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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선 기자 |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여전히 말 걸기 어려운 존재다. 날이 선 메스가 연상시키는 차가운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질문도 허락하지 않는 의사 자신의 태도 때문이다. 실력 있다고 소문난 의사일수록, 거대 병원 소속 의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2003년 연세대 의과대학은 본과 2학년 교과과정에 ‘문학과 의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했다.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해 환자와 대화할 수 있는 의사를 길러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언론은 이러한 새로운 접근에 대해 호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의학지식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의대생들에게 한가한(?) 문학을 이야기가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 게다가 단 한 번의 강좌, 그것도 선택과목인 이 수업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로 초빙돼, ‘문학과 의학’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마종기 교수를 만나 이러한 의문을 풀어봤다.
일시: 2005년 10월 2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담자: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2003년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문학과 의학’이란 수업이 개설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3년째 진행된 강좌를 평가해 주십시오. "‘문학과 의학’ 수업은 2003년 2학기에 개설돼 햇수로는 3년째 접어들었지만, 학기 수로는 3학기 째입니다. 매년 2학기에만 개설돼 14주 동안 1주일에 3시간씩 수업을 진행해왔죠. 올해부터는 학기제가 바뀌어서 10주 동안 1주일에 3시간 씩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는 벌써 종강돼서 지금은 시험 기간입니다. 8월부터 학기가 시작됐거든요. ‘문학과 의학’은 팀 티칭으로 진행됩니다. 저와 이병훈 박사, 정과리 교수 등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고, 학생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도록 소설가 김훈 씨도 초빙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호응도 굉장히 좋습니다. 병리학이나 생리학 공부를 해야 하는 와중에 시와 소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시를 썼다면서 저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강의평가에서도 선택과목 중 2년 연속 1등을 차지했습니다."
△‘문학과 의학’ 수업이 의대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본과 2학년으로서 보통 대학이라면 4학년 졸업반 학생들입니다. 이 때에는 의대생들이 병리와 약리 공부로 밤을 지새우기 마련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 학생들은 평생 숫자를 통해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를 분석해 나온 수치를 갖고 병을 진단하고, 사람을 판단해야 합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의학이 완전히 과학화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모든 것을 단순하게 과학적으로만 보게 되는 폐해가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의학’이란 인문학 수업은 ‘과학적인 단어와 답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관점을 달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또, 의대생들에게는 ‘인생의 배기가스’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예술이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코피를 쏟으며 공부하면, 다시 4~8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끝나면 매일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봐야 합니다. 사람이다 보니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죠.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 마약, 여자에 탐닉하는 경우가 생기고, 어떤 경우에는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학생들이 약 30% 정도는 됩니다."
△개인적인 체험을 미루어봤을 때, 시는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인생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시체를 해부하면서 삶과 죽음, 인생의 목표 등을 고민하게 됐죠. 1966년 미국에 갔을 때는 외롭고 힘들어 모든 것을 집어 치우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가 인생에 위로가 됐고, 시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처럼 됐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매년 여덟 편 정도의 시를 썼습니다."
△의대생들이 ‘과학’으로서의 의학 교육만을 받을 경우 어떤 폐해가 생겨납니까. "1966년 미국에 갔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의학이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전혀 대화가 없었습니다. 종이 쪼가리를 들고 피검사 결과를 적고, 분석한 다음 환자에게 병명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해도 “너는 뇌가 잘못됐다”라고 말하고,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하더군요. 그렇다보니 당시 미국 환자의 절반 이상이 정신병자일 정도였습니다. 최근 한국에 돌아와 보니 제가 미국에 갔을 때랑 똑같더군요. 소아과에 가면 환자 5명을 놓고 의사는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서 “3번 약, 5번 약”하며 지나가는 거예요. 환자들과 밀도 있는 대화 없이 말이죠. 또 인기 있는 어떤 의사는 하루에 3백 명의 환자를 본다고 목에 힘을 줍니다. 미국의 의사가 하루에 35명~40명 정도의 환자를 진찰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죠. 물론 의료수가 등의 제도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의과대학에서 너무 과학편중적인 의학교육을 함으로써 의대생들이 졸업해서 의학/돈 밖에 모르는 상황이 초래됐다고 봅니다. 또 의사 자신 역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마약에 탐닉하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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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선 기자 |
△지금도 미국은 ‘과학’으로서의 의학교육 만이 강조되고 있습니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의학계, 특히 존스홉킨스대, 하버드대에서부터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대해야 하는 의대생들이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반성이 일면서 커리큘럼이 바뀌었습니다. 1987년 존스홉킨스대에서 1년에 두 번 'Literature and Medicine'이 발간된 이후로 시카고대, 노스웨스턴대 등 웬만한 의과대학에서 비록 선택과목이지만 정식 문학 강의를 하게 됩니다. 지금은 미국 의과대학의 65~70%가 문학 강좌가 개설돼 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인 MCAT(Medical College Admission Test)에서 영어와 작문 등 영문학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리, 화학, 생물, 통계 등의 과목만을 테스트하던 분위기에서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영문학이 시험과목으로 들어가고 비중 역시 늘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도 의예과 나온 학생들보다는 영문학과와 미학과 출신을 더 선호합니다. MCAT 점수가 동일하면 이왕이면 문과계통 학생을 합격시킵니다. 4년 동안 강도 높은 의학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이런 학생들이 환자와의 관계가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문학과 의학’이 개설된 이후 다른 대학에서도 이와 같은 강좌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없습니까. "성균관대 등 각 대학에서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특강 형식을 제외하고 정규 과목으로 들어가기가 힘든가 봐요. 예를 들어 서울대 의과대학도 최근 미국의 트렌드를 다 알고 있지만, 인문학 강좌를 정규 과목화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약력: 시인. 연세대 의과대학과 서울대 의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66년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조용한 개선(凱旋)’, ‘두번째 겨울’, ‘변경(邊境)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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