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씁쓸함을 느끼며 돌아서야했던 전시회였다. 서울 시립미술관의 이전 기획전시였던 "모네 전"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고흐 전"은 그 상업성의 양상이 더 심화되었다는 데에서 극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명색이 고흐 전시회에 유화 작품은 얼마되지 않고 사진과 드로잉이 전시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전시회를 다녀온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면 오로지 고흐의 진품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도판으로만 접했던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서야 그만의 풍부한 색감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아이리스"였다. 몇번을 보고 다시 보아도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함과 우수, 아름다움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시회 표값 만 이천원이 그나마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그 작품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건 미치기 전에 그린 건가봐." 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고흐가 위대한 것은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라버리게 만들만큼의 광기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 속에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고흐와 그의 그림이 미치기 전과 미친 후의 두 시기로 양분되어서 평가받는 것은 너무나 부박한 세상의 시각이다.

  평생 가난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고흐가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예술이 가져다주는 구원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을 전하고자 전도사로 탄광촌의 광부들과 가난한 사람 속으로 들어갔던 그가 그림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추측되는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온전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다. 그의 생전에 그가 그린 그림들은  세상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세상은 바뀌어서 고흐의 그림들은 이제 천문학적 액수에 거래되는 고가의 미술품이 되었다. 한 예술가의 광기와 고통스러운 삶은 그림의 후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고흐는 분명 무능한 예술가였다. 살아있는 동안 팔린 그림은 단 한점 뿐이었다. 자신의 그림을 보기좋게 기획하고 포장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우수한 작가의 역량으로 평가하는 현대의 미술계에서 고흐 같은 예술가는 더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미술에 "개념"이 들어오면서 어떤 면에서 작가들은 알맹이 보다 포장에 공을 들이게 되었고, 그때부터 예술은 상업성의 거대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미술이 그렇게 되기 전, 예술이 가져다주는 구원을 진정으로 믿었던 한 사람을 나는 만났다. 고흐의 그림은 그 자신에게나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구원의 한 자락을 발견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넘쳐나는 관람객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서 제대로 감상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예술 교육을 시키겠다는 엄마들의 과도한 열정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건 나무를 그린 거고, 이건 강을 그린 거야"정도의 설명을 아직 말귀도 못알아듣는 어린 아이에게 열심히 하고 있는 그네들을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아예 처음부터 초등학생들에게 오디오 해설기를 안겨주는 학부모도 있다. 그순간부터 아이들에게 전시회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반강제적 행사가 된다. "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뭐지?"라고 매번 일일이 감상을 묻는 엄마에게 대답을 해야하는 아이의 얼굴을 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미술관을 체험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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