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에 대해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길거리나 전철역 같은 데에서 "기나 도에 대해 아십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억지로 사람을 잡아끌려는 이들에 대해 당황했던 경험들이다. 내게 있어 도란 신선이나, 그들을 영생하게 해준다고 믿는 불로장생약 같은 이미지를 떨쳐내기 어렵다. 물론 진정한 도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진정한 길이라는 점에서, 공자가 논어에서 말했듯,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가늠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 가라 하네"라는 긴 제목의 이 책의 부제는 "우리 곁에 숨어 사는 다섯 도인들의 삶을 찾아서"이다. 환속한 다섯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순전히 풀어써내었던 "환속"의 저자 김나미 씨의 책이라는 것을 알고 주저함없이 편안하게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저자는 자신이 만난 특별한 사람들의 삶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글재주를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스스로가 도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 그것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많은 도인들을 만났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적인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내놓았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는 그가 만난 도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얻은 마음의 평화인 도, 바로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저자의 탐구적 열정도 함께 들어가 있다.
각기 다른 삶과 깨달음의 여정을 걸어온 도인들의 이야기는 어떤면에서는 이 책에 실린 것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현재진행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 자신이 얻은 엄청난 부를 스스럼없이 고아들에게 내놓고 자신은 쓰러져가는 한옥집에서 사는 무위 도인(저자는 자신이 만난 도인들에게 그에 맞는 이름을 붙였다), 도시 속에서 살지만 삼십년의 세월동안 요가의 가르침으로 자신과 남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요가 도인, 여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고 오랜 세월 동안의 그림과 여행을 통해 얻은 마음의 평안함으로 홍천강가에 정착한 다정 도인, 바깥 세상에서의 쓰라린 상처를 가지고 죽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자연의 치유를 받고 침술로 산골 마을 노인들을 도우며 꼭꼭 숨어사는 산풍 도인, 나무가 좋아 산에 살면서 자신이 심는 나무들을 통해 우주를 직관하는 자연도인, 이 다섯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것, 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 이순간의 현재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가지려하지 말고 버리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저자 자신도 매순간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진실하게 토로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어려움 때문에 그렇게 실천하며 살고 있는 다섯 사람이 도인으로 불리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그들 도인들을 더욱 남달라 보였던 것은 그들의 무소유의 삶 뿐만 아니라 나눔의 철학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의 평화를 구하면서 그것을 어떤식으로든 나누고 싶어했다. 돈이든, 가르침이든, 의술이든 함께 나누면서 자신이 얻은 기쁨과 평화가 다른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책을 읽고나니 바깥 세상에서 이런저런 일로 마음 괴로울 때마다 "도나 닦으며 산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말임을 알 것 같다. 그것은 아침에 들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을만큼 최상의 가치이기에 나 혼자만 간직하고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책의 제목은 나옹 선사의 선시에서 따온 것이다. 그 시를 온전히 옮기면 이러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 하늘은 나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그처럼 사는 이가 많아지는 세상이라면 도인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사는 삶 바로 그 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