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단에서 최초로 에센셜 오일을 생산한 회사는1917년 인도의 마이소르 Mysore에서 문을 열었는데, 당시 마이소르 왕국의 수도였던 마이소르는 이후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주의 수도가 되었다. 마이소르 왕국은 그곳에서 자라는 백단에 왕국의 이름을 붙여 ‘마이소르 백단‘이라고 불렀다. 마이소르 백단에서 추출된 에센셜 오일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섬세한 향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 P16

인도 정부가 에센셜 오일 생산을 통제하면서 공급이 수요보다 적어졌다. 그러자 백단이 호주에서 대규모로 재배되었다.
호주는 두 종류의 백단을 길렀다. 하나는 인도의 백단과 차이가 없고 향도 비슷한 샌들우드Santalum album였고, 또 하나는 인도의 백단보다는 향의 품질은 떨어져도 가격은 매우 합리적인 호주 야생 백단Santalum apicatum이다. 뉴칼레도니아의 백단 Santalum austrocaledonicum은 새로 심은 품종인데, 인도의 백단과 품질은 비슷하지만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 P17

중국계피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미권에서 특히 많이 사용한다. 시남알데하이드Cinamaldehyde와 벤즈알데하이드Benzaldehyde 가 많이 들어 있는 중국계피는 실론계피보다 맛이 강하고, 향과 맛은 씁쓸한 아몬드와 비슷하다. 유럽은 가격이 더 비싸도 맛과 향이 상대적으로 더 부드러운 실론계피를 선호한다. - P21

원래 유럽의 향수 업계에서 계피는 잘 사용하는 원료가 아니었다. 그런데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츠카가 에르메스에서 처음 출시한 향수 ‘오 데르메스Eau d‘Hermès, 에르메스의 물, 1951‘에 계피 성분을 썼다. 이 향수는 여성의 가죽 핸드백 속 세계를 탐험하자는 독특한 테마를 내세웠다. - P21

내가 선호하는 것은 ‘버지니아 주니퍼‘라고 불리는 삼나무다. 연필 냄새, 아니 그보다는 샤프와 볼펜을 만드는 스위스 회사 까렌다쉬 본사의 창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참고로 까렌다쉬는 ‘연필‘이라는 뜻의 러시아어Karandash카란다시를 필명으로 사용한 19세기 프랑스인 삽화가에서 따온 이름이다. - P24

출장을 갔을 때 시간 여유가 잠깐이라도 생기면 나는 식물원에 가곤 했다. 식물원은 조향사에게 아이디어로 가득한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다. 밀가루 냄새가 나는 꽃을 발견한 나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자연에게서 받은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발견에 들뜨고 행복해진 나는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미래의 향수에 붙일 이름을 미리 알려주었고 승낙까지 받았다. - P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묘하게도 중국어에서도 ‘듣다‘와 ‘냄새를 맡다‘ 라는 두 가지 뜻으로 闻이라는 같은 글자를 쓴다.

이탈리아어에서는 ‘듣다sentire‘와 ‘느끼다sentire‘를 따로 구분해서 쓰지 않는다.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는 이런 말을 했다.
"신은 향기를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은 향수를 만들었다. 맨몸의 연약한 인간에게는 자신을 꾸며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향수 Perfume는 향기와 인간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 P9

냄새가 원래 그리 좋지 않은 재료라고 해도 조향사들은 결국에는 좋은 향기를 뽑아낼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냄새가 간혹 좋은 향수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조향사들은 향기가 천 가지의 말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귀를 기울여 각 향기가 전하려는 말을 이해한 후에야 핵심에 다가간다. 향기는 복잡하고 신비로워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을 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 요즘은 중국보단 미국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네...ㅎ

장제스 또한 태평양에서의 힘의 향방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대화에서 그는 "우리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지배세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곳에서 장차 패권국이 생겨난다면 일본과 소련, 영국보다는 그나마 미국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 P3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전히 국민당의 법폐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은 국민당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사용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대량의 지폐가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국민당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자유중국의 보급로가 하나둘 끊어지면서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시점이었다.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 P326

장제스는 허난성의 곡물 할당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허난성 곡물 징발 책임자가 요구된 할당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징발했다. 굶주림이 허난성을 휩쓸기 시작했을 때 부패한 관료들은 자연재해를 인공 재해로 바꾸어놓았다. - P328

재정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장제스에 대해서 사치스럽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방탕함을 거론하는 이야기들은 넘쳐났다. 현지 미국 기자들은 부패하고 열의를 찾아볼 수 없는 이 동맹국에 대해 점점 환멸을 느꼈다. 그들은 국민정부가 안고있는 광범위한 문제의 상징으로서 쑹메이링의 행동을 가십거리로 삼았다. - P340

전시 중국이라는 실존적인 위협은 경쟁자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간에 위협과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상대의 비판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 완벽한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다. 어느 쪽이건 앞에서는 쑨원에게 경외감을 표하면서 뒤로는 스탈린식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추구했다. - P347

중국의 병폐에 대항해 지하운동에 가담하고 옌안으로 피신하던 낭만적인 시대는 끝났다. 대신, 당원들은 중국을 지배하기 위한 부품이 되어야 했다. - P359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외부 관찰자는 홍위병들이 그들의 계급적인 적들을 박해하고 고문하는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세기 전 정풍운동은 이미 그들의 명확한 계획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오의 중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P363

장제스와 마오쩌둥 모두 궁극적으로는 일당독재의 현대적인 중국을 꿈꾸었다. 이것은 진정한 다원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였다. 국민당에게도 공산당에게도 근대 국가와 자유주의 국가는 서로 별개의 얘기였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레닌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두 정당 모두 통치 구조의 일부로서 공포의 사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전쟁의 재앙과 중국 내에서 갈수록 커지는 사회적 위기는 양쪽정권에서 기술적이고 관용적인 부분을 점차 벗겨냈다. 또한 폭력과 강압을 선호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해나갔다. - P3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