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워터 레인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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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일수록 여름에 읽으면 좋다. 사실 좋은 책은 계절을 가리진 않지만 이 장르가 특히 여름에 좋은 이유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큰 몰입감으로 더위 자체를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다면 그 뒤 내용이 궁금해서 더워도 참고 읽어 내려 갈 수 있다. 그러나 완성도가 미흡한 작품은 평소보다 더 욕을 먹는다. 안 그래도 더운데 이 따위를 읽으니 더 짜증 난다고.


적어도 이 책은 그런 짜증은 나지 않을 만큼 탄탄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단 이런 스타일의 기법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읽어야 한다. 우리가 제일 많이 경험한 스릴러는 보통 액션이나 추적 이런 것이 나오는 내용이 많다. 폭력적인 장면이 어느 정도 나오고 반전 장치도 여럿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동적인 내용이 아닌 심적인 내용의 스릴러다. 이른바 심리 스릴러. 어떤 상황이 있는데 그것을 쭉 비춰 주는게 아니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조정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속에서 스릴을 느끼게 하는 장르다.


이 책의 지은이인 B.A 팰리스는 특히 이런 심리 스릴러에 특화된 작가다. 여러 작품을 썼는데 비슷한 부분이 거의 없이 사람의 심리를 치밀하게 서술하면서 내용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큰 액션이 없는데도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글 솜씨가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의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주인공인 캐시는 기억력에 조금 불편이 있지만 생활에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여성이다. 어느 날 폭우가 쏟아 지는 밤에 집에 가기 위해서 평소 때 가던 길이 아닌 지름길로 차를 몰아 간다. 거기는 집으로 가는 최단 길이긴 해도 차도 잘 안 다니고 전화도 잘 안 터져서 평소 남편으로부터 그 길을 가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 날은 비도 오고 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나머지 그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지름길로 차를 몰던 캐시는 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차에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 어떤 도움을 바라는 것인지 그냥 서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고 그 일 자체를 잊어 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차에 탄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캐시는 엄청난 죄책감에 빠진다. 내가 목격자이지만 그때 내가 돌아 봤다면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큰 자책을 하게 된다. 이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평소에 기억력이 조금 떨어졌는데 점점 더 기억력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계속 아무 말 없는 전화가 계속 온다. 그 살인범이다! 내가 목격자인 것을 알고 나까지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이제 캐시에게는 삶 자체가 공포다. 게다가 기억력이 말썽을 부리니 결국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이미 자신의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지 않았던가. 그녀가 하는 말은 남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을 잃게 만든다. 이제 살인범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치매로 죽을 판이다. 캐시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


살인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없고 주인공에게 어떤 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말 없는 전화가 걸려오긴 하지만 기분 나쁜 것 말고는 딱히 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내 기억력의 문제가 사건과 연결되면서 캐시의 상황이 악화로 치 닫는 것이다. 보통 같으면 여기서 결말은 캐시의 완패로 끝나겠지만 지은이는 여러 복선을 깔아 놓고 몇 가지 상황을 통해 반전을 꾀한다. 진실은 생각도 못한 곳에 있었다.


처음 책 도입부는 크게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릴러의 일반적인 전개 방식인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행동이 나오고 그것이 하나의 시발점이 되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하지만 내용을 전개 시키는 가장 큰 매개는 '심리' 다. 주인공 캐시가 느끼는 여러 공포, 걱정, 두려움이 이야기를 힘 있게 이끌어 간다. 이 심리의 전개에 우리는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짜증 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책을 읽는다. 그 자체에 이미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내용이 많은 보통의 스릴러도 재미 있지만 동적인 것이 별로 없이 사람의 심리가 중심이 되어서 내용이 전개가 되는 이런 심리 스틸러도 충분히 스릴감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기 때문에 한번에 읽는 것이 낫다. 그래야 서서히 고조되는 스릴감이 탁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라도 잊게 하는 책이어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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