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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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집의 서재를 장식했던 책들중에서 기억나는것은 단연 세계문학전집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던 여러 문학전집들. 나중에 커서 그 면면들을 보고 참 대단한 작품들이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전집류는 거의 대부분 유명한 장편들을 위주로 실었고 직접 번역보다는 일본의 역서를 다시 번역한 중역인 경우도 많았었다.

이제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요즘에는 새로운 기획과 번역으로 문학전집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 좀더 독특하고 참신한 기획의 세계문학전집이 나왔다. 바로 창비에서나온 창비세계문학이다. 이 시리즈가 좀더 좋게 보이는것은 접하기 쉽지 않은 단편을 모은 전집이라는것이다. 보통 장편전집이 많은데 이 시리즈는 단편에다가 국내에 거의 소개가 되지 않은 초역인 작품을 많이 실은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이 책은 독일의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독일하면 어쩐지 무겁고 장중하고 깊이있는 내용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읽어본 몇몇 독일 장편 문학의 느낌이 그랬기 때문일것이다. 아마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이 주로 그래서일꺼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책들은 그런 선입관을 날려버린다. 아무래도 단편이라는 형식이라서 좀더 무거운 내용이 나오긴 힘들겠지만 여러가지 스타일의 다양한 작품들이 독일문학의 모습을 알수있게 해준다.

처음에 실린 작품은 괴테의 '정직한 법관'이라는 이야기다. 파우스트로 유명한 이 작가의 단편이라서 그런지 뭔가 어두울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렇지는 않고 쉽게 재미나게 잘 읽힌 이야기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생각할꺼리를 던져준 작품이었다. 파우스트에서 나오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한 고민을 여기서도 엿볼수있는 기회였다.

두번째인 '기발한 페르머'는 우리가 잘아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작가 요한 루드비히 티크의 작품이다. 그 동화의 작가답게 특이하면서도 유머스러운 느낌이 든다. 결말이 좀 허무하게 끝난게 특징이라면 특징.

세번째 작품인 '주워온 자식'은 '정직한 법관'의 패러디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해설에 맞게 기본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정직한 법관은 결국 이성을 찾은 결과였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로 인간 본연의 욕망이 이긴 내용이었다. 결말부분에 반전이 있을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유사한 소재의 이야기를 많이 본 탓인거 같았다.

이밖에도 표제작인 '어느 사랑의 실험'도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생체실험과 관련된 내용으로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만 나올수있는 주제였다. 읽기에 따라서 끔찍하게도 읽힐수 있는 내용으로 독일이라는 나라의 상흔을 읽을수 있었다.

전체 17편의 단편이 담겨있는데 모든 작품이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읽혔다. 원래 단편을 좋아하다가 단편을 읽을 기회가 없어서 장편만 읽었는터라 아주 흡족하게 읽었다. 다만 장편의 긴 호흡으로 읽는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편의 짧은 분량에 미흡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뭔가 재미가 있을려는 찰라에 끝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단편은 장편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뜻을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보다 짧은 호흡으로 읽어야 참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책 끝에는 옮긴이의 해설이 아주 상세하게 긴 분량으로 실려있다. 아무래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들이 많은터라 한작품 한작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옮긴이의 설명을 붙여놨다. 처음에 별 의미없이 읽었던 이야기도 옮긴이의 해설을 읽어보면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일일이 해설을 단 옮긴이의 수고가 엿보인다. 다만 너무 큰 의미를 찾아낼려고 하면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하겠다. 그냥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면 되는것이기에 맨 마지막의 해설은 책을 다 읽고 읽어봐도 되고 아니면 읽지 않는것도 낫겠다. 필요없는 선입관을 갖지 않게 하는 면에서.

좋은 기획의 시리즈란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의 작품들은 어떨까. 평소에 보기 힘든 동유럽의 작품들도 있어서 기대가 된다. 얼른 다른 시리즈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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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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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래서 역사상의 기록은 그 앞뒤와 배경을 잘 분석해서 해석해야 제대로된 역사를 바라볼수 있다.
기록에만 의지하면서 글의 여백을 잘 읽지 못하면 결국 역사왜곡이 되는것이다. 당대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일이나 사람이 나중에 그 진실성이 인정되어서 새롭게 주목받기도 하고, 과거엔 영웅으로 받들여졌던 사람이 이제는 그 이면의 나쁜면이 알려져서 추락하는 사례도 많다.
뭐 멀리 볼꺼있는가. 우리 현대사에도 그런 사람이 수두룩하니깐.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기록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뒤집어보는 시도는 그 자체가 가치가 있다고 할것이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이때까지 알고 있던 조선의 영웅들에 대해서 과연 진짜 영웅인지 진짜 좋은 인물인지에 대해서 반기를 든 책이다.
결론적으로는 그 시도는 참 좋았으나 내용상 그리 설득적이진 않은 점도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대표적인 조선의 의적인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에 대해서 그는 의적이 아니라 그냥 보통 도적에 불과했다고 하고 있다.그런데 사실 이들은 역사상에 그리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들은 아니고 이들을 살린 사람은 소설을 쓴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씀으로써 그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것이다.
이들이 의적이기보단 단순한 도적에 불과했다는 지은이의 주장이 크게 틀린것은 아니다. 어떤 시대적인 사상을 가지고 시대를 변혁시킬려고 한것이 아니란것 맞다.

그런데 이 책들이 지어진 시대적인 배경은 그것과 좀 다르다. 홍길동을 지은 허균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서 전란후의 혼란한 세상에 왕조를 뒤엎고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사람이다. 그리고 임꺽정과 장길산을 쓴 작가는 각각 일제시대와 독재시대라는 시대적인 배경을 깔고 시작했다. 따라서 그들이 내세우고자 하는 사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단 은연중에 드러나게 책을 쓰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사실 이 작가들이 주인공으로 삼은 이들은 그리 실제적인것이 중요한것이 아닐것이다.
시대를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선택된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들의 의적 여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지원에 대한 주장은 그럴수도 있다고 보았다. 박지원에 대한 여러 일화가 있긴 하지만 그는 그의 가문이 기본적으로 당시의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이었고 어떤 한계를 보인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실학자 전체를 시대에 한계를 보이는 사람들로 주장한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실학과 실학자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과연 근대적인 사상가였는지 아니면 당시 양반층의 재정립을 위한 방편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근대적인 사상으로 발전할수도 있는 생각을 가진 실학자들도 많았다는 글을 읽은터라 좀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몇가지 사실을 적시하긴 했으나 좀더 깊게 다루지 못하는 면이 있어서 아쉬웠다.

책 내용중에서 유일하게 고개를 끄덕인 부분은 대원군에 대한 부분이다. 그가 백성을 위해서 집권한것이 아니라 왕권강화를 위해서 집권한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맞다. 다만 그 주장은 벌써 수십년전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도실린 내용이라서 우리가 정말 잘못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하기는 좀 약하지 않나 싶다. 물론 그동안 드라마에서 백성을 위하는 대원군의 모습이 나와서 그게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긴 있을것이다.

좋은 기획에 시도 자체는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중간중간에 역사상의 개념도 정리해주고 해서 나름 읽을만했다.
하지만 제목에 비해서 그리 쇼킹할만한 내용은 없었고 그 주장에 대해서 아주 설득적인 부분이 적었던것은 아쉬움이라고 하겠다.
그래도 역사를 이렇게도 볼수가 있다는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지은이의 주장은 학계에서도 논재아고 있는 부분이기에 역사를 보는 눈을 넗힌다는 면에서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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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천사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1-1 추락천사 1
로렌 케이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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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어떻게보면 참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소재다.  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야 살수 있고 햇빛을 피해 밤에만 활동하지만 그덕에 영원의 삶을 사는 생명체. 그외에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여러가지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존재이기에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해서 많은 작품들이 있어왔다. 요 몇년사이 뱀파이어가 나온 어떤 책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뱀파이어가 주된 주인공인 책들이 많은 차에 이번에 새롭게 추락천사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피를 빨아먹는다는 설정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드라큘라나 뱀파이어 영화는 잘 보지도 않는다. 대신 책은 읽는데 그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 사실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중에서 원작이 있는 영화는 그 원작의 맛과 멋을 잘 살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차라리 책을 읽는게 낫다고 여길지도.

각설하고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책은 그야말로 최신판이다. 2009년 12월에 현지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니 번역의 기간을 생각하면 참 빠르게 우리나라에 나온셈이다. 일단 표지가 참 인상적이고 세련되게 잘 나왔다.음울하면서도 뭔가 아름다움이 있는듯한. 일단 눈길을 끈다.  
이제 내용을 봐야할 차례. 단순한 뱀파이어가 아니네? 추락천사란다. 천사긴 한데 지상으로 추락한 천사. 그럼 천사랑 뱀파이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주인공은 열일곱할 소녀 루스. 그녀가 '감화원'이란곳에 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감화원은 학교긴 한데 좀 특수한 학교다. 무언가 문제가 좀 있는 아이들이 모인 일종의 합숙 소? 좋게 말해 합숙소지 감옥이다 감옥. 마음대로 행동할수도 없고 외부와의 연결도 거의 할수없는곳. 이 한숨나오는 곳에 루스가 간 것이다. 하지만 거기도 사람이 사는곳.
루스는 곧 친해질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들도 뭔가 일이 있었던 아이들. 그녀와 친하게 지내게되는  동성친구들 이외에 두명의 남자가 루스의 눈길을 끌게 된다.
바로 다니엘과 캠. 그중에서 다니엘은 전생에 만났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루스의 마음을 뒤 흔들고 캠은 그런 루스의 주위를 맴돈다. 과연 그들은 무슨 관계일까.
그리고 그 음울하고 어두운 감화원에선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까.

피 철철 흐르는 하드코어류 뱀파이어물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로맨스판타지뱀파이어'류라고나 할까. 뱀파이어가 주인공이긴 해도 기본적으론 로맨스 즉 '사랑'이 중심이다.
거기에서 모든것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일어날꺼 같다. 배경이 보통 마을이 아닌 '감화원'이란것도 특이하다. 여기에 추락한 천사들에게 대체 어떤일이 일어날까가 포인트긴 하다.

그런데 아쉽다. 이미 최근에 인기를 끈 다른 뱀파이어 소설의 여주인공이랑 루스랑 비슷하기 때문이다. 바로 꽃미남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들...사실 요즘 유명한 그 소설의 여주인공이 참 짜증나게 해서 책읽다가 덮어버린 적도 있는데 이 책의 루스도 은근히 한숨 나오게 한다. 원래 이 나이또래 여자애들이 이런가? 하긴 이런류의 소설에 찬사를 보내는 층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더 많은걸 보면 뭔가 여성들에게 공감이 가는게 있는 모양이긴하다.
이야기는 느릿하게 전개되서 뭔가가 일어날꺼 같은 순간에 1부가 끝난다. 전체가 4부로 이루어진 시리즈라고 하니 뒷부분에서 좀더 재미난 상황이 연출되려나.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으로는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하는 장치는 잘 설정된거 같지 않았다. 좀더 떡밥을 뿌렸어야 하는데.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는 별로 안 본다고 했지만 이책은 영상으로 꾸미면 더 나을꺼란 생각도 든다. 뭔가 어두우면서도 회색빛도는 분위기는 글로서는 한계가 있으니깐.
2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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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트 -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척 팔라닉 지음, 황보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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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어렵나? 글쎄.
처음에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했던 것이다. 책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그 독특한 형식에 책이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은 탓이다.
이런 책이 다 있나 싶을정도로 솔직히 처음엔 거부감이 든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뜻을 나타내기 위한 지은이의 색다른 시도일터. 지은이가 누군가. 컬트적인 글 쓰기로 유명한 '척 팔라닉' 아닌가. 그래서 계속 읽어봤다. 그랬더니 어렵다에서 어렵나?로 바뀌더라. 그런데 어렵지 않다고 여겼다가도 또 어려운거 같은게 참 아리송하다고 해야하나.

이 책은 '구술전기'라는 참으로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특이한 내용의 독창적인 책을 잘 쓰는 척 팔라닉이 이번엔 참 묘한 형식으로 독자들을 아리송하게 하는듯하다. 전기이긴 전기인데 구술전기라. 바로 주인공인 '랜트'를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랜트를 입체적으로 묘사하려고 하는 형식. 그런데 랜트를 말하는 사람들도 쉽지 않는게 시간순으로 말하는것도 아니고 자신이 겪은 '인상'을 중심으로 말하기때문에 과연 랜트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기가 그리 쉽지도 않다. 

가장 확실하게 아는건 랜트가 '죽었다'는 사실. 그는 작은 시골에 살다가 큰 도시로 나가서 자동차사고로 죽는다. 이른바 자동차 충돌 파티때문에. 자동차 충돌 파티란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거기에 따른 복장을 하거나 자동차를 꾸며서 서로 '박치기'하는 것. 랜트는 이런 놀이(?)를 즐기는 '자동차 충돌 파티족'이다. 그래서 그 주위 사람들이 랜트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모은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사람들은 또 희안한게 주간생활자와 야간생활자로 나누어서 생활한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낮에, 그리고 주간생활자에 해가 되는 사람들은 밤에 생활한다. 당연히 이 야간생활자들은 낮에 활동할수 없다. 이들은 정부에 의해 통행금지로 엄격히 구분이 된다. 밤중에 차 박치기를 했던 랜트는 당연히 야간생활자랑 친하다. 아니 그 자신이 야간생활자라고 할수있을것이다. 그런데 이 야간생활자들에 의해서 큰 병이 퍼지게 된다. 바로 '광견병'. 그리고 그 광견병을 퍼트린 '숙주'로 랜트가 지목된다. 그는 과연 광견변을 퍼트리고 죽었는가? 아니면 누구 말대로 시간여행을 통해서 죽지 않고 어디로 가 버렸나?  

주인공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랜트를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책. 이들의 이야기도 어찌보면 뒤죽박죽이라서 한 사람을 오롯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랜트의 실존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한다. 야간생활자의 삶을 대변하기 위해서 랜트라는 허구의 존재를 만들어낸것은 아닐까.  

책 읽는 내내 책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가 했다. 책 진도가 안 나가서 덮을려고 하면 뭔가 신선한것으로 다시 이어지게 하고. 아마 이게 척 팔라닉의 글 쓰는 매력일까. 이번 책은 그의 전작들중에서 비교해봐도 가장 특이하고 독창적인 책이라 할만하다. 전기라는 장르가 없는것도 아니고 인터뷰형식의 다큐멘터리성 글쓰기가 없는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닌가. 이런 형식의 소설이 전에 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처음 접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인정할껀 인정해야하겠는것이 지은이 참, 똑똑하다란 사실. 참으로 기발하고 특이한 발상을 잘한다고밖에 말 못하겠다. 어떤 사유과정을 거쳤기에 이런 글을 쓰는지 궁금해졌다는. 

지은의의 다른 작품도 읽었지만 이번 작품은 그리 쉽게 읽지는 못했다. 다른 책을 읽을때 비해서 배나 시간도 걸렸고. 척 팔라닉의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형식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꺼 같다. 분명한건 이 작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여행이 되겠지만 은근히 묘한 끌림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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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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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인구많기로는 1,2위를 다투는 나라가 중국과 인도이다. 지금은 중국이 더 많지만 머지않아 인도가 더 많아질꺼라고 한다. 그만큼 대국이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비해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불교의 발상지이고 많은 철학적인 가르침이 가득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는 이 나라 인도가 실상은 피폐하고 잔인한 신분제의 굴레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타지묘할 마당이 그토록 아름답다고 해도 거기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것을 안다면 그 아름다운 환상은 깨지고 말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신분제의 굴레에서 살아가면서 더 나은 삶으로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실제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은 4명. 인도 봄베이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마넥과 그의 어머니의 동창생인 디나, 그리고 디나밑에서 일을 하는 이시바와 옴프라카시 이렇게 4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도라는 나라에서 살아가기에는 불리한 출신이라는  것이다.
마넥은 수많은 종족이 있는 인도에서도 소수민족에 속하는 파리시족이고 디나는 '여성'이다. 그리고 이시바와 옴프라카시는 카스트 제도의 가장 낮은 신분에도 들어가지 않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의 신분이다.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게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란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것인가 하는것을. 거기에다가 이시바와 옴은 아예 인간으로 인정 받지도 않는, '동물'로 까지 천대받는 신분이다.

사실 공식- 비공식적인 신분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상은 새로운 신분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다. 바로 빈부의 차에 의한 신분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신분이 올라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능력과 관계없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것은 어찌보면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태어날때부터 아예 윗쪽으로 올라갈 수 조차 없다는것은 얼마나 억울한 것일까. 얼마나 암울하고 슬픈 처지일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희망을 가질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희망과 절망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역설한다. 이들이 바라는 희망은 부자가 되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최소한 인간으로 대접 받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삶을 살수 있게 되는것이다. 참으로 소박한 희망이지 않는가. 하지만 절망의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죽어라고 노력해도 그 작은 희망이 실현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그래도 결국 균형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산술적인 균형이 아닌 희망과 절망의 정서적인 균형을 뜻하는것일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희망을 잃지말라는 뜻을 이들의 삶을 통해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건 아닐까.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참 마음 아픈 내용에 가슴이 먹먹해진것도 있지만 일단 900쪽에 이르는 긴분량탓도 있다. 추리소설처럼 쉽게 읽히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이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책을 끝까지 들게 한것은 지은이의 글쓰기에 대한 무게가 그만큼 큰 것이기 때문일것이다. 철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딴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재미가 아주 있다고는 할수없겠으나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이야기라고 할수도 있어서 끝까지 읽을수 밖에 없었다.

며칠 걸려서 읽었는데 그 여운은 또 며칠갈것같다.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의 희망이 있다는 말, 몇번이고 곱씹고 있다. 진짜 그럴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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