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라는 걸 어디에 둘 수 있느냐, 이런 건 없다고 보지만 살아가다보면 그걸 명확하게 체감할 수 있는 계기들이 생긴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사느냐, 누구와 이야기를 하느냐, 어느 곳에서 일을 하느냐, 무엇을 읽느냐, 어느 지점에 분노하느냐 등등. 그러니까 다와다 요코가 말한대로 '우리는 바다를 항해하게 되는데' 바다를 항해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함께 하는 이들과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를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을 하는지 아니면 내가 착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존중을 받는 위치에 있다보면 누구나 남녀노소 차별하지 않고 마주하는 이들 모두를 존중할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배웠지만 그게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노망과 야망의 차이가 단지 한 글자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젠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그저 젠더' 따위에 신경을 쓰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거 아니냐고 나보다 정확히 열 살 많은 선배들이 이야기를 하던데 너희들에게는 '그저 젠더'잖아. 나한테는 '그저 젠더'따위가 아니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따질 수는 없었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갱년기에 다다른 더 이상 젊지 않은 유색인 여성으로서 다시 정체성의 개념에 다다른 오늘 오후. 커피가 어느때보다 더 달고 더 쓰더라. 









사실은 언어뿐만 아니라, 뭔가 다른 것, 명명되지 않은 것, 어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타락했음‘이 점점 분명해지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이 언어 바깥에는 다른 언어가 존재하지 않아요. 따라서 더 깨끗한 언어의 존재를 믿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더 나은 언어를 발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는 이 단 하나의 ‘타락한‘ 언어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에요. 그러한 언어를 미화하지 않고서 말이죠. 그래서 이러한 언어 자체를 말하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시위가 됩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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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2-10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으로 어떤 사람을 묶어두는 게 옛날 방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그게 유효한 세상이구요. ‘당신이 어디 사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는 기막힌 아파트 광고인데 실제로 사람들은 그걸 실천하고 살고요. 저 역시 완벽하게 자유롭다... 그렇게 말할 수 없을테고요.
젠더는 워낙 두텁게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으니깐. 알아차리기 쉽지 않죠.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은 그렇게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