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 선생님이 제기하신 '정의론 비판', 특히 세 번째 장('철로를 이탈한 전차')과 관련하여:
샌델이 제시한 저 딜레마의 질문들 속에 '자신의 의지를 갖는 단 하나의 주체'가 너무 당연하게 전제되어 있고 또 그렇기에 거기서 누락되고 있는 '주체'와 '결정'과 '권리'의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최원 선생님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주장이 샌델 자신이 제기한 첫 번째 물음과 두 번째 물음 사이의 어떤 '미묘한' 차이에 의해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샌델의 하버드 강의를 동영상으로 본 것인데요, 거기서 그는 두 번째 물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의도적 살인행위라는 한 학생의 지적(따라서 이 학생은 최원 선생님이 제기하시는 문제와 정확히 같은 맥락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죠)에 대답하며, 두 번째 질문을 이렇게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곧, 내가 물리적으로 그 뚱뚱한 사람을 손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첫 번째 질문에서와 비슷한 상황으로 그 상황을 바꿔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그 뚱뚱한 사람을 밀 수 없고(예를 들어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고) 단지 핸들을 돌림으로써만 그 사람을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식으로 가정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첫 번째 질문에서도 한쪽 철로의 다섯 사람 대신 다른 쪽 철로의 한 사람을 죽인다는 결정 역시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의도적 살인행위'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반대로 두 번째 질문의 경우 또한 첫 번째 질문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 아래에서 내린 결정'으로 [수학적이고 원리적으로] 환원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 샌델의 입장에서 최원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미묘한' 차이는 이 두 질문 '사이'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샌델이 이 두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두 질문 모두에서 주체와 권리의 문제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타자의 권리와 결정을 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 두 질문 '사이'의 어떤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최원 선생님 말씀처럼, 일단은 이 두 딜레마의 질문들이 샌델이 자신의 논의를 위해 고안한 하나의 논리적/윤리적 연산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 두 질문은 사실 '의도'와 '행위'와 그 '결정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차이가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비판점은 그 두 질문이 모두 '공통적'으로 기대고 있는 전제 자체, 그리고 그 전제에서 누락되고 있는 주체와 권리의 '자연적' 성격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지, 샌델이 제시하고 있는 두 질문 '사이'에 그런 '차이'가 있다는 지적으로부터 그런 비판을 도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襤魂, 合掌하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