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쪽은 독자적으로 조사한 내용과 전범이 자백한 것이 일치하면 죄를 인정한 것으로 판정했다. 그들은 자백을 유도하는 일도 없었고, 자백에 기초해 조사하지도 않았다. 자체 조사와 자백이 접근했을 때, 죄를 자각한 것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시오. 그것만으로도 좋소."
"전쟁이란 이렇게 잔혹한 것입니다. 당신이 한 행위는 중국 인민에게 커다란 재난과 그 뒤에 남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알기 바랍니다."
중국 측은 일관되게 지속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뿐, 고소의 내용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지마 내면의 감정까지 묻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해와 피해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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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서 태어난 일본인은 굴절된 민족 정체성을 지닌다. 중국인과 같은 자연환경에서 자라나 그 풍토에 대한 애착도 강하지만 섭취한 문화는 다르다. 그 때문에 조국에 대한 관념이 심정적 조국과 이념적 조국으로 찢어져 있다. 현지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와, 스스로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가 다르다. 그러나 이런 일본인은 식민지 태생이라는 자아의 벽을 깊이 인식할 힘이 없었다. 일본인이 지도자가 되어 오족을 협화한다고 하는 식민 이데올로기로 자아의 벽이 덧칠돼 있었다. - P98

오가와는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살과 뼈로 초년병 교육을 체험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집단으로는 강한 인간이, 개인이 되면 얼마나 약한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을 철저하게 구석으로 몰아넣고 거기서 폭력을 끌어내는 수법도 이해하게 되었다. - P103

 일본군 병사들은자신의 인격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윤리적 행위를 작전으로 명령받았고, 신체를 극한까지 흥분시키면서 이를 실행에 옮겨야 했다. 견딜 수 없어 도망치면 적 앞에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사살당했고, 일본에 있는 이들의 부모형제는 ‘비국민‘의 가족이라며 손가락질당했다. 억지로 몸을 추스르더라도, 어느 순간 거부반응이 시작된다. - P110

오가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죽이는 것이다. 병에 걸렸다고 말하면 환자로 살 수 있다. 병에 걸린 게 아니라고 하면, 고지식한 사람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아갈 곳은 전쟁터밖에 없다.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거부한 이 병사의 마음을 군의관인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감정이 북받쳤다. - P113

오가와에게는 ‘인간을 여기까지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
전쟁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일으킨다. 그러나 전쟁터의 현실은 관념을 넘어선다. 관념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지만, 전쟁터의 시간은 길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당사자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기나긴 비인간적인 시간 속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격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이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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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의학계는 전쟁과 관련해 그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세균전을 전개하고 인체 실험을 한 731부대 관계자들은 패전 뒤 교토대, 교토부립의대 등의 의학부 교수가 되고, 공립병원의 원장이 되고, 정부에서 일하고, 혈액 관련 제약회사 미도리십자를 세웠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전통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감염된 혈액으로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킨 미도리십자의 기업문화, 그리고 일본 후생성과 의학자의 유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 P30

의사는 죽음을 수도 없이 겪게 된다. 의학도가 되면 바로 시체 해부 실습부터 시작해서, 병리해부, 임상 연구 등 인간을 신체로 보는 데 익숙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의학‘ ‘신체의 의학‘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가 얼마나 살려고 애쓰는지를 알게 해주는 ‘생명의 의학‘을 먼저 배워야 한다. (중략) 구체적인 한 인격의 발달과 생활사를 지그시 바라보는 ‘생명의 의학‘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의사는 ‘죽음의 의학‘과 ‘신체의 의학‘의 도구가 될 뿐이다. - P47

나는 지금까지 전범으로 중국의 수용소에 잡혀 들어갔었던 일본군 출신들을 많이 만나왔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나는 중국인을 학살했다. 그러므로 사정이 어찌 됐건 그들도 나를 죽일지 모른다‘고 하는 두려움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리적인 죄의식이 없는 데다, 중국 쪽에 기대려는 어리광 같은 심리마저 있었다. 죄라고 자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 P50

자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집단으로 있는 한 불안하지 않다. 집단이 혼란에 빠질 때는 자신도 혼란에 빠지지만, 그때뿐이다. 집단은 끊임없이 개개인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흐리고, 집단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에 동의하도록 한다. - P51

오가와는 정작 전쟁에서 죽어간 당사자는 ‘영령‘으로 여겨지는 것을 거부하는데, 살아남은 자가 전사자를 영령이라 부르는 괴리를 문제 삼고 있다. 죽어가는 자에게는 살기 위한 타산이 없는데, 살아남은 자에게는 전사자의 혼조차 세속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타산이 숨어 있다. 그 타산이 다음 전사자를 잉태하는 사상으로 발전한다. - P73

국가권력이 국민정신의 총동원을 목표로 검열을 강화할 때, 천황제 국가의 악에 대해 의연하게 반대할까, 아니면 침묵할까, 그것도 아니면 검열을 비껴갈 듯 말듯한 발언을 해서 결국에는 탄압당할까, 셋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지식인은 변증법이라는 주문에 의지해 명확한 대립을 모호하게 피하며, 자신들의 이론이 높은 차원에 서서 파악하는 것‘이라거나, ‘단번에 파악하는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우선 지식인 지도자로 남고 싶은 의지가 모든 것에 앞서 있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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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대등한 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긴장하는 것을 미덕으로 오해했다.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는 늘 심하게 초조해했다. - P16

희로애락의 감정은 어느 한 감정만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기뻐할 수 있다. 즐거움이 마음속으로부터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웃는 법만 익힌 사람들의 감정은 풍부해지지 않는다. - P16

내무반에서 초년병을 집단으로 괴롭히고, 중국인을 죽이면서 전쟁의 귀신으로 단련되고, 군대에서의 출세에 매진하면서 피억압자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침략전쟁 시기의 일본인의 정신과 오늘날의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심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같지 않은가. - P20

패전 직후의 쇼크, 감정 마비와 이에 뒤이은 혼란이 가라앉은 뒤, 일본인의 반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반응은 ‘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쟁 가담자와 피해자를 뭉뚱그려 아무도 벌하지 않는다. "이겨도 져도 어차피 전쟁은 비참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평화를 제창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은 평화운동으로 나타났다.
(중략)
두 번째 반응은 ‘물질주의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의한 마음의 상처를 물질주의 가치관으로 덮어씌우고, 물량에서 미국에 진 것이니까 경제를 부흥하고 공업을 재건해서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는 것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세였다.
거기에는 정신적 퇴폐와 중국 문명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이 숨어 있었다.
(중략)
이처럼 패전의 충격을 물질로 과잉 보상하려는 자세야말로, 마음의 상처를 부인하는 오늘날의 일본 문화를 만든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 P21

전후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피해자 의식 위에 서 있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반핵 평화운동에서도, 전쟁 체험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에서도, 전쟁은 적도 아군도 희생자로 만든다는 식의, 죄의식과 상관없는 논조가 지배적이다. - P23

유대인 말살 계획의 수행자로서 가정과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였던 헤르만 괴링. 패전 직후 자살하기 직전, 딸을 데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책했던 상냥한 아버지였던 괴링. 그는 정말로 알고 있었을까? 그의 딸이 자신의 피에 잔학한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는 것을.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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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거 마시고 잊어버려. 영원히 잊을 수는 없어도 지금은 잊어. 어제도 내일도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생각해. 오늘 잘 살았어, 그러면 마셔도 되는 거야. - P72

우리가 아무리 비대면 시대를 산다고 해도,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의 온기가 없으면 시드는 존재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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