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행사 끝나고 회식 가고 혼자 적막한 사무실에 앉아서 남은 일을 한다. 다음주 수요일까지는 마무리지어야 하는 일이므로 오늘까지 서둘지 않으면 끝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바쁜 와중에도 이리 저리 인터넷 서핑을 한다. 어느 게시판엘 가나 황우석 이야기에 바쁘다. 오늘은 특히나 어제 밤 mbc 100분 토론이야기가 많다. 누가 말을 잘 했느니, 누구한테 실망했느니.. 요즘 분위기상 아무래도 윤리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아니 비난의 글이 많았다.

어제의 토론자 중 한 분의 개인 블로그가 링크되어 있어 따라 갔더니 거긴 완전 쑥대밭이 되어 있다. 평상시에 그 분의 생각이 맘에 들어 문장을 곱씹어 보기도 하고, 자주 가는 사이트 게시판에도 가끔 그 글들을 퍼가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비참해진 꼴을 보고는 화가 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물날 정도로 슬프지도 않다. 그냥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은 이 분의 어떤 점이 그렇게도 싫어서, 그 분을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도 원색적으로 비난할 수가 있는 것일까? 나이가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지만 심지어 17살이라고 밝힌 어느 청년이 내뱉은 말을 들으니 이 땅에서 살아갈 날이 두려워진다. 

그들은 과연 무슨 뜻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기에 이렇게 길길이 날뛰고 광분하는가? 게시판에서 보여주는 이 정도의 바닥 인격밖에 못가진 사람들이 진정 오늘도 하염없이 밝은 미래를 꿈꾸고만 있는 환자들만을 위해서 이렇게 흥분하는가? 그들이 보기에 양심, 윤리 운운하는 자들은 모두 환자들의 마지막 기대를 꺾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로 보이려나?

그들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그것이 국가경쟁력이고,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는 것일까? 희망도 안보이는 대한민국에 유일한 미래의 희망의 대안인 황교수를 비판하는 일은 마치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들이 하는 일처럼 보이는 것인가? 앞으로 수백억, 수천억 달러가 우리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이 치열한 싸움 속에 숨어서 작전을 교란시키는 내부 반란자들을 철저히 응징하게 싶은 것인가? 처절하게 난무하는 쌍욕 속의 뜨거운 욕망으로 경제가 발전하여 우리 나라가 잘살게 된다고 한들, 그 사회가 과연 미래가 밝게 보일까나?

내가 우리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왜 국익이 우선이고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에, 그리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가? 나는 이미 배부른 돼지새끼일 뿐인가?

세상이 무섭다. 내가 내 사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 두렵고, 그걸 남들에게 적나라하게 내보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점점 더 내 사견을 학생들한테조차 펼쳐보이지 못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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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1-2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야근중. 아 씨, 어여 들어가서 금요일밤을 만끽해야하는데 말이죠.

엔리꼬 2005-11-2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혼녀야 만끽할 수 있겠지만, 혼인남은 가서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해요..

깍두기 2005-11-2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우리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왜 국익이 우선이고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에, 그리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가?
=== 저도 그래요. 진실보다 국익이 우선이라는 둥. 즐.

하이드 2005-11-2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만끽준비완료인데,, 오늘 장 봤거든요. 근데, 안즉 회사니 -_-+

인터라겐 2005-11-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미 배부른 돼지새끼...2..
세상은 정말 무섭죠.. 그래도 우린 양심을 갖고 살자구요

BRINY 2005-11-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활동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더욱 자주 경험합니다.

엔리꼬 2005-11-2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하이드님.. 좋겠수. 저도 낼 술 퍼먹을 것임..
인터라겐님.. 저희 돼지띠 아닌가요? 호호.. 돼지도 양심을 갖자!
BRINY님..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참 궁금합니다. 조심스레 여쭤보시고 바른 길로 어린 양들을 인도해 주세요!!

마태우스 2005-11-2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00분토론 봤어요. 술먹고 나서 새벽에 다시보기로 봤습니다. 그 여자분의 싸이도 나중에 가봤지요. 정말 쑥대밭...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고 우리가 마주치는 사람들입니다...

BRINY 2005-11-2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라고 말씀하셨지요. 많은 학생들이 생각을 하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구요?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인권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경향인 거 같아, 점점 이 사회에서 예의가 사라져가는 거 같아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