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은 프랑스 근대사에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해이다. 보불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굴욕적인 협상으로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게 뺏긴 것이 2월이었다. 나폴레옹 3세가 쫓겨나고 새롭게 수립된 공화정 정부의 수반은 아돌프 티에르로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전후 수습과 함께 빠른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군의 해산을 명령했다. 프로이센의 파리 포위 기간 동안 목숨을 걸고 도시를 지켰던 민병대 조직인 국민군은 반발했다.

  시작은 티에르가 시민들의 기금으로 만든 국민군의 대포 징발을 위해 정부군을 보낸 것에서부터였다.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던 파리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정부군의 장군 2명이 시위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이에 놀란 티에르 정부는 베르사이유로 퇴각했다. 이후 70일 동안 파리에서는 코뮌(Paris Commune)이라는 자치 정부가 세워진다. 영국 출신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피터 왓킨스(Peter Watkins)는 바로 그 파리 코뮌을 다룬 5시간 45분짜리 극영화를 만들었다. 2000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La Commune'이라는 제목에 'Paris, 1871'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파리 교외의 거대한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무려 220명에 달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그들 대부분은 비전문 배우로 일반 파리 시민을 비롯해 이민자들 가운데 선발된 이들이었다.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던 이들을 위해 피터 왓킨스는 토론과 학습으로 이루어진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시간들을 거치면서 배우들은 자신들의 배역을 충실히 숙고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피터 왓킨스는 'La Commune'을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왓킨스에게 이 작업을 의뢰한 프랑스-독일의 합작 방송사 ARTE는 최종 결과물을 보고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으며, 작품의 상영과 배급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왓킨스가 그린 파리 코뮌의 실체가 어떠했길래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La Commune'은 시작부터 독특하다. 제작 스탭들이 세트에 자리한 가운데 남녀 배우가 자신들의 역할을 설명한다. 그들은 극에서 코뮌의 소식을 전하는 방송국 기자 역할을 맡았다. 1871년이 배경인 역사극에 신문이나 종이가 아닌 '방송국'이 미디어로 등장한다. 아주 흥미롭고 파격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는 왓킨스의 구상은 영화를 이끄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이른바 사회주의 좌파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코뮌 TV'가 파리 시민과 코뮌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어용 우파 언론도 있다. '베르사이유 TV'는 정부와 부르주아의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는 방송으로 영화는 그 둘 사이의 서로 다른 보도 행태를 보여준다.

  코뮌 TV 두 기자의 자기 소개에 이어 그들은 관객을 봉기의 진원지였던 파리 11지구 세트장으로 안내한다. 빵집 주인 부부를 비롯해 가난한 모녀가 자신들의 어려운 근황을 기자들에게 이야기한다. 프로이센군의 파리 봉쇄는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의 하층민들을 극한의 삶으로 내몰았고, 코뮌은 그러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왓킨스는 당시 역사적 기록과 통계를 인용한 자세한 자막을 중간 중간에 넣음으로써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극영화의 형식을 취했지만, 'La Commune'은 다큐멘터리적 방식을 긴밀하게 결합시켰다. 기자들은 파리 시민을 비롯해 군인, 코뮌 정치인들과 인터뷰한다. 그를 통해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점차 뼈와 살이 붙은 하나의 실체로 다가온다. 물론, 프롤레타리아의 입장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귀족 부인도 등장한다. '탈보트 부인'은 집에서 '베르사이유 TV'를 시청하며 코뮌의 향방을 주시한다. 실존 인물이었던 그는 당시 파리에 있으면서 베르사이유의 딸에게 파리의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써보냈다. 부인은 무도한 코뮌 일파를 정부군이 와서 소탕해주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중이다. 왓킨스는 부인이 편지를 쓸 때, 정면에 위치한 카메라를 자주 응시하도록 한다.

  탈보트 부인이 보여주는 이러한 인위적 응시는 영화적 재현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La Commune'에서 그런 효과를 가져오는 장치들은 여러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역동적인 핸드 헬드로 이어지는 시퀀스들은 대개 10분이 넘고, 거기에는 즉흥성과 자연스러움이 포함된다. 엉성하게 지어진 조립식 세트의 비좁은 통로에는 군인과 시민이 뒤엉켜 서있다. 촬영장비의 길고 구불구불한 전선줄이 그대로 보이는 그곳을 관객들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1871년의 파리'라고 타협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시민들이 나누는 대화 주제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여성 연맹을 조직하기 위해 모인 하층민 여성들의 토론 장면에서 '시장 자유화'와 '전지구적 자본주의'란 단어가 나온다. 그런가 하면 젊은 군인은 부르주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영화 제작 당시에 이루어진 파리시의 조경 사업이 부유층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La Commune'에서 왓킨스는 과거의 '파리 코뮌'과 지금의 시대를 사는 배우들의 현실을 접합시킨다. 일반인 배우들은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경험한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으로 코뮌 시민들의 사회주의적 각성을 이해한다. 그러한 과정들은 꽤 긴 분량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 토론 장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한 배역에 대한 소감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왓킨스에게 1871년의 코뮌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진행되는 사건인 셈이다. 코뮌이 지향했던 목표들, 즉 노동권의 확립과 여성 인권의 향상, 보다 평등하고 나은 세상을 위한 가치는 결코 총칼에 의해 절멸될 수 없다.

  이 작품을 왓킨스에게 의뢰한 발주처 ARTE는 5시간이 넘는 긴 상영 시간을 포함해 미디어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싫었을 것이다. 'La Commune'은 미디어가 가진 권력의 남용, 사건을 바라보는 편향적 시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파 언론 '베르사이유 TV'는 사실이 아닌 날조로 시청자들을 선동한다. 앵커와 정치평론가는 코뮌의 수뇌부를 외국인 불순분자들이 차지했다고 비아냥거리면서, 코뮌이 외세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처럼 보도한다. 그런데 반대 진영의 '코뮌 TV'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소식만 전하는 것은 마찬가지. 코뮌 내부의 문제점을 어물쩍 덮으면서, 나팔수처럼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한다. 코뮌이 무너지는 마지막 '피의 일주일'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분노한 시민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 '이딴 쓸데없는 보도 따위는 집어쳐. 이런 거 할 시간에 여기 와서 싸우라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틀어 'La Commune'을 뛰어넘는 파리 코뮌 영상물은 앞으로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현대적 접근과 함께 미디어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영화를 보려고 생각 중인 이들은 긴 러닝타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좋은 영화란 '좋은 흐름'을 가진 영화이다. 'La Commune'을 관통하는 그 흐름은 관객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여전히 살아있는 코뮌의 정신은 체제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서로 다른 처지의 개인이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 각자의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으로 이어짐을 깨닫는다.   



*사진 출처: carpenter.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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