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를 읽는 밤 - ‘빵과 서커스’의 시대에서 ‘빵과 잠’의 시대를 넘어, 파란만장한 서양의 일상 연대기
정기문 지음 / 북피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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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역사는 복잡한 인과 관계와 함께 여러 인물과 여러 사건이 뒤엉키다 보니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그 자체가 '이야기 덩어리'다. 우리가 재미있게 듣는 옛날 이야기가 따지고 보면 역사다. 역사의 양이 워낙 방대해서 제일 중요한 정치사를 주로 말하다 보니 재미가 없는 것이지 실제로는 재미있는 부분이 참 많다. 이 책의 지은이는 그런 면에서 역사의 이면에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엮어내서 '이것도 역사다'라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옛 선조가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하나의 역사인 것이다. 


사실 딱 정해진 정치사를 제외한 여러 역사의 이야기들은 잘못 알려진 것도 많고 짧게 왜곡되어 전해진 것도 많다. 그런 면에서 진실을 알려주는 이 책의 이야기는 귀하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여러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맞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있지만 편견을 가지고 잘 못 알려진 사실들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첫 장에서 지은이는 '크산티페' 를 나름 변명한다. 크산티페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부인으로 악처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런데 크산티페가 진정 악처인가? 어쩌면 평범한 사람인데 아주 유명한 남편으로 인해 억울한 소문이 돈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보통 알려진 사실을 깨준다. 악법도 법이라면서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가 사실은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고 약한 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일을 키운 정황이 있다.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인 소크라테스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고 부인이 생계를 책임졌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나중에 소크라테스가 죽자 진정으로 슬퍼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제 악처라고 부르면 안되겠다.


악한 황제의 대명사라고 할 수도 있는 '네로' 황제는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악행을 저지르는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다. 그런데 사실 그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작은 것을 부풀리고 왜곡하고 조작하는 것이 많긴 한데 네로가 알고 봤더니 로마 대화재때 이재민을 위해 헌신했고 재산도 아끼지 않았으며 나름 현명한 통치자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네로에 대해서는 안 좋은 기록이 더 많아서 그렇긴 한데 그를 보면서 역사란 것이늘 진실이지는 않기에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기독교에 대한 글들은 종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인류를 위해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인간들. 예수처럼 관리의 핍박을 받아서 죽으면 천당 간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던 자발적인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믿었던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한편 기독교 세계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은 공공연하게 자식을 두었고 누구나 다 알지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교황이 그러니 밑으로 교계 인물들도 부패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중에 종교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책은 재미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능력을 가져서 역사적 사실들을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있다. 이들이 작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도 결국 역사적으로 큰 일들에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나 하나 쌓여서 결국 역사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 작은 역사들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은 몰라도 결국 과거가 현재를 바꾸게 될 것이다. 부담없이 그냥 이야기책 보듯 읽을 수 있는 책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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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수라와 궁궐 요리사 그리고 조선의 정치
김진섭 지음 / 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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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조선 시대 왕의 밥상을 수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밥을 하는 공간을 수랏간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왕의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인 의미를 띄는 경우가 많았다. 평범한 백성이야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 먹었지만 왕에게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의 밥상과 그것을 요리한 궁궐 요리사의 존재를 통해서 조선 역사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조선 시대 왕의 밥은 절대권력자의 음식 치고는 크게 화려하지 않았다. 물론 특별한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는 풍성하게 차려냈지만 매일 매일 먹는 왕의 밥상은 화려하고 사치스럽기보다는 영양가 있고 균형 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사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건국한 나라이고 멸망하기 전까지 근검과 절약을 강조했었는데 왕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일반 백성의 밥상 보다는 좋았겠지만 왕의 수라상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검소한 밥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절제된 모습을 왕이 솔선수범 함으로써 국가의 정치적인 이념을 보였던 것이다. 왕이 이렇게 먹는데 일반 사대부들이 더 화려하게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고 왕에서부터 가장 말단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먹는 것에 대한 조절을 하게 했다.


이런 조선 건국 이념이었기에 왕은 대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담박한 밥상으로 식사를 했는데 어떨 때는 그조차도 더 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철선, 감선, 소선이라고 불렀던 왕의 밥상은 왕 스스로의 근신으로 기근이나 홍수 등 나라에 큰 재앙이 발생했을 때 왕의 하늘의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철선은 아예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고 감선의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고 소선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이중에서 극단적인 철선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고 감선을 주로 했는데 실제 어려운 상황에서 감선을 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표시로 감선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최고통치자의 건강 문제는 1급 비밀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데 왕정 시대인 그때는 그야말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밥을 안 먹거나 덜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건강에 큰 해를 미치기에 왕권을 강화하거나 신하들을 통제할 수단으로 하기도 했다. 일종의 기싸움인데 왕의 옥체에 해가 될까봐 신하들은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이렇게 왕의 밥상과 관련해서 먹는 행위의 이면에 벌어진 여러가지 역사적 의미를 잘 살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의외로 이 먹는 것과 관련해서 정치적인 의미가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먼저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실 요리사인 이인수를 중추원의 관리로 임명한 이야기를 한다. 중추원은 군사와 왕명 출납의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관청이었는데 이런 중요한 곳에 요리사라니. 당연히 상소가 올라왔지만 태조는 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인수가 비록 무장은 아니었지만 고려말부터 태조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부대 전체의 요리를 책임진 책임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조선이 건국되면서 군사 제도상 먹는 부분을 이인수에게 책임지우기 위해 단순한 궁중요리사가 아닌 중추원 관리로 임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인수는 조선 최초의 공식 궁궐 요리사라고 부를 수 있다.


감선을 가장 많이 한 왕은 영조다. 제일 오래 왕위에 있었으니 감선도 제일 많이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밥 먹는 걸로 신하들을 통제하려했던 것이 더 크다. 즉 다양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감선을 행한 것이다. 천둥과 번개로 정릉의 회목이 벼락을 맞게 되자 자신의 부족함을 빌미로 감선을 했지만 사실은 주위 신하들에게 정신차리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탕평 같은 자신의 말을 잘 안 듣는 관리들을 질책하기 위해서 감선 하기도 했다. 영조는 감선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키고 절약하고 검소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밥상 정치를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밖에 책에서는 당연히 왕의 목숨과 관련된 음식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또 수라에 독을 타서 왕을 죽이려고 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리는 남성보다 여성이 잘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적어도 궁중에서는 남성 요리사가 대세였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봉건 사회와도 관련이 있어서 여성이 국가의 공적 업무에 진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라의 일이 엄청 고되어서 체력적으로도 여성보다 남성이 유리한 탓도 있다.


사실 역사에는 음식을 통한 독살이 제법 있었다. 그만큼 매일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조선에는 그런 시도도 적었고 실제로 성공한 일도 없다. 몇몇 왕이 독살 당했다는 소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만큼 왕의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 행위일 수 있고 실제로 감선 등을 이용해 정치력을 펼치기도 했다는 점에서 왕의 밥상은 단순히 왕이 밥 먹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은 왕의 밥상을 통해서 드러난 여러 역사적 사실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새삼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왕의 밥상과 수라 등 평소 눈 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에서 사실을 캐내어서 역사를 보는 눈을 넓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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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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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기억력을 좋게 하는 것이다. 살면서 기억이 흐릿하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에 빠진 적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기억력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실 기억력이 좋으면 공부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분명히 좋은 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기억을 좋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왜 기억하는가' 에 대한 생각은 잘 안 하는 것 같다. 이것은 이 책의 지은이가 주장하는 핵심인데 '왜 기억하는가'를 생각한다면 기억에 관한 제대로 된 개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살면서 왜 기억하는지에 대한 개념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기억력이 나빠지지 않을까 고민 했지 기억하는 기본 개념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왜 기억하는가' 에 대한 지은이의 말은 발상의 전환을 하게 하는 좋은 질문 같다.


책에서도 나오듯이 어떤 기억은 오래 지속되고 어떤 기억은 금방 잊어 버린다. 잊어 버린 기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도 있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고만 좀 잊어버렸으면 할 때가 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잊었으면 하는 기억을 떠올리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서 괴로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기억은 기본적으로 선택적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보고 겪은 모든 일들을 하나 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다. 그 만큼의 뇌 용량이 안 되어서 그럴 것이다. 이때 선택과 집중을 하는데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이 '맥락'과 '도식' 이라는 틀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의 기억을 '덩어리 째'로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공감각 적으로 하는데 예를 들어 경찰에서 수면 요법으로 기억을 불러오려고 할 때 주위 환경을 상세하게 묻는 경우가 있다. 이때 어떤 사물까지 구체적으로 떠올리는데 이것은 우리가 상황을 덩어리로 기억하기에 그 공간을 다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필요에 의해 기억할 뿐 늘 우리가 기억하지는 않는다.


요컨데 우리의 뇌는 기억을 하는 것이 1차 목적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 1차 목적이다. 수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데 그것을 다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뇌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는데 뇌의 작용이 우리의 의지와는 또 다르기 때문에 기억의 부재로 불편할 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봐도 똑 같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는 같은 상황을 보는데 어떻게 기억이 다를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의 뇌가 각각 갖고 있는 경험과 기억에 따라서 매번 정보를 새롭게 재구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상상을 할 때와 기억을 할 때 활성화 되는 뇌 부위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기억 속에 상상이 섞여 들어가서 비슷하지만 다른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기억 자체도 왜곡되고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기억을 다 믿으면 안 된다. 


사실 과거의 내 기억 중에서 안 좋은 기억을 나중에는 좋게 포장해서 기억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좋은 것일 수 있는 게 그 기억으로 내가 삶을 괴로워하기 보다 좋은 쪽으로 왜곡해서 기억한다면 삶을 더 긍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는 이것이 인류가 살아 남기 위해 진화

시킨 적극적인 생존 방식이라고 하는데 설득력이 있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적절하게 변형 시키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아무튼 기억력이 좋은 것은 살면서 좋은 점이 많다. 시시콜콜 기억하는 것이 어떤 작업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고 내가 살아가는데 이익이 된다. 그렇다면 더 기억을 잘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호기심'을 가진 인간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사실 인류가 문명을 발달 시키고 지금까지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것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더 좋은 것 인가에 대한 호기심, 더 잘 살기 위한 호기심 등등 더 많이 머리를 쓰는 행위 자체가 기억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도 더 많은 시간을 머리 쓰는 행위에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자꾸 보고 또 보고 하니까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 와중에 문제를 풀면서 답을 맞춰가는 그 행위 자체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기억이 좋아야 하고 어른이 되어 살면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기억이 좋아야 한다면 노인이 되어서는 치매나 뇌질환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억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서 치매가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에 관한 생각은 어떻게 하면 더 기억력 좋게 하는가에 대해서 이 책은 '왜 기억하는가' 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전개라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처럼 내가 기억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책은 사실 쉽지 않다. 초반부의 과학적인 설명이 조금 어려운데 그 부분을 지나면 지은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방향을 느낄 수가 있다. 조금 천천히 되새기면서 읽어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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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일기장 - 백문백답으로 읽는 인간 다산과 천주교에 얽힌 속내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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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 대왕과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큰 위인이다. 그의 호인 '다산'은 여러 지역이나 단체에서 쓰일 정도로 정약용이라는 인물은 많이 알려져 있다. 진정한 천재급 위인으로 여러 분야에 걸쳐서 수준급 이상의 능력을 가졌었다. 저작물도 많은데 '목민심서' 가 대표적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알려진 명저인데 그만큼 속의 내용이 시대를 관통하는 진정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다산이 태어나서 자랐던 시기가 조선의 국운이 서서히 지고 있었던 때라는 것이다. 조선의 문물이 흥성 했던 세종 때라면 더 큰 활약을 했을 것이나 그가 전성기였던 정조 시기는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라고는 하나 왕조의 모순이 점점 극대화되는 시기였고 영-정조 개인의 능력으로 왕조의 수명을 늘여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런 시기에는 한번 실수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정조의 신임을 받던 그가 하나의 문제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바로 천주교 문제다.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특이하게도 실학자들에 의해 종교가 아니라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되면서 도입이 되어 신자가 되는 구조였는데 그것이 주로 남인 학자들에게 일어났다. 다만 천주교는 당시 조선에서 금기시되는 사상이었고 비교적 온건적으로 대했던 정조 시대라고 해도 천주교를 믿는 다는 것 자체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런 천주교를 정약용이 믿었던 것이다. 잘나가던 젊은 신료에게 공개적으로 천주교를 믿는 다는 것은 단순히 벼슬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까지 걸 사안이었다. 


이 책은 천주교를 믿는 문제로 위기에 봉착한 다산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제목처럼 다산이 쓴 일기에서 속 마음을 낚아 채어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해석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내용이 깊다. 일단 다산이 쓴 일기는 사실을 위주로 적어서 직접적인 감상을 나타내는 부분이 적다. 즉 자신의 속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산의 일기는 혼자만 보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쓴 것 같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그 행간에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넌지시 알리는 식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글에서 주관적인 내용을 찾아야 하는데 지은이가 그 세밀한 작업을 통해서 다산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다산의 일기 중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 부분에서 당시 다산의 상황과 시대상을 해석하고 있다. 시대상으로는 정조 후반기 1795년에 해당된다. 이때 천주교 즉 서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금정찰방으로 좌천되면서 쓴 것이 금정일록이다. 사실 아무리 정조라고 해도 나라가 엄금하는 서학을 신봉하는 다산을 두둔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완전히 내치지는 않고 작은 외직에 두면서 공을 세우면 중앙으로 불러들이려고 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금정일록인데 여기 일기에서 단순하게 찰방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님을 이야기 한다. 


사실 찰방은 역참을 관리 감독하는 임무지 누구를 쫓고 하는 관리는 아니다. 그런데 다산은 금정에서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다는 천주교 지도자 이존창을 검거하고 중간 리더인 김복성까지 검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산이 서학을 버리고 정학(성리학) 으로 돌아섰다는 명분을 줄려고 정조가 기획한 것이고 다산은 잘 따랐던 것이다. 책에서는 여러 상황을 통해서 이런 것이 잘 흘러갔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로 무마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성호 이익이 남긴 저서를 정리하는 강학회를 열기도 했고 퇴계 이황의 편지를 읽고 감상문을 쓴 '도산사숙록' 까지 썼다. 이 모든 것은 다산을 중앙으로 불러들이려는 정조의 배려이기도 했지만 실제 다산의 의지가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다산이 천주교를 믿었지만 배교했다고 하긴 어렵다. 이제 서학을 버리고 정학으로 돌아왔다는 모습을 보이긴 했고 그 뒤로 천주교와 관련된 행동이나 말은 없었다곤 하지만 속까지 믿음을 저버렸진 않았을 것 같다. 다산은 중앙 정치계에서 자신의 포부를 펼치고자 한 야망을 버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드러내 놓고 배교자의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다. 그저 겉으로 다시 서학 추종의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관직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은 여러 일기를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고 다산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책이나 드라마 등 많은 매체에서 다산을 은근히 다정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서 사실 그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었는데 확실한 것은 그가 여러 분야에서 상당히 박식하고 똑똑하고 활동력도 있었지만 성격 자체는 직선적이면서 강팍한 면도 있었고 일기의 내용과 배치를 봤을 때 교활한 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것에 원한을 두고 오랫동안 남을 비판한 것도 있는 것을 보면 대인의 면모가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위대한 정약용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와 똑 같은 면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는 그런 다산의 다양한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능력 있는 신하를 잘 쓰고자 여러모로 안배를 했던 정조와 그런 정조 곁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다산과의 인연은 1800년을 끝으로 끝나고 만다. 1795년 금정찰방으로 내렸다가 금방 조정으로 복귀할 것 같았던 다산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몇 년 후에나 정조의 가까이에 안착하게 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승하로 끝내 다시 복귀하지 못한다. 정조 승하 몇 년 전 그 중요한 시기에 다산 정약용이라는 출중한 능력의 인물이 잘 쓰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만일 다산이 일찍 중앙으로 복귀했다면 정조 사후 조선이 급격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책은 참 잘 쓰였다. 정약용 연구의 전문가인 정민 교수가 딱딱하고 객관적인 일기를 여러 기록과 대조하고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비교 분석해서 그때의 모습을 잘 복원하고 있다. 다산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그리고 정조와 그 시대가 어떠했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는 역작이다. 이 책을 통해 다산 정약용의 진면목을 입체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기에 정약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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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
곽재식 지음 / 구픽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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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장르의 글들을 많이 써온 독특한 사람이다. 고등 학교 때는 중국어를 익혔다니 인문과 과학이 결합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과학자란 특성으로 SF와 관련된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진정한 실력은 정말 글 쓰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이 몇 년에 한 번 책을 낸다면 곽작가는 금세 책을 뚝딱 만들어낸다. 솔직히 그가 쓴 책들 중에서 '명작'이라고 부를만한 책은 없다. 하지만 졸작도 없다. 전체적으로 수준작을 꾸준히 펴내는데 그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없는 능력이다.


무엇보다 곽작가 글의 가장 큰 미덕은 쉽게 잘 읽힌다는 것이다.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심심하다고 여길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쓴다. 외국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직업을 택해도 잘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도 아니고 나름 곱씹을 이야기꺼리가 많다. 가끔 TV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재미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남들은 별 것 아니고 넘어가는 것에서 생각 못한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아이디어 뱅크라고 해야 하나. 창의력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의 글쓰기 능력을 잘 발휘한 내용이다. 이른바 '엽편 모음집'. 엽편은 아주 짧은 글을 말하는데 보통 단편보다 짧은 글들이다. 읽어 보니 기존에 알고 있던 엽편 보다는 좀 긴 것 같지만 나름 완결까지 무리 없이 잘 쓰여진 글들이다. 사실 장편보다 단편이 글을 쓰기 어렵다. 짦은 분량 이내에 기승전결을 다 넣으려면 적당하게 내용을 안배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잘못하면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그런 면에서 여기 실린 작품들은 어느 정도 완성도가 괜찮은 글들을 모은 것 같다.


표제작인 '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를 보면 해장국에서 외계인을 연상시킨 것이 참 창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 어디서 해장국 먹다가 문득 생각 난 것 같다. 긴 장편도 아니니 부담 없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짧은 글로 만든 것 같은데 제일 인상적인 작품이다. 내용이 그렇게 흘러갈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역시 난 상상력이 부족한가 하는 느낌도 들게 했다.


'인공지능 때문에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는 인공지능에 관한 기존의 생각들에서 벗어난 작품인데 역시 생각 못했던 내용이다. 이미 많은 영화나 소설에 나왔던 고도로 발달한 기계에 의한 인류 멸망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방향을 돌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책 내용대로 인공지능에 빠진 인류보다는 인류보다 진화한 인공지능에 의한 지구 멸망이 더 그럴싸한 것 같다. 


총 13개의 작품이 있는데 엽편모음집 이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금방 읽을 수 있다. 짧게 시작해서 짧게 끝나기 때문에 하나하나 논평하기도 힘들지만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참 생각이 다양하고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 눈여겨 두지 않는 것들에서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낸다. 그래서 곽재식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며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깝게 느끼는 대상을 소재로 쓰기에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생각의 신선함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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