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는 필립이라는 인물이 태어나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20대 후반까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원대한 꿈을 품고 그 꿈에 도전해 보지만 좌절하고 그래서 진로를 변경해 보았지만 이것도 아닌 거 같아서 다시 다른 직업에 도전하고 사랑에 빠져보았다가 큰 상처를 입기도 하고 돈에 쪼들려 궁핍한 생활을 경험하기도 하다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해 보겠다는 계획으로 지금의 고생을 보상하려 하지만 결국은 현실과 타협해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인생행로를 변경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략의 내용이다.
필립은 어릴 땐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세계,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미학적인 세계에 탐닉하다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저런 경험과 고생을 해보고는 결국 세상 속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택하게 된다.
인간은 그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을 뿐이다. 인간의 삶이란 것에 어떤 큰 의미를 찾으려는 굴레를 떨쳐낸다면 오히려 내가 왜 이렇게밖에 못 사는가라는 고민을 떨쳐낼 수 있고 내 삶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바로 이것이 필립이 현실에 안착하게 되는 여정에서 깨달은 진리다.
지금의 평범한 삶이 어릴 때 꿈꾸던 찬란한 삶이 아니라 하더라고 그게 결코 인생의 패배가 아님을 필립이 몸소 겪어나가는 삶 속에 잘 엮어낸 소설이었다.
나는 늘 인간의 추악하고 찌질한 면면을 얄미울 정도로 잘 포착해 내는 작가가 서머싯 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소설도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필립에 대해서는 작가의 애정이 담뿍 깃들어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서머싯 몸의 다른 소설들에서 보다 주인공을 좀 더 귀엽게 봐줄 수 있게 된 점도 꽤 재미있는 점이었다.
이때까지 서머싯 몸의 소설을 4권 읽었는데 그중 재미없었던 것이 한권도 없었지만 나는 이 소설이 가장 좋았다.
특히 필립이 깨달은 인생 양탄자론 너무너무 공감했는데, 이게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이 문장으로 팍팍 나와 버리니 몸에 전율이 일 지경이었다.ㅎㅎㅎ
곱씹어 생각해볼 문장들에 간만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본 책이었다.
참 재밌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