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아닌 강사로서 두 번째 맞이하는 개강!

이번 학기엔 2학점 2개의 강좌를 맡게 되었다. 한 강좌는 간호학과 2학년 수업으로 수업 듣는 학생이 20명도 채 안된다. 이럴 경우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 외우기는 식은 죽먹기고, 과제 읽고 평가하는 시간이 짧게 걸려서 좋다. 교직과목의 경우 상대평가가 필요없으니 평가에 애를 먹지 않아도 된다. 강의료는 학생이 적고 많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불이익도 없다. 이 클래스에서는 2명씩 조를 이뤄 발표를 하기로 한다.

두번째 강좌는 자연과학대학 4학년생들이 주로 듣는 과목. 물론 다른 학과의 학생들도 많이 들어온다. 거의 40명이 넘겠다. 4학년생이라 부담되고 인문계생들이 아니라 또 부담된다. 물리, 화학, 생물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어떤 의미일까? 나름대로 잘 가르치려고 할테지만, 그들에게 이 학문은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그리고 외워야 하는  한 과목에 지나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진지하게 내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노력을 할까?

저번 학기의 수업을 교훈삼아 이번에는 좀 쉽고도 학생들 눈이 번쩍 뜨이게 재미있게 진행하고 싶은데, 그게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다. 저번 학기엔 강의식으로 거의 진행하다 보니 중간중간에 집중력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나에게는 참 중요한 이야기거리들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너무도 졸린 시간들의 하나였나보다.

사실 강의에 대한 공포증은 내가 교생실습을 갔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고등학교 1학년 사회 과목을 맡은 나.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르쳐야 했는데, 도대체가 민주주의를 재미있게 가르칠 방법이 없었다. 그냥 FM으로 갔다. 재미있을 턱이 있나? 나도 조금 모르겠다 싶은 개념이 있어 대충 설명을 하고 넘어가려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바로 하는거다.. 어떻게 얼버무렸는지는 나도 기억이 없다. 수업이 끝나고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서 "선생님, 그렇게 수업하시면 애들 다 졸아요." 그 말이 얼마나 나에겐 충격이었는지, 나는 선생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나보다.

그러다 어찌 어찌 하다보니 다시 대학원에 들어왔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강의.. 어떻게 하든지 그 시기를 늦춰보려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내가 할 수 밖에 없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제 한 학기쯤 지나니 강단 공포증은 없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얼마나 자상하게 다가가며,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잘 가르치는지가 남았다. 이게 사실 강의의 전부가 아닐까?

첫날 강의에 대한 소개가 끝난 다음 질문을 받았고, "질문이 없죠?"라고 말한 후 마치 수업을 끝낼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학생들이 방심할 찰나에 "그럼, 이제부터 오늘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애들이 깜짝 놀란다. 내가 농담임을 웃음으로 알리자 애들은 재밌어 한다. 성공이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다.. "수업시간에 저랑 눈이 많이 맞추는 사람들이 점수를 잘 받더라고요. 재미없더라도 절 자주 쳐다봐 주세요. 제가 그리 못봐줄 얼굴은 아니잖아요?" 

또, 웃는다.. 역시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웃는다. 그런데, 갑자기 아프락사스님의 페이퍼가 생각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을 핸폰으로 찍는다고 한다. 물론 수업시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수업시간에 절 핸드폰으로 찍지는 마세요.."라고 했는데 반응은 썰렁 그 자체였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개강이다.  한 학기 잘 보내고 싶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9-12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09-1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새 학기 보내시기를!!!

마태우스 2005-09-1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학생, 참으로 거시기하네요. 그런 말을 대놓고 하다니... 서림님 화이팅.

진주 2005-09-1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죽기 살기로 <웃기기>기술을 연마해야 하나봐요.
서림님 잘 하고 계시네요, 수업이 아주 재밌겠어요! 화이팅^.~

진주 2005-09-1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저 같은 사람은 정통사투리를 구사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아도 웃음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는 것이 장점인 거 같아요. ㅎㅎ서울 가서 50분짜리 하고 나니까 -번역 좀 해 달라고 노트 들고 오는 게 무섭기는 했지만요^^;

날개 2005-09-1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은 잘 하실겁니다..^^ 화이팅~!

엔리꼬 2005-09-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5시간에 1학점이라고라고요? 강사료는 1시간 어치만 주겠죠? 그리고 님의 학교에 얼마 전 가봤는데, 공부에만 집중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더만요.. ㅎㅎ
마태우스님.. 네, 그래서 상처받았어요... 지금 뭐하고 사나? 감사합니다. 용기 주셔서..
진주님... 저도 대구 사투리 너무 구수하게 들려요.. 어찌나 귀엽던지.. 부산 사투리와는 질적으로 달라요.. ㅎㅎ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지 재미있는것은 절대 아닙니다..
날개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화이팅~~

2005-09-12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