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책 엄청 재밌게 읽었다. 컬트가 어떻게 언어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광신에 빠트리는지 쉬운 말로 다양한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책이 아주 술술 읽힌다.

요즘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딱 시의적절한 책읽기였지 않나 싶다.

이 책의 반 정도는 컬트 종교가 차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광신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을 사이비 종교만으로 한정 짓고 있진 않는다. 요즘은 종교의 힘이 차차 줄어들고 있고 그 자리를 새롭게 다단계, 정신수양과 결합된 요가나 피트니스 수업, 영적인 지도자를 자처하는 SNS 인플루언서들, 음모론자들(광적인 트럼프 지지자)이 채우고 있다고 한다. 이것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해서 추종자를 끌어 모으는 지까지 탐구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에 관심이 좀 많아서 다큐나 사회고발 프로그램 있으면 꼬박꼬박 챙겨 보는 편인데 이 책에 나온 미국의 이상한 종교들은 정말 신박했다. 외계인, SF를 믿는 종교들이 그렇게나 성황이라니... 저자의 사이언톨로지 경험담도 들어 있는데 물론 딱 반나절 정도 경험이지만, 성격검사를 통해서 끌어들이는 방식! 이런 거 우리나라에서도 사이비 종교 포교방식으로도 많이 보던 건데 했다. 학교 다닐 때도 많이 봤고 나도 당할뻔ㅋㅋㅋㅋ

게다가 사이언톨로지는 그들만이 쓰는 단어로 무려 사전까지 편찬했다고. 여기에서 좀 레벨이 높아지면 대화자체를 그들만의 단어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알아듣기 힘들다고도 한다. 예를 든 대화체를 읽고 있자니 정신이 다 혼미해지던데... 신기한 종교일세~ 톰 아저씨 당신은 대체...

 


컬트 집단이 어떻게 언어를 이용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소 오글거리는 종교적이기도 하고 이상적이기도 한 이런 언어에 깊이 빠지기도 하는구나 싶으면서 다시금 경각심도 들고.

암튼 유용하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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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면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대체 왜?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 풀리는 중...



우리는 흔히 컬트 집단이 ‘심리적 문제‘가 있는 개인을 노린다고 믿는다. 그들이 더 잘 속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컬트 포교자들은 사실 선량하고, 서비스 정신이 있으며 예리한 사람들이야말로 이상적인 후보군이라고 말한다 - P118

무니였던 스티븐 하산은 통일교 포교를 담당했던 만큼 컬트가 어떤 유형의 개인을 찾아다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산은 1998년출간한 컬트 마인드 컨트롤과 맞서 싸우기 (Combatting Cult MindControl)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무니 간부였을 때, 우리는신중히..….… 강인하고, 배려심 있고, 의욕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그는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사람에게 자원을 낭비하는 일은 피했다. 
에일린 바커의 무니 연구는 지적이고 강직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충직한 회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활동가, 교육자, 공무원 등의 자녀였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도록 길러진 사람들인 것이다. 설령 그게 자신에게해를 입힐지라도. - P119

이처럼 사람들을 착취적인 집단으로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건 절박함이나 정신 질환이 아니라 과도한 낙관성이다. - P119

예를 들어, 1978년 대학살의 날 존스타운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흑인 여성이 사망한 이유는 절망이 그들을 ‘세뇌‘하기 쉽게 만들어서가 아니다. 1970년대 폭풍처럼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혹인 여성들은 백인 2세대 페미니스트 활동가(이들도 그렇게 환영받지는 못했다)나 시민권 운동을 이끌었던 남성 지도자들에 비해 목소리를 높이기가 극히 어려웠다. 올바른 이들(앤절라 데이비스, 블랙팬서당, 아메리칸 선주민 운동, 반동적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 샌프란시스코의 좌파 성향 목회자들, 말할 것도 없이 존스의 ‘무지개 가족)과 유대 관계가 있었던 짐 존스와 함께라면,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를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흑인 여성들이 유독 취약했던 건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착취의 역사뿐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사회정의 운동을 주도해 왔던 오랜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시키부 허친슨은 말한다. 흑인 여성이 그토록 많이 사망한 이유는 존스의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거짓으로 드러났다. - P120

손실 회피에 관한 행동 경제 이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인간은 이익보다(시간, 돈, 자존심 등의) 손해를 훨씬 더 크게 받아들인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실패를 직시하지 않으려고 애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비합리적이게도 엉망인 관계나 형편없는 컬트 집단처럼 부정적인 상황에 머무르며 고지가 눈앞이라고 되뇌곤 한다. - P124

그래야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이제 손절할 때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투자한 자원이 있으니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인 매몰 비용 오류의 정서적인 예시인 셈이다. 이렇게 오래 있었으니 더 버텨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확증편향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도 뿌리 깊은 손실 회피 성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 역시 유독한 일대일 관계 유지에 일조한 경험이 있는데, 착취적인 파트너와 컬트 지도자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은 말 그대로 날 겸허하게 만들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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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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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니퍼 이건의 소설들을 읽어 오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현 시대의 유행을 잘 잡아낸 소재와 스타일이었다. 매우 감각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기도 한 여러 시도들을 제니퍼 이건의 소설들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 맨해튼 비치는 대공황에서부터 2차 대전이 한창인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다가 꽤나 전통적인 소설 작법을 따르고 있어서 이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작가의 인상과는 다른 제법 낯선 제니퍼 이건을 만날 수 있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인데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낯섦이 싫지는 않았다.

 

 

이 소설은 11살 애너 케리건이 아버지 에디 케리건과 바닷가 아름다운 대저택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집은 바로 마피아 중간 보스 덱스터 스타일스의 집이었다.

에디와 덱스터가 사업상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동안 애너는 덱스터의 자식들이 있는 놀이방에 남겨진다. 생전 처음 가보는 으리으리한 부잣집에 기가 죽었지만 에너는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추운 겨울 맨발로 바다에 발을 담글 만큼 대범한 모습으로 놀이를 주도한다.

애너의 그런 모습에 자식을 보면 그 아버지를 알 수 있다는 믿음이 굳건했던 덱스터는 딸이 이렇게 거침없고 용감하다면 그 아버지 또한 그러리라 확신하며 에디를 고용하기로 한다.

이 첫 번째 장이 이 소설이 앞으로 전개될 방향을 알리는 하나의 커다란 복선인 셈이다.

용감하게 바다에 들어가는 애너와 그 모습에 강력한 인상을 받는 덱스터와 한 발 물러나 그들을 보는 에디.

 

 

시간은 애너가 20살이 될 즈음으로 훌쩍 뛰어넘는다. 실직하고 가난으로 내몰렸던 대공황 시대의 가족들은 이제 전쟁에 참전한 남성들의 빈자리로 인해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들로 변모하는 시절이었다. 애너도 여성들로 채워진 해군 공창에서 배의 부품을 검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애너의 아버지 에디는 이미 5년 전에 집을 나가 감감무소식인 상태다. 애너의 여동생 리디아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제 발로 일어서지도 못 하고 말도 못 하는 상태였는데, 이런 장애아가 있는 가족에게서 아버지의 가출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에디의 부재도 그 이유일 것이라 추측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애너는 우울한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공장에서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돌아다닐 정도로 당차고 활발한 인물이다. 자전거 타는 게 뭐가 대수냐 싶겠지만 1940년대 해군 공창에서 아무리 여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대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건 남자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애너에게 자전거를 빌려준 넬이라는 친구도 일전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남자들의 성희롱성 야유를 들은 이후 자전거 타기를 중단한 상태였다.


이런 애너의 눈에 들어온 신기한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거대한 옷을 입고 무거운 헬멧을 쓰고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바다 속에서 배를 수리하거나 시체를 찾아내는 다이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애너는 다이버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애너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며 바닷물이 다 빠지고 나면 그 자리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곤 했었다.다이버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현재, 애너는 다이버가 되어서 바다 밑바닥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성 다이버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에너의 도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다이버 훈련을 맡고 있는 중위는 애너를 번번이 무시하고 이 직업이 남성들만이 해낼 수 있는 어려운 일이라 장담하며 어떻게 해서든 애너를 떨어뜨리려 한다. 하지만 애너는 그럴 때마다 과제를 잘 해내며 실력으로 편견을 깨부순다.

 

애너의 다이버 도전은 2차 대전이 한창인 때 뉴욕의 해군 기지와 맨해튼 해변의 세밀한 묘사 그리고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한 생생한 이야기로 큰 재미를 준다. 게다가 다이버들 사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애너와 유일한 흑인이라 은근히 따돌림 받는 말리의 존재를 빗대어서 미국 사회의 다양한 차별이라는 속내를 이야기 속에 조용하게 비춰 주기도 한다.

 

한편 애너의 삶에서 다이버로의 새로운 도전은 밝고 생기 있는 미래를 희망하게 한다면 덱스터 스타일스와의 우연한 만남은 애너를 아버지의 실종이라는 음산한 사건으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한다.

친구들과 간 나이트 클럽에서 그곳의 주인인 덱스터 스타일스를 보게 된 애너는 그가 11살 때 아버지와 찾아간 집의 주인이었음을 기억해 낸다. 대범한 성격의 애너답게 충동적으로 덱스터에게 인사를 하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본명을 감추고 가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덱스터는 애너의 그 충동성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두 번째 만남에서 애너는 덱스터에게 또다시 대범한 도전을 한다. 바로 동생 리디아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데 차로 좀 데려다 주십사하는 부탁이었다.

냉엄한 마피아 덱스터가 애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는 이유로 그를 표현하는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덱스터는 이 딱한 사연의 요소들이 그를 에워 싼 채 돌멩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피니(=애너) 양이 입은 수수한 울 코트는 소맷부리가 다 해졌다. 이것이 그의 약점이었다. 사람들의 불행을 간파하는 능력. (217)

 

나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사람들의 불행을 간파하는 능력 이라니. 너무 딱 들어맞는 표현 아닌가. 냉엄해 보이지만 인간적인 마피아. 약간 로맨스 소설의 나쁜 남자 같은 느낌인데 이 소설에서 덱스터를 다루는 방식이 딱 그렇다. 터프하지만 로맨틱한.

애너가 나이트 클럽을 다시 찾았을 때 다른 남자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질투에 이글이글 타올라 애너를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라든지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애너 혼자 잠수해 들어가 있자 불안해서 모두의 만류를 무시하고 자신도 바다에 들어간다든지 하는 장면. 애너와 덱스터가 함께하는 부분에서는 장르가 잠시 로맨틱한 드라마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덱스터는 어둠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마피아 보스 밑에서 일하는 동시에 노회한 은행장 집안에 장가가서 그들 세계에서 겉으로는 환영받지만 속으로는 배척받는 입장에 있다. 덱스터는 그 두 세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는 인물로 결국 애너와의 관계로 그 자신이 파국을 맞는다.

한편 애너는 덱스터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아버지에 대한 진실에 가까워진다. 아버지의 실종은 덱스터와 관련이 있었고 급기야 덱스터가 에디에게 한 짓을 알게 된 애너.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일까?

 

 

에디에 대한 이야기는 이 소설 후반부를 지탱하는 큰 반전이다.

뉴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배경인 해군을 돕는 상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거기에 타고 있는 다채로운 뱃사람들의 생생한 묘사는 소설 읽기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결국 남아프리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는 정직하고 착한 본성 그리고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에디의 이야기는 뉴욕에서 다이버에 도전하고 혼자서 꿋꿋하게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애너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속해 있는 세계는 다르지만 바다에 도전하고 살아남는다는 점은 애너와 에디의 부녀사이를 연결하는 공통점이다.

다시 이 소설의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서 맨발로 바닷가에 서 있는 애너를 보고 딸의 강인함은 아버지를 닮았겠구나 추측하는 덱스터를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참 재밌게 읽었다. 오랜만에 두툼한 장편 소설을 만족스럽게 읽은 느낌이다.

그 시대에 대한 자료조사가 상당히 꼼꼼하게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20살 애너와 그 가족들, 주변 인물들의 삶에 잘 버무려 넣어서 아주 생생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항만노동조합을 꽉 잡고 있는 아일랜드계와 어둠의 세력 이탈리아계 마피아,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상류층 청교도들이라는 미국 이민의 역사도 배경으로 은은하게 깔려 있다는 점이 소설에 깊이를 더하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다이버라는 신선한 소재와 범죄 누아르 로맨스 해양 소설의 요소들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산만하지 않다. 이야기에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지면서 점점 윤곽이 드러나는 각각의 인물들은 그 묘사도 훌륭하고 문장도 무척 아름다웠다.

제니퍼 이건의 소설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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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06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니퍼 이건의 소설을 읽고 싶어지네요. ^^;

망고 2023-03-06 21:33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이 책 재밌어요 강추입니다😄

오거서 2023-03-06 21:35   좋아요 2 | URL
망고님 덕분에 지금 제니퍼 이건 소설 찾아보면서 올인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

망고 2023-03-06 21:39   좋아요 2 | URL
근데 이 책은 익숙한 소설 스타일인데 다른 소설 특히 ˝깡패단의 방문˝은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거 같아요^^ 저는 그책도 좋았지만요

오거서 2023-03-06 22:00   좋아요 2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scott 2023-03-0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시대물 좋아합니다
제니퍼 이건 능숙한 글쓰기 정점에 올라선것 같아요😊

망고 2023-03-07 13:0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말 능숙한 글쓰기! 술술 나오는 이야기에 문장도 참 좋더라고요!

2023-04-07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7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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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온갖 신기한 식물들에 대한 상식을 넓히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 삽화도 사진도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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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미국에 있는 혈육이 영어 소설책을 몇 권 보내 줬는데 그중에 이 책도 있었다. 그동안 번역된 제니퍼 이건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새로 나온 이 신간 소설도 재밌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책을 딱 펼쳐서 읽는데 초반부터 이거 참 만만치가 않구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단어도 어렵고 쉽게 도전할 원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책 속 인물들과 그 인물의 일대기가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싶은 거다. 가만 기억을 떠올려보니 제니퍼 이건이 퓰리쳐상을 탔던 깡패단의 방문속 인물들이 이 소설과 겹치는 것 같은 거다. 당장 원서 읽기를 중단하고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10년쯤 전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 기억이 거의 안 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다 읽고는 이 책 캔디 하우스를 바로 펼쳐서 읽었어야 하는데 그때 뭔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고 만만치 않은 난이도에 골치도 아파서 그냥 덮어두고 안 읽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올해 2월초부터다. 근데 또 웃기는 사실을 고백하자면 작년에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읽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또 많이 까먹어 버려서(뭐냐 내 기억력ㅡㅡ) 또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작을 뒤적거리며 이 인물이 누구더라 하면서 되짚어 읽어 봤다는....머리가 나쁘면 이렇게 고생을 한다.

 


자 그래서 어렵게 이 책을 다 읽었다. 초반이 힘들었는데 점점 이 소설 스타일에 적응을 하게 되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고 중반 넘어가서는 속도도 붙어서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감동과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이 책 내 기준으로 원서 난이도 꽤 높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막 튀어 나오고 시점이 왔다 갔다 해서 내용도 다소 복잡하다. 그나마 문장은 길지 않고 평범한 수준이라 단어만 잘 넘기면 문장 읽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왜 자꾸 책 어렵게 읽었다는 얘기를 하냐면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못 쓸 거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형식상 내용을 요약하기 힘든 소설이고 이 책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정리해보려 하면 약간 복잡하게 느껴져서 뭔가를 쓸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근데 이토록 어렵게 읽었는데 아무것도 안 쓰고 넘어가면 너무 섭섭할 거 같은 거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하는 중이라는 거?

 

 

이 소설은 여러 인물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등으로 나름대로 다 얽히고설켜 있고 그 관계가 깡패단의 방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지 쉽게 파악이 된다. 뭐 안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깡패단의 방문을 먼저 읽는 게 좋기는 하다.

각각의 인물들이 한 챕터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의 완벽한 단편 소설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한 챕터 당 이야기가 독립적이다. 하지만 물밑에선 이 인물들이 모두 다 연결 되어 있고 배경으로는 집단적 의식즉 기억 공유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이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독립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하나의 큰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 소설은 현실과 다른 평행우주 같은 현재 세계와 미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약간 SF적인 냄새도 난다.

이 소설속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머리에 센서를 부착해서 뇌에 저장된 기억을 만다라 큐브라는 장치에 업로드를 하면 누구나 그 기억을 볼 수가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 있었던 기억이 있다고 치자. 그 당시 똑같은 때에 똑같은 장소에 있던 다른 사람도 자신만의 기억이 있다. 이들이 모두 큐브에 기억을 업로드 했다면 서로의 시점으로 그때의 기억을 공유해서 볼 수가 있다는 식이다. 내 기억은 이런데 저 사람 기억은 저렇구나 하고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 기억에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보면서 불확실한 부분을 채워 넣을 수도 있다.

이 기술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누구나 타인의 기억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에 AB를 마음속으로는 싫어하지만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 했다면 이제 그 기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BA의 진실한 속마음을 알아버리게 된다는 식이다. 이런 기술이 과연 좋기만 할까?

그냥 딱 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아주 심각해 보이는 무서운 기술이 아닐 수 없는데...현실에 이런 게 있다고 생각해보면... .... 안돼!!

그래서 이 소설 속에선 이 기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활동을 한다. 집단 의식에 기억이 업로드 된 사람들은 그것에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또 다른 기술을 이용하는 비영리집단 몬드리안을 이용한다. 만다라와 몬드리안은 서로 양극단에 있고 거기에서 주력으로 일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니 근데 여기까지는 그냥 이 소설의 배경일 뿐이다. 중요한 건 이런 기술이 스며들어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연결해 주는 건 만다라의 창업자 빅스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도록 영감을 준 아이디어, 즉 인류학자 미란다 클라인의 연구 논문이다. ‘친밀함의 패턴에 대한 연구.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신뢰하고 좋아하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미란다는 사람들이 서로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을 때 친밀감이 형성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을 토대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성공을 거둔 빅스는 기억을 공유하는 만다라 큐브까지도 개발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친해지기 위해서 정말로 그렇게나 많은 서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은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조용한 깨달음의 순간과 함께 찾아온다.

 

 

어느 날 어떤 장소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에 다른 혼자인 사람에게 손을 뻗어 친구가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으로 평생의 좋은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죽을 위기 앞에서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소망할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하다가 불쑥 만나게 된 친구는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보이고 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 평생 추구했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순간도 있다.

우연히 남의 가방을 맡게 되어서 가방 주인이 올 때까지 오도가도 못 하고 길거리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밤, 옆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의 존재에 위안이 되는 순간도 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 거렸던 두 이웃은 그 중 한명이 깊은 실의에 빠지자 다른 쪽 한명이 갑자기 적의를 내려놓고 실의에 빠진 쪽을 위로해 주는 순간도 있다. 이들은 그 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함께 오랫동안 앉아 있곤 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던 친척의 우울한 낌새를 눈치 채고 내내 같이 있어 주다가 자살 시도에서 생명을 구해주고는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되는 순간도 있다.

비록 각자의 이익을 위해 소통했지만 그 소통으로 얽힌 사람들이 모두 만족한 결과를 얻었을때, 개인의 성취란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집단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술을 이용 하는 인물들은 죽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두 딸들의 이야기뿐이다. 그것마저도 내 트라우마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죽은 아버지의 기억이 필요했던 것이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아니다.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은 직접 접촉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다. 내가 아팠던 이야기는 상대의 우울한 이야기와 공명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그냥 정보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기술은 사람들을 달콤함으로 유혹해서 낚는 캔디 하우스일지도 모른다고 이 소설은 많은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해준다.

 



이 소설은 참 독톡하다. 인물이 바뀌면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그 인물에 꼭 맞게 휙휙 바뀐다. 어떤 인물은 보고서 형식이나 이메일의 나열 등의 새로운 서술 형식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독특한 인물에 독특한 형식을 차용하지만 결국 인간 보편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들이라 공감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어떤 부분은 아름답기도 하고 따스하기도 하고 감각적이기도 해서 읽는 재미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려움)

번역서가 나온다면 다시 읽어 봐야지. 우리말로 어떻게 이 소설을 옮겼을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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