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샤오시엔의 영화들은 재미하고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맨처음으로 본 "비정성시"만해도 그 지명도 때문에 꼭 보겠다고 결심을 해서 보다가 다 자버린 기억이 난다. 난 아직도 그 영화는 처음과 끝부분만 떠오른다. 그의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화"는 또 어떤가. 도대체 몇분이나 이어져서 끝날 것 같지 않은 롱테이크들을 참아내는 것은 지루하다 못해 거의 고역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는 확실히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듯 하다. 관객을 향해 자신의 의도를 그처럼 완벽하게 필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량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은 환호하면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피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 밖에 할 수가 없다. 그 중간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하고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호남호녀"는 대만의 영화인으로서 그가 천착하는 대만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에 대한 탐구의 열정으로 나온 작품이다. 중국 본토에서 밀려나 대만에 자리잡은 장개석 정부는 대만 본성인과의 마찰을 유혈로 진압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지식인, 학생 집단마저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차별로 테러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영화는 그 시절에 희생된 창 비유와 청 하오뚱 부부의 이야기를 마치 액자처럼 끼워넣고 창 비유 역을 연기한 영화 배우의 현실을 평행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오로지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온 남편을 테러로 잃고 슬픔에 찬 삶을 살아야했던 1950년대의 여인과,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던 자신을 사랑으로써 감싸며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했던 남자가 자신의 눈 앞에서 폭력조직에 의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1990년대의 여인의 삶은 기묘하게도 닮아있다. 창 비유 역을 맡은 여자 배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처구니 없는 폭력으로 잃어야만 했던 자신의 고통을 정치적인 보복의 희생자였던 한 여인의 고통 속에서 응시한다. 과연 무엇이 달라진 걸까? 시대는 바뀌어도 선량한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죽어가는 현실에 대해 감독은 마치 되묻고 있는듯 하다.
내가 후 샤오시엔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어찌 보면 참으로 정치적인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한편으로는 이루지 못한 것,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로 인한 상처에 대한 연민과 괴로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만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