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림자 - 삼전도 항복과 조선의 국가정체성 문제
계승범 지음 / 사계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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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가장 큰 외침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두 전쟁 모두 국제 전쟁의 성격을 띠었고 당시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각기 나름의 의의가 있는 전쟁인데 관련해서 많은 연구와 관심이 있는 임진왜란에 비해서 병자호란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 그 까닭은 병자호란은 별 힘도 못 쓰고 전쟁에 지고 치욕적인 항복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전쟁 모두 우리가 처한 지리적 상황 때문에 일어났고 이기던 지던 그 의미를 분석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 백 년 전의 그 상황이 아직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은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여겼던 일본이 국가적인 역량에서 우리와 대등 혹은 넘어섰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쟁이었다면 병자호란은 중국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고정되어 있었나를 새삼 느끼게 하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고정된 시선은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당시를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현재를 대비할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병자호란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로 명과 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조선에서 인조 반정이 일어나 청을 배척하고 명을 따르게 됨으로써 청의 침공을 받아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전쟁이다. 어쩌면 피할 수도 이길 수도 있는 전쟁을 어리석은 인조와 유교론자들에 의해 전쟁에 졌다는 식이다. 그래서 광해군을 좋게 해석하고 인조는 최악의 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만 아는 사실이다. 광해군의 외교 노선은 명을 배척한 것도 청을 배척한 것도 아닌 어찌 보면 중간에서 관망하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애매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것이 인조 정권에 들어와서 확 바뀐 것은 아니다. 좀 더 선명한 친명을 선언하긴 했지만 청에 대한 태도는 유지를 했다. 청에 완전한 반기를 들어서 전쟁을 불러 온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시 상황이 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책은 광해군 때의 상황과 외교 방향 그리고 뒤를 이은 인조 때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된 주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광해군은 명에 대한 사대를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청(당시에는 후금)에 대해 더 우호적이었다. 후금과는 되도록 마찰을 줄이고 명과는 접촉 자체를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광해군의 외교 노선에 조선 신료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광해군 때의 집권 세력인 북인 뿐만 아니라 남인, 서인 할 것 없었다. '양반' 이라면 전부 다 반대했다. 비록 시세를 봐서 후금과 교류는 하지만 오랑캐에 대한 사대는 있을 수 없다는 식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조선의 주된 지배 층이었던 양반들의 명에 대한 관념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조선은 이미 건국 할 때부터 명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조선이라는 국호 자체를 명에서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중국으로부터 왕 책봉을 받아왔고 많은 교류가 있었다. 명이 다른 중국 왕조에 비해서 조선을 많이 착취하지 않았기도 했고 성리학이 보편화 된 당시 조선에서 명은 명백한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 때 명군의 구원으로 더 큰 의리로 묶였다. 재조지은. 거의 망하게 된 나라를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라는 뜻인데 당시 지배층의 마음에 크게 박히게 되었다. 그것이 주자학적인 개념과 연결되어 명은 단순 군신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된다. 바로 군부 즉 황제이자 아버지의 나라가 된 것이다. 이것은 붕당을 초월한 그야말로 이념이었다. 당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자 조선 존재의 근간이었다. 이것은 어떤 논의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고정된 이념이었기에 이것이 기본 정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변화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은 이것을 조선의 국가 정체성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조선은 성리학적인 이념 바탕 위에서 건국을 하였고 주된 지배층인 양반은 유학의 교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 중기 이후로 주자학이 대세가 되면서 너무 교조적인 관념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유학은 이단으로 취급을 했고 대외 정책에서는 명과의 관계가 군신을 넘어서 부자 관계로 격상하고 이것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관념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사상은 획일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나중에 명이 멸망하고 나서도 '소중화' 의식으로 나아가면서 조선 말까지도 이어진다.


사실 만주에서 청이 세력을 키워서 대륙을 정복하는 동안에 조선은 광해군의 나름 실리 있는 정책으로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전쟁을 미룬 것에 불과 했다. 지배층이  명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청을 오랑캐로 여기는 이상 충돌은 불가피했다. 언제까지 그런 상황을 인내할 청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사고를 경직 시키는 유연하지 못한 교조적인 이념이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외교 정책이었던 명과의 사대 교린은 이해할 수가 있지만 무조건적인 명 숭배 의식은 너무나 피곤하게 한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이런 사상은 훗날 우리 현대사에서도 볼 수 있다. 바로 공산당 타령이다. 나랑 생각이 다르면 공산당이라고 숙청하고 죽이고 했던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이때에 공산주의라는 올가미는 일부 사람들에게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저 시절 중국 명이 아니라 미국이 중심이다. 물론 그때의 명의 위상과 지금의 미국의 세계적인 위상은 차이가 있긴 하다. 무조건 미국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전쟁에서 공산화를 막은 구원군으로의 미국에 대한 고마움과 현재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억제 시켜주는 미국의 역할 등은 충분히 미국 편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주위에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대항하려는 중국이 위세 등등하고 조선을 멸망 시켰던 일본도 건재한 데다가 조선 말에 등장한 러시아의 위상은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금의 우리가 옛 조선은 아니고 국력도 그때보다 훨씬 세졌지만 주위 나라들이 모두 초강대국이기에 사안에 따라 협력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는 복잡한 상황에 있다. 이 상황에 친미, 친중, 친일, 친러 로만 흐른다면 나라의 앞길은 험난할 것이다. 통일 한국이 아니라 여전히 위협적인 북한과도 대치한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세밀하면서도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미국은 우리의 최고 우방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그들의 이익으로 움직인다. 미국과 완전 대등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우리의 목소리도 높일 필요가 있는데 친미가 외교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조선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정체성으로 전쟁을 겪었어도 교조화 된 관념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분단과 전쟁, 독재의 세월을 보내느라 민주주의 학습이 축적되지 못했고 국가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조선 시대 못지 않은 고정된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다. 분명한 것은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보다 지금의 한국이 더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그때 조선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갖고 온 것 인가를 면밀히 살펴야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병자호란의 전후 사정과 당시 지배층의 정체성을 알아봄으로써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더불어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을 남긴다. 좀 더 세상을 넓게 보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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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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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일수록 여름에 읽으면 좋다. 사실 좋은 책은 계절을 가리진 않지만 이 장르가 특히 여름에 좋은 이유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큰 몰입감으로 더위 자체를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다면 그 뒤 내용이 궁금해서 더워도 참고 읽어 내려 갈 수 있다. 그러나 완성도가 미흡한 작품은 평소보다 더 욕을 먹는다. 안 그래도 더운데 이 따위를 읽으니 더 짜증 난다고.


적어도 이 책은 그런 짜증은 나지 않을 만큼 탄탄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단 이런 스타일의 기법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읽어야 한다. 우리가 제일 많이 경험한 스릴러는 보통 액션이나 추적 이런 것이 나오는 내용이 많다. 폭력적인 장면이 어느 정도 나오고 반전 장치도 여럿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동적인 내용이 아닌 심적인 내용의 스릴러다. 이른바 심리 스릴러. 어떤 상황이 있는데 그것을 쭉 비춰 주는게 아니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조정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속에서 스릴을 느끼게 하는 장르다.


이 책의 지은이인 B.A 팰리스는 특히 이런 심리 스릴러에 특화된 작가다. 여러 작품을 썼는데 비슷한 부분이 거의 없이 사람의 심리를 치밀하게 서술하면서 내용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큰 액션이 없는데도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글 솜씨가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의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주인공인 캐시는 기억력에 조금 불편이 있지만 생활에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여성이다. 어느 날 폭우가 쏟아 지는 밤에 집에 가기 위해서 평소 때 가던 길이 아닌 지름길로 차를 몰아 간다. 거기는 집으로 가는 최단 길이긴 해도 차도 잘 안 다니고 전화도 잘 안 터져서 평소 남편으로부터 그 길을 가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 날은 비도 오고 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나머지 그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지름길로 차를 몰던 캐시는 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차에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 어떤 도움을 바라는 것인지 그냥 서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고 그 일 자체를 잊어 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차에 탄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캐시는 엄청난 죄책감에 빠진다. 내가 목격자이지만 그때 내가 돌아 봤다면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큰 자책을 하게 된다. 이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평소에 기억력이 조금 떨어졌는데 점점 더 기억력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계속 아무 말 없는 전화가 계속 온다. 그 살인범이다! 내가 목격자인 것을 알고 나까지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이제 캐시에게는 삶 자체가 공포다. 게다가 기억력이 말썽을 부리니 결국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이미 자신의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지 않았던가. 그녀가 하는 말은 남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을 잃게 만든다. 이제 살인범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치매로 죽을 판이다. 캐시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


살인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없고 주인공에게 어떤 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말 없는 전화가 걸려오긴 하지만 기분 나쁜 것 말고는 딱히 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내 기억력의 문제가 사건과 연결되면서 캐시의 상황이 악화로 치 닫는 것이다. 보통 같으면 여기서 결말은 캐시의 완패로 끝나겠지만 지은이는 여러 복선을 깔아 놓고 몇 가지 상황을 통해 반전을 꾀한다. 진실은 생각도 못한 곳에 있었다.


처음 책 도입부는 크게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릴러의 일반적인 전개 방식인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행동이 나오고 그것이 하나의 시발점이 되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하지만 내용을 전개 시키는 가장 큰 매개는 '심리' 다. 주인공 캐시가 느끼는 여러 공포, 걱정, 두려움이 이야기를 힘 있게 이끌어 간다. 이 심리의 전개에 우리는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짜증 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책을 읽는다. 그 자체에 이미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내용이 많은 보통의 스릴러도 재미 있지만 동적인 것이 별로 없이 사람의 심리가 중심이 되어서 내용이 전개가 되는 이런 심리 스틸러도 충분히 스릴감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기 때문에 한번에 읽는 것이 낫다. 그래야 서서히 고조되는 스릴감이 탁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라도 잊게 하는 책이어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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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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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류는 '집'을 가지고 그 집안에서 많은 것을 영위하면서 살아간다. 이른바 정주 생활인 것이다. 그러나 초기 인류도 그렇게 안착하는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초기 인류는 처음에는 태어난 곳을 중심으로 살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살았다. 그 이유는 점점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처럼 몇 명이 살 때는 먹는 것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지고 환경도 바뀌면서 더 나은 곳을 향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인간의 역사도 확장해 나간 것이다.


이 책 제목 '노마드'는 보통 일정한 주거지를 가지지 않고 물과 식량을 충족시키는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집을 실제로 가지고 있던 없던 상관없이 삶의 한 형태가 그런 것이다. 방랑자라고 하기도 하고 집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상당히 뜻하는 범위가 넓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착'이 아니라 '이동'에 방점이 찍힌다.


초기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서 이동했다. 책에서는 '수렵채집인' 이라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딱 맞는 말이다. 수렵과 채집이 주된 일이었고 점차 인구가 늘어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소유욕도 커지고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정착하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역사는 정주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떠돌아 다니는 삶은 기록이 잘 없다. 말 그대로 언제 어떻게 돌아다닐지 모르기에 정확한 기록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노마드 즉, 유목민의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알기 어려웠던 반쪽의 역사인 유목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사실 인간이 이룩한 수 많은 찬란한 역사는 정주 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졌고 또 그것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유물이나 유적 같은 것은 결국 그 자리에서 살아가기에 보존도 되고 기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유목의 삶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기에 크고 화려한 유적도 없고 기록도 세심하지 않다. 그저 그런 것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러한 희미한 흔적을 찾아서 우리에게 노마드의 삶이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총 3개의 장으로 나누는데 1장에서는 초기의 유목민과 수렵 채집 생활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2장에서는 그런 유목민이 만든 거대 제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3장에서는 점차 커져 가는 정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정착민들의 눈을 통한 유목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초기 인류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던 기원전 1만 년 전으로 올라간다. 그 옛날에는 우미 모두가 수렵 채집인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것은 오랫 동안 이어진 삶의 방식이었고 그것을 멈춘 것은 인간의 연표에서 점 하나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책에서는 거의 최초의 수렵 채집인의 흔적이라고 할 '괴테클리 테페'를 소개하고 있다. 이곳은 배불뚝이 언덕으로 조그만 골짜기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완만하게 굴곡진 구릉지에 원뿔형 꼭대기 2개가 겹쳐 있는데 어찌보면 무덤 같기도 해서 이미 오래 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곳이 고고학적으로 아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유적지로 밝혀진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여기에서 '부싯돌'의 존재가 알려졌고 이것이 큰 돌을 깎는 도구로 사용이 된 것이다. 책에서는 그 이후 밝혀진 고고학적 이야기와 다른 지역에서의 유목 유적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이런 유목민이 세운 거대한 제국에 대한 이야기다. 신석기 시대에 이미 농업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점차 발달하면서 단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면서 이동하던 유목민이 정주 생활을 하는 정착민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지만 그 발달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기동성과 강인함으로 무장한 유목민의 능력이 정점에 다다랐고 그것이 합쳐 져서 큰 제국을 이루게 되었으니 바로 몽골과 티무르 제국이다. 사실 몽골 제국은 인류 역사상 최대 판도를 이루었고 명실상부하게 동서양을 아우른 최대이자 최초인 마지막 대제국이다. 인류가 멸망 할 때까지 몽골 제국 같은 존재는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 몽골이 어떻게 발전을 하게 되고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면서 아직도 있는 몽골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사실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준다. 몽골의 뒤를 잇는 티무르 제국이 있지만 유목민이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 몽골 제국이었다. 


3장은 점차 고착되는 정주 생활과 축소되는 유목 생활의 역사를 다방면에서 이야기 한다. 몽골 제국 이후에 나타난 여러 유목 국가들과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고 큰 발전을 이루게 되는 정주 국가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낭만이 되어 가고 있는 유목에 대한 감상적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은 전체적으로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잊고 있었던 우리 안의 유목 DNA 를 일깨우는 내용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국내던 외국이던 여행을 가고 있는데 그렇게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유목의 유전 인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돈과 시간의 문제이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이동'하려는 마음이 있고 이것은 정주 생활을 하면서 잊혀 졌던 수렵 채집 하던 그 옛날 선조들의 마음인 것이다. '노마드'는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잊혀졌던 유목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넓게 한다. 


덧, 책 자체가 쉬운 편은 아니고 관련 지식이 조금 있어야 이해하기 좋긴 한데 중간 중간 보이는 직역투의 문장이 이해를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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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머신 - 바다는 어떻게 세계를 만들고 생명과 에너지를 지배하는가
헬렌 체르스키 저자, 김주희 역자, 남성현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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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우주 탐사를 하면서 가장 많은 기대와 궁금증을 갖는 항목 중의 하나가 '생명체'의 존재일 것이다.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어떤 선까지 있을 수 있을지 많은 기대를 한다. 그런데 그런 생명체가 존재하는 근거의 첫 조건은 '물'이 있나 없나 이다.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전제가 물의 유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이 중요하다.


우리 지구를 봐도 탄생 이후 무한하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생명체가 태어난 곳은 물 속 이었다. 거기부터 조금씩 진화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 그때의 물 속은 어디였을까. 바로 바다다. 지구의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했고 인류는 그 바다에서 나서 바다의 혜택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바다는 지구의 생명체에게 삶의 원천이자 기반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바다가 어떻게 세계를 만들고 생명과 에너지를 지배하는 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 하는 책이다. 바다가 이토록 중요한데 우리는 바다에 대해서 사실 잘 모른다. 그저 바다 낚시나 해수욕 같은 레저 활동에 관심이 있을 뿐 근본적인 바다의 본질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다를 그만큼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바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지 그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바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바다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기술의 발달로 튼튼한 배를 만들고 멀리 항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바다가 인간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는 사실 너무나 엄청나서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바다가 인간과 생명체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막대하기에 연구와 관찰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책은 첫 장에서 바다의 본질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바다는 거대한 에너지의 저장고이면서 발전소다. 책 제목이 '블루 머신' 이라고 한 것은 적절하다. 이 엄청난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가지 에너지가 지구라는 기계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바다의 온도를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따뜻한 바다와 찬 바다의 온도 차에서 일어나는 막대한 에너지는 여러 방향으로 분출하는데 그 하나가 한류와 난류다. 이 다른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페루 멸치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한류에 사는 페루 멸치는 수 백 만 마리이고 이와 관련한 정교한 먹이 사슬이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바다의 에너지 순환을 말해주는 것이다. 책에서는 페루 멸치의 생존과 활동 메커니즘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편 페루 멸치는 인간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은 페루 멸치를 즐겨 먹지 않지만 인간이 즐겨 먹는 돼지의 중요한 단백질이 되고 있다. 돼지는 풀만 먹는 소에 비해 단백질을 필수적으로 공급해야 생산량이 늘 수 있다. 그러나 돼지 농장에 공급할 단백질은 한계가 있었고 여기에 페루 멸치를 이용한 어분 생산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 어분 생산 산업이 결국 돼지나 닭의 생산을 늘리게 되었고 이것은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했다. 하지만 지나친 남획은 결국 끝이 보이는 법. 페루 멸치의 어획량 감소는 어분 공급의 중단으로 이어지고 돼지 생산량의 감소로 베이컨 가격이 폭등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페루 멸치가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알게 되었지만 바다가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날씨다. 한류와 난류의 이동에 따라서 엄청난 날씨의 변화를 보이고 이것은 인류에게 큰 보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바다에 저장된 에너지가 대기에 영향을 끼쳐서 날씨를 움직이는데 여름에는 태풍 같은 재해를 일으키기도 하고 겨울에는 강추위로 삶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책은 이런 식으로 바다가 지구 생태계에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를 여러 방향에서 고찰하고 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결국 이 지구라는 행성을 움직이고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바다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바다 엔진이 어떻게 작용하고 다양한 요소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 지를 이해하게 한다. 이 푸른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구와 인간을 보는 관점을 바꾸게 한다. 바다에 대한 무관심과 무식을 관심과 이해로 돌려서 정말 중요하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바다는 중요하다고 말은 한다. 역사에서도 바다를 제패한 나라가 세계를 제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다를 얼만큼 인식하고 있는지 바다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바다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인식 시키고 세상을 보는 눈을 지구 전체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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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
앤디 돕슨 지음, 정미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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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인간은 물론 지구의 많은 생물이 진화에 의해서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면서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진화라는 것이 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불완전하게 더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답을 하는 책인데 결론을 말하면 진화는 모든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계속 머물러 있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른 부분이 나아가는데 어느 부분이 나아가지 않는 다면 그것은 진화가 아니라 퇴보일 것이다. 책에서는 불완전한 진화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 책 제목처럼 고래는 물에서 숨을 쉬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허파로 호흡하고 새끼를 낫는데 대부분 육상 동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별 생각 없이 고래가 포유류라고 배우고 익혔다. 왜 그런가 하는 물음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고래가 과거에는 육상에서도 살았기에 포유류였지만 이제는 주 생활 근거지가 바다인 만큼 어류와 같이 진화가 되었어야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어류의 습성을 가진다고 해도 이 부분은 그대로 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진화라는 부분에서 고래는 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나름의 진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고래가 완전히 바다로 들어갔을 때는 물에 익숙하지 않아서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아가미를 발달 시키지 못했기에 좀 더 편안한 호흡 방법이 지금같이 중간 중간 바다 위로 올라와서 호흡을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바다에서 사는 생물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지만 그래도 바다에서 못 사는 것 보다는 낫기에 불완전하지만 나름의 진화라면 진화라고 하겠다. 


가젤은 많은 육식 동물의 사냥감이다. 그 중에서 특히 치타가 가장 큰 적이다. 치타는 가젤 못지 않게 빨리 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타의 가젤 사냥 성공률은 반도 안된다. 대부분 굶다가 어쩌다 한 마리 잡아서 또 며칠을 견디는 식이다. 여기 서도 불완전한 진화를 보게 된다. 치타가 살기 위해서 더 나은 달리기의 진화를 이룬다면 가젤 또한 살기 위해서 더 빠르게 달리는 진화를 이루는 것이다. 어느 진화가 더 빠르고 강한가. 치타는 자신보다 더 강한 육식 동물로부터 도망을 쳐야 하는데 그렇다고 달리기가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상대적인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이런 식으로 여러 각도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진화와는 결이 다른 진화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데 후반부에 나오는 유전자에서 지구 생물의 진화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잡는 듯 하다. 즉 각 개체가 살아가고 진화를 하는 것은 유전자 보전을 위한 것. 유전자를 잘 보호하고 후대에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 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일 유전자가 유전되는데 큰 무리가 없다면 큰 진화도 없다는 것이고 어떤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넘기 위해서 유전이 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유전자가 있을 수만 있다면 굳이 오랫동안 살 필요도, 영원히 살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책은 진화라는 것이 다양하고도 복잡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꼭 좋은 쪽으로 발달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려주고 있다. 때로는 가만 있기도 하고 때로는 후퇴하기도 하면서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연의 진화 모습이고 이것은 어떤 계획성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은 다양한 진화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기이한 진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종'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하게 한다. 


책 내용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알았던 진화를 더 넓게 보게 한다. 인간과 진화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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