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지만 중년에 대해서 중얼거리고 있노라니 열여섯 딸아이가 가소롭다는듯 웃으며 기어코 한마디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집에서 주인공들이 대부분 중년이야. 얼마나 쓸쓸하던지. 청춘도 아니요 노년도 아니야, 이도저도 아닌 그 애매모호한 경계. 그 경계선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 너무 쓸쓸해. 간단하게 소감을 말하니 아이는 푸후후후 웃었다. 왜 웃냐_ 묻지는 않았다. 웃기시겠죠, 님 보시기에는. 열일곱 영혼이 지금 무슨 중년 이야기를 같잖게 하고 있냐, 지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말하지 않아도 아니 다행이다, 엄마야 라고 딸아이가 말했다. 하지만 열일곱이라고 해도 쉰이 가까워오는 육체를 지니고 있고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변명조로 대꾸하니 아이는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성이 좋은 거 같아. 그러니까 그 모든 불행을 겪어도 끄떡없이 열일곱일 수 있는 거 아닐까? 미숙한 중년이라고 봐야 할까. 욕심은 콧구멍 언저리까지 그득 차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어마무시한데 숨이 깔딱깔딱 거릴 무렵이면 아 별 거 아닌데 이러려나. 혼자서 볕 좋은 도서관 벤치 지정석에 앉아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중년이 되어 바라보는 저 너머는 대개 과거와 미래 그 풍경 속 애매모호한 시간대의 세계다. 소설 속 등장 인물이 이야기한다.
"이게 나라니 믿어지니? 마야는 썼다. 내가 얼마나 평범해졌는지 봐. 그 옛날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63)
원하는 자아상이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 청춘이 한창일 때는 중년 무렵이 되면 이렇게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바 꿈꾸는 바, 하지만 막상 중년이 되고 보니 어리둥절하기만 할뿐이다. 정독도서관에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열일곱부터.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중얼거렸다. 열일곱에서 바로 며칠이 지난 거 같아. 이렇게 여기에서 고등학생 때 혼자 바람을 쐬러 나와 발목을 까딱거리며 눈을 쉬어주곤 하던 그 공간은 그대로인데 나만 갑자기 30년 이상 늙어버렸다는 게 신기하기만 해. 믿기지 않아. 중늙은이가 되어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거리는데 정말 그대로야, 30년 시간이 느껴지지 않아, 며칠이 지난 거 같아. 그런 느낌이야. 라고 말을 했다. 친구들은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운동을 미친듯 하며 얼굴에 보톡스나 필러를 넣고 비싼 돈을 들여 리프팅을 하며 젊음을 되찾으려고 애쓴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도 늘어간다. 완경이 찾아왔다는 친구들도 서서히 생기고 호르몬 변화로 인해서 불면과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괴로워하는 이들도. 어쨌거나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잘 늙을 것인가. 미를 넘어서서 이제는 노년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자유로울 줄 알았고 어른이 되면 다른 이들만큼은 살아야 하니 평균 이상이 되기 위해 애쓰고 청춘이 흘러 중년이 되면 좀 편해질 줄 알았건만 결혼을 하건 결혼을 하지 않건 무관하게 그닥 자유로워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보통 이상, 그래야 평균이고 그래야 평범한 건데 그조차 지키기 쉽지 않다. 나는 이미 그 평균, 그 노선을 탈피했다. 그러니 대한민국 중년의 평균, 그 이하라고 봐야 한다. 서글프거나 괴로운 부분은 없다. 마지못해 그랬다면 또 괴롭고 서글퍼 흑흑 눈물 방울을 떨굴지도 모르지만 뭐 그닥. 노년을 대비하는 중장년이 된 동년배들과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아직도 왔다갔다 갸우뚱거리는 나는 딸아이 말대로 몸만 늙은 열일곱이긴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다. 하루에 한끼는 제대로 먹지만 두끼는 좀 부실하다 싶을 정도로 먹는다. 몸이 이미 그에 적응이 되었고 두끼를 제대로 먹으면 속이 좀 더부룩한듯해 평소보다 더 움직인다. 날이 따뜻해지고 있으니 이제 하루에 만보 이상은 걸어줘야 한다. 팔다리를 수시로 휘두르며 엉뚱한 쿵푸 자세를 취하면서 거울 너머로 웃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며 깔깔거린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책에 고개를 파묻지 않으려 애쓰고 명상이란 걸 좀 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잘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정 보고 싶은 이들이나 보자고 하는 이들이 있으면 약속을 잡는다. 술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 마시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혼자 와인이 땡길 때는 와인잔을 찬장에서 꺼내 화이트 와인을 담아놓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니나 시몬의 목소리나 빌리 할리데이 목소리나 엘라 피츠제럴드 목소리를 틀어놓는다. 사람들은 나를 괴롭힌다. 왜 괴롭히는지 그 까닭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래서 귀찮고 성가셔 인간관계는 더 좁아지기만 한다. 언젠가 딸아이와 딸기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마 엄마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그닥 많지는 않을 거 같아. 하지만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가 사랑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조촐한 장례식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아. 노년을 대비하는 것도 모잘라 장례식 풍경까지 미리 구상해놓는다. 딸아, 엄마 장례식에는 한쪽에서 재즈 음악이 나와도 좋을듯해. 그리고 국밥 같은 건 하지 말고 핑거 푸드로 간단한 먹거리만 준비해줘. 소주와 맥주 그리고 와인도 준비해줄래? 했더니 장례식이 파티야? 파티니? 그래서 깨갱했다. 깨갱하면서도 적당히 슬퍼해줘, 적당히 애도하면 돼. 과하게 슬퍼하지도 말고 쓰러질 것처럼 울지 않아도 돼. 마음 속으로 그렇게 나머지 못한 말을 이어서 했다. 그리고 또 종알종알, 죽을 때까지 열일곱이면 좋겠다. 명징한 정신으로 아 나는 열일곱인데 이렇게 몸이 늙어버렸네,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이제 더는 사랑을 고백할 수도 없겠네,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저 세상으로 간다면 유쾌하겠구나. 아 너무 갔네. 하지만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제목은 [사라진 것들]이다. 중년이란 시기 자체가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갑자기 확 찾아오지 않는 나이도 아닌지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들, 언제 중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이제 너희는 중년이야, 여기 이 라인에 서도록 해, 지시를 할 때부터 중년이 되어버린 젊은 영혼들의 이야기, 방황하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와중이지만 한편으로 그 방황이 다른 컬러를 지녔을 뿐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서글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의 파편들, 살아가기에 살아가고 있기에 살아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