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 50문 50답
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지음, 김현숙 옮김 / 혜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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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마음먹고 읽으려 한 책은 아니었다. 일본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서 책들을 찾는 과정에서 이삭줍기처럼 내 손에 들어온 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찾아놓은 다른 책들을 놔두고 이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책과의 만남에도 운이 따르는 모양이다.

  일본 역사가 궁금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본 영화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나 문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는 1960년대의 미일 안보법 개정이 시간적 배경인데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또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가운데 역사물은 다이묘와 사무라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관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 "천황제 50문 50답"은 일본 역사에 대한 손쉽고 대중적인 입문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 또한 일본 역사에 대한 대강의 이해를 하고서 보아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효용성과 가치는 천황이라는 키워드로 일본 역사 전체를 훌륭히 조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천황에 대한 각기 다른 50개의 질문들에 대해 답을 기술해가는 형식적 구성은 천황과 천황제의 성립, 그 역사적 배경, 근현대에 있어서의 급격한 변모를 모두 담아낸다. 예를 들면 천황의 명칭이 왕에서 천황이 된 이유라던가, 도쿠가와 막부가 몰락하고 메이지 유신으로 천황제가 공고히 된 사상적 사회적 배경, 어떻게 2차 대전의 전범으로 처벌되어야 마땅한 히로히토 천황이 목숨을 부지하고 거기에다 천황제를 계속 유지시켜갈 수 있었는지 등과 같은 궁금증에 일본의 진보적인 역사 교수, 교사들이 비판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답하는 식이다.

  단지 천황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 책을 펴보았던 나로서는 뜻밖의 지식을 얻기도 했다. 오늘날 미군 범죄 처벌에 대한 시민 운동의 산역사를 보여주는 오키나와의 경우, 그곳이 17세기부터 본토와 예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는 했으나 메이지 유신 후 무력으로 일본 본토에 편입되기까지는 독자적인 류큐 왕국을 영위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오키나와가 일본의 침략 전쟁에서 병참기지로서 방패 역할을 하며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하고 결국 일본 천황과 그 정부로부터 버림받아서 연합군의 공격에 제일선으로 내던져진 역사적 배경은 천황이 그곳을 아직까지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일본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냉철한 역사인식이다. 천황에 대한 50개의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희망으로 긍정하고자한 학문적 열정이었다. 그들은 천황제가 그토록 오랜 세월 일본을 지탱해왔던 것은 철저한 계급사회가 주는 통제의 이득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효과적인 도구였기 때문이었으며, 앞으로 일본의 사회 각분야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 자연히 천황제도 소멸될 것이라 진단한다.   

   오늘 신문을 펼치니 일본의 의원 84명이 전범자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는 외신이 있었다. 일본의 우경화는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는 자신들이 가야할 올바른 길을 찾는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희망을 갖게 된다. 일본 역사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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