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락없이 테크놀로지 발달 사회의 비주류인가보다.
오늘 점심때, 어느 여직원이 "벅스뮤직도 이제 공짜로 못듣고, 음악을 들으면 이제 돈을 내고 사야하는 모양이예요.. 500원이면 좀 비싼데.." 라고 그런다. 그러자 컴퓨터를 잘하시는 다른 분이 "당나귀 들어가면 mp3 많이 깔려 있는데, 뭐하려고 돈 내고 들어요?" "신문에 보니깐 몇개 다운받았는데 걸려서 몇십만원 벌금내고 그랬대요.." "당나귀는 괜찮아요. 외국 사이트잖아요. 그리고, 어느 선생 공유 폴더 들어가보면 mp3 파일이 무지하게 많이 깔려 있어요.. 폴더만 해도 몇 십 개래요. 앨범별로 다 있어요. 그래서 저도 심심하면 거기 가서 다운받는데..." "그래도 찝찝하잖아요......"
그 옆에 계시는 다른 분도 온갖 음악이니 영화니 만화를 모두 다운받아서 보시는 다운로드족이다. 친절한 금자씨가 한창 상영되고 있을 때 내가 그 영화 아직도 못봤다고 하니 '제가 넘겨드릴께요..' 그러시는거다. 그래서 나는 맘 상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 자발적 친절은 나한테 베풀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음악을 돈주고 들으면 바보로 취급당하는 분위기다. 왜냐? 이제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듣는 시대니깐. 그나마 영화는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하나의 사교 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좀 덜하다. 음악은 거의가 혼자 듣는다는 점에서 다른가보다.
내 주위 어떤 사람은 "나는 도대체 음악을 듣는데 내 돈을 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것만큼 돈이 아까운 적이 없노라고 한다. 그 말을 하는 뉘앙스는 “아직도 음악을 제 돈 주고 CD 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있냐?”는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반론을 폈을지도 모른다.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한기보다는 "나는 mp3 player가 있지만, 제가 산 cd를 mp3로 변환한 것만 들어 있어요. 저는 다운받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라는 식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그렇지만 나의 스타일을 고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반항이라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마저도 두렵고 귀찮다. 이번 점심 대화에서 나는 온전히 침묵을 지켰다. 여기다가 대고 불법이니 창작자의 권리니 뭐 이런 이야기해봤자 서로 사이나빠지는 것밖에 더 있겠나? 직장 사람들 앞에서 정치 이야기 같은 논쟁이 붙을만한 것은 그래서 이야기를 아예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참을 수 없는 것은, 마치 mp3나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 받아서 듣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시대적 흐름을 잘 읽을 줄 알고 21세기가 원하는 테크놀로지를 잘 알고 있는 '바람직한 첨단 생활인'인 것처럼 자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첨단의 방식(이젠 누구나 다 아는 기술이지만)으로 mp3 등의 컨텐츠를 구하지 못하고 CD나 사서 듣고 라디오나 듣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져도 엄청 뒤떨어진 사람으로 치부가 된다. 그리고 구할 수 있어도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수용하지 않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내가 컴퓨터에 별로 관심이 없고 과학기술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컴퓨터는 아직까지 우리 삶에 있어 보조수단일 뿐이라 생각하며, 컴퓨터 기술을 잘 아는 것, 그 문화를 주도하는 것 그 자체가 ‘선’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나친 컴퓨터 신봉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요즘과 같은 시대에 컴퓨터를 잘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잘 활용한다는 것이 이런 방식처럼 왜곡된 것이라면 나는 컴퓨터 도사가 될 마음이 별로 없다.
몇 년 전 석사학위 논문 예비 발표회장에서 발표자가 컴퓨터 학습을 통한 교육이 지금까지의 교수방법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란 식으로, 내가 들어도 우쭐한 태도로 발표를 하자 한 교수님이 크게 반발을 한 기억이 난다. '컴퓨터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안다고 해서 그게 모두 맞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기존 틀에 컴퓨터를 대입시키면 그게 다 논문이 되고 그게 다 학습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때 느꼈던 통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발표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노교수의 시대에 뒤떨어진 반응이라고 느꼈겠지만.
컴퓨터는 컴퓨터고, 기술은 기술일 뿐이다. 컴퓨터와 기술이 인간의 생활을 많이 변화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컴퓨터 기술의 자체가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술도 잘 써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