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위한 변론 - 무자비하고 매력적이며 경이로운 식물 본성에 대한 탐구
맷 칸데이아스 지음, 조은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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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식물은 그저 자연에서 공짜로 인간이 유용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것으로만 관심을 받아왔다. "그 풀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이 식물은 약재로 사용할 수 있나요?" 등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식물을 보면 마치 식료품 진열대 앞에 서 있는 듯 눈을 반짝이며 식물을 뜯어 먹을 궁리만 했다. 하지만 식물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그러니 인간이 이용해 먹는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지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멸종위기 동물들 앞에서는 이런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해 반성하고 동물을 보호하고 살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식물은? 우리는 식물에게는 여전히 박하게 군다. 아니 거의 식물에 대한 생각을 하질 않는다. 식물은 하찮다고 생각하고 아예 관심 밖이거나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식물이야 말로 모든 생태계의 근간이다. 식물이 없으면 다른 생물들도 존재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식물에 대한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 책 초반에 나온 루피너스 꽃을 심어서 폐쇄된 채석장의 숲을 복원하는 이야기부터 흥미로웠다. 마침 올 봄에 마당에 루피너스를 심었어서 아는 꽃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기도 했는데, 놀랐던 점은 루피너스 꽃에만 찾아오는 나비가 있어서 야생에서 루피너스가 없어지면 그 나비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읽을 때였다. 그동안 나는 이런 생각은 해보질 못 했었다. 식물이 존재하고 그 식물에만 특별히 찾아오는 생물들이 있고 그래서 그 식물이 없어지면 거기에 따라오는 생물들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 작은 들꽃 하나에도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 책은 계속해서 자연의 이런 연쇄작용들을 일깨워 준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기생식물에게도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들.

초봄에 마당 구석구석에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나는 작은 제비꽃들은 개미들이 씨앗을 옮겨다가 개미집에 저장해 두어서 봄에 싹이 트는 것이라고 한다.

한여름인 지금 한창인 나리꽃의 수분 매개자는 호랑나비란다. 마당에 선명한 주황색을 자랑하는 나리꽃이 호랑나비를 불러오는 구나 싶으니 얼마나 신기하던지. 이 책을 읽고는 수년 동안 여름마다 나리꽃을 봐왔는데 나리꽃 안에서 꽃가루를 묻히고 있는 나비를 관찰할 생각을 해 보지 못한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심각한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니 대처 할 수나 있는지 무력감이 드는 요즘이다. 그냥 보고 있으면 큰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 같고 인간 개개인들이 뭐 어째야 하나 싶으니 남일 보듯 관망하고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식물을 가꾸는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설득한다. 내 집 마당에 잔디보다는 자생 식물들을 심어두거나 작은 야생화 화분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그 식물들 덕에 몰려오는 곤충들, 새들, 동물들을 관찰해 보자고. 그 작은 노력이 자연에 대한 더 큰 인식을 하도록 돕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태도를 기르게 될 거라고.

 

 

나는 어릴 때부터 꽃과 나무와 가까이 살았다. 식물들이 늘 내 옆에 있었지만 그들을 인식하고 관심 있게 보게 된 건 최근이다. 어릴 때는 식물들이 잘 보이지 않았고 이 책의 저자가 식물을 전공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또한 식물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옆에 식물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계절마다 순차적으로 존재감을 내보이는 꽃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벽이면 분주하게 꽃들에 앉았다가 가는 왱왱거리는 꿀벌들 소리가 새롭게 들려왔고 그 바쁜 소리가 좋다고 느낀다. 늦여름 한밤에 마당에 나가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 그들을 품고 있는 우리 집 마당의 식물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꽃들이, 나무들이, 풀들이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요즘 따라 많이 생각한다.

이 책은 식물을 이제야 인식하게 된 나에게 식물만이 아닌 그 식물로 인해 연결되는 많은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도록 사고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우리 집 마당에만 해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니 경이로웠다.

앞으로 마당을 더 푸르게 잘 가꿔보자고 다짐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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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7-28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린 시절에는 꽃도 나무도 관심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나무와 꽃 보는 것만을로도 뭔가 위안이 돼요. 전 바바라 쿠니의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에서 처음으로 러피너스를 알게 되었어요. 애들 어릴 때 읽어주던 그림책인데.. 실제 꽃은 작년에 접했네요. 꽃집 앞에서 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수국 사서 온 기억이…

망고 2023-07-29 12:38   좋아요 0 | URL
어릴때는 옆에서 꽃이 펴도 보이지도 않고 볼 생각조차 안 하고 현란하고 인공적인 것들만 눈에 담기 바빴던거 같아요. 이제야 주변에 식물들이 보이는데 수년동안 집에 있던 꽃들인데도 이런 꽃이 우리집에 있었나 하면서 새삼 놀라요ㅋㅋㅋㅋ 그정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흐 요즘은 루피너스를 공공화단에다가도 많이 심어놓더라고요 봄에 길거리에서도 많이 봤어요. 이또한 몇년전까진 그냥 지나쳤을텐데 요즘은 공공 화단들의 꽃도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었답니당ㅋㅋㅋㅋㅋ
 
밤의 경비원 - 2021년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지예 옮김 / 프시케의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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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는 미국 원주민 치페와족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미국 문학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소설이 꽤 있는데도 나는 한권도 읽은 적이 없어서 작가가 미국 원주민계라는 내력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퓰리처상 수상을 했다는 이유였는데 게으른 독서생활자인 내가 그나마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면 일단 읽고 싶어 하는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탓에 미국 원주민의 손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을 이제나마 만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미국 소설들을 다른 나라의 소설들보다 훨씬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서 진짜 미국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을 읽은 기억은 거의 없다. 현재 미국 원주민의 인구는 미국 인구의 0.8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내에서도 미국 인디언 문학의 자리는 매우 좁을 것이고 미국 사람들조차도 잘 모르는 분야가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는 미국 원주민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매우 귀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 거 같다.

 

 

이 소설은 실제로 1950년대 치폐와 족 자문위원회의 의장이었던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했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1953년 미국 의회는 모든 인디언 부족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을 종결하겠다는 법안을 발표한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를 상징하는 인물인 토마스 와샤스크는 의회의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부족의 의견을 모으고 여기저기에 편지를 써서 워싱턴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한다.

토마스의 일련의 정치적인 행동은 사실적으로 서술되는 와중에 함께 진행되는 소설 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마술적이고 환상적이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인디언 보호구역 안의 가난하고 춥고 비참한 부족의 삶을 무겁고 우울하게만 이야기 하지 않고 은유와 암시를 섞어서 민감한 문제들을 고루 스케치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큰 특징이랄 수 있다.

특히 퍼트리스의 실종된 언니 베라를 다루는 방식에서 베라가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확한 서술 보다는 여러 암시로 이야기 하고 있다. 실제로 인디언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가 그 당시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을 베라의 실종으로 고발하고 있는데 그 상황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은유와 암시로 이야기 하면서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은 점이 나는 좋았다.

매일 장작을 패서 힘이 세고 집안의 가장으로 보석 베어링 공장에서 일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퍼트리스는 언니를 찾으러 도시에 나갔다가 기차역에서 바로 납치되어 야간업소에서 수중쇼걸로 일하게 된다. 순진함이 가장 큰 무기인 듯 한 퍼트리스는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수중쇼걸 일을 받아들이고 수족관에서 자신이 하는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즐겁게 일을 한다. 인디언 여성이라고 도시로 나오자마자 납치의 표적이 되고 납치한 일당들은 서로의 커넥션으로 인디언 여성들이 팔려가는 곳이 어디인지 다 알고 있는 상황과 그저 순수한 퍼트리스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웃지 못 할 상황. 그 당시 보호구역 안에서 약초를 캐고 토끼를 사냥하며 자연과 함께 살았던 인디언 소녀에게 부지불식간 세상은 얼마나 악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언니 베라도 분명 처음에는 퍼트리스와 같은 길을 걸었으리라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인디언들을 기숙학교에 보내 어릴 때부터 인디언의 생활방식을 지우고 백인의 문화에 동화되게 했던 국가 정책의 폐해는 밤에 나타나는 유령인 로더릭이 암시한다. 토마스와 기숙학교도 같이 갔던 친구 로더릭은 어린나이에 체벌을 당하고 사망했다. 그 소년은 유령이 되어 토마스 앞에 나타나곤 한다. 그러다 토마스를 따라 워싱턴에 갔다가 그 옛날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워싱턴에 갔었던 동족 인디언들이 목매달려 죽은 유령들이 되어 활기차게 배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 아니 내 동료가 이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이건 한편의 블랙코미디.

 

인디언의 시점으로 당시의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와 함께 눈여겨 볼 부분은 인디언 보호 구역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즉 그들의 특별한 전통과 하나의 큰 가족 같은 부족사회의 모습 그리고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들려주고 있는 부분이다.

부족민 모두가 함께 하는 치폐와 족 장례 장면, 주술사가 보는 환상이나 꿈에 나타나는 암시를 믿는 장면, 결정적인 순간에 귀신을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믿음 아니 환상을 서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는 장면...

또한 남에게 나쁜 짓을 해서 원한을 사면 그 원한이 복수를 한다는 믿음. 원한은 때로는 새가되어 날아가 나쁜 놈의 얼굴을 갉아먹어 버리는데.....

자연 속에 있는 약초로 병을 고치고 곰 사냥을 하기도 한다. 옛날에 버팔로 같은 야생돌물들이 수없이 많았을 시절엔 굶어 죽은 부족민이 없었다는 그들의 속담.

이 소설은 이토록 인디언 문화를 기록하고 소개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명확히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작품성을 훼손하진 않는다. 서정적인 문장과 마술적인 이야기들의 조화가 참 아름답기도 했고 문장을 읽는 맛이 좋았기도 해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겠지.

 

힘세고 순수한 인디언 소녀 퍼트리스와 권투 선수 우드 마운틴과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재미를 담당하는 큰 부분이기도 하다. 첫사랑의 알쏭달쏭한 풋풋한 감정들이 어찌나 잘 묘사되어 있는지.

특히 퍼트리스의 성격은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친구에게서 성관계를 어떻게 하는지 배운 퍼트리스는 그것을 시험해 보고 싶고 그 상대로 우드 마운틴을 떠올린다. 그 이유는 우드 마운틴은 인기가 많아서 구애자가 많다. 따라서 퍼트리스와 그것을 시험해 보고 난 후에도 그녀에게 계속 달라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일이 잘못되어 퍼트리스가 애기라도 낳게 되면 우드 마운틴은 애기를 좋아하니까 그에게 기르라고 줘버리면 된다는 것 까지 생각하는데......이런 발칙한 퍼트리스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퍼트리스는 때가 되면 남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그 시대의 한계 바깥에 있는 인물이고 남자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이 자신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남자 만큼이나 힘이 세고 누구 보다 빠르게 수영을 할 수 있는 체력의 소유자. 주정뱅이 아버지 따위는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 곰 옆에서 잠을 자도 살아남은 강인한 퍼트리스. 그 곰을 혼자서 사냥한 어머니를 꼭 닮은 딸인 퍼트리스.

이런 생생한 캐릭터인 퍼트리스를 따라가는 재미도 상당했다.

 

 

명확한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로 집중력 있게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 아니라서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산만한 듯 나열되었다가 합쳐지기도 하고 여러 챕터를 읽고 난 후에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서술 방식에 적응하는 데에 약간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작가는 우리 원주민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이토록 다양한 삶들을 흩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흩어진 삶들을 모으다 보면 공통으로 가난, 고생, 배고픔, 추위가 보인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도 그것들이 아프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 준다.

이 소설 속 치폐와 족 사람들의 목소리는 익숙하게 듣던 백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서 나에게는 분명히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정복자들에 의해 빼앗기고 짓밟히는 시간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아픔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을 응원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들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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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8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비저블 서커스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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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은 이미 퓰리처상도 타고 지금은 작가로서 노련미와 완숙미를 뿜뿜 풍기는 제니퍼 이건이 1995년에 낸 첫 장편소설이다. 이미 정점에 있는 작품들을 읽은 후 작가의 데뷔작을 읽어보니 첫 소설은 역시 처음답게 풋풋한 맛이 있었다.

흘러넘치는 감수성 풍부한 문장들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과거회상의 정서 그리고 소녀의 성장이라는 주제의식까지 작가들이 첫 소설에서 으레 도전하는 많은 요소들이 이 소설에 보인다. 작가의 젊은 시절을 만난 것 같아서 반갑기도 했다.

 

 

때는 1978년 열여덟 살 피비는 대학 입학을 앞둔 상태고 엄마와 단 둘이 어린 시절부터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피비가 태어나서 지금껏 살고 있는 곳은 샌프란시스코다.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이었지만 이젠 과거의 명성만 남아있는 곳. 그 시절의 급진적인 히피들은 벌써 약물중독으로 죽었거나 일상생활로 돌아갔고 아직도 남아 있는 히피들은 중독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곳이다.

피비는 내내 존재감이 없는 내성적인 학생이었고 그 흔한 담배 한 번 피워보지 않은 모범생이지만 피비의 마음속엔 60년대의 그 대단했던 급진적인 문화를 경험해 보길 바라는 열망이 있다. 거리를 배회하는 약물중독자들에 마음이 가고 지금은 텅텅 빈 예전 히피들의 음악축제를 찾아 가기도 한다. 피비는 그 시대에 대한 환상이 있다.

피비에게는 여덟 살 차이 나는 언니 페이스가 있었는데 60년대 말 페이스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동맹휴교를 이끌 만큼 그 시대의 급진성과 아주 잘 어울리던 인물이었다. 앞에 나와서 연설을 하고 신문에 이름이 실리고 곳곳에서 모여든 히피들과 어울려 다니던 페이스는 어린 피비가 보기에는 신비롭고 멋진 존재였다. 하지만 페이스는 열여덟의 나이로 유럽으로 여행을 가 있던 중 이탈리아 작은 해변의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하고 만다. 어렸던 피비는 그렇게나 멋지던 언니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언니를 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언니의 방에서 잠을 자고 언니가 활약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채 점점 더 언니와 그 시대에 대한 환상을 쌓아가고 있었다.


피비의 가족에게는 페이스의 죽음 이전에 병으로 죽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슬픔으로 남아 있었는데 거기에 페이스까지 세상을 떠나버리니 어린 피비의 마음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언니의 부재라는 큰 슬픔은 살아 있었을 때의 그들을 이상화하면서 누그러뜨릴 수 있었고 그래서 언니에 대한 환상뿐만 아니라 화가가 되었어야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느라 회사에 다녀야만 했던 불운한 예술가라는 아버지에 대한 신화 또한 피비는 여태껏 진심으로 믿었다.

그런데 이런 피비에게 못마땅한 상황이 찾아온다. 엄마에게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에 파묻혀 있는 오래된 집도 팔고자 한다는 거다. 엄마가 죽은 아빠를 잊지 못 하고 계속 사랑하고 있기를 바라고 언니의 추억이 가득한 집도 계속 이대로이길 바라던 피비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에게 반항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아빠와 언니에 대한 피비의 환상에 균열을 내는 엄마의 절규였다. 아빠는 그림에 재능이 없었고 자신도 그걸 알았다는 것, 첫째 딸 페이스가 태어나자 페이스에게 온갖 사랑을 퍼부으면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 한 위대한 예술가라는 자신에 대한 신화를 페이스에게 주입했다는 것, 페이스를 온전히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아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아이로 만들어서 아빠가 죽었을 때 페이스가 완전히 망가져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런 엄마의 의견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피비는 언니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상태로 무작정 유럽 여행길에 오른다. 과거 언니가 유럽에 가서 집에 편지를 보내오던 장소들을 찾아다니면 언니의 흔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모호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유럽에 간 피비는 이런저런 고생 끝에 언니의 생전 남자친구인 울프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언니를 닮고 싶다는 갈망이 울프를 원한다는 욕망으로 나타나면서 열여덟 살 피비는 유럽에서 생애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피비와 사랑에 빠진 울프는 드디어 그동안 감추고 있던 언니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고 피비는 진짜 언니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 진실 속에 있는 언니는 피비의 환상속 언니와는 다른 언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 아빠와 언니에 대한 기억 속에서 언뜻 느꼈던 그 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빠에게 인정받고자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 붙이던 언니의 모습, 그런 모습의 언니를 더욱더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 그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던 어렸던 자신의 모습...

드디어 언니에 대한 환상도 아빠에 대한 신화도 벗겨져 버린 피비의 눈앞에 벼랑 끝에 선 언니의 불안한 영혼이 보인다. 세상에 자신의 대단한 예술성을 내보이기를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남자가 자식을 통해서 그 패배감을 달래려 했고 자식은 아버지의 바람에 부흥하기 위해서 끝없이 무언가를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러다가 그 자식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벼랑 끝에 서게 된다. 바로 이게 피비의 눈앞에 보이는 언니의 모습이었다.

 

다시 가족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피비는 엄마의 남자친구도, 집이 팔려 새집으로 이사가야 하는 현실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피비의 오빠 배리가 세운 컴퓨터 회사에 찾아가서 새로 다가올 기술의 시대와 조우하면서 동경했던 과거 히피의 시대와도 안녕을 고한다.

이제 아빠와 언니에 대한 오랜 애도를 끝낸 피비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최근작들을 보고 작가 제니퍼 이건에 관심이 간다면 이 데뷔작은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첫 소설에 지금까지 제니퍼 이건이 다루었던 모든 것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히피문화, 아버지와 딸의 관계 등등이 모두 모여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니퍼 이건의 소설마다 계속 나오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주제는 이 첫 소설에서 이미 꽤 심각하게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이후 맨해튼 비치에서도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더욱더 인정 받기위해 대담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던가? “캔디 하우스에서도 아버지를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는 딸의 모습이 나오고, 그토록 사랑받고 싶었던 아버지로 인해 망가지는 딸의 모습도 나온다

이토록 작품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천착해 오는 모습을 보면 작가의 실제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땠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니퍼 이건의 첫 소설 재밌게 잘 읽었고 앞으로도 쭉 제니퍼 이건의 작품이 나오면 계속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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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5-0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건의 첫 소설이 문동에서 번역 되었네요
망고님 덕분에 제 킨들에도 이건 작품들이 차곡 차곡 ^^

망고 2023-05-05 14:25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최근에 샀어요 그동안 첫소설까지 챙겨볼 정도로 열정이 있진 않았는데 최근에 제니퍼 이건 소설 여러권 읽고보니 관심이 가더라구요😊 이 소설 좀 귀여워요 대작가님한테 할 소린 아닌데 제 느낌이 그랬어요ㅎㅎㅎ작가님 문학소녀시절 상상도 되고요😙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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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윌 스미스가 아들과 함께 토크쇼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자신이 14살 때 당연히 멍청했지만 그때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없었기 때문에 방구석에서만 멍청할 수가 있었다는 것. 사춘기 아들의 SNS를 겨냥해서 한 이 유머는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각자 어릴 때 흑역사를 생각하며 그 기록이 인터넷에 남아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울지를 아찔해하며 SNS는 인생의 낭비다 라는 퍼거슨의 말로 결론을 내며 웃곤 했다.

하지만 윌 스미스의 방구석 멍청이 이론은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가 인터넷 특히 SNS로 전세계 익명의 사람들과 연결 될 수 있기 전에는 개인이 멍청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전시하고 퍼트리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방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미쳐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은 극단적인 위험한 주장들을 혼자만 가지고 있기 보다는 인터넷에 전시해서 동조자를 찾아 관심을 받고 그것으로 수익까지 내는 게 가능해졌다.

이 책은 극단주의 특히 극우 백인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여성혐오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방구석에서만 혼자 떠들지 않고 세상에 나와 정치세력을 만들고 테러까지 저지르는 현상을 점점 확대되어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율리아 에브너는 극단주의가 사람들을 모으고 그 주장을 확산시키는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서 극우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그들의 비밀 채팅방에 잠입하고 현실의 모임까지 찾아간다.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숨기면서 잠입 취재한 기록들은 암담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 재미와 흥미진진함을 주기도 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잠입한 인터넷상의 극단주의자들은 주로 유럽과 미국의 백인 남성들 집단으로 그들의 주장의 기본에는 백인우월주의가 깔려 있다. 요즘 유럽 여러 나라의 선거철마다 극우 정당이 다수의 득표를 했다느니 하는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바로 그 극우 정당들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에 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커뮤니티가 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파시스트들이고 나치즘을 찬양하며 우생학을 믿는다. 자신이 순수 백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유전자검사를 실시하고 그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지를 보여줘야 하는 곳들도 있다.

이들은 당연히 이민자들을 혐오하고 이대로 계속 이민자들을 받다간 백인들이 결국 없어질 거라고 위기론을 부추긴다. 백인 말살의 배후로는 정치세력, 기존 언론 매체, 유대인들, 엘리트들의 비밀 단체가 있다는 음모론까지 가미하는데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런 주장에 코웃음을 치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이런 식의 황당한 주장들을 정직하게 다 내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요즘 이들은 소셜 미디어와 젊은 세대들에게 먹힐 재밌는 밈, 게임 등을 적극 활용하여 혐오를 마치 재밌는 농담이나 게임 같은 것으로 보이게끔 한다. 당연히 젊은 세대들은 이들이 생산하는 밈을 재밌게 소비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커뮤니티로 흘러들어가거나 그들의 주장을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극단주의자들은 방구석에만 있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세력을 형성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젊은 피를 모집하기 위해 극우 트롤들은 인터넷에서 여론을 오염시키면서 점점 정치세력화 한다. 이들은 젊고 세련된 이미지의 청년들의 지지가 절실했던 기존의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결국 극단주의자들의 SNS나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단어나 밈을 정치가들이 똑같이 말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비단 유럽과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기반의 극단주의 커뮤니티만 이 모양일까? 우리나라는? 당연히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회의 불안을 파고드는 극단적인 주장에 집단의 심리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가짜뉴스에 인터넷 트롤들의 활약 그리고 혐오를 유머로 만드는 밈까지.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를 파고드는 이 혐오의 극단주의 유혹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말미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부족한 느낌이다. 규제를 더 한다거나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해결책은 너무나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지금의 이 심각한 상황에선 크게 와 닿지 않는 느낌이다.

왜 점점 더 혐오에 빠져드는가, 젊은 세대들은 왜 극단주의 무리에 기꺼이 끼어서 소속감을 얻는가 하는 문제들을 더 파고 들어봐야 좋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이 책은 극단주의가 어떻게사람들을 사로잡는가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니 이것으로 그 소임을 다 한 거 같고 좀 더 깊이 에 집중하는 책을 찾아서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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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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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의 생물들은 인류에 의해 여섯번째 대멸종을 겪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직접 보고 취재한 사례를 들어 생생하게 설명한다. 급격한 환경변화가 멸종의 원인임을 인정하기까지의 과학사를 훑는 것도 흥미롭다. 여섯번째 대멸종에 인류도 포함된다는 점 마음깊이 새기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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