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면에서는 태풍 예보가 계속 나오고 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는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이런날에 만두가 먹고 싶어지다니, 여자는 시장통 골목의 만두가게가 계속 생각이 난다. 그래,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괜찮겠지.


  제법 튼튼하다고 생각되는 우산을 골라본다. 문을 열자 거센 바람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우산이 펄럭거린다. 몸이 휘청거리지는 않지만, 바람의 세기가 좀 버겁게 느껴진다. 겨우 시장통에 도착했다.


  시장은 한산하다. 만두 가게의 벽면 TV에서도 태풍 소식이 쉴새없이 나온다. 이 집의 만두는 언제나 한결같은, 놀라운 맛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이렇게 태풍이 부는 날에도 만둣집에 오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가게 주인은 비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것을 보며, 오늘 장사는 영 글른 모양이군, 혼잣말을 한다. 여자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산다. 주인은 잘 살펴 가라며 인사를 건넨다.


  바깥을 나와보니, 아까보다 빗줄기도 세지고, 바람의 소리도 무섭게 들린다.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어쨌든 만두를 산 건 잘한 일이다. 손에 들린 비닐 봉투에서 만두 하나를 꺼낸다. 따뜻하다. 입에 만두를 넣고 한입 베어무는 순간, 바람에 우산이 제껴진다. 이건 정말 센 바람인 걸, 얼른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네...


  2016년 9월 27일, 태풍 '메기'가 대만에 상륙했다. 4명이 사망하고, 오백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대형급 태풍이었다. AP연합 뉴스 사진에는 타이베이 시내에서 악천후 속에서도 우산을 쓰고 만두를 먹고 있는 이 여성이 찍혔다. 이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약간의 웃음과 여러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아마도 이런 생각일 것이다.


  "도대체 태풍 부는 날, 우산까지 쓰고 저렇게 만두를 먹어야 하는 건가?"


  또는,


  "저 만두가 얼마나 맛있길래 우산이 제껴질 정도의 바람에도 만두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거지?"


  이 사진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당시에 대만에 체류했던 한국 여행객의 블로그에까지 이르렀다. 블로그에는 대만 TV에서도 이 사진의 주인공에 대한 분석(?)보도를 뉴스에 내보냈다고 쓰여 있었다. 이 여자는 누구며, 여자가 먹고 있는 만두를 만든 가게는 어디에 있는가 등등. 아무튼 이 아주머니는 대만에서 뿐만 아니라, 외신 뉴스에서 이 사진을 본 나에게까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냥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가끔씩, 이 사진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뭐랄까, 이 사진에서 아주 견고하고, 순전한 삶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작년이었던가, 이 사진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었으므로, 태풍과 만두를 연관 검색어로 입력해서 겨우 찾아냈다. 그 결과, 이 사진이 2016년 태풍 메기가 강타한 9월의 대만 타이베이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진과 관련된 인터뷰가 그 당시에 올라왔던 기억도 난다. 사진 속 아주머니는 자신의 사진이 그토록 엄청난 화제가 된 것에 약간의 창피함과 당혹감을 느꼈다고 했다. 왜 그 험한 태풍이 부는 날씨에 만두를 먹고 있었냐는 질문에, 바람이 좀 세게 불었지만 자신은 그저 만두를 먹고 싶었을 뿐이라며 다소 쿨(!)한 답변을 남겼다. 


  사진을 찍은 기자는 태풍이 부는 날, 바깥 풍경을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가 우연히 이 사진을 건졌을 것이다. 연속으로 찍은 이 사진은 매체에 따라 각각 실리기도 하고, 두 장이 같이 나오기도 했다. 나는 두 장을 같이 보는 것이 더 생동감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렇게 어렵게 찾아낸 이 사진들을 컴퓨터 하드에 잘 저장해 두었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그다지 곱지 않은 인상을 지닌 중년 여성의 만두 먹는 장면에 더러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저 만두 맛집은 타이베이 시내 어디에 있는가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사진 속 인물이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면, 이 사진은 다른 의미에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은 #대만 태풍#예쁜 처자#만두, 아마도 이렇게 올라오지 않았을까?


  어떤 면에서 다소 거칠고 우왁스럽게까지 보이는 사진 속 중년 여성의 이미지는 호감 보다는 웃음과 놀림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이 사진에서 순수한 삶의 의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전, 사진 비평 수업 시간에 보았던 수많은 유명 사진 작가의 그 어떤 사진들 보다 이 사진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태풍이 오는 날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만두를 손에서 놓지 않는 그 꿋꿋함은 조롱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대범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것이 내가 이 사진을 컴퓨터 하드에 저장하고서, 가끔씩 찾아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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