bitch 같은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퍼붓는다. 그렇게 무시당하며 살던 스콧이 어느날 갑자기 뛰어난 총잡이가 되어 나타나서는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분노의 총질을 한다.


  "대체 당신이 어떻게 했길래, 쟤가 공수병 걸린 미친 늑대처럼 행동하는 거요?"


  이렇게 묻는 마을 의사에게 스콧의 총잡이 스승 탤비는 답한다.


  "저 친구는 태어나기를 늑대로 태어났소. 공수병 걸려서 미치게 만든 건 당신들이 한 일이고."

 

  영화 '황야의 분노(Day of Anger, 1967)'의 주인공 스콧이 자라오면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사람은 전직 보안관 출신으로 이제는 늙고 힘없는 마굿간 지기 머피 앨런 뿐이다. 앨런은 한때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운 뛰어난 총잡이였다. 그는 스콧에게 총을 쏘는 법을 가르쳤으나, 그것을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늘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적의와 분노가 들끓는 스콧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스콧은 자신에게 총잡이의 생존법을 알려주고, 스콧의 어머니 이름 '메리'를 성씨로 쓰도록 한 탤비의 길을 따르고자 한다. 앨런이 스콧에게 가르친 것이 '사람의 길'이었다면, 탤비가 보여주는 삶은 '늑대의 길'이다.


  스타게티 웨스턴의 대표적 배우인 줄리아노 젬마가 분한 스콧은 그렇게 두 가지 삶의 길에서 갈등한다. 스턴트맨을 하던 단역배우 출신의 줄리아노 젬마는 좋은 연기력으로 어리숙하고 순진한 청년의 얼굴과 분노로 가득한 총잡이의 모습을 모순없이 보여준다. 프랭크 탤비로 나온 리 반 클리프의 연기도 좋다. 리 반 클리프는 매부리코와 날카로운 눈매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악역을 주로 맡았다. 그러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서는 전형적인 악역 보다는 뛰어난 총잡이로 때론 선악의 경계선상에 있는 모호한 캐릭터들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어쩌면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은 그의 배우 경력 후반부에 선물처럼 주어진 보석상자들처럼 보인다.


  리 반 클리프가 주연한 '방랑의 무법자(1967)'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돈을 노리는 전형적인 나쁜 총잡이가 정착을 꿈꾸게 될 때 마주하는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에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다양한 감초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스탠더도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그 느물거리는 악당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이렇게 스파게티 웨스턴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뒤처진, 잊혀져가는 조연급 배우들을 데려다가 아주 잘 썼다. 대다수 영화가 이탈리아어 더빙이라는 점이 아쉬웠겠지만, 배우들의 경력에는 구명줄 같은 영화들이었다.


  다시 영화 '황야의 분노'로 돌아가자. 탤비는 클리프턴을 장악하고, 그곳에 정착해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편안히 보내고자 한다. 탤비가 저지른 과거 범죄 자금을 은닉한 클리프턴의 유지들은 어떻게든 탤비와 스콧을 없애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보안관이 된 앨런은 탤비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자신에게 '인간의 길'을 가르친 스승 앨런의 죽음에 스콧은 충격을 받는다.


  "스콧, 이제 총잡이들의 시대는 지나갔어."


  앨런은 총잡이 생활을 꿈꾸던 스콧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스콧은 앨런이 남긴 전설의 총잡이 닥 할러데이의 총으로 탤비의 최후를 만든다. '늑대의 길'을 걷던 스콧이 '인간의 길'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명중시킬 수 있다는 그 마법과 같은 총을 스콧은 던져버리고, 마을에서 자신과 같이 천대받았던 눈먼 장님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그는 총없이도 그 거친 서부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분명 총잡이들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남북전쟁과 재건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무법자 총잡이들은 공권력의 테두리 안으로 포획된다. 그 후로는 어쩌면 총잡이들 보다 더 무지막지한 군인, 정치인, 자본가, 대지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무법자들의 시대는 끝났지만 원주민, 하층민,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했던 서부의 풍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미국 시사 주간지 'Time'은 소재 기근에 시달리던 헐리우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는 기사를 실었다. COVID-19으로 촉발된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의 시대에 '감염병'이란 소재가 미국 영화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웨스턴 영화에도 전염병이 도는 마을, 비싼 치료약 실은 기차를 노리는 총잡이들이 등장할까? 아마도 그런 서부극이라면 골수 서부극 팬들은 존 포드의 '수색자'를 한번 더 보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서부극은 마치 명멸하는 불빛처럼 겨우겨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이 장르는 공포, SF와 같이 다른 장르와 결합하거나,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들과 미국 역사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내세우면서 진화하고 있다. 총잡이들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서부라는 공간과 거기에 얽힌 고통스럽고도 숨겨진 이야기들은 아직도 그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은다. 영화 '황야의 분노'의 끝부분에서 총을 던져버리고 떠난 스콧에게 총없이도 살아갈 날들이 남은 것처럼, 서부극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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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은 냉장고 이야기가 기억난다. 글을 쓴 이는 아들인데 본가에 갔다가, 어머니의 긴 출타를 틈타서 몇년 동안 하지 못한 본가 냉장고 청소를 해버린다. 그는 냉장고 칸칸마다 가득 채워진 '정체불명의 검은 봉다리'를 모두 버릴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하다고 썼다. 그 냉장고 청소를 위해 오랫동안 절호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도 덧붙였다. 그 아들은 무척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성격이었는지, 본가 냉장고의 '처참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글에는 이런저런 댓글이 달렸는데, 잘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냉장고의 주인인 어머니의 의견도 묻지 않고 한 것은 심하다는 글도 있었다. 그 '검은 봉다리'는 어쩌면 다들 자신들의 집에서 한 번쯤은 보았던 것이라 그랬는지 많은 공감도 자아냈다.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걸 확인하려면 일일히 열어봐야 하는 그 검정 비닐 봉투. 어머니들이 사랑하는 시장 비닐 봉투는 내용물과 함께 도대체 언제 샀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마법 봉투이다. 그것들이 점령한 냉장고가 못마땅하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 그 '깔끔한' 아들은 나중에 집에 와서 그 모든 사태를 확인한 어머니한테 등짝을 한 대 세게 맞았을 것 같다. 


  올 봄에 세탁기에 문제가 생겨서 수리 기사가 방문했는데, 같은 회사의 제품인 냉장고도 점검해 주었다. 냉장고는 잘 정리되어 있었고, 검정 비닐 봉다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기사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마치 어디선가 일기장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주운 누군가가 읽어 본다고 생각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냉장고'란 물건이 지닌 그 본성, 그리고 그 공간에 든 내용물들이 냉장고 주인의 일부, 어쩌면 아주 큰 부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기장'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스테파니 드 루즈(Stephanie de rouge)는 바로 그 냉장고가 가진 특별한 의미에 주목하고 자신의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당신의 냉장고 안(In Your Fridge, 2011)'으로 펴냈다. 그 사진들은 냉장고 주인(또는 가족들)과 그 냉장고 안 사진을 이어 붙여서 보여준다. 각각의 냉장고 사진들은 그것을 쓰는 이들의 삶의 방식, 가족 구성원, 계층, 선호하는 음식과 같은 아주 다양한 정보들을 유추하게 한다. 그 유추된 생각들과 사진 속 냉장고 주인의 실제 모습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있다.


  이제는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그런 냉장고 사진들을 보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 프로에서 냉장고는 당당히 중심을 차지하는데, 그 열려진 냉장고 안의 내용물들은 그 주인들의 성격, 일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각종 주류와 안주로 가득찬 냉장고 주인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는 정보를 준다. 그런가 하면 각종 건강식품과 오만가지 '즙들의 향연'을 냉장고에서 보여준 출연자도 있었다. 운동선수였던 그가 가장 중시하는 삶의 가치는 아마도 '건강'이었을 것이다. 유통 기한이 지난 식품이 나오는 것은 흔한데,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출연자는 문희준이었다. 그의 냉장고 하단 야채 박스에는 유통 기한이 몇년 지난 닭가슴살 팩들이 잔뜩 있었다. 진행자가 왜 이걸 아직도 버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닭가슴살 팩에 인쇄된 선배 연예인 사진을 보면 미안한 마음에 차마 버릴 수 없었다고 해서 웃음을 주었다.

 

  나의 냉장고 안을 누군가 본다면 아주 단번에, 명확하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 이 냉장고 주인은 요리에는 뜻이 없구나."


  요리, 나에게 있어 그렇게 괴롭고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작업은 없었다. 수많은 요리책을 읽었고 도전해 보았지만, 그 모든 시도들은 실망과 놀라움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 후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는 요리에 너무나 많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요리란 정확한 분량의 계량, 정해진 조리 순서, 그것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의지의 총체적 결과물인데 나는 그 모든 과정의 중요성을 때론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해버린다. 요리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은 '창의성'이다. 그건 대가들에게나 허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요리를 포기하게 된 이후로 나의 냉장고는 간촐해졌으며, 대신 이런저런 냉동, 즉석 식품들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가끔은 그런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것이 냉기가 가득한 황량한 사막의 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냉장고 안 주황색의 백열전구 불빛만이 그 쓸쓸한 풍경에 그나마 온기를 더한다. 이제는 요리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대신에, 매일의 글쓰기를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냉장고 안 풍경은 건조하고, 단조로우며, 고독하다. 그러나 내가 쓰는, 그리고 쓰게 될 글들에는 따뜻함과 다채로움, 세상과 사람들 사이의 연대(solidarity)를 가능하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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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드라마 '아들과 딸(1992)'은 케이블 드라마 채널에서도 나름대로 사랑받는 재방목록에 들어간다. 누군가 그 드라마에서 자신에게 가장 충격적인 대사는 바로 이것이었다고 썼다.


  "아이고, 귀남이한테 폐병 옮기는 거 아녀?"


  아들 딸 쌍둥이로 태어난 귀남과 후남, 늘 모든 애정을 독차지하는 귀남에 비해 구박덩어리로 자란 후남은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핵에 걸렸다. 그걸 듣고 귀남 엄마가 하는 말이다.


  그 드라마를 주의깊게, 인상적으로 본 연령대는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올라오는 그 드라마 감상평을 보면 그러하다. 그 연령대의 여성들이 경험한 시대는 이전 세대에 비하면 사회적으로 여성 인권이 많이 향상된, 눈에 보이는 남녀차별, 가부장제가 물리적으로 해체되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관습법적으로 굳어져온 남성 위주 사회의 정신적 지형은 견고했다. 드라마 '아들과 딸'은 그러한 사회적 균열이 일어나던 1990년대에 방영되면서 높은 시청률과 함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


  정혜선이 분한 귀남 엄마(그는 결코 후남 엄마로 불리우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지독하고, 신앙에 가까운 '아들 사랑'은 결핵에 걸린 딸 걱정 보다는 아들에게 전염이 될까 걱정하는 것에까지 미친다. 그걸 보는 이들에게는 그쯤되면 진짜 딸이 맞나 싶을 정도의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나중에 후남이가 귀남의 친구 석호와 결혼하게 되자, 사법고시에 합격한 석호를 보는 게 귀남이가 괴롭지 않겠냐며 딸의 혼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한마디로 딸 잘되는 것이 귀남 엄마는 '싫다'. 그 이유는 하나다. 쌍둥이로 태어난 후남이가 잘 풀리는 것은, 귀남의 운을 뺏어가서 귀남이의 인생이 엉키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남 엄마는 6대 독자 집으로 시집와서 연달아 딸 셋을 낳았다. 귀남이가 그저 '아들'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 '귀한 아들'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귀남 엄마가 살아왔던 시대의 여성의 인권이란게 얼마나 보잘 것 없었던 시대였는지는 1960년대에서야 민법에 규정된 배우자 상속권을 보면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사망해도 상속을 받을 수가 없었다. 상속법은 일제 식민시대 구관습법을 그대로 인정해서 호주상속 순위에 따랐는데, 적출 장남과 차남, 직계 비속의 순서를 따랐다. 딸이라 하더라도 출가한 자식은 제외되었다. 그러니까 여성 배우자는 남편이 사망하면 재산을 상속한 아들에게 기대어 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1958년에 새롭게 제정된 민법이 1960년부터 효력을 미칠 때까지 이어졌다.


  삼종지도(), 유교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여자가 따라야할 세 가지 도리. 즉,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 문화권의 도덕규범이다. 귀남 엄마에게 남편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허세가 가득하고, 제멋대로이며, 가정 돌보는 일에는 등한한 무능한 가장을 둔 귀남 엄마는 낚시터 점방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귀남 엄마에게 오직 꿈이 있다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아들 귀남이가 잘 되어서 집안을 일으키고, 자신의 노후도 편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애정을 '몰빵'하는 귀남이의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후남이는 어렵게 방통대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되고 검사 남편까지 얻는다. 거기다 소설가의 꿈까지 이룬다. 귀남 엄마는 그 모든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다. '아들이 잘 되어야 집안이 풀리는 것인데', 하면서 한탄을 했을 것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귀남 엄마로 나온 정혜선은 그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온갖 미움을 다 받았다. 드라마의 내용과는 달리 정작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은 사람은 김희애가 분한 '후남'이었다. 귀남 엄마와 함께 귀남이도 밉상으로 여겨졌다. 귀남이가 보여준 쪼잔함, 자기 중심성, 우유부단함, 그 모든 것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드라마의 귀남 엄마와 귀남이를 보면서 미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떤 면으로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연민을 느꼈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귀남이가 살아낸 삶, 부모의 넘치는 관심과 기대를 받으면서 그가 느꼈을 그 부담감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에서의 좌절감을 주의깊게 보았다.


  드라마는 귀남 엄마가 딸 후남이와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남이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귀남이를 편애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그 오랜 애증의 시간들을 담담히 받아들일까? 어떻게 딸이라고 해서 그렇게 자식을 모질게 대할 수 있느냐고 평생에 걸쳐서 울분을 쏟아낼까? 아마도 귀남 엄마의 아들 사랑은 평생동안 지속될 것이기에 후남이의 속내는 더 복잡하고 괴로울 것이다.


  귀남 엄마의 과도한 아들 사랑, 또 그 근원이 되는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일은 이 드라마를 보는 단선적 시선이 될 것이다. 그 보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 질기고도 거대한 서사를 볼 필요가 있다.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애정의 많고 적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이 특별한 관계는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으며, 생채기가 난 자리에 애정을 들이붓고 거두기를 반복한다.


  자식은 부모가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부모'는 결코 완전무결한, 흠결이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므로 그것은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다. 그 보다는 '부모'는 나름의 결점과 약함을 가진 이들로, 그들의 타고난 성정대로 자식을 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식'은 그러한 부모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연민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평생을 두고 이어지는 부모 자식 사이의 '애증의 서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될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후남이에게 안정적인 직업, 좋은 남편, 소설가로서의 성공을 선물함으로써 후남이의 인생에 빛을 드리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결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남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긍정하고, 어머니를 연민으로 바라보았을 것 같다. 그것이 애증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간 여성,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후남이의 선택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그 오래된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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