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내가 하나 알려드리죠
사람의 눈은 말입니다
안쪽이 막혀있어요
아주 촘촘한 그물
그래서 눈에 뭐가 들어가도
다 거기에 걸려들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눈썹 같은 거
돌고 돌아서 다 나오게
아, 우리의 조물주는 눈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새벽에 내 눈에 들어간 눈썹 따위
하루 이틀? 아니면 일주일? 그것도
아니면 한 달? 어쨌든 돌아올 테지

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
목이 부러진, 오래된 선풍기
이가 나가버린, 아끼는 찻잔
푹 꺼져버린 인생 슬리퍼
그리고, 너의 이름
수줍게 웃던 때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났다

따끔, 눈썹이 돌아오려는 것이다
덜덜덜, 올여름을 끝으로 내버려질
선풍기가 아프게 우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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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解釋)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
너의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온
세균 같은 단어들, 자꾸 몸뚱이를
새로 불리면서 무수한 막대기들이

가끔, 네가 맨정신으로 쓴 것인가
혼자, 생각을 해보곤 하지
짹짹거리는 소리
뒤틀린 너의 말들, 더 나아가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딸꾹질이 멈추질 않아

정규분포곡선의 아주 가장자리
주변부의 삶은 비좁게 닫혀있지
손바닥만 한 작은 창으로 보는
겨울 봄 여름 가을의 전부

더이상 읽지 않겠어
차라리, 나의 창문을 부수겠어
절벽 앞으로 곧장 달려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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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슬리퍼를 찾아


1년째 낫지 않는 내 오른발은
매일 혼자 울었다 열을 냈다
눈을 흘겼다 코를 힝, 하고 풀었다

아픈 발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슬리퍼를 찾는다
기기묘묘한 슬리퍼의 세계
넌 슬리퍼 한 켤레에 6만 원짜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니?
기껏해야 석유에서 뽑아낸
가짜 고무 쪼가리가 선사할
6만 원어치의 편함은 어떤 것일까,
가만히, 혼자, 머릿속으로

아마도 내가 모르는
슬리퍼의 과학이 있을 거야
어쨌든 발을 편하게 해주는
미지(未知)와 필연(必然)의 과학이

그렇게 장사꾼의 과학을 믿다가
세 켤레의 슬리퍼가 신발장에서
지금은 꽃분홍색 욕실화를 신고
집안을 걸어 다닌다
2천 원짜리, 두툼한 밑창,
아가 신발처럼 뽁뽁거리는 소리
그제야 칭얼거리는 발이
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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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생


슬픔, 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시에는 감정어(感情語)를 쓰는 법이
아니라 했거늘
도대체 이 애송이는 어쩌자고
슬픔, 따위를 늘어놓고는

쉽게 읽히는 시는 가치가 없어
이딴 백일장 시 따위
난해함은 시의 목숨이고
본질이며 눈물이야
그걸 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시가 아닌 거야

독자를 네가 알지 못하는
멀고 먼 곳에 데려가야지
발바닥이 녹아내리는 사막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거야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아
미친 단어를 끌고 갈 데까지 가봐
그 정도 각오 없이 시를 쓰는 거야?
아무도 알아먹지 못할 시를 쓰고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어야지

유행(流行)은 중요해
남들이 짹짹거리는 소리 정도
읽을 줄은 알아야겠지

그리고 마지막,
시를 좋아하는 마음은 접도록 해
좋아하면 외로워지니까
반쯤의 증오를 품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야 나처럼

난해한 슬픔의 거리에서
시 선생이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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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슬픔


아침부터 커피를 엎질렀어
삶은 계란의 껍질은
죽어도 까지지 않아
집 앞의 커다란 개는
우라지게 짖어
굉음의 폭주족은
비린내 나는 불안을 매달고
하루 종일 줄줄 울고 있어

꺼끌거리는 눈을 겨우 뜨고는
메일 박스를 연다
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세계
폭격으로 죽은 아이를 안은
남자는 울부짖고 있다

아!
먼 어딘가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슬픔이 흐르는데
손톱에 박힌 가시를 가만히 꾸욱,
조금, 아프다 하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겁쟁이 커다란 개가 짖는다
너도 살아 보겠다고
그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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