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한하지 않다. 무한한 사랑이 가능한 관계는 없다. 엄마가 나를 그만큼 사랑하고 내 딸아이가 나를 그만큼 사랑하고 내 전애인들이 나를 그만큼 사랑했고 내 친구들이 나를 그만큼 사랑하는 건 나 역시 그들을 그 이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자비로운 사랑 따위는 내 사랑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될 수 없다. 어제 친구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또 급작스럽게 약속이 잡혀 다른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동안 알았다. 이번 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보살이 될 일도 없고 바다처럼 무한하게 너른 마음을 품기는 글렀구나 라는 걸. 도서관에 다녀왔다. 3년 만에. 우울증에 걸려 매일 한동안 다니던 기억이 있어서 그 도서관에는 일부러 3년 동안 가지 않았다가 오늘 가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타박타박 빗소리를 들으면서 걷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접수 완료. 1년 전에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녀석들을 또 1년이 흐른 후 만났다. 저 녀석들을 만나고 곧 한 사람이 내 인생에서 사라졌고 얼마 텀을 주지 않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기억이 떠올랐다. 내 삶 안으로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만 서로의 인생 깊숙이 들어가게 되어버렸고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스텝이 꼬이면서 아 이게 대체 뭔 지랄인가, 깨닫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두 귀를 울리다못해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볼륨을 올려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걸 들으면서 헉헉대다가 아 나는 제대로 미친년이구나 알았다. 마키아벨리즘과 나르시시즘과 소시오패스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인간이란 것들의 다크하고 다크하다못해 악마까지도 질려할 정도의 새까만 속성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것이 과연 좋을 일인가. 불행한 인간들의 눈물과 흐느낌을 마주하는 동안 인간의 선한 본성과 의도가 이런 경우 얼마나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지 그걸 캐치하면서 왜 짓밟힌 상태에서 그대로 있으려 하는 건지, 혹시 고통의 쾌락인가 싶어 이해도 해보려고 했지만 으흠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쉬울 수 있고 스펙타클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용솟음치는지는 서로만이 알 일이다. 쉬이 사람을 내 삶 안으로 받아들이지 말도록 하자. 애정은 단언할 일이 아니다. 가족이건 애인이건 친구건. 사람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가지지 말도록 하자. 희망을 주는 이들에 한해서 그들에게만 희망을 걸어도 될 일이라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았고. 집 근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데 무릎팍에 상처가 나서 그게 생채기가 되어서 피딱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씨익 웃는 맑은 아이 표정을 보고 죽기 전까지는 저렇게, 하고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간의 마음까지 생각하지 말도록 해. 일단 네 마음에 집중을 하도록 해. 현자처럼 말하는 걸 즐겨하는 이들 있다. 나는 그쪽 방향으로는 맞지 않네, 그걸 2023년, 2024년, 약 2년에 걸쳐 알았다. 나는 현자이고 싶지 않다. 어리석게 지금을 고집하는 유치한 애어른으로 늙어가는 편이 더 맞다는 걸 알았다. 지금 함께 할 수 있을 때 지금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내 마음과 상대방 마음이 그대로 같을 거라는 건 가장 크나큰 착각 중에 착각이고 오해가 아닌가 싶다. 노래를 듣는 동안 구름과 안개가 물 흐르듯 산자락을 덮으면서 흘러가는 걸 마주하면서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자, 했다. 오늘 할 일을 하고 내일을 맞이하도록 하자. 오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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