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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2월
평점 :
저자 찰스 만은 자신의 텃밭에 토마토 씨앗을 심으며 토마토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방대한 책을 시작한다. 원래는 아메리카에만 살고 있던 토마토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아시아를 거쳐 다시 미국에 있는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토마토의 여정을 생각하면서 콜럼버스 대전환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탐구하게 된다.
얼마 전에 나도 대추방울토마토 모종 2그루를 사와서 심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토마토는 막연하게 유럽 지중해 지역에서 많이 먹으니까 그쪽에서 온 작물이려니 하고 그냥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마토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메리카에만 있던 작물이었다고 한다. 토마토소스에 진심인 것처럼 보이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나라에서 토마토를 먹기 시작한 역사가 생각만큼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안데스 일대에서 발원한 식용할 수 없던 토마토를 식용 가능한 토마토 종자로 만들어낸 곳은 멕시코 지역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토마토는 콜럼버스의 항해 후 유럽으로 갔다가 돌고 돌아 우리 집 텃밭에 까지 올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토마토 모종 하나로 이렇게 까지 큰 역사를 생각해보지 못 했을 텐데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제목 “1493”은 콜럼버스가 1492년 1차 항해로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하고 나서 스페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2차 항해로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한 해를 말한다. 1차 항해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유럽의 인간과 동식물을 옮겨 놓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아메리카의 동식물을 유럽으로 옮기고 돌아온 그 해. 두 대륙 간 생물이 교환되기 시작한 시점을 1493년이라고 저자는 본 것 같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생태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었던 장소들이 점점 유사해 져서 균질화, 동질화 되었다고 해서 ‘호모제모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1493년 이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가 연결이 되면서 인간과 생태계, 문화, 경제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인간과 동식물이 대륙 간 이동하고 섞이면서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 과정의 큰 그림을 이 책을 읽으며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세계가 점점 비슷해져서 오히려 좁아지는 세계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콜럼버스가 죽은 후 유럽과 아메리카가 서로 연결되어 있던 시점에서 스페인은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 드디어 중국과 연결되게 된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만들고 은 광산을 발견한 후 엄청난 은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은으로 태평양을 건너 마닐라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중국 상선과 무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페인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도 은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두 나라의 부를 일구기도 했지만 썩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먼저 스페인은 은 광산의 부로 여기저기 전쟁을 일으켰고 들어오는 은 이상으로 지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지 않는 은 광산을 믿고 마음 놓고 은행에 빚을 내는 바람에 결국 파산하게 된다. 그 틈으로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못 살았던 영국이 치고 올라오는 결과를 낳는다. 중국도 쏟아져 들어오는 은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겨서 결국 명에서 청으로 왕조가 바뀌는 일에 일조하게 되었다고.
스페인과 중국의 교류에서는 은, 실크, 도자기만 왔다 갔다 한 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작물까지 대륙 간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옥수수, 감자, 고구마다.
쌀농사를 짓던 중국에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이런 작물들은 중국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구 증가로 개간하지 않았던 산꼭대기나 숲이 있던 지역에까지 사람이 가서 살게 되었고 또 그런 곳에서도 옥수수와 고구마는 잘 자랐기에 나무를 싹 베고 밭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 산사태와 엄청난 홍수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건 지금까지도 문제라고.
유럽에도 아메리카에 있던 작물들이 보급되면서 일대 농업혁명이 일어나는데, 그동안 굶주림이 일상이던 유럽의 대다수 사람들도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비로소 덜 굶주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유럽은 대규모 감자 농사를 짓기 시작하지만 문제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작물만 갔던 게 아니라 감자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함께 이동하였기에 그 악명 높은 아일랜드 감자 기근이 발생하게 된다.
감자를 풍성하게 키우기 위해서 유기질 비료를 발견하고 감자 해충을 죽이기 위해서 농약을 개발하는 과정도 서술되어 있다.
감자를 기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배를 타고 구아노 섬에 가서 흙을 퍼 와서 감자밭에 뿌리곤 했다. 이를 지켜보던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따라 구아노 섬에 가보는데 그곳은 높이 40미터정도의 새똥으로 뒤덮인 새똥섬이었다. 그러니까 원주민들은 바삭하게 마른 새똥을 퍼 와서 감자밭에 비료로 줬던 건데, 그것을 본 유럽인들은 그 새똥을 자루에 담아서 본국의 농부들에게 팔았다. 구아노 섬의 새똥 비료는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좋았고, 그것으로 인해 농작물에는 질소가 포함된 유기질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 실험실에서 비료를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텃밭에 주는 화원에서 사온 유기질비료가 이런 역사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니. 비료에도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라는 역사가 있고 그걸 알게 되어서 조금 기뻤다고나 할까^^
또한 소규모로 감자 농사를 짓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는 다르게 한 가지 작물을 대규모로 심어서 감자 해충에 더욱 취약해진 유럽과 미국의 농장들로 인해 개발해낸 게 DDT였단다.
그러니까 비료와 농약이 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작물이 세계로 전파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나온 작물로 세계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또 그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는 사실, 또 그것들이 현재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사실로 연결되자 역사가 참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근데 구아노 섬의 새똥 비료의 역사를 읽다가 가슴 아픈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구아노 섬에서 일했던 사람들 이야기였다. 40미터나 켜켜이 쌓인 새똥은 악취가 말도 못하게 풍겼을 거고 거기에서 나오는 성분들이 사람 몸에 좋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그곳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한다. 이미 아메리카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노예들은 농장일로도 일손이 달리는데 그곳에서 까지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마닐라에 있던 중국인들을 배에 실어서 그곳까지 데리고 왔다고 한다. 주로 금광에서 일할 거라 속이고 데리고 와서는 이 새똥섬에 노예로 팔아버렸단다. 이 섬에서 일하다 못 견디고 자살하는 중국인들도 많았다고 하니 얼마나 비참한 환경이었을지... 게다가 중국에서 그 먼 땅까지 와서는...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이 부분을 읽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려 했던 유럽인들은 늘 말라리아에 시달려야 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몸을 타고 아메리카까지 전파되었던 이 전염병은 초기 아메리카 식민지를 텅텅비게 할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신대륙에 가면 다들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라서 원주민들을 노예로 플랜테이션을 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은 말라리아로 죽어나가는 원주민들 말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바로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에서 배로 노예를 실어 와야 하고 말도 통하지 않고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일은 비용적으로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말라리아 때문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서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바로 말라리아에 내성이 있었던 것이다. 말라리아에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로 가치가 있었다니...참담함도 그렇지만 이런 관점은 처음 접해 보는 거라 사실 좀 놀라웠다.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관점이라 또 생각났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빙하기의 원인도 나에게는 엄청 새롭게 다가왔다.
소빙하기는 1550년경부터 1750년경까지 북반구에 혹한이 찾아온 시기를 말한다. 이때 혹한이 닥친 이유는 바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더 이상 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소개한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전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숲에 불을 내서 개활했다고 한다. 철기시대까지 가지 못 했던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큰 나무를 베기 위해서 불을 내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온통 불을 내서 땅을 개활했기 때문에 그동안 지구의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그만큼 많아졌는데 콜럼버스 항해 이후 땅을 개활할 원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죽고 더 이상 대규모로 불을 내지 않자 나무가 다시 숲을 이루게 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감소하게 되어서 지구에 소빙하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어쩐지 그럴듯하다. 새로운 방향이기도 하고. 어쨌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엄청나게 불을 내서 땅을 일구었다는 사실은 정말 사실이라니까 그런 생활방식도 알게 된 점도 재밌었다.
700쪽의 벽돌책이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참 재밌게 읽었다. 주로 세계사를 배울 때 무슨무슨 왕조의 이름을 외우고 특히나 유럽의 역사에서는 복잡한 왕가와 전쟁으로 넓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나라의 크기, 거기에 교황과 왕권의 정치를 배우는 식이라 정작 그게 다 지금의 나랑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과 경제, 생태계 환경에 대해서 전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를 다루고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게 된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등의 원산지를 알게 되고 그 작물들이 세계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세계의 무역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깝게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