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독일계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네덜란드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했다. 박해당하고 모욕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해 어쩔 수 없이 독일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독일계 유대인들은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들에게는 뭐든지 독일 것이 더 좋았다. - P1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주국은 모든 권력을 가진 일본의 강력한 보호 아래, 거창한 직함을 가졌으나 아무런 실권이 없던 중국인들이 다스리던 나라였다. - P59

의화단 운동이 종결된 뒤 숙친왕은 베이징에 근대 경찰 조직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가와시마 나니와에게 부탁했다. 가와시마 나니와가 그런 일에 경험이 있을 리 없었으나 숙친왕은 아마도 새 친구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근대적인 일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정통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남자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타락한 중국을 구해야 하고 일본이 그 일을 주도한다. 추악한 백인 세력을 몰아내자. 둘 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며 건배할 수 있었다. - P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41년 독일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르부프 인구의 약 30퍼센트가 유대인이었다. 그 숫자의 대부분이 그 후 수년에 걸처 학살되었다. 학살은 가장 가까운 강제수용소인 베우제츠나 르부프 바깥에 있는 수용소인 야노프스카에서 이루어졌다. 야노프스카에서는 고문과 집단 총살이 벌어지는 동안 국립 오페라 단원들에게 배경음악 삼아 노래를 시켰고, 다 끝나면 이들도 총살시켜버렸다. - P35

독일 문화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가졌던 이 교양 있고 이상주의적인 유대인들은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하고 종교에 얽매이던 유대인들과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농민들과 비교해서도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생각했다. - P37

1905년, 기독교 신자이자 흔히 ‘근대 중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쑨원이 도쿄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을 모아 혁명 운동을 조직했다. 쑨원의 ‘중국혁명동맹회‘는 아시아에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아시아를 아시아인에게 돌려주고자 꿈꾸었던 일본인들의 지원을 받았다.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이 억압되어 있거나 혹은 진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기에 너무 위험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구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각종 음모론과 상상이 넘쳐난다. 허언증 환자, 신분을 꾸며내는 사람, 가공의 인물이 되어 실제 삶을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전쟁은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어준다. 전쟁만이 그 유일한 조건인 것은 아니지만. - P10

케르스텐과 가와시마와 바인레프의 대단히 기이한 인생을 보면 수많은 부역자의 이야기에 드러나는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 탐욕, 이상주의, 모험의 갈구, 권력에의 목마름, 기회주의. 심지어는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항상 틀린 것은 아니었던 신념까지도. - P17

나는 극심한 사회 정치적 분열의 시대에 이 책을 쓰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이 점점 더 가변적이고 뒤섞인 형태를 띠는 한편, 집단적인 정체성이 강요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적 논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끊임없는 음모론적 상상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장소에 살 뿐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산다. - P19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내용은 영화나 소설, 만화책이나 컴퓨터 게임 같은 허구에 기반하고 있다. 집단적 기억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한다. 꾸며낸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볼 가치가 있는 것은 그래서다. 그 이야기들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후세대는 전쟁을 일으킨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그들의 문화를 섭취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인으로서 져야 할 전쟁 책임은 물론 없지만, 침략전쟁에 빠져든 사회나 문화, 그리고 국가의 책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 P395

패전 이후 일본 사회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는지, 전쟁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왜곡되었는지 되돌아보는 일 없이 약자를 배제하면서 경제활동에 매진해왔다. 과거의 짐이라는 유산은 회사 인간, 장·노년층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억울증, 아이들이 자폐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P422

강인함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물으면, 답은 강인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진솔하고 강건하여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인간이 훌륭한 인간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과거 일본 군인의 정신주의와 같다. 그리고 강인한 의지에 평화주의를 접목해 놓으면, 바람직한 삶이 돼버린다.
과연 강함이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
나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경직돼버린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늘 구체적으로 알려고 할 것. 충분히 알고 나서 당사자에게 감정이입하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 P440

집착 기질 및 멜랑콜리 친화형 성격은 사회과학의 관점을 결여한 정신과 의사의 연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선천성 기질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러한 기질은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질이다. 즉 사회의 주형에 부어 만들어낸 성격이다. 그것은 권위와 질서의 방향으로 경직돼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감정 교류를 중시하지 않는다. - P462

전시에서부터 전후로 이어진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강한 정신‘이라는 물음은 양방향으로 기능했다. 즉,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자신의 정신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었다. - P463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사고방식은 세상의 풍조에 몸을 맡긴 채 집단 속에 살면서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의식이 희박한 사회 속에서 빚어져 가는 게 아닐까요? 유아사 의사가 보낸 전쟁의 나날과, 지금의 일본은 이런 점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리고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수많은 사회문제도 여기로 귀결하는 것 같습니다. - P4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