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詩 ㅡ 그런데 이것은 정말 詩일까?
그게, 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시 없이 시를 쓰는, 시의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심장이 없더라도, 손을 빌려서.

어조를 버리기란 지극히 어렵다, 혀를 버리기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그 지극히 개인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이브하게, 아주 나이브하게,
말해보려 한다.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이 또한,
나이브하게 말하려고 한다는 말 그 자체일 것, 이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치,
들으려는 귀가 있는 자,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귀를 가진 모든 사람의 말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최근의 몇몇 후안무치한 작태들을 쭉 지켜보면서,
욕하기에도 아까운 것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
욕하기에도. 그런 자들이 이른바 자칭 타칭
이 사회와 국가의 '지도층'이라는 작자들이다. 욕하기에도
아까운 것들이다.

눈 딱 감고 '역사의 심판'이란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므로, '눈 딱 감는' 일이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럼 그 전에는 믿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혹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기독교에 대해 하는 식으로 말해보자면,
'역사의 심판'이라는 종교에 대해서 나는 '날라리 신자'였다고 해야겠지.
믿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진심과 신심으로 믿지는 않았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알다시피, '역사의 심판'이란,
순진하고 순수한 믿음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잖아요.
그것은 묵시록적인 예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사유와 행동 속에 있다고,
(그런데 이 말은 또 얼마나 무책임하며 또한
비윤리적인 말인가,
'사유와 행동' 속에라니,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유했지만 사유하지 않았고,
행동했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이 그림은 정확히 90도를 회전시켜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림이기도 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와 김정일 장군의 '다이어트 성공'에 관해
죽마고우로부터 아주 재미있고 감사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누군가는 섣불리 재단하고 넘겨버릴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웃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세상에 그 친구처럼 사고가 유연하고 초연한 사람들만 있다면
나는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삶의 가치를 고귀한 것으로 떠받드는 이들에게,
하지만 그 고귀함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것을 가장 소박하고
검소하게 떠받드는 이들에게,
나는 전혀
하고 싶은 말도 없고
섞고 싶은 살도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는 힘이 빠져 있다.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결코, 가장 날카롭고
뼈저린 복수와 원한을 위하여, 복수를 나만의 것으로 만든 그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해서. 몰염치한 전가가 아니라,
가장 정당하고 적법한 전가를 위해서,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사는,

바보들이 천지에 널려 있다.
나는 바보들을 아예 보지 않거나, 숨을 끊어 놓을 것이다.
법은, 바보들을 죽였다는 죄로, 그들을 차별했다는 죄로,
나를 가두고 형을 집행할 것이다.
손가락질,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심장은 필요없다, 시인의 손이
필요할 것이다, 뭍에서 물 만난 것처럼 펄떡펄떡 날뛰는,
그 날것의 손이, 그 손가락들이, 필요할 것이다.
심장은 필요없다, 가리키기 위해서는,
단지 가리키기 위해서라면, 달이 아니라,
겨우 손가락만을 가리키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심장보다는 손이, 더 빠르게,
더 절절히, 시를 쓴다, 쓰디 쓴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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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세알 2009-04-0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힘이 빠져있어요. 웃음 소리 상쾌한, 사람 좋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대통령이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웃으면서 말했어요. 저도 웃으면서 말했어요. '아니..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그녀를 적으로 돌릴 수가 없어요. 무지몽매하다고 화를 낼 수도 없어요. 수많은 그녀와 그들을 다 적으로 만들 수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힘이 빠져 있어요.

람혼 2009-04-10 10:57   좋아요 0 | URL
'그녀'가 무지몽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통령이라는 텅 빈 기호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고 해서 뭔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어쩌면 '그녀'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일지도 모르죠, 또 우리의 대통령은 지독한 보나파르트주의자인지도 모르고요... 선인과 악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 체제 하에서는 그 어떤 선인도 결국 '사천의 선인'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 어떤 어머니도 '억척어멈'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힘 빠진 생각이 듭니다. 몇 가지 풍경들이 두서 없이 떠오릅니다. 중앙일보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 소식을 단신으로도 다루지 않고 오히려 사설에서 혀를 차듯 언급하며 일장훈계를 늘어놓습니다, 교육정책의 엇박자가 걱정된다고. 이 나라의 교육을 걱정하는 척 짐짓 점잖게 훈계하는 그 태도가 더럽고 역겨웠습니다(검찰에 소환되는 신문사 사주 앞에서 "사장님, 힘내세요!"를 목청껏 함께 외치는 기자들이 과연 기자이고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해서는 '그 돈으로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먹여살려라'라는 취지의 나이브한 주장들이 대두됩니다. 거꾸로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이름의 나라는 과연 어떤가 생각해보면, 이 나라가 한 해 국방비로 쏟아붇는 돈의 일부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정말 그 거대한 이름에 값하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찬가지로 '나이브'한 주장으로 저 주장의 '나이브'함을 되갚아주고 싶습니다(도대체 이 정부가 외교의 '외'자는 알고 있는 건지, 혹은 정말 '외'자밖에 몰라서 일을 이렇게 '외'통수를 하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에 밉살스럽게 보인다는 이유로, PD와 노조위원장을 잡아가고 TV 뉴스 앵커와 라디오 DJ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과 입에 몰아닥치는 이 불도저들의 난개발주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장보다는 아마도 손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