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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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여성운동의 과정으로 주체적인 여성의 삶이라는 진보에 다가선 시기 1980년대에 와서 기존권력이 미디어,정치,문화적으로 어떻게 반격을 가했는지를 다룬다 특히 미디어가 반격의 신화를 퍼트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많은 분량을 할애해 지적하고 있다.지금이라고 다를까?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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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작가 리처드 루소를 알게 된 계기는 영화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아니 사실은 꽤 오래전에 내가 고전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폴 뉴먼의 출연작들을 훑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영화중 하나가 1990년대에 개봉했다는 노스바스의 추억이었다. 폴 뉴먼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영화 자체의 내용도 너무 감명 깊었기에 이 영화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리처드 루소의 소설 “ Nobody's Fool" 이었고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었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서 1995년에 영화 포스터를 책 표지삼아 노스바스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짜리 번역서가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찾던 그 당시에도 이미 아주 오래전 출간된 책이라 절판상태였고 나는 너무 읽고 싶어서 헌책방을 뒤져서 드디어 사게 되었다. 아마 알라딘 중고서점에서였겠지?

원작은 영화보다 훨씬 더 좋았다. 인물들이 생생하고 특히 서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그냥 날것 그대로 아주 펄떡펄떡 살아있어서 매우 글을 잘 쓰는 작가의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무척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서 검색을 해봤더니 2002년에 퓰리처상을 탄 “Empire Falls" 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다. 근데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적이 없어서 원서를 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번역서가 있다면 굳이 원서를 읽지 않을 텐데 왜 다른 퓰리처상 수상 작품들은 거의 번역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번역되지 않았을까? 투덜대며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원서를 읽었는데 너무너무 재밌고 감동스러워서 읽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독후감은 여기에 남겨 놓은 게 있다) 읽고 나서 그 감동과 여운이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 내 마음에 남아 있어서 나는 좋아하는 작가로 리처드 루소를 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 “Bridge Of Sighs"도 굳이 원서지만 읽어 보게 되었다는 뭐 그런 얘기다.

 

 


내가 읽었던 리처드 루소의 다른 두 책과 같이 이 책도 미국 북동부의 쇠락한 작은 산업 도시가 배경이다. 가죽 공장이 사람들을 먹여 살렸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화학제품들이 도시에 흐르는 강과 지하수를 오염시켜서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고 현재 이 도시는 암 발병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 되었다.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공장이 결국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이곳의 주민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 암담해서 공장이 닫히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 이야기의 주요한 화자 루는 현재 60세이고 부인 사라와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고 결혼해 40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동네의 작은 편의점을 물려받아서 생계를 유지 했는데 지금은 다른 지역에도 편의점 두 곳을 더 운영하고 있고 동네에 세 놓는 건물도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이 작은 도시에서 꽤 부유한 위치가 되었다. 동네 편의점이 잘 된 이유도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과 맞닿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곳이 주에서 로또 판매가 가장 많이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고 형편이 어려운 많은 블루칼라들이 로또를 사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다는 점이 주인공의 편의점 성공의 비결이었다.

 


현재 노년의 루와 사라는 이탈리아 베니스로의 여행을 계획 중이다. 평생을 한 곳에서 살며 여행을 전혀 즐기지 않던 루에게 여행이란 굉장히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베니스로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사라가 최근에 암에 걸렸다가 회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니스에는 부부의 오랜 친구인 바비가 화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비는 고향을 떠난 이후 한 번도 고향에 돌아온 적이 없고 루가 편지를 보내면 한 번도 답장을 해 온 적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루는 대답 없는 바비에게 계속해서 고향의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보낸다.

답장이 없는 편지를 매번 보내는 우정이란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루는 평생을 바비에게 우정으로써 구애를 하고 바비는 언제나 떨떠름하게 반응을 해 왔다. 이것은 이 둘의 우정이 시작된 어린 시절 부터 바뀌지 않은 구도였다.

 


농장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우유배달원 일을 하는 루의 아버지 빅 루와 보험 판매원의 딸로 중산층에서 자란 루의 어머니 테사의 결혼은 테사의 계층의 하락을 의미했다. 결혼하고 루가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가족은 테사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함께 살았다. 외동아들인 루는 또래 친구들이 없는 지역에서 늘 혼자 놀던 소심한 아이였고 부모님이 겨우 돈을 모아 독립하게 되자 드디어 옆집에 또래 친구를 가지게 되었다.

이 도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웨스트 앤드와 그 웨스트 앤드 중에서도 더 못 사는 흑인 지역인 힐이 있고 워킹 클래스가 많이 사는 동네 이스트 앤드 그리고 도시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버로우 지역이 딱딱 나뉘어져 있다.

처음 루 가족이 독립해서 살았던 지역은 당연히 웨스트 앤드였다. 그곳에서 옆집에 살던 가족이 바로 바비네 가족이었는데 이 가족은 바비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늘 어둠의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바비 어머니는 배가 꺼질 날이 없이 계속해서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에다가 남편 때문에 늘 공포에 떨고 있는 불쌍한 여자였다. 이 심란한 가족의 장남인 바비는 용감하고 남자답고 대범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루는 바비와 옆집에 살았던 관계로 학교에 같이 등하교 할 수 있었고 때때로 같이 놀 수 있었다. 이때부터 루의 바비에 대한 열렬한 우정의 갈망이 시작된다.

 


가뜩이나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별명까지 안타깝게도 여자이름인 루시인 탓에 루는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더욱더 소심해졌다.

여기서 루시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사연이 좀 재밌다. 본명인 Louis C. Lynch로 출석부에 적혀 있었는데 루의 아버지 이름도 Louis고 친구들이 빅 루(Big Lou) 라고 불렀기 때문에 빅 루를 알고 있던 선생님이 루를 처음으로 출석을 부를 때 루 씨 린치라고 불러 버려서 (선생님은 전혀 비난 할 수 없다) 그의 별명이 여자 이름 루시(Lucy)가 된 것이다. 그 후 루는 평생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서 루시로 불리우게 된다.

이런 별명 때문에 루의 초등학교 생활은 놀림과 조롱으로 시달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루가 바비 옆에 같이 다니면 애들이 괴롭히지 않았다. 바비는 듬직하고 싸움도 잘 하는 아이여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루는 바비에게 늘 같이 놀자고 매달리는 친구였고 바비는 그런 루가 귀찮지만 옆집에 살고 엄마들끼리 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놀아주는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 바비네 가족이 형편이 나아져 이스트 앤드로 이사를 가 버리게 된다.

다시 혼자가 된 루는 하교 길에 동네 아이들에게 폐 철로에서 트렁크에 갇히는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그때 일시적인 기절 상태에 빠져 있다 깨어난 후로 60이 된 지금까지 가끔가다 그러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순간을 맞곤 한다. 그런 발작이 오면 순간 다른 평행하는 세계에 가 있는 듯 환상을 보고 원래의 자기 자신과 분리된 듯 한 느낌을 받으면서 기절 상태에 빠져드는데 루의 어린 시절에는 그 발작의 빈도가 더 컸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오면 그 발작이 찾아오는 거 같았다.

트렁크에 갇혔던 사건 이후 루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부모님한테 돈을 빌려 드디어 이스트 앤드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바비를 만나서 놀 수 있어서 루는 기뻤다. 하지만 오래지않아 또다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바비네 가족이 이스트 앤드를 떠나서 버로우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었다. 루의 시점에서는 바비와의 이별이 너무나 서운하고 슬펐다면 바비의 시점으로 바뀌게 되면 어린 시절 루와의 이별은 바비에게 늘 같이 놀자고 징징대는 루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어서 너무나 홀가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 후 루와 바비는 한동안 만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경제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외곽에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동네의 슈퍼들은 문을 닫게 되었고 루의 아버지가 업으로 삼고 있던 우유배달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대형 마트에 가면 더 싸게 우유를 사올 수 있는데 굳이 비싸게 배달해서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루의 아버지 빅 루와 어머니 테사는 전혀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빅 루는 세상의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인물로 자신의 직업이 없어질 때까지도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에게 고향 도시는 가장 살기에 좋은 곳이고 열심히 살다보면 버로우의 좋은 집을 살 수 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반면 테사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빅 루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를 늘 타박하고 루에게 현실이 결코 밝은 면만 있지는 않다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우유배달 일자리를 잃자 테사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네의 편의점을 덜컥 사버린 빅 루는 그곳을 잘 운영해갈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저 성실하게 가게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뿐 경제관념이 없었던 남편을 보다 못한 테사가 직접 나서서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서부터 그나마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인물간의 관계는 주로 이렇게 정반대 성향의 사람들끼리의 조화이다. 부부가 어떻게 저렇게 성격이 다르냐 싶을 정도로 빅 루와 테사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들인데 그들은 대부분의 사항들에선 의견 대립을 보이지만 그래도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루와 바비도 서로 극과 극의 성향인데 그들의 우정도 평생을 간다. 물론 한쪽이 좀 더 짝사랑하고 있는 듯 보이긴 해도 다른 한 쪽이 내치치 않는 상황에서 이건 분명 평생 가는 관계가 맞는 거다.

 


고등학생이 된 루는 드디어 학교에서 바비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루와 연인 관계였던 사라도 루와 바비의 우정에 끼어들게 된다.

여전히 폭력적인 아버지와 기죽어 있는 어머니, 우글우글 대는 동생들 때문에 가정환경이 복잡했던 바비는 고등학생이 되고 덩치가 커지면서 아버지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남자가 된다. 또다시 어머니를 욕설로 부르거나 임심시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 위협 후에 바비의 가정은 조금은 평화를 찾은 거 같다. 그리고 그 잠시의 느슨한 시간동안 바비는 루와 다시 어울린다. 사실 루의 여자친구 사라를 좋아하는 마음이 컸지만 친구인 루에게 내색을 할 수 없어서 가슴앓이를 한다. 바비를 따뜻하게 맞아 준 것은 친구의 우정뿐만 아니라 친구네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비는 그곳에서 루의 가족과 어울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한편 사라도 가정환경이 결코 평온하지 못 했다. 아버지는 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고 이혼 후 부인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 하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비판적인 시선으로 진실을 보라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소도시 학생들의 보수적이고 편협한 시선을 넓혀주는 수업을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엔 눈감아 버리는 인물이었다.

사라의 어머니는 이혼 후 뉴욕에 혼자 살고 있고 방학 때마다 사라는 어머니한테 간다.

부모의 이혼 후 불안정한 아버지와 살면서 사라는 따뜻한 가정의 온기를 그리워했고 루를 만나서 루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바비가 나타나고부터 사라는 루로 대표되는 가정의 안정감이냐 바비에게 느끼는 열정적인 사랑이냐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미묘한 삼각관계는 마지막 학기 내내 계속 되고 물론 이 관계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루는 마냥 해맑아 보인다. 늘 바비에게 미소로 대답하고 사라에게 다정한 남자친구다.

하지만 사라는 어머니가 있는 뉴욕에 가 있는 동안 단숨에 빈 종이에 바비를 그려낼 정도로 바비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속이 뜨겁다. 바비 또한 사라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반응할 만큼 사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사건은 한번에 찾아온다. 바비가 열정을 이겨내지 못 하고 사라에게 키스한 날 사라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사라는 그 소식을 듣고 따뜻한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자 루를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사라의 선택을 알아차리고 실망한 바비는 머지않아 아주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아버지가 또다시 어머니를 임신 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돌아서 아버지를 찾아가 죽을 만큼 때린 것이다.

결국 바비는 루의 도움으로 고향을 떠난다. 그 이후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자신의 예술가로의 꿈을 펼치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고향에 남은 루와 사라는 결혼을 하고 여전히 그곳에서 60이 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베니스로의 여행 준비를 한창 하고 있던 현재, 루는 자신의 회고록을 쓰고 있다. 루의 부모세대부터 연대기 순으로 써내려가며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자조 하면서.

하지만 루의 회고록에는 그가 차마 쓸 수 없었던 진실들이 있다. 그가 못 쓰는 그 진실들이 루의 잠재의식 깊숙이 박혀서 그를 내내 짓누르고 있었을까? 60살이나 된 지금 어린 시절 괴롭힘 당한 트라우마로 생겼던 발작이 다시 찾아온다. 그것은 사라가 새롭게 그린 베니스에 있는 탄식의 다리그림이 계기가 된다. 그 그림 앞에서 환상을 보며 정신을 놓아 버렸다가 가까스로 깨어난 루. 탄식의 다리는 옛날 죄수들이 감옥에 가기 전에 건넜던 다리였다고 한다. 그 다리를 건너던 죄수들의 비참한 울음소리가 운하를 쩌렁쩌렁 울렸었다고.

루는 환상 속에서 그 탄식의 다리 위에 자신이 서 있는 경험을 한다. 루는 어떤 양심의 가책이 있기에 그 다리 위에 있어야 했을까?

루는 이탈리아 여행이 계획된 후부터 줄곧 불안해했음이 틀림없다. 아내 사라와 베니스에 여행 가면 어쩌면 만나게 될 지도 모를 바비와의 사이가 몹시 불안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라가 바비에게 쓴 편지를 감췄다. 사라의 편지를 감추고 대신 자신이 쓴 편지만 동봉해서 바비에게 보내는 유치한 짓을 했다. 루는 고등학생 때 사라와 바비의 사랑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을 숨기고 4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 오면서 동시에 바비에게 우정의 편지도 계속 보내고 있었다. 루는 대체 어떤 사람인걸까?



루는 아버지 빅 루를 어머니 테사보다 더 닮은 것처럼 보였다. 늘 테사에게 면박을 당했던 아버지에게 더 마음이 갔고 비판적인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세상의 밝은 면만 보려고 했던 착하고 사람 좋았던 아버지. 하지만 빅 루는 흑인 소년이 백인 소년에게 죽을 만큼 맞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흑인 소년이 안타깝긴 하지만 굳이 백인의 구역을 침범해서 화를 자초한 흑인 소년의 행동을 탓하기도 한다. 흑인들과 거리낌 없이 인사하고 지내지만 딱 거기까지 만이다. 그는 사람을 굳이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저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되지 사랑 같이 큰 것을 행할 필요는 없다고. 친절같이 작은 것으로도 우리 모두 잘 지낼 수 있다고. 이런 주장에 테사는 늘 간단하게 반박의 일침을 가한다. “성경에 뭐라고 쓰여 있니?”라고.

모두에게 사람 좋아 보이는 빅 루지만 오히려 빅 루는 자기 가족 외에는 무관심한 사람이다. 바비 가족의 사정을 알고 바비 어머니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은 오히려 늘 비판적이고 현실적인 테사다. 테사는 진심으로 직접 이웃을 돕는 사람이다.

루가 대학에 갔을 때 빅 루는 암 투병을 하다 일찍 죽었는데 젊은 시절엔 그저 아버지가 애틋하기만 했기에 아버지 성향에 대한 진실을 깊게 생각하지 못 했지만 최근에 와서 회고록을 쓰면서 루는 아버지에 대해 좀 더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성향도 많이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루는 흑인 소년의 아버지 가브리엘에게 지금까지 마음을 쓰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아내 사라를 사랑하는 만큼 아내와의 사연을 알고 있으면서도 친구 바비를 평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빅 루처럼 그저 친절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랑 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편지를 감췄고 바비와의 사랑을 4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사라에게 고백하는 루.

사라는 남편의 이 어이없는 고백에 지금 나이가 60살이나 먹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생각한다. 그리고 과연 자신이 바비를 선택하지 않은 이 결혼 생활을 후회 했을까 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와중에 사라는 테사에게 들었던 비밀을 떠올린다.

사라가 가족이라는 평온함이냐 열정적인 사랑이냐를 두고 고민한 만큼 시어머니인 테사도 한때는 똑같은 것으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 테사는 처음에 빅 루의 동생 덱과 사귀었는데 덱은 형과는 정반대되는 성향으로 완전 위험한 남자 과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바이크를 타고 다니면서 속력을 내며 한계까지 밀어 붙이는 유의 사람. 그런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테사는 덱의 바이크 뒤에 타고 가다가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이 남자와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헤어지고 그의 형 빅 루를 사귀게 되었는데 거친 말 한 마디 내뱉지도 못 하고 순하고 착하기만 한 빅 루에게 스릴 있는 사랑을 기대할 순 없지만 안정적인 가정은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빅 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선택에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며느리에게 이 비밀을 털어 놓으며 테사는 사라의 선택에 자신감을 준다.

테사는 자신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라를 몹시 안쓰러워했고 아들과 함께 이 도시에 남아 있기에는 사라의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아들도 사랑하는 어머니였기에 사라가 루를 선택한 것에 고마움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 둘은 모녀지간처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다.

사라의 시점으로 이제 또 많은 이야기가 진행 되는데 이 책 무려 하드커버로 530페이지 정도 페이퍼백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라 사라의 이야기를 하자면 또 이 페이퍼가 한참 길어질 것이라 여기서 이만 줄인다^^

아무튼 그래서 사라는 자신이 선택한 결혼 생활에 후회가 없음을 깨닫게 되고 안정적인 사랑을 주는 루에게 돌아간다.

루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편의점에서 다시 하루를 시작하며 이제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진실을 홀가분하게 털어 버리고 발작이 일어났을 때 보이는 평행 세계 속의 유령들도 마음속에서 지워버린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정신적 스트레스 상태에서 발현 되었던 발작도 사라지게 될 것이란 암시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책 뒤표지에 이렇게 작가님이 웃고 계시다ㅎㅎㅎ) 



 

1949년생인 작가 리처드 루소는 늘 쇠락한 산업 도시라는 비슷한 배경으로 소설을 써내는데 이것은 그가 자란 도시가 바로 그런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뉴욕주의 작은 소도시인, 실제로 한때는 가죽공장이 유명했던 곳이 작가의 고향이고 리처드 루소는 그 가죽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성장했다고 한다. 작가의 소설마다 워킹클래스 인물들의 대화체가 그토록 생생했던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 루가 회고록을 쓰는 와중에 자신의 고향을 훑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 속에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 많이 담겨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루라는 인물이 내성적이고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봐도 어쩌면 작가의 어린 시절도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이 이토록 길어진 이유도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리얼한 경험담 안에서 이야기를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3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 쇠락한 소도시 사람들 이야기, 우정과 사랑 이야기, 예술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내용 요약도 벅찰 만큼 다층적인 이야기라 이 페이퍼가 이렇게 정리가 안 되고 중구난방이다. 어쩔 수 없다. 나의 능력부족인 것을.

그래도 긴 소설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서 뭐라도 써야 하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어쨌든 잘 읽었고 다 읽어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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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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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한 잡지의 편집자이기도 한 1974년생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 열네 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글들은 주로 유명 잡지들에 실렸고 사실에 기반으로 한 기사 형식의 글들이다.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한 현장감이 생생하면서도 보통의 기사 형식의 글들과는 다르게 상황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저자의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이 문장마다 흘러넘치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방식의 글들은 일찍이 미국에서 1960~70년대에 유행했고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과의 차이를 두기위해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실 위에다 소설적인 기법을 덧칠해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맛깔나게 가미해서 통찰을 이끌어 내는 좀 더 문학에 가까운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될까?

 

 

뭐라고 부르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거 같은 정보들이 이 글들 속에 있었고 글감을 다루는 저자의 글 솜씨가 유려해서 읽을 맛이 난다는 점이 아주 좋았다.

거의 백인들만 참석하는 사상 최대의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서 만난 독특한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저자의 형이 락 밴드 연습을 하다가 마이크에 감전을 당해서 죽다 살아난 이야기, 남부 문학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 진 노년의 작가 미스터 라이틀과 20살의 저자가 한때 동거 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 마이클 잭슨과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에 대한 이야기, 켄터키 주에 있는 미국 원주민들의 역사를 가득 품고 있는 수많은 동굴들의 이야기, 초기 블루스 음악을 했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밥 말리의 원년 밴드 멤버인 버니 웨일리를 만나면서 풀어놓는 자메이카의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집을 거액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빌려 준 경험 등등...

거의 모든 주제가 흥미진진했다. 어디 가서 이런 특별한 주제의 글들을 한꺼번에 다 읽어 볼 수 있겠는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책 한권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잡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글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다는 점이 좋았다. 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자의 따뜻한 인격은 이 글들을 쓸 당시 30대 였을 저자의 나이를 생각해 봤을 때 꽤나 예상외의 것이었다. 30대의 젊은 기자의 날카로운 냉소의 시선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해와 연민의 시선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 대한 글은 무신론자의 시선으로 페스티벌을 비판적으로 훑으면서 간간히 유머를 가미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는 그곳에서 자신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3년 동안 복음주의 교회에 푹 빠져서 활동 했다가 빠져 나왔던 경험을 털어 놓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와중에 신을 사랑한다는 그들을 이해한다

액슬 로즈의 어린시절 고향 친구를 인터뷰 할 때 저자는 또 다른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빈부격차가 사람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 하던 어린 시절엔 다함께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는 친구와 아닌 친구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 이후 대학을 가지 않았던 친구들과는 평생을 만날 일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저자의 기억은 고향을 떠나 락 스타가 된 액슬 로즈와 고향에 남아있는 그의 친구의 관계 속에서 소환된다. 어릴 땐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커서 달라진 처지 때문에 영영 볼 일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그 씁쓸함에 대해...

 

 

저자의 글에서는 주제로 떠오르는 사람들, 인터뷰 한 주변인들 누구도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 깎아 내리면서 유머를 던지는 유의 글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리얼리티 출연자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빈정대며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글을 썼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출연자들이 방송 출연을 하지 않을 때 여기저기 파티에 불려 다니며 약간 우스꽝스러운 인플루언서로 사는 삶의 방식도 존중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지 하는 시선.

아 딱 한명 양들의 폭력에 나온 동물학자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건 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물 묘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읽으면 알게 된다. 아무튼 이 양들의 폭력도 거의 소설 읽듯이 참 재밌게 읽었다.

 

 

독특한 주제 아래에서 종교, 대중문화, 역사, 정치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까지 이루어내는 에세이였다. 최근에 몇몇 에세이를 읽었는데 대부분 사적인 경험에 치중한 것들이 많아서 식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취재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문학적인 성취까지 이룬 에세이를 읽다보니 너무나 새로웠고 지적인 호기심도 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재밌게 잘 읽었고 다른 뉴저널리즘 장르의 에세이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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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01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 멋지죠! 전 어느 에세이 읽다가는 울컥해서 울기까지 했다니까요. 앞으로 이 작가 책은 다 읽고 싶어요.

망고 2023-11-01 13:20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미스터 라이틀 읽으며 우셨다고ㅎㅎㅎ전 울진 않았고 정말 글 아름답게 썼다 하고 감탄했어요 저도 이 사람 책 나오면 다 읽고 싶습니당 글을 너무 잘 써요 부럽ㅠㅠ

2023-11-22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2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영범 2023-12-04 0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의 번역잡니다. 상세한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제 페이스북에 가지고 가서 소개해도 될까요?

망고 2023-12-04 09:38   좋아요 4 | URL
앗...이 누추한 글을...ㅋㅋㅋㅋ 가지고 가셔도 되는데 살짝 부끄럽기도 하네요ㅋㅋㅋㅋ 암튼 번역자님 책 너무 잘 읽었습니다.

고영범 2023-12-05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이름으로 되어 있는 페이스북 계정에 전체공개로 올려두었습니다. 시간 나실 때 확인해 보세요.^^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망고 2023-12-05 15:44   좋아요 3 | URL
ㅎㅎ 네^^ 그리고 좋은 책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번역자님 책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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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폭력과 복수의 역사에 휘말려 평생을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폭력은 예상치 못한 곳에 비극의 씨앗을 뿌리고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말해준다. 조용하고 미묘하게 파고드는 트레버식 서술은 역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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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10-24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군요!

망고 2023-10-24 15:36   좋아요 0 | URL
책 도착한 날 밤에 바로 다 읽어버렸어요ㅋㅋㅋㅋ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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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족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각자가 짊어진 슬픔과 고민, 우울이 있다는 이야기. 매우 아름다운 묘사 예민한 감수성 기발한 상상력이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라면 그 예쁜 문장들이 결말로 가는 여정을 빙 둘러가게 한 것은 아닌지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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