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니 왜 그런 환상을?! 했더니 이제 환타지를 무너뜨릴 준비를 해야겠군요, 그와 비슷한 말을 했는데 엄청 웃었다. 잠깐 그를 보고 돌아오는 동안 그러니까 그 환상을 얼른 무너뜨리고 다시 새롭게 정비를 하면 될 일인데 문제는 계속 환상에 머무르려고만 하는 거고 그 환상에서 내내 머무를 수 없어 현실로 억지로 끌려나올 적마다 새롭게 항상 불쾌한 감정이 동반되는 거 아니겠냐는 말은 혼자 속으로만 했다. 애써서 고(schmerz)를 부속품처럼 지니려고 하지 마, 그 말은 텍스트로 했다. 이십대 시절에 옛연인과 즐겨 나누었던 말이 있는데 말해줘도 모르잖아, 그럼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 없어, 그냥 냅둬, 인간은 어차피 지 꼴리는대로 살게 되어 있어, 였다. 거북한 감정 없이 불편함도 일절 느끼지 못한 채 천천히 홀로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단테의 문장 하나가 떠오르면서 그걸 인용한 마르크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도 알 거 같아 푸훕 웃었다. 삼합 읽기 책은 이번 달 야전과 영원이다. 고르고 한 페이지 달랑 읽은 사람 반성하자. 이러고 비비언 고닉 바로 펼치지 마. 친구들한테 욕 먹어. 전기와 도시가스와 인터넷 정리를 해야 하고 또 할 일이 뭐가 있더라 버릴 쓰레기가 아직도 엄청 많고 냉장고도 서서히 비워야 하고 또 체크. 올해 들어 셀피를 엄청 찍었다. 작년부터 매일 아침 나가기 전에 현관 앞에서 혹은 깨끗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종종 찍는 게 습관이 되어 꾸준하게 찍고 찍고 버리고 또 찍고 버리고 그러면서 한 사람 말이 겹치기도 겹쳤고. 허리 채 오지 않았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나니 허전하기도 허전하고 도시 아줌마에서 그냥 산 타는 아줌마로 변신했어, 라는 민이 말에 웃기도 웃었지만 편한 건 역시 어쩔 수 없구나 싶다. 산 타는 여자에게 허리까지 오는 기나긴 머리카락이 대체 뭐 필요하겠는가. 물론 나는 산을 안 타지만. 머리는 어차피 내내 길러야 하니까 거지존을 어떻게 버틸지가 문제다. 광배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불어 왼쪽 어깨가 약하다는 것도 운동을 하는 동안 알았다. 금연했다고 하니 선생님이 칭찬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아니 그게 어떻게 금연이야? 절연이지! 해서 마음 내키면 폈다가 아니면 다시 끊고 그건 금연이라고 할 수 없죠. 금연이면 죽을 때까지, 칼이 내 목에 들어온다고 해도 절대 담배를 태우지 않겠다! 이게 금연이죠! 해서 인간이 꼭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거니? 3셋트 끝내고 말했더니 배를 움켜쥐고 미친듯 웃더라. 그릭 요거트는 맛이 없다. 블루베리랑 뒤섞어 먹으니 그나마 먹을만. 아 어제 들이 말한 것 중 선생님이랑 비슷한 말 있어서 또 홀로 웃었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다 보니 놀 시간까지 제대로 놀지 못해 세월이 이렇게 흘러 곧 육십이다, 이게 말이 되니? 대체? 잘 놀아야지 하고 공부했던 건데, 하고 불어로 선생님이 욕했는데 어제 들도 아 공부만 하지 말걸 그랬어요, 좀 놀기도 놀았어야 하는데, 해서 혼자서 큭큭. 집에 돌아와 민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니 공부도 해야 돼, 놀기도 놀아야 돼, 대체 언제 쉬나요, 아이구나, 해서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내내 하염없이 쉬는 시간만 주어지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그러니 그때가 오기 전에 바지런히 놀고 바지런히 공부해야죠, 라는 꼰대 발언을 가감없이 했다. 붓다가 하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그 진리가 인간사 적용이 된다는 것도 알고 시간 너머로 쌓이고 쌓여 그게 진리로서 굳건하다는 것도 알고 그러다가 문득 아 붓다 가까이 하는 이들 멀리 해야겠다 싶었다. 내가 참 붓다를 사랑해, 붓다 말씀을 즐겨 듣고 즐겨 읽어, 그리 살고 싶지, 평화롭게 유유자적 지혜롭게, 라고 항상 말들을 해요.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그들 마음 속 지옥도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또 아 하나님, 아 부처님, 아이고 공자님, 이러고 있더라. 하여 붓다 말씀 인용하며 이러이러합니다_라는 이들은 경계해야겠구나 알았다. 부처님 앞에서 삼배하면서 나 홀로 그랬지. 좋은 것들에만 붓다를 인용하고 밝고 귀한 것들에만 붓다를 인용하고 싶지 당연히, 그런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더 읽고 더 듣고 더 반성하고 그러렴, 아가들아, 붓다 말씀은 좀 적당히 인용하고. 이런 마음이 들면 붓다를 멀리 하는 게 답일까 아니면 붓다를 가까이 하는 이들을 멀리 하는 게 답일까 헷갈릴 수도 있는데 내 환상이 거기에서는 딱 그 정도까지만, 만일 더 알고 싶다면 그 이상 인연과 무관하게 나아가는 거 아니겠는가, 라고 말해서 알았다. 어제 들 지인 중에 연애 엄청 하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고 하면서 연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연애는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으로는 불가한 거 같고 혼자만의 세계를 꾸려나가는 와중에도 다른 이들에게 틈새를 보여야 하고 관심을 보여야 하고 그래야 하는 거 같아요, 그 대답은 당시에는 하지 못해서 나중에.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걸 굳이 말릴 필요는 없구나 그것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다가 굳이 어떤 경계를 정해서 이게 옳고 이게 맞다 그렇게 되면 그쪽을 택했으니까 어떻게든 그 길로 계속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 나이가 되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살다보니 물론 꼰대스러운 말이라는 건 잘 알겠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고통을 끝까지 부여잡고 이 길이 내가 택한 길이야, 라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게 붓다 말씀이랑 합이 맞는 거야? 아니면 상충되는 거야? 속으로 알쏭달쏭하기는 했다. 턱 아래 길이가 제각각 다른 털 세 가닥에 모든 집중이 쏠리는 걸 느끼면서 나는 현상학적 인간이군 어쩔 수 없이, 알았다. 아이리스 머독의 책 한 권을 끝냈다. 언니 주장이 페미니즘이랑 어쩐지 합치되는 면이 있는듯.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너나 잘해, 다른 이들 걱정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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