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KO 영화사 시절의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의 초상 1부  


1. Rachel and the Stranger(1948), 노만 포스터 감독

2. Where Danger Lives(1950), 존 패로 감독

3. His Kind of Woman(1951), 존 패로 감독

4. Angel Face(1953), 오토 프레밍거 감독

5. The Lusty Men(1953), 니콜라스 레이 감독




1. 하워드 휴즈가 로버트 미첨에게 안긴 곤혹스러움, 'His Kind of Woman(1951)'과 'Where Danger Lives(1950)'

  194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이라고 하는 역사적 재판의 결정을 내린다. 헐리우드 제작사들의 제작, 배급과 관련해 수직계열화를 독과점으로 규정하고 이를 분리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자사 제작 영화를 자체 소유 극장을 통해 배급하면서 얻은 막대한 이득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영화사들은 매각되거나 지분이 쪼개지는 경우도 생겼다. RKO는 유명한 재벌 하워드 휴즈의 손에 넘어갔다. 다양한 필름 느와르를 비롯해 B Movie의 보고와도 같았던 이 영화사가 휴즈와 같은 기인에게 넘어간 것은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정서적인 문제가 있었던 휴즈는 1946년의 비행기 사고 후유증으로 더욱 괴팍스러워졌다. RKO를 소유하게 되면서, 제작되는 영화들에 대한 그의 간섭과 집착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배우 선정에서부터 완성된 영화에 대한 수정 요구까지 모든 면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들었다. 'His Kind of Woman(1951)'같은 영화는 그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존 패로 감독(배우 미아 패로는 그의 딸이다)이 찍은 이 영화에는 로버트 미첨과 제인 러셀(휴즈의 연인으로 유명한), 빈센트 프라이스가 나온다. 그런데 휴즈는 빈센트 프라이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부각시키기 위해 영화 전체를 뜯어고쳐 다시 찍을 것을 감독에게 요구했다. 패로가 완강히 거부하자 대타로 불려나온 사람은 리처드 플라이셔였다. 플라이셔 감독은 고용주의 뜻에 따라 억지로, 마지못해 영화를 재촬영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흥행 대참패로 이어졌다.

  추측컨대 패로 감독이 찍은 원본이 훨씬 더 영화의 완성도가 높았을 것이다. 나중에 B급 공포 영화의 아이콘이 된 빈센트 프라이스는 정말로 B급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인데, 후반부 40분 정도가 빈센트 프라이스를 위해서 할당되었다. 주연 배우인 로버트 미첨이 이 영화에서 당한 수난은 참으로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전문 도박사 댄은 5만 달러의 돈을 받고 멕시코 휴양지에서의 일감을 떠맡는다. 댄은 휴양지 호텔에서 수수께끼같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무려 40분이 지나는 동안 주인공 댄을 비롯해 관객도 도무지 이야기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방된 마피아 두목은 체격이 비슷한 댄을 이용해(성형 수술을 시켜서) 미국 밀입국 시도를 하려고 한다. 댄은 마피아에게 잡혀서 강제로 페이스 오프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그걸 빈센트 프라이스가 눈부신 활약으로 구해낸다.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영웅 흉내를 내는 빈센트 프라이스의 모습에 휴즈는 정말로 만족했을까? 추가로 투입된 제작비는 이 영화가 낸 엄청난 적자와 맞먹는 금액이었다. 댄을 연기한 로버트 미첨은 개연성 없는 이 영화에서 얻어맞고 나뒹굴며 고군분투한다. 아마도 나중에 자신의 계좌에 들어온 출연료가 유일한 위로가 되었을 듯하다.

  미첨은 이미 그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1950년에 찍은 'Where Danger Lives'가 그러했다. 주로 주먹 세계와 가까운, 하층민의 역할을 맡았던 미첨은 이 영화에서 '의사'로 나온다(솔직히 말하자면 안어울린다). 제프는 자살 시도로 입원한 환자 마고를 돌보다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마고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프가 마고의 남편과 다투는 과정에서 마고의 남편이 죽는다. 마고는 머리를 다쳐 판단력이 흐려진 제프를 부추겨 멕시코로 도피한다. 과연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휴즈의 파티에서 눈에 들어 그의 연인이 된 페이스 도머그(Faith Domergue)가 미첨의 상대역에 낙점되었다. 별다른 재능도 없는 이 여배우가 생기있게 보이는 순간은 비명을 지를 때이다. 정말로 소름끼치게 비명을 지르는데, 놀랍게도 그 재능을 바탕으로 여배우는 자신의 후기 경력을 채우게 되었다. 도머그는 나중에 B급 공포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연기를 못하는 상대 여배우에게 맞춰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미첨의 모습은 애잔해 보일 정도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미첨은 잘못된 사랑으로 인생의 나락에 떨어지는 비운의 남자를 실감나게 연기해낸다. 


2. 필름 느와르에서 찾은 광채, Angel Face(1953)

  RKO 계약 배우로서 로버트 미첨이 각광받았던 장르는 필름 느와르였다. 자크 투르니에 감독의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 1947)'는 매우 잘 알려진 RKO 시절 작품이다. 진 시몬스와 1953년에 찍은 'Angel Face' 또한 수작으로 꼽힌다. 나에게 진 시몬스는 아름답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 시몬스는 자신의 배우적 재능을 입증해 보인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연출 역량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로버트 미첨은 진 시몬스와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구급 요원 프랭크(로버트 미첨 분)는 부유한 사업가의 저택에서 일어난 가스 중독 사고 현장에 출동한다. 사업가의 딸 다이앤(진 시몬스 분)은 계모의 중독 사고에 매우 흥분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프랭크는 다이앤의 뺨을 때리는데, 뺨을 맞은 다이앤은 프랭크를 똑같이 때린다. 서로 뺨 한 대를 주고 받으며 시작된 사랑의 감정(!)은 예기치 않은 행로로 흘러간다. 다이앤은 프랭크에게 보수가 적은 구급차 요원 일 대신에 집안의 운전기사 일을 제안한다. 다이앤의 저택에서 일하면서 프랭크는 점차 이 천사같은 얼굴의 아가씨에게 어두운 면모를 발견한다. 다이앤의 계모에 대한 적개심은 급기야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으로 이어진다. 사건의 공모자로 의심받는 프랭크, 그는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토 프레밍거 감독은 청순한 매력의 얼굴을 가진 진 시몬스에게서 사이코패스적인 냉혹함을 끌어낸다. 사랑과 범죄는 기이하게 얽히며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아찔한 수직 절벽에서 찍은 자동차 사고 장면은 관객을 극한의 긴장과 불안 속에 몰아넣는다. 로버트 미첨은 이 영화에서 결코 유약하거나 여성 캐릭터에게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프랭크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의지에 따라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굴복하지 않는 남자, 미첨이 가진 강인한 면모는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다. 이것은 'Where Danger Lives'에서 그가 연기한 의사 제프의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뇌진탕의 후유증으로 사고 판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남자는 자신을 조종하려는 여자의 의지에 압도되지 않는다.           


2부에서 계속...



*사진 출처: tcm.com   'His Kind of Woman(1951)'의 로버트 미첨과 제인 러셀


**사진 출처: tcm.com    'Where Danger Lives(1950)'의 로버트 미첨과 페이스 도머그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리얼리즘 영화인가 착취 영화인가, Pixote(1981)

  브라질의 헥토르 바벤코(
Héctor Babenco) 감독의 '피쇼테(Pixote)'는 2018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원된 작품이다. 복원된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는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재단을 통해 기금을 지원했다는 자막이 뜬다. 복원판은 원래 영화에 프롤로그로 들어가는 바벤코 감독의 내레이션 부분이 없다. 그 부분은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약 2분 가량의 영상에서 감독은 빈민촌(Favela로 불리는)을 뒷배경으로 브라질의 심각한 빈곤과 그로 인한 아동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그 도입부 장면에서 주인공 '피쇼테'를 연기한 실제 파벨라 출신의 페르난도 라모스 다 실바의 모습도 보인다.

  영화 '피쇼테'는 꽤 착잡하고 괴로운 영화 보기의 경험을 선사한다. 고아 피쇼테가 거리의 아이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겪는 일은 영화가 아니라 진짜 현실처럼 느껴진다. 강간, 폭행, 학대, 협잡과 은폐가 횡행하는 복마전 같은 소년원에서 아이는 친구들과 탈출한다. 그러나 피쇼테를 기다리는 것은 더 깊은 범죄의 수렁이다. 소매치기를 시작으로 마약 밀매, 포주 노릇과 협박, 결국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이 고통스런 피쇼테의 범죄 인생 수업기는 영화적 표현으로서의 리얼리즘과 아동 연기자에 대한 착취(exploitation)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아동이 강간과 성행위를 목격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브라질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였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다큐멘터리적인 미학을 성취하기 위해 최하층 빈민가 출신의 아동 배우를 그런 식으로 소모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피쇼테'를 보는 내내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공허한 눈빛을 가진 주인공 피쇼테. 자신의 삶을 연기하는 것 같았던 페르난도 라모스 다 실바는 19살의 나이에 경찰의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출연이라는 행운은 문맹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어지지 않았다.


2. 팔레스타인의 오늘, Mayor(2020)와 200 Meters(2020)

  데이비드 오싯 감독의 2020년작 다큐 'Mayor'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임시 수도 '라말라'의 시장이 주인공이다. 이스라엘 서안 지구(West Bank)에 자리한 라말라의 무사 시장은 시에 산적한 여러 문제들을 비롯해 정치적인 난제들과도 마주한다. 온화한 성품의 시장은 매사에 합리적이고 명료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쓴다. 업무를 위한 시청 직원들과의 소통을 비롯해 주민들의 민원에도 동네 아저씨처럼 직접 가서 살펴보고 이야기를 듣는다. 팔레스타인의 행정력이 미치는 라말라는 겉으로는 매우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은 곧 그 평화가 잠정적이고 유동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2017년 12월, 트럼프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킨다. 다큐는 국제적인 정치 역학이 라말라에 그대로 반영되는 모습을 담아낸다. 네타냐후 정부는 트럼프의 선언을 계기로 서안 지구 정착촌 건설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선다. 성탄절을 앞두고(라말라의 주민 25%는 기독교 신자이다) 축제 분위기에 있었던 라말라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진입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시청사 앞까지 진출해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총을 쏘아대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시장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라말라가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아닌 이스라엘의 '점령지'임을 명백히 상기시키는 장면이다. 

  서안 지구는 지역에 따라 A, B, C로 나뉜다. 팔레스타인의 지배적 행정력이 미치는 A 지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동 관리하는 B 지역, 이스라엘 단독 관리 지역 C. 라말라는 A 지역에 속하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온전한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안 지구에 고립된 섬처럼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들로 가기 위해서는 늘 이스라엘군의 검문소를 거쳐야만 한다. 라말라의 시 주변 곳곳에도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고, 인접한 정착촌 때문에 라말라 주민들은 수질 오염과 같은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서 무사 시장은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독일 외교 사절단과의 회담에서 보여준 시장의 모습이었다. 사절단은 정치적 의사 표명에 난색을 표하면서 실질적인 민간 교류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자 시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엄성(dignity)'을 지키는 데에 서방 세계의 정치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아민 나이페 감독의 2020년작 '200 미터'는 바로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를 가르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가족은 나뉘어 살고 있다. 남자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아내는 아이들과 예루살렘에서 지낸다. 두 집의 사이는 장벽 하나를 두고 고작 200 미터 정도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따로 살게 되었을까? 예루살렘에서 2개의 부업을 뛰며 일을 하는 아내에게는 거주권이 있지만, 남편에게는 없다.

  자본과 일자리가 넘치는 예루살렘에 가서 돈을 벌기 위해 남자는 수모에 가까운 검문 검색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엑스레이 촬영, 지문 검색, 신분증 제출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에 가깝고 겨우 그렇게 가서 막노동을 한 다음에 밤늦게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일 겪는 일상이다. 영화는 갑작스런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남자가 급하게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비합법적인 루트를 이용하는 과정을 그린다. 총격전과 테러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도, '200 미터'가 보여주는 예루살렘 진입기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으로 채워져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단편적인 국제 뉴스만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현실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영화 '200 미터'는 오늘을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다큐 'Mayor'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쟁 지역의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이러한 작품들은 국외자 관객들에게 국제 정치의 역학과 그 이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 출처: janusfilms.com



**사진 출처: wikipedia.org



***사진 출처: tehrantimes.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잡담; The Dig(2021), Laura(1944), The Narrow Margin(1952)


  'The Dig(2021)'는 러닝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된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20분쯤 되었을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덤 파는 이야기로 어떻게 나머지 1시간 반을 채울 것인가... 초반부에 이미 주인공들이 발굴하려는 무덤의 역사적 가치가 명백해진 상태였다. 이 영화의 촬영은 말 그대로 '때깔'좋게 나왔다. 문제는 내러티브의 때깔도 그러하냐는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병든 여자와 늙은 남자의 로맨스는 그다지 효용성이 없으므로, 다른 수를 써야만 했다. 아무래도 실존했던 인물들을 다루는 것은 까다롭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허구의 젊은 남녀를 투입했다. 이 맥아리 없는 영화는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썩어 없어질 지상의 모든 것과 대비되는 영속성을 가진 유적, 그리고 그것을 위해 투신하는 부유한 상류층 여성과 발굴 탐험가. 이 영화에서 어떤 매력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한가지 특색이 있다면 사운드 편집을 들 수 있겠다. 인물들이 아무 말 없이 있는 장면에서 뒤따르는 다른 장면의 대화들이 겹쳐지는 것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실망스런 영화를 보고나서 내가 언제나 찾는 영화는 헐리우드 클래식이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1944년작 '로라(Laura)'는 매력적인 여배우 진 티어니가 나온다. 영화는 형사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로라는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형사 맥퍼슨은 로라의 살인범을 찾으려고 수사 중이다. 그는 로라의 집 거실에 걸린 로라의 아름다운 초상화에 매혹된다. 여배우 대신에 초상화가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한다. 어쩌면 맥퍼슨만 로라의 초상화에 반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매력적인 여인 로라의 모습에 관객들도 함께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초상화 앞에 잠들어 있던 맥퍼슨 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그렇다면 죽은 여자는 누구이며, 왜 살해당했을까?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나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이 영화를 내가 아주 오래전에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범인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에 범인이 'Good bye Laura. Good bye my love'라고 애절하게 말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런 영화는 두 번을 보아도 결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로라'에서 같이 공연했던 진 티어니와 다나 앤드류스는 역시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Where the Sidewalk Ends(1950)'에서도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그 영화도 좋다.

  예전에 본 영화인지 모르고 또 보았던 영화로는 'The Narrow Margin(1952)'이 있다.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이 필름 느와르는 '기차'라는 협소한 공간을 활용하는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일반적으로 B급 영화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의외로 여성 캐릭터들의 전복적 설정을 비롯해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에서야 이 영화를 20년 전에 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본 영화를 그렇게 기억못하고 또 보는가, 라고 묻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도 그는 충분히 젊은 나이일 것이다. 학생 시절에 영민하다는 소릴 꽤 들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된다. 아무튼 이 잡담의 결론은 이렇다. 'The Dig'를 본 시간은 정말로 아깝지만, 두 번 본 'Laura'와 'The Narrow Margin'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것. 



*사진 출처: faceboo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계식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소품(Неоконченная пьеса для механического пианино, An Unfinished Piece for Mechanical Piano, 1977)


  1923년, 러시아에서 희곡 대본 하나가 발견된다.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것으로 이전까지 출판되지 않은 미발표 희곡이었다. 체호프가 18세 때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희곡은 니키타 미할코프(Nikita Mikhalkov)를 매료시켰다. 그는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원작 희곡을 새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작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체호프의 향기를 느끼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감성이 뒤섞여 있음을 알게 된다. 대개는 '플라토노프(Platonov)'로 공연되는, 또는 '아버지 없는(Fatherlessness)'이란 제목을 가진 4막의 희곡은 '기계식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소품'이란 영화로 재탄생했다. 체호프의 세계와 미할코프의 영화적 감수성이 하이브리드된 이 독특한 영화는 미할코프의 대표작이 되었다.

  미할코프는 원작의 등장 인물들을 대폭 축소하고, 결말도 바꾸어 버렸다. 또한 원작에는 없는 기계식 피아노(저장된 악보에 따라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를 중요한 소품으로 배치시킨다. 19세기 러시아의 어느 교외 시골 별장에서 펼쳐지는 몰락 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부조리와 우울, 통렬한 시대 비판이 들어 있다. 장군의 미망인 안나는 자신의 교외 별장에 지인들을 초대한다. 안나의 의붓 아들 세르게이는 소피아와 이제 막 결혼했다. 안나의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 채권자 페트린, 이웃의 사업가 포르피리, 마을의 유일한 의사 니콜라이, 니콜라이의 여동생 샤샤와 남편 플라토노프, 니콜라이와 샤샤의 아버지 파벨, 이웃 셰르부크와 그의 두 딸과 조카가 별장의 손님들이다.  

  원작 희곡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의 주인공은 플라토노프이다. 학교 교사인 그는 안나의 별장에 온 소피아를 보고 놀란다. 대학 시절의 연인이었던 소피아는 그를 떠났고, 플라토노프는 심한 절망감에 대학을 그만 두고 평범한 교사가 되었다. 소피아의 남편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 서생과 같은 인물로 플라토노프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다. 플라토노프는 소피아에게 다시금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거기에 플라토노프와 한 때 내연 관계에 있었던 안나, 그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인 플라토노프의 아내 샤샤가 있다. 별장에 온 이들은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플라토노프는 자신을 비롯해 그곳에 모인 이들의 모습에 염증과 혐오를 느낀다. 니콜라이가 아픈 아내의 진료를 간청하는 마을 농부를 귀찮다며 돌려보내자 플라토노프의 독설이 폭발한다.

  이 시골 별장에 모인 이들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뒤틀려 있다. 햄릿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견디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것처럼 플라토노프도 그렇게 한다. 그는 니콜라이가 마을의 유일한 의사로서의 직무를 저버리고 그저 안락한 삶만을 추구한다고 비난한다. 부유한 이웃 사업가 포르피리에게는 그가 축재한 재산이 정당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가난한 농민에 대한 연민을 보이는 세르게이를 그저 책으로만 세상을 배운 무능한 지식인이라고 비웃는다. 안나에게 구애하는 페트린에게는 늙음을 상기시킨다. 이렇게 플라토노프는 그곳 사람들을 들쑤시고 상처를 헤집으며 조롱한다. 물론 그 대상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니키타 미할코프는 플라토노프의 눈을 통해 몰락해가는 19세기의 러시아와 당시 지배계급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폐기의 수순을 밝고 있는 구시대의 잔재이다. 사람이 연주를 할 수 없는, 자동 입력된 악보에 따라 반복적으로 소리를 낼 뿐인 기계식 피아노의 존재는 그에 대한 극명한 은유이다. 이 영화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또 다른 은유적 상징의 인물은 파벨 노인이다. 의사 니콜라이와 플라토노프의 아내 샤샤의 아버지인 파벨은 늘 잠에 빠져 있다. 아무 데서나 졸고 있는 파벨을 주위 사람들은 매번 흔들어 깨우지만, 그는 다시 잠들고 만다. 원작 희곡의 또 다른 제목 'Fatherlessness'의 뜻은 가부장의 부재인 동시에 시대 정신의 부재, 가야할 방향을 알지 못하는 제정 러시아의 운명에 대한 극명한 비유인 셈이다.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다. 장군 미망인이라는 허울 뿐인 이름의 안나는 주요 재산을 저당잡혀 있고, 늙은 채권자 페트린의 구애를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면서도 플라토노프에게 추파를 보낸다. 플라토노프는 주변 사람들의 무능과 부도덕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유부녀가 된 과거의 연인 소피아를 유혹한다. 백치 같은 소피아의 남편 세르게이는 징징거리면서 의붓 엄마 안나에게 달려간다. 이 기가 막힌 소극(笑劇)은 모든 상황에 극심한 환멸을 느낀 플라토노프가 잠들어 있는 별장의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다가 갑자기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것에서 비극으로 전환된다.   

  체호프의 원작은 소피아가 플라토노프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미할코프는 그런 식의 비극적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플라토노프가 죽으려고 몸을 던진 강물은 고작 무릎 높이 정도의 수위였다. 물론 죽을 결심을 한 그는 강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아내 샤샤는 그런 플라토노프에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며 사랑만이 인생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상기시킨다. 비극적이고 허무하게 닫힌 세계는 미할코프의 열린 긍정의 세계로 나아간다.

  영화 '기계식 피아노에 대한 미완성 소품'에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구시대 러시아 상류층의 우울한 초상이 담겨있다. 새벽에 소피아를 만나고 별장으로 들어가려는 플라토노프는 열리지 않는 문을 잡고 씨름한다. 아내와 플라토노프의 밀회 장면을 목격한 세르게이는 떠나려고 하지만 그는 빼려고 했던 결혼 반지를 그대로 끼고 마차에서 잠든다. 플라토노프의 무위로 끝난 자살 소동이 마무리될 무렵 동이 터온다. 별장의 사람들이 강으로 달려가는 북새통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받는 이는 이웃 셰르부크의 철없는 어린 조카 페치카이다. 아마도 새로운 러시아는 기성 세대의 어리석음과 악덕에 물들지 않은 그 다음 세대의 과업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배우들의 케미스트리와 아주 자연스러운 연출이 눈에 띈다. 니키타 미할코프는 그런 결과물을 얻기 위해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배우들과 그 가족들을 촬영 장소인 오카 강가의 푸쉬치노에서 지내도록 했다. 배우들은 서로 매우 친해졌으며, 그들 모두는 시골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영화를 위해 숙성된 시간은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미할코프는 영화 속에서 의사 니콜라이 역을 연기했는데, 그는 연기자로서도 나무랄 데 없는 실력을 보여준다. 연기자와 감독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빛냈던 그는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해서 러시아 재벌급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 사주로 치면 관운(官運)과 재물운의 끝판왕인 이 행운아 감독의 영화에는 강렬한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십대 체호프의 숙성되지 않은 문학 세계는 미할코프의 손을 거치면서 놀라운 공명을 만들어 내는 영화로 재탄생했다. 어떤 면에서 '기계식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소품'은 체호프의 비어있고 불완전한 소품을 비로소 완성시킨 미할코프의 역작인 셈이다. 



*사진 출처: domkino.tv  영화 '기계식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소품'에서 의사 니콜라이를 연기한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숨겨진 보석, 잉그리드 버그만의 초기 출연작 4편

1.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 Night, 1935), Gustaf Edgren 감독
2. 여자의 얼굴(A Woman’s Face, 1938), Gustaf Molander 감독
3. 간주곡(Intermezzo, 1939), Gregory Ratoff 감독
4. 6월의 밤(June Night, 1940), Per Lindberg 감독



  시작은 '발푸르기스의 밤(1935)'이었다. 'Foxtrot(2017)'과 'First Reformed(2017)'를 보고 무척 심드렁한 기분이 되었다. 'Foxtrot'은 작위적이었고, 'First Reformed'는 평범했다. 'First Reformed'는 폴 슈레이더가 이젠 영화를 그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한가지 새롭게 발견한 것은 있었다. 에단 호크가 꽤 좋은 배우라는 사실. 명료한 발성과 세밀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서 그 맑고 앳된 얼굴의 배우는 이제 이마에 주름 선명한 중년이 되었다. 같이 나이먹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더 주의깊게 보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매혹되지 않은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일은 이제 하고 싶지가 않다. 그냥 머리나 식히자며 본 것이 잉그리드 버그만의 스웨덴 시절 작품 '발푸르기스의 밤(1935)'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버그만이 나오는 영화를 연달아 세 편을 보았다.

  '발푸르기스의 밤'을 찍을 때 버그만의 나이가 스물이었다. 무성 영화 시절을 연상케 하는 다른 배우들의 정형화된 연기들 속에서 버그만은 홀로 생동감을 내뿜는다. 마치 흑백 영화 속에 유일하게 칼라로 찍힌 배우처럼 보인다. 비서로 일하는 레나(잉그리드 버그만 분)는 자신의 상사 요한을 사랑하게 된다. 유부남인 요한은 아이 갖기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상심한 상태다. 요한의 아내는 남편 몰래 중절 수술을 받는데, 병원이 당국의 단속에 걸리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다. 거기에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사기꾼은 신문사에 알리겠다고 돈을 요구하며 협박한다. 가정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사기꾼과 만난 요한은 뜻하지 않게 살인 사건에 말려드는데...

  유럽에서 전승되는 민속 축제인 발푸르기스의 밤은 봄의 생명력을 찬미하는 큰 축제이다. 영화는 스웨덴의 출산율 감소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시작한다. 스웨덴 인구복지 협회에서 만든 것 같은 이 영화는 모성과 출산이 가지는 가치를 크게 부각시킨다. 요한의 아내는 인생을 즐기는 데에 아이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이 여성 캐릭터는 매우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낙태'를 한다는 것은 모성에 대한 거부이며, 그러한 여성은 바람직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요한의 아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죽음으로 댓가를 치룬다. 이후에 결혼한 레나가 아이를 요한에게 안겨주는 마지막 장면은 당시 스웨덴 사회가 지닌 여성과 가정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반영한다.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유부남을 사랑하게 된 젊은 여성의 내밀한 감정을 잘 보여주었던 버그만은 1936년에 Gustaf Molander 감독의 'Intermezzo'를 찍는다. 유부남 바이올리니스를 사랑하게 되는 피아니스트 역이었다. 이 영화는 버그만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이 'Intermezzo'에 나온 버그만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39년, 셀즈닉은 버그만을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애쉴리 역을 연기했던 레슬리 하워드가 버그만의 상대역을 맡았다. '시민 케인(1941)'의 전설적인 촬영 감독 그레그 톨랜드가 담아낸 빼어난 화면은 버그만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명하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홀거는 딸의 피아노 선생인 아니타의 재능과 미모에 반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연주 여행을 떠나지만, 아니타는 홀거가 아이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결국 아니타는 홀거를 떠나고, 남자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레슬리 하워드와 잉그리그 버그만의 연주 연기였다. 악기를 배운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주 장면이 나오면 배우들이 어떻게 그 장면을 연기하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간주곡'에서 레슬리 하워드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런데 활쓰기와 지판을 짚는 법이 꽤 정확해서 좀 놀랐다. 그건 피아노를 치는 버그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찾아보니, 두 배우에게 연주자들이 붙어서 특훈을 시켰던 모양이다. 물론 배우들이 실제 연주했던 것은 아니고, '연기'로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연기에도 상당한 기교와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역시 뛰어난 배우들은 뭔가 확실히 달랐다.

  '간주곡'의 버그만은 연주 연기 뿐만 아니라 영어 대사도 잘 소화해 낸다. 제작자 셀즈닉은 버그만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할까봐 걱정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이 여배우의 미모와 재능은 일종의 계시처럼 보인다. 영화 '간주곡'은 스웨덴 여배우 버그만의 성공적인 헐리우드 진출작이 되었다. 향후 10년 동안 버그만은 헐리우드를 지배하는 아이콘으로 자리한다.

  '여자의 얼굴(A Woman’s Face, 1938)'은 버그만의 존재를 셀즈닉에게 알려준 1936년작 'Intermezzo'의 구스타프 몰란더 감독과 찍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버그만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버그만이 화상 흉터로 일그러진 여자 사기꾼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부유층의 불륜과 범죄를 캐내어 협박하는 사기꾼 안나는 뛰어난 외과의사를 만나 성형 수술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과거의 그림자가 안나를 끈질기게 따라온다.

  틀니를 비롯해 특수분장을 하고 험악한 얼굴의 범죄자를 연기한 버그만의 모습은 매우 생소하게 보인다. 버그만이 연기한 안나는 그저 그런 사기꾼이 아니라 노회한 동료 범죄자들을 이끄는 강인한 보스이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버그만은 거칠고 높은 톤으로 발성한다. 이 여배우에게 스웨덴 시절의 영화들은 다양한 역할을 통해 연기력을 연마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6월의 밤(June Night, 1940)'은 이제 버그만의 연기 수련기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버그만은 자신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시골 처녀 케르스틴은 연인의 총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떠들썩한 재판을 거치면서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된 케르스틴은 낯선 도시 스톡홀름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조용히 살려는 케르스틴의 바램은 찾아온 남자친구와 기자의 추적으로 깨어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된 사랑이 케르스틴을 장밋빛 미래로 이끈다.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 여인이 변심한 것을 견딜 수 없는 남자는 총을 쏜다. 케르스틴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 매력에 빠져든다. 여성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들렀던 병원의 간호사는 살 곳을 찾는 케르스틴에게 자신의 거처로 안내한다. 심지어 케르스틴의 행방을 쫓는 기자마저 그 모습에 매혹되어 잊지 못한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말도 나누지 않고 얼굴 몇 번 본 것뿐인데도 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간호사의 약혼자인 의사는 따뜻하고 헌신적인 연인을 내팽개치고 케르스틴과 떠나버린다...

  '6월의 밤'에서 버그만은 매혹 그 자체를 보여준다. 엉성한 내러티브와 몰입되지 않는 상대 배우들의 외모와 연기,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잉그리드 버그만'의 존재 때문이다. 정말이지 영화 4편을 보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버그만이 가진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아우라는 말 그대로 화면에 흘러 넘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떠들썩한 스캔들과 결국은 이혼으로 끝난 결혼 생활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버그만의 놀라운 영화들을 더 많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스웨덴 시절에 찍었던 초창기 영화들은 충분히 달래준다. 숨겨진 보석, 그 영화들은 후대의 팬들을 위해 남겨둔 버그만의 깜짝 선물처럼 느껴진다. 



*사진 출처: torontofilmsociety.com  'Intermezzo(1939)'의 레슬리 하워드와 잉그리드 버그만


**사진 출처: criterio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