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턴 마을에는 스콧이란 청년이 있다. 술집 창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오만 구박과 멸시를 다 받으면서 자라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오물을 수거하고, 마당을 쓸며, 또 마을의 유일한 마굿간을 관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마치 클리프턴의 공인된 노비, 불가촉천민 대우를 받는데, 그건 그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콧'이란 이름만 있지 성씨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bastard, son of bitch 같은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퍼붓는다. 그렇게 무시당하며 살던 스콧이 어느날 갑자기 뛰어난 총잡이가 되어 나타나서는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분노의 총질을 한다.
"대체 당신이 어떻게 했길래, 쟤가 공수병 걸린 미친 늑대처럼 행동하는 거요?"
이렇게 묻는 마을 의사에게 스콧의 총잡이 스승 탤비는 답한다.
"저 친구는 태어나기를 늑대로 태어났소. 공수병 걸려서 미치게 만든 건 당신들이 한 일이고."
영화 '황야의 분노(Day of Anger, 1967)'의 주인공 스콧이 자라오면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사람은 전직 보안관 출신으로 이제는 늙고 힘없는 마굿간 지기 머피 앨런 뿐이다. 앨런은 한때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운 뛰어난 총잡이였다. 그는 스콧에게 총을 쏘는 법을 가르쳤으나, 그것을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늘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적의와 분노가 들끓는 스콧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스콧은 자신에게 총잡이의 생존법을 알려주고, 스콧의 어머니 이름 '메리'를 성씨로 쓰도록 한 탤비의 길을 따르고자 한다. 앨런이 스콧에게 가르친 것이 '사람의 길'이었다면, 탤비가 보여주는 삶은 '늑대의 길'이다.
스타게티 웨스턴의 대표적 배우인 줄리아노 젬마가 분한 스콧은 그렇게 두 가지 삶의 길에서 갈등한다. 스턴트맨을 하던 단역배우 출신의 줄리아노 젬마는 좋은 연기력으로 어리숙하고 순진한 청년의 얼굴과 분노로 가득한 총잡이의 모습을 모순없이 보여준다. 프랭크 탤비로 나온 리 반 클리프의 연기도 좋다. 리 반 클리프는 매부리코와 날카로운 눈매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악역을 주로 맡았다. 그러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서는 전형적인 악역 보다는 뛰어난 총잡이로 때론 선악의 경계선상에 있는 모호한 캐릭터들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어쩌면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은 그의 배우 경력 후반부에 선물처럼 주어진 보석상자들처럼 보인다.
리 반 클리프가 주연한 '방랑의 무법자(1967)'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돈을 노리는 전형적인 나쁜 총잡이가 정착을 꿈꾸게 될 때 마주하는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에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다양한 감초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스탠더도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그 느물거리는 악당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이렇게 스파게티 웨스턴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뒤처진, 잊혀져가는 조연급 배우들을 데려다가 아주 잘 썼다. 대다수 영화가 이탈리아어 더빙이라는 점이 아쉬웠겠지만, 배우들의 경력에는 구명줄 같은 영화들이었다.
다시 영화 '황야의 분노'로 돌아가자. 탤비는 클리프턴을 장악하고, 그곳에 정착해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편안히 보내고자 한다. 탤비가 저지른 과거 범죄 자금을 은닉한 클리프턴의 유지들은 어떻게든 탤비와 스콧을 없애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보안관이 된 앨런은 탤비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자신에게 '인간의 길'을 가르친 스승 앨런의 죽음에 스콧은 충격을 받는다.
"스콧, 이제 총잡이들의 시대는 지나갔어."
앨런은 총잡이 생활을 꿈꾸던 스콧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스콧은 앨런이 남긴 전설의 총잡이 닥 할러데이의 총으로 탤비의 최후를 만든다. '늑대의 길'을 걷던 스콧이 '인간의 길'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명중시킬 수 있다는 그 마법과 같은 총을 스콧은 던져버리고, 마을에서 자신과 같이 천대받았던 눈먼 장님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그는 총없이도 그 거친 서부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분명 총잡이들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남북전쟁과 재건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무법자 총잡이들은 공권력의 테두리 안으로 포획된다. 그 후로는 어쩌면 총잡이들 보다 더 무지막지한 군인, 정치인, 자본가, 대지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무법자들의 시대는 끝났지만 원주민, 하층민,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했던 서부의 풍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미국 시사 주간지 'Time'은 소재 기근에 시달리던 헐리우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는 기사를 실었다. COVID-19으로 촉발된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의 시대에 '감염병'이란 소재가 미국 영화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웨스턴 영화에도 전염병이 도는 마을, 비싼 치료약 실은 기차를 노리는 총잡이들이 등장할까? 아마도 그런 서부극이라면 골수 서부극 팬들은 존 포드의 '수색자'를 한번 더 보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서부극은 마치 명멸하는 불빛처럼 겨우겨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이 장르는 공포, SF와 같이 다른 장르와 결합하거나,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들과 미국 역사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내세우면서 진화하고 있다. 총잡이들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서부라는 공간과 거기에 얽힌 고통스럽고도 숨겨진 이야기들은 아직도 그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은다. 영화 '황야의 분노'의 끝부분에서 총을 던져버리고 떠난 스콧에게 총없이도 살아갈 날들이 남은 것처럼, 서부극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