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루티 언니 문장들을 쑥 훑어내려가다가 앞뒤 말이 다르고 올곧게 하나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애매모호함에서 언제나 분노가 폭발했다는 걸 알게 됨. 어젯밤 민이 이야기 나누다가 엑스와의 카톡에서 간쓸개 내줄 것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니만_이라는 표현에서 간쓸개 내줄 것처럼 좋아서 좋아했던 걸 테고 이제는 내 간쓸개 챙길래, 에서 절교로 이어진 거 아니겠는가 해서 그러니까 적당히 거리를 지켜야_ 라고 해서 간쓸개 내줄 것처럼 좋아 간쓸개를 실제로 이 사람한테는 내줄 수도 있겠다 싶은 거겠지만 봐라 내 간쓸개라도 내줄 것처럼 좋아야 관계가 관계인 거 아닌가 사랑과 우정의 맥락을 다르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했다. 서로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내 창의 날이 뾰족하게 선 걸 감지한 엑스는 민이한테 직접 들을게 하고 방패로 막았다. 밤이 늦었으니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다. 엄마 지인 중에 시엄마인데 자신의 며느리 엄청 욕하는 사람 있다. 무식하고 힘만 센 년_이라고 표현한다고. 그 며느리도 아는 엄마는 자신의 남편에게 신장 줄 수 있는 여자가 흔하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거냐_라면서 며느리 욕 그만 하라고 하면 그 지인은 정말 싫어라 한다. 그 며느리는 자신의 남편에게 신장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엄마가 미친듯 주라고 주라고 제발 내 아들 좀 살려달라고_ 무릎 꿇고 매일 괴롭혀서 신장을 내어준 것이다. 자신의 신장 한쪽을 내어주고 그 며느리도 그 이후부터 골골대기 시작. 한탄을 하는 바 아니지만 언젠가는 우리 엄마를 붙잡고 울었다고 한다. 관계들이란 무엇인가. 내 간쓸개와 내 신장을 내어준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 그런 생각들.

엄마 남자사람친구 중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40억짜리 건물 통으로 애인에게 빼앗기고 그 애인은 건물 처분하고 다른 젊은 남자와 외국으로 날라버리고 그 아저씨는 단칸방에서 홀로 죽은 이가 있다. 아들딸이 모두 거부를 해서 무연고자로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세상을 뜬. 물론 아저씨는 아들딸에게 이 건물은 내 애인 꺼야. 살아계실 때 그리 했고. 그러니 아들딸이 죽은 아빠를 보고 싶겠는가, 애초에 정도 없었는데.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할 때_ 그 아저씨는 그 애인 진짜 사랑하셨네, 그러니 40억짜리 건물을 통으로 그 여자에게 줬지. 했더니 그게 사랑인가 어디?! 하면서 엄마가 버럭 했는데 웃음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으며 대꾸했다. 모호하지가 않잖아, 말로만 사랑한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애인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디 한번 네가 증명을 해봐, 했을 테고 아저씨는 그 40억짜리 건물을 통으로 애인에게 줄 정도의 사랑이 있었던 거지. 그 여자가 사기꾼이건 꽃뱀이건 무관하게. 말을 듣고 있던 엄마와 동생들이 아니 그렇다면 정말로 사랑하면 그냥 아예 통으로 다 내줘야 돼? 다 내줄거야?! 하고 버럭 해서 내 돈을 모두 통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도 쉬운 일 아니고 내 돈을 모두 통으로 가져가려고 한다면 애매모호하게 나를 사랑해서는 안돼, 했더니 다들 아 저 순둥이를 어쩔 거냐,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이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해서 웃음이 껄껄껄 흘러나왔다. 현대자본주의가 제일 싫어라 하는 인간 유형인 거지. 그 아저씨는 라캉주의자였다. 어린 시절 나 예뻐라 했던 기억도 난다. 민이 세살 때 유일하게 나보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 해라, 인생 길다_ 너는 더구나 잘 살 테고, 이상한 놈 만나 평생 속 끓이며 사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젊을 때 새로운 길을 나서는 게 낫다_ 라고 하셨던 분이다. 인생 말년 그 누구보다 불행하고 불행하게 살다 갔다고 엄마는 말씀하셨지만 각자의 삶이다. 어떤 벼랑 아래로 떨어질지 그 아래를 한없이 바라보는 이도 있고 벼랑 아래를 바라보며 저 위를 생각하는 이도 있는 것.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또 하나, 민이 친구 아빠가 키우던 고양이 발정기를 참지 못하고 애가 없을 때 몰래 베란다 문을 열고 고양이를 내보냈다고 한다. 중성화 수술은 시키지 말라 했다고 한다. 그 울음소리를 무슨 수로 견뎌? 이해 불가였다. 울음소리를 참지 못해 버린 거라는 걸 알고 있는데 애한테 우물쭈물 이야기했던 게 그냥 베란다 문을 아빠가 실수로 열어놓고 닫아놓지 않았는데 그새 나가버린 것_이라고 변명했다고. 민이 친구는 이틀 내내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울었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인간 버리고 동물 버리는 인간들 면상은 대체 어떻게 생긴 건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말을 내뱉은 순간, 인간 버리고 동물 버리고_ 에서 또 짚이는 포인트들이 있어서 다이어리를 펼쳤다. 버려지기 전에 버리겠다_였을지도. 거기에 트라우마가 있다면. 설아, 라캉주의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겠나. 네 나이 쉰 되면 알지도 모르겠다만 어쩌면 영영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진짜보다는 가짜에 현혹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논하며 나는 진짜_라는 말을 하고자 했던 건지 나는 진짜 같은 가짜_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곰곰 네가 남긴 말들 보면서 분석.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경증을 지니고 있고 고유한 욕망들을 지니고 살아간다. 오독할 자유와 다른 이의 행복과 불행을 마주하며 자신의 상황을 대입시켜 바라본다. 전혀 관심도 없는 이에게 왜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 그지 없지만 내 행복을 기원하니 나 역시 그의 행복을 기원한다. 다만 겹쳐지지 않기만을 바랄뿐. 여름이고 더위가 한창이니 사람들은 한층 더 각자의 욕망들을 마주하며 불안에 떨지 않겠는가. 가까이 다가오고 싶다면 예의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불쑥 손을 내민다고 해서 내가 그 손을 잡으리라고 생각한다면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오독을 했습니다. 책 오래 읽고 많이 읽은 저 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다만 오독을 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오해를 하지 않았구나, 제대로 봤구나 하는 안도감은 어쩔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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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6-21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누군가는 뛴다는 거죠? 배팅을 한다는 겁니다. 알 수 없음에 건다는거죠. 그 발 아래 천길 낭떠러지를.
사랑한다는 건 용감해지는 일인 것 같아요. 내 눈에는 너무 반짝이는 욕망도 마찬가지. 나에게만 보인다져. 그것이 ‘고유함’이라는.
한국 사회는 사랑에는 이미 많이 닫혀버린 것 같고. 저는 일단 텍스트 안의 밥탱이들을 읽겠습니다.. 넘어지긴 아직 아퐈~ 내 발목 염증 심해~.

수이 2024-06-21 16:17   좋아요 2 | URL
우리 모두는 각자 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뭔가를 갈아넣으면서 살아가죠. 그게 누군가에게는 돈이고 누군가에게는 책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겠죠. 뭔가를 갈아넣지 않으면 더 나은 내일이 올지 안 올지, 더 나은 나 자신이 될지 되지 않을지 모르죠. 그래서 갈아넣는 거고. 다만 예의를 지켜주기를 바랄뿐. 우리 각자의 고유한 욕망을 비웃을 자격들이 과연 누구에게나 있을까요? 어디에서 감히 깜냥도 안 되는 게…… 라고 우아하지 못한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반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