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동물을 다룬 다큐멘터리 세 편; Aquarela(2018), Gunda(2020), Stray(2020)



1. 빅토르 코사코프스키의 다큐들, Aquarela(2018)와 Gunda(2020)

  오래전, 러시아 영화사 수업 시간에 미하일 칼라토조프의 '나는 쿠바다(Soy Cuba, 1964)'를 보았을 때의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찍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롱쇼트는 마치 카메라가 공중을 유영하듯이 특이하게 찍은 장면이었다. 정말이지 기이하고 놀라운 쇼트여서 수강생들끼리 저거 어떻게 찍었을까,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러시아에서 영화를 전공한 선생님이 당시 촬영 스탭으로 참여했던 이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대답을 안해줬다고... 선생님은 아마도 건물들 사이에 밧줄을 걸고 카메라를 미끄러지게 해서 찍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Viktor Kossakovsky)의 2018년작 다큐 'Aquarela'의 마지막 부분은 탄성과 함께 '나는 쿠바다'를 보며 던졌던 질문을 하게 만든다.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코사코프스키는 'indiwire.com'과의 인터뷰에서 '영업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랬다. 목숨 걸고 찍은 필름의 비밀을 알기란 쉽지 않다.

  '수채화'란 뜻의 'Aquarela'라는 제목의 다큐는 말 그대로 물과 얼음의 향연이 펼쳐지는 자연 다큐이다. 1시간 3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채운 물의 다양한 형태, 그 힘과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된다. 다큐의 시작은 바이칼의 얼음 호수에 빠진 자동차를 끌어내는 장면에서부터이다. 러시아 태생의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여정은 기후변화로 거대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그린란드, 광포한 폭풍우가 들이치는 바다, 기록적인 피해를 기록한 허리케인 Irma가 지나가는 마이애미의 한복판, 그리고 마지막 여정인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에 이른다. 깎아지른듯한 수직 절벽의 위와 아래에서 찍은 앙헬 폭포의 장관은 지상의 물이 주인공으로 펼치는 극한의 서커스처럼 보인다. 폭포의 물보라 속에 만들어지는 무지개를 포착한 장면은 'Aquarela'가 성취한 시적 미학을 입증한다.

  코사코프스키가 'Aquarela'를 찍을 당시에 동시에 진행하던 작업이 있었다. 농장의 동물들을 찍는 다큐였다. 'Gunda(2020)'는 자연주의적 방목을 하는 농장의 돼지와 소, 닭의 모습을 1시간 23분 동안 보여준다. 'Gunda'라는 이름의 돼지가 다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동물 다큐에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내레이션도, 음악도 없다. 오직 자연의 소리로만 채워진 다큐는 어미 돼지 'Gunda'가 농장의 헛간에서 새끼들을 낳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정확한 숫자를 세려다 번번이 실패하는 열 마리가 넘는 새끼 돼지들은 맹렬하게 어미의 품을 파고들며 젖을 찾는다. 그 와중에 짚더미에 깔려서 세상 구경을 못할 것 같았던 새끼 한 마리는 어미의 도움으로 겨우 눈을 뜬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농장에서 어미 돼지는 새끼들과 농장 근처 숲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평화롭게 지낸다. 소들은 축사가 아닌 들판에서 풀을 뜯고, 달려드는 파리떼들을 내쫓느라 애를 쓴다. 다리가 하나 뿐인 닭은 비틀거리면서도 자유로운 세상을 만끽한다. 노르웨이와 스페인, 영국에서 찍은 이 동물들의 모습은 공장식 축사에서 사는 대부분의 가축들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처지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다큐 속에 나오는 돼지와 소, 닭이 결국에는 사람의 식탁에 오를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새끼들을 보살피며 어미 돼지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 날 Gunda의 헛간 앞에 세워지는 커다란 트럭 한 대가 내는 소음은 불길함을 내뿜는다. 시동을 건 상태의 트럭 뒷편에서 새끼들의 비명이 들린다. 잠시 후 트럭이 떠나고 Gunda가 홀로 남는다. 영문을 모른 채 한참을 서있던 어미 돼지는 새끼들을 찾으려 이리 저리 헤맨다. 마치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Gunda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다. 새끼들과 함께 지냈던 헛간을 들어가려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밖을 둘러보던 어미는 결국 홀로, 힘겹게 헛간으로 들어간다.

  'Gunda'가 보여주는 농장의 가축들은 그 자체로 자연친화적이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그러한 풍경은 그 가축의 최종 소비자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고 복잡한 축산업 연결망의 일부분임이 드러난다. 젖으로 불어터진 Gunda의 몸이 새끼들을 싣고 떠난 트럭의 자취를 찾을 때,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며드는 죄책감을 느낀다. 차라리 기계적으로 도축되고 포장되는 육류 가공 공장의 생산 현장을 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과연 인간이 가축의 삶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것에는 얼마만큼의 정당성이 있을까? 어떤 관객에게 이 다큐는 채식주의로 내딛는 하나의 전환점일 수도 있다.


2. 떠돌이 개의 시선으로, Stray(2020)

  홍콩 출신의 엘리자베스 로(Elizabeth Lo)는 터키 이스탄불의 떠돌이 개들에 대한 다큐를 찍었다. 'Stray'란 제목의 이 다큐는 사람이 아닌, 개들이 만들어 가는 내러티브로 진행된다. 로는 Zeytin, Nazar, Kartal 이란 이름의 유랑견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이스탄불시는 거리의 개들을 포획하고 안락사시키는 대신에, 인식표를 달아주고 중성화수술을 시켜 시민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외국인의 눈에는 어찌보면 혼란스럽고 불결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스탄불의 독특한 풍광이 'Stray'에 펼쳐진다. 감독 엘리자베스 로는 철저히 개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담아내려고 애썼다.

  다큐가 시작되면, 우리나라의 누렁이와도 비슷하게 보이는 큰 덩치의 Zeytin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떠돌이 개에게 이름을 붙여준 이들은 시리아 난민 소년들이다. 시내의 버려진 건물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소년들은 개들과 느슨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들은 밤이 되면 소년들의 은신처에서 잠이 든다. 굶주린 소년들은 유독한 본드를 흡입하며 거리 생활을 이어가지만, 개들에 대한 애정만은 남다르다. 엘리자베스 로는 난민 소년들이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띄엄띄엄 집어넣는다. 관객들은 그 대화에서 소년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개'에게 맞춰져 있다. 항구 주변의 물가에서 하염없이 물이 들이치는 것을 보고 있는 Zeytin의 모습은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를 보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개의 영혼이 사람보다 저급한지는 알 수 없으나, Zeytin은 굽이치는 물결을 응시하며 반응한다. 길에서 만나는 다른 개들과 인사하고 교감도 나눈다. 개들은 에르도안 정권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탁심 광장의 시위 현장에도 나간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짝짓기를 시도하는 개들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노파는 그런 개들을 역겹다며 내쫓지만, 대체적으로 이스탄불의 시민들은 개들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덩치가 큰 개들이 지들끼리는 먹이와 영역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유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엘리자베스 로는 이스탄불의 떠돌이 개들이 뛰어난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filmmakermagazine.com과의 인터뷰 참조). 

  떠돌이 개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감독의 기록에는 중간중간 행인들의 대화가 들어간다. 부부의 내밀한 문제들, 젊은 남녀의 연애 고민 같은 이야기들은 개를 찍는 외국인 여성 감독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이들이 무심코 나눈 대화들이 포착된 것이다. 길거리 개들이 인간들의 일에 무관심한 것처럼 감독은 수시로 전환되는 내러티브의 방향성을 빠르게 개들에게 고정시킨다. 이스탄불 외곽의 유적지에서 떠돌이 개들은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자유롭게 활보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목적도, 구속도 없다.

  잘 차려입은 여성이 데리고 나온 흰색의 작은 강아지가 Zeytin에게 관심을 보이자, 주인은 자신의 강아지에게 물릴 거라며 주의를 주고 황급히 줄을 당긴다. 더럽다고 무시당하고 내쫓김을 당하는 개들의 처지는 그들을 아껴주는 시리아 난민 소년들의 모습과도 겹친다. 제대로 된 교육이나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도시를 배회하는 난민 소년들은 개들 보다 나을 것이 없는 처지이다. 다큐는 모스크의 기도문 소리에 맞추어 크게 하울링을 하는 Zeytin의 모습으로 끝맺는다. 'Stray'는 이스탄불의 'outcast'인 떠돌이 개들을 통해 인간과 공존하는 도시 속 동물의 또 다른 삶의 양상을 절묘하게 포착해낸다.           



*사진 출처: allocine.fr


**사진 출처: hollywoodreporter.com


***사진 출처: dogwo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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