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극의 시작은 다소 낯설다. 김 순경 역의 배우가 관객들에게 주의사항을 당부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규회가 등장하면서 바로 극이 시작되어 버린다. 관객에게는 일상의 공간에서 곧바로 연극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동과도 같은 체험인 것이다. 그런데 규회라는 인물의 차림새가 심상치 않다. 온몸이 물에 젖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그는 김 순경에게 길이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
연극은 황 마담과 엄 사장을 비롯해 호수 다방 주변 인물들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 심각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마구 흘려놓는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정신지체 장애자인 명숙이 섬 주민들의 그릇된 욕망의 희생자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것에 대해서 그 어떤 동정심도 들어가 있지 않다. 명숙의 죽음과 그 사촌인 규회의 울분은 오히려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것은 이 연극이 힘없고 소외된 인생들이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보듬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다. 연극은 그 보다는 엄 사장의 입에 붙은 ‘개새끼’라는 욕설처럼 어떻게든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허세를 부리는 3류 인생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이러한 연출의 의도는 극의 결말에 가서 확연히 드러난다. 조합장에 당선된 엄 사장의 허장성세와 주변 사람들의 빠른 속물적 변모는 마치 섬의 번영과 부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섬과 뭍, 가해자와 피해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패배한 자와 승리한 자, 이러한 익숙한 대비구도는 극의 선명한 전개를 부각시키지만 동시에 그 한계마저도 끌어안고 있다. 관객은 그러한 명확한 구도가 주는 친근함과 안정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함과 진부함도 동시에 체험한다. 그래서 극의 초반에 나온 규회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달라”는 절규에 가까운 대사는 어떤 면에서는 이 연극이 지닌 구조적 한계에 대한 자탄처럼 들린다.
연극은 그 ‘길’에 대해 침묵하는 대신, 결말부분에 이르러 엄 사장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의 삶의 변화를 극적 반전으로 제시하며 서둘러 모든 갈등과 문제들을 봉합하려 한다. 이러한 미진한 결말과 함께 아쉬운 부분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정신지체 장애 여성인 명숙에 대한 묘사인데, 작가의 시선은 여성성과 열등한 것에 대해 노골적인 멸시와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 모든 점을 종합하여 판단하여 볼 때, 연극 <선착장에서>는 익숙한 것이 주는 진부함과 친근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경주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경계를 벗어나는 것은 일탈인 동시에 모험이기도 하다. 약간의 용기가 있다면 그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