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
닐 우드 지음, 홍기빈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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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까운 사람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다양한 삶의 문제들이 결국 한가지로 귀결된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돈" 이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지만 "돈"이 있으면 문제 자체가 해결되버리거나,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에는 세계의 구원과 희망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절절이 묻어나는 듯 하다. 그가 말하는 것은 매우 명료하다. 우리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타락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적 심성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할 작업은 자본주의의 횡포와 폐해를 직시하고 고발하며 연구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실린 내용은 단순히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그것으로 대표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화라는 미명으로 불리우는 미국화의 추악한 일면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화"란 세계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글은 통렬하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결국 사람의 심성까지 철저히 파괴시켜버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신문에 실린 젊은 작가가 쓴 글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스물을  좀 넘긴 그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 세대의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팔지"말라고.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파는"일은 없길 바란다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팔 궁리를 한다. 우리가 가진 지식, 노동, 시간, 그 밖의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되고 시장에 팔 물건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의외로 출발은 어렵지 않다. 깨어있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잠자고 있는 다른 이들을, 그들의 생각을 흔들어 깨워서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평생 학자적 양심으로 올곧은 길을 걸어온 저자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힘이 실려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그 힘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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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야쿠쇼 코지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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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밝은 미래"를 통해서였다. 원래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는지라 기요시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어도 번번히 외면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그 영화는 독특한 영화보기의 체험을 제공해주었다. 딱히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감성과 독자적인 세계관이 그 작품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기요시 감독의 작품을 하나 둘씩 보기 시작하다가 DVD로  "강령"을 만났다.

 

  "강령"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준코의 눈에 보이는 귀신들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인간 내면에 도사린 그릇된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영화는 매우 극명하게 드러낸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향해 치닫게 만드는 동인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아무런 사심이 없어 보이는 준코 내면의 명예와 부를 탐내는 근원적 욕망이었던 것이다.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점으로 치자면 별 다섯을 다 주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영화가 갖는 완성도는 뛰어나다. 그러나 DVD 자체의 상품성만을 두고 본다면 별 세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데, 무엇보다 서플먼트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별 한개를 선선히 더 주게 만드는 것은 기요시 감독이 내한했을 때, 관객과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강연에 있다. 서플먼트에 실린 것은 편집된 것이기는 해도 기요시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향해 말을 걸고 소통을 시도하는 기요시 감독의 모습은 구도자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호러물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하고 싶은 사람, 그들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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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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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서가에는 사두고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이 있다. 작가를 보고, 또는 대강의 줄거리를 보고, 무슨 수상 경력이며, 괜찮다는 서평을 읽고서 사모았던 책들을 보면 때로는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단지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 책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재미가 없어서"라는 것이 가장 솔직한 이유일 것 같다.

 

  "재미가 없다"라는 말에는 책이 읽히지 않는 그 모든 요인들이 담겨져있다. 예를 들면 어설프게 잘못된 번역이라던가, 눈에 익숙하지 않은 활자나 편집 형태 같은 것에서부터 지루한 이야기 전개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아주 아주 "재미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한번 책을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꼼짝않게 만들만큼의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아주 재미있어서 열심히 읽는다. 읽는 동안 이야기 속에 빠져서 그 밖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뿐이다. 다 읽고나니 뿌듯한 감동이나 마음의 여운 같은 것은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버려서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고난 지금 난 무척 우울해진다. 새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생각한 소설은 단지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갖고 있는 것이 나는 소설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 믿음은 이제 폐기되어야할 시점이 된 것일까? 천명관의 "고래"는 내게 우울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듯 하다.

 

  이야기, 무한하게 자기를 복제하며 재미를 창출해내는 이야기로의 회귀가 소설의 미래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나는 이제까지 소설의 정의나 작가의 사회적 책임, 더 나아가 소설의 미래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쩌면 그러한 고민을 내게 안겨주기 위해 "고래"가 내게로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유일한 수확이라면 수확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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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 현실문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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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집에 놀러온 동생이 김기찬의 사진집을 갖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도 모른척 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미안한 마음에 주려고 고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에 관한 그의 확고한 신념, 철학, 인생 전부가 오롯이 담겨져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사실은 사소한 우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걸어야할 길의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자의 경우는 밀항해서 잠시 머물게 된 일본에서 우연히 헌책방에 나온 스타이컨의 "인간가족"이라는 사진집을 보고서 사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 사진집 하나가 한 사람이 평생을 두고 추구할 방향을 제시해준 것처럼, 저자 또한 자신이 찍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자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책에 실린 저자의 글은 매우 유려하고 잘 읽히기 보다는 마치 시골 농부의 손처럼 거칠고 투박하다. 그런 그의 글이 힘을 갖게 된 근거는 오로지 진실에 있다. 그가 살아온 삶과 이제까지 찍은 사진들은 진실을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망을 보여준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투영한 사진을 통해 그것을 보는 이들이 가난과 가난한 이들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단지 관찰자의 시선이 아닌 참여자로서 사진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그 배경에는 저자의 뼈저린 가난의 체험이 있었다. 인생에서는 때론 상처라고 생각했던 것이 한계를 뛰어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책이 갖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저자의 빼어난 사진들을 보는 데에 있다. 더러는 매우 아름답고 경건한 순간을 담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난한 이들의 힘든 일상을 포착한 그 사진들은 보는 이의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떤 이에게는 한번 보고 잊혀질 사진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자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거나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가 찍은 사진은 오직 거기에 담긴 진실의 힘만으로 그 사진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나아가라고, 세상 속으로, 그리고 그 속의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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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초급 일본어 회화 2004.12 - EBS 라디오 방송교재
EBS교육방송 편집부 엮음 / 3Life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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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화에 관심을 두고 보다가 어느새인가 자막없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까지 뜸을 많이 들이는 편인데, 일본어 공부는 덜컥 사전을 사놓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일을 통해서 얻은 수확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는 교훈이랄까. 아직 초급 수준이라 사전 쓸 일은 많지 않지만 사전을 볼 때마다 내가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새롭게 든다.

  일단 문자를 깨치는 것이 먼저였기에 펜맨쉽 교재로 가나를 연습해갔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초보자에게 맞는 교재를 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교재가 바로 이책이었다. 매일 듣는 방송을 통해 일본어에 대한 감각을 키워가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일본어 공부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학창 시절에 늘 점수와 학점에 부담을 느끼며 쫓기듯 공부하는 때와는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지금, 새삼 배움의 기쁨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막 가나를 깨치기 시작하던 때, 인사동에서 가타가나 간판을 발견하고 읽어나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신기해했던가. 문득 배움이란 어느 한때의 기억이 아니라 늘 열려있는 길처럼, 마음만 먹으면 자신과 세상의 새로운 면을 보기 위해 떠날 수 있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배움의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서먹서먹함을 친근함과 자신감으로 바꾸어 준 것이 이 책이니 친절한 동반자라고 말해도 모자름이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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