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과 간 길, 갈림길의 순간, 우리가 여행과 교육과일과 육아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를 둘러싼불확실성, 무능한 천사,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다 만들어진점심을 앞에 두고 앉은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없는 곳이 없다는생각이 든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 P125
그런 이야기는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의미를 만든다. 의미를 만드는 과정은 각기 다른 속도, 다른 리듬에 맞춰 진행된다. 나는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의미와 같은 시공간에 머물지만 그것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그런마음 상태를 찾아 또다시 길을 나선다. 무엇이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알아낼 수 있는 곳, 그것을 한 번 또는 다시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 P130
여기 괴로워할 새로운 기회들이 등장했다. 데이비드가 다른길을 갔다고 해도 그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더라도 여전히 밤마다 구슬픈 음악 소리를 들었을 수 있다. "만약 ~했더라면"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철학자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이 반사실적 문장이라고 부르는것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그 선택이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그 선택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 P132
플롯에서 시간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각 분리된 별도의단위가 된다. 살지 않은 삶은 사건이라는 개념의 토대가 되고, 더나아가 극적 요소가 된다. 흐르는 시간에서 한 지점이 선택된다. 마치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듯이. 우리의 문화적 관습도 이를 돕는다. 문화적 관습은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 순간들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데이비드처럼 우리는 결혼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필립라킨은 이런 믿음은 조롱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P136
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것이 내가 여러 길 중 하나를 따라내려가면서 느끼는 단독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살지 않은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런 단독성과 여러 길이 존재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일 것이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이 삶을 되돌릴 수 없고 나라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답은 개인적이지만, 또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나그네가 선택한 길은 앞서 그 길을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으로 뒤덮인, 누군가가 이미 지나간 길이었다. - P159
근대의 시장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먹이고 키웠다면 그런 살지 않은 삶이 휘두르는 힘이 10년 주기로 바뀌는 이유는 특정 역사적·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더 적확히 말하자면, 변화하는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내가 연구하는 살지 않은 삶의이야기 형식의 끊임없는 변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 힘도 달라진다. 깊은 내면을 소유한 자아는 자신의 특별함과 평범함을 동시에 자각하고 있으므로 성찰과 비교를 통해 좁은 일방통행로를 걸어내려 가면서 실현되지 않은 것들과 대면할 준비가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자아는 왜 특정 순간에 스스로를 이런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걸까? - P162
역사가들은 근대적인 전문직 사회가 19세기에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전의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와 달리 전문직 사회는 전문화된 직업들로 구성된다. 개인의 성공 사다리는 물려받은 재산이나 축적된 자본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교육으로 좌우된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문직 종사자가 사회의 주류 계층이 되었다. 스스로를 직업인 또는 잠재적 직업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점점 더늘어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런 전문직들에는 엄격한 경계가생겼다. 역사가 해럴드 퍼킨Harold Perkin 이 "울타리 전략"이라는심심한 명칭을 붙인 이 현상은 대개 지원자들을 탈락시키기 위한 시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상적으로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야하지만 현실에서 전문직은 배타적이다. - P162
살지 않은 삶의 탄생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 다만 길 대신사다리가 주어지고 길을 걷는 대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사다리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사다리는 포기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택하면 의사나 은행원은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올라간다. 물론 지금 사다리를 다른 사다리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아주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 또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고정한 채 한발 한 발 사다리를 오르고,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 - P163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력을 유독 자극하는 직업이 있다. 앞서 작가와 영화감독이 그런 직업이라고 말했는데, 법조인도 그중하나다.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여러 대안을 제시해 의뢰인에 대한 기소 주장에 의심의 여지를 부여한다. 내 의뢰인이이런 행동을 했고,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가능성들도 있다는 식이다. 예컨대 내 의뢰인은 그 시각 다른곳에 있었다거나 범죄에 사용된 무기가 다른 것이었다거나 더 그럴듯한 범행동기를 지닌 다른 용의자가 있다거나…. 찰스 디킨스가 살지 않은 삶에 집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자신의 소설에 변호사를 그토록 자주 등장시킨 것도 이해가 된다. 『위대한유산』에서 재거스 씨는 소설이 한창일때법정에 등장해 자신의의뢰인들을 위해 다른 과거들을 상상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발휘한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 P164
그런 선택지들은 하나같이 좋은 미래를 약속한다. 당신은 각 선택지가 어떤 미래를 약속하는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하는 동안 덫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의 상상 속 대안들은 당신이 살지 않은 과거가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미래의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갈림길 앞에 선 당신이 각길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후회로 이어지는 길이 생겨난다. 이런 의미에서 직업은 천직과 다르다. 천직은 사명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본질을보여준다. 다른 천직을 원하는 것은 단순히 당신의 삶을 바꾸고싶은 것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은 사명이 아니다. 일의 근대적인 분류에 따른 하나의 유형일 뿐이다. - P165
결혼은 어떤 면에서는 직업이다. 직업처럼 왼쪽 길과 오른쪽길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결혼은 직업보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더 절박한 고민을 낳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우리가누구인지에 결혼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취하는 양식에 결혼이 훨씬 더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직업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극적인 형태로 결혼은 배타적이다. 한 사람과 결혼하면 다른 많은 사람과결혼할 수 없게 된다. 직업을 끝낼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극적인 형태로 결혼을 끝내려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전에도 법적으로 이혼이 허용되었다. 다만 실제로 이혼하기는 불가능했다.) 직업처럼 결혼도 아주 먼 미래까지 이어진다. 게다가단순히 은퇴할 때까지가 아니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이어진다. 만약 이혼하거나 별거하거나 서서히 사랑이 식는 등우리가 갈라서게 되면, 단독성이 더욱 강하게 휘몰아치면서 되돌아오기도 한다. - P171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얘기지만, 이따금씩 아주 비참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내가 내 인생을 망쳤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이요. 누구나 그럴 때면 다른 삶에 대해, 내 것일 수도 있었을 더 나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저 같은 경우에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함께였다면 살았을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 P178
결혼의 불가역성과 배타성이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결혼이 특히 자주 등장하는 데는 더 흥미롭고, 더 아픈 이유가 있다. 성경과 기독교 문화는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것은 당신이 더는 다른 사람과 분리된 한 사람이 아니라 배우자와 하나가 된 사람, ‘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는 부부의 삶을 두 사람의 삶이 아니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가 된 사람의 삶으로 취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결혼생활의 실패(그리고 결혼하는 데 실패하는 것도 실패라고 믿는다면 미혼)는 독신의 삶을 더 볼품없는 것, 더 불행한 구속으로 만든다. "그 누구도 다른누군가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애덤 필립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에 최대한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당신이 결혼하기를 원하고, 결혼할 수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 P179
살지 않은 삶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했다. 눈에 띄는 변화도 있고, 확실하지 않은 변화도 있다. 그래서 살지 않은 삶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하기는 어렵다.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조건도 지난 50년간, 때로는 그 변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만큼 빠르게 변했다. 우리는 역사가 과거로 우리에게 멀어지면서 보내는 음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1963년과 이 소설이 발표된 1997년 사이에 조건들이 급격히 변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도 계속 변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쓰는 지금부터 당신이 이 책을읽는 순간까지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런데도 프루가 들려준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로 이해된다. - P182
결혼, 직업, 자녀 양육을 둘러싼 조건의 변화가 지난 몇십년 동안 집중되면서 이런경험들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 그것도특히 여성에게 직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엄마들은 아이가없는 직장 여성, 경력을 포기한 엄마들, 아이 양육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남자 동료들을 곁눈질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일을 그만두었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은 여전히 일을하는 주변의 여성들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아이가없는 여자들은 아이가 있는 여자들을 곁눈질한다. 정답인 길은없는 듯하다. 모든 좋은 길은 나머지 길을 배제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매기 넬슨 Maggie Nelson 이 말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동시에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 그녀가 쓴 모든 문장은, 내가 읽는 그녀의 모든 문장은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암묵적으로 전달한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바로 내려놓기인 듯하다. (넬슨의 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책을 한 줄로 요약했다고 느꼈다.) - P186
글쓰기(화자의 글쓰기와 존슨의 글쓰기)는 운 좋은 소수만이경험할 수 있는 그런 양가감정을 담기에 안성맞춤인 그릇이다. 그가 만난 대다수 흑인은 여자건 남자건 그런 장자의 권리를 애초에 부여받지 못했다. - P188
우리의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 자녀, 형제자매로 인해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이 특별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몸이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인 동시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이 되면 우리는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단독성에서 벗어나 둘이 된다. 이런 점에서 가족은 결혼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성경이펼치는 고집스러운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들은 모든 사랑노래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는, 우리가 낳은 자녀, 우리가 낳지 않은 자녀, 우리가 낳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자녀는 은유와 직설의 경계가 늘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 P190
지금 나는 진부하거나 기발한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닌 주제에 대해 전문가를 자처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흔히 시인들이 고통스러운 압박감을 느낄 때면 우리가 겪는 혼란을기록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체화된 정체성에 대한 사실들, 우리의 삶. 임신 · 무덤의 시작과 끝, 그리고그 사이를 채우는 모든 복잡한 순간들에 우리가 겪는 당혹스러움을 기록한다. 나는 언어가 이런 혼란의 경험을 전달하기에 적합한매개체라는 그들의 믿음을 충실히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P211
초반에 나는 우리의 단독성이 우리의 필멸성과 별개의 관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독성은 그 자체의 차별화된 사유, 차별화된 정서를 지닌다. 물론 단독성과 필멸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단독성에 대한 생각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삶이 끝난다는 사실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수록 현재의 당신은 과거의 살지 않은 삶들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은 당신자신의 죽음보다는 다른 이들의 죽음을 곱씹게 만든다. 다른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것, 요컨대 죽음이 아닌 계속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 P213
내가 누구인지 발견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면 어디서 그를 찾을수 있을까? 친구? 동료? 부모, 배우자, 자녀? 친척? 죽은 자? 나의거리를 재기 위해 나는 얼마나 멀리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나방의 죽음 The Death of a Moth」은 버지니아울프의 대표적인 에세이 중 하나다. 이 에세이는 다섯 단락으로 구성된 엘레지다. 울프는 9월 어느 아침 나방과 죽음에 대해 노래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구체성과 묵직한 추상성 두 가지를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조심스럽게 다룬다. 울프는 서재 창문틀에서 나방을 발견한다. 창문 너머로는 서식스의 들판이 펼쳐져 있다. 울프의 눈길을 끈 것은 나방이 내뿜는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가 떼까마귀와밭 가는 농부, 말, 그리고 심지어 메마른 구릉까지 깨우는 것 같았다." 나방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든 것과 하나다. "나방을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의 거대한 에너지로 만들어진, 아주 가늘지만정제된 섬유 하나가 나방의 여리고 자그마한 몸에 꿰인 것 같았다. 나방은 자주 유리창을 가로질렀고, 그때마다 나는 생명의 빛줄기 한 가닥이 내 눈에 보이는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나방은거의 온전한 생명이었다." 나방은 날개를 퍼덕이다 추락한다. 다시 날아오르지만 또 추락해 창틀에 떨어진다. - P218
나방이 어려움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방은 더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다리를 버둥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나방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자 연 - P218
필을 내밀었지만, 그때 문득 그런 헛된 몸짓과 서툰 동작은죽음이 가까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필을 도로 내려놓았다.
울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들판은 이제 고요하다. 오후가 되자 일손들이 멈췄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개울로 떠났다.
말들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은 여전히 그대로거기에 있었다. 무심하게, 무정하게, 그 무엇도 딱히 보살피지 않은 채 바깥에서 한 덩어리로 모여 있었다. 어쩌면 그힘은 자그마한 누런 나방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최후에 맞서는 그 작디작은 다리들의 놀라운 투쟁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최후는마음만 먹는다면 도시 하나를 통째로, 아니 도시 하나뿐아니라 인류 전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 무엇도 죽음 앞에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 P219
울프는 이 세상의 거대한 에너지가 짓누르는 연약한 몸을, 가느다란 실과도 같은 한 생명의 투쟁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그녀는 무능한 수호천사다. 능숙하게 기록을 남기는 수호천사다. "나방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모든 가능한 삶에 생각이 미치면 나방의 소박한 행위를 연민의 눈으로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울프의, 당신의, 우리의 운명도 나방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다. - P219
나는 말과 글이 드러내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말과 글이 감추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요컨대 나는 내가 말과 글로 인해 어떤 책임을 얼마나 지게 될지 완벽하게 알 수 없다. - P221
아예 시작하지 않거나 끝을 맺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시작하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불가능해졌고, 끝을 맺지 않음으로써 얻는 위안은 그새 시들해졌다. 이제 이책의 결함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 P247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때로는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로 느껴진다. 나는 단 한 사람으로, 단 하나의 인생을 살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는 이런 단독성이 분리됨으로 다가온다. 나는 다른 사람, 다른인생과 분리된 한 사람이다. - P247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되짚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경로 중에서 하나의 길을 따라왔고, 되돌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 특별하고 평범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것들을 늘 곱씹고 있는 것은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 그런데 유독 이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경험들이 있다. 진로, 결혼, 임신, 육아, 죽음, 형제자매, 생존 등. 이런 경험은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형성되기 때문에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을 더 강하게 이끌어내는 시대와 문화가 존재한다. 평생직장의 쇠퇴,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피임의 보편화, 낙태의 합법화, 대리모와 입양 증가,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에 대한 지식 확장, 동성 결혼의 합법화, 트랜스젠더의 음지탈출,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성인 인구증가,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그로 인한 타인과의 비교 심화. 이런모든 조건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다른 역사적 논리에 따라 변했지만 이런 맥락들이 한데 모여 현재 우리 주변에 가득한, 살지 않은 삶들을 만들어냈다. - P248
일찍이 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과장된 시, 체념의철학을 노래한 시라고 말했다. 속죄』는 허구적 진실을 충실하게이행하면서 모든 것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이라는 먼 세계, 강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됭케르크 철수 작전, 정교한 자기기만에 빠진 아이, 그 아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끝없는 죄책감, 기발한 속임수임이 드러난 소설 자체 브리오니가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들로 고립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갈망으로 말라 죽는 것 또한 가능하다. 「가지 않은 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시이면서도 가벼운 시인 것이다. 그런 가벼운 극한을 사는 것은 어떤느낌일까? - P249
그러나 오늘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잿빛 하늘을 바라보면서, 싸늘한 냉기를 느끼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제 날씨가 훨씬 더 좋았는데. 경이, 즐거움, 슬픔, 화, 두려움, 기쁨, 짜증, 절망, 비애, 분노, 사랑.…. 이런 감정은 즉각적이고 순수하다. 그런 감정은 그 자체로곧장 내 안을 파고든다. 그러나 후회와 안도는 그렇지 않다. 후회와 안도의 사촌인미련, 아쉬움, 애도, 남의 불행함에 대한 고소함이나 쾌감, 연민, 질투, 억울함, 그리고 먼 친척인 자만과 예찬은 그렇지 않다. 이런 감정도 즉각적으로 내 안으로 들어와 퍼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다. - P250
우리는 이를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이 특별하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 하루 24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겠는가?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한 발 물러서서 자신과 자신이 저지른 삶을 탐구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있다. 그것도 모래 더미를 오르느라 사투를 벌이는 개미를바라보는 구경꾼처럼 무심한 경이로움으로 자신이 자신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 없이도 말이다.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본 광경은 엄숙하면서도익살맞다‘ - P253
그때 (어젯밤 러셀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하늘의 산을 본다. 거대한 구름들을, 그리고 페르시아 위에 뜬 달을. 나는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압도적이고 놀라운 감각에휩싸인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아름다움은 아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그런 것이다. 충만한 것. 완성된 것 - P271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분리된, 완성되고 충만한 무언가에 대한 감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경험도 바뀐다. "지구 위를 걷는내 자신의 기묘함에 대한 감각도 거기 있다. 저기 위에 뜬 달과, 저 산 구름들과 함께 러셀 광장을 종종 걸어가는 기이한 인간의위치에 대한 감각도" 이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내 기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아주 강렬하게 묘사한 글이다. 울프는 단순한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경이와 기묘함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그런 것이다." 다른 세계는 멀어지고 이 세계만 남는다. 울프의 머리 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달만 남는다. 높은 곳에서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다. 그저 이 이상한 지구에서서 올려다본 풍경이다. 그런데도 그 자체로 충분한, 충만한, 완성된 이런 순간들에도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완벽하게 떨쳐낼 수는 없다. 울프는 인간의 변덕스러움으로 만족과 갈망을 함께 붙들고 있다. 때로는 만족을 느끼다가, 때로는 갈망을 느끼고, 때로는 (이것이울프의 천재적인 면인데) 만족과 갈망 모두를 느낀다. - P271
하늘에서 거기에 있는 구름과 거기에 없는 산을 본다. 그리고달은? 울프가 단순히 달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달이 여기 런던의 러셀 광장을 비추듯이 페르시아도 비추고 있다고, 페르시아는 그녀의 연인인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가 두 달 전 배를 타고 향한곳이다. 달은 여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있다. 울프를 비추고, 울프가 사랑하는 여자를 비춘다. 두 갈래 길을 모두 걷는 한 명의여행자가 된다. 이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름다움 이상이다. 아름다움이자 상심이다. 살지 않은 삶에서 가장 익숙한감정은 후회와 안도인지 모르나 나로서는 이런 가슴 저리는 아름다움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이것이야말로 중년이 느끼는 자유와 고독이기 때문이다. - P272
나는 블랑쇼가 헨리 제임스의 단편소설이 내뿜는 찬란한 빛에 대해 한 말을 생각해본다. 그는 헨리 제임스의 단편들이 완전한 작품이면서 또한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담고 있다고, "모든 시작 전에 늘 그렇듯이, 다른 형태들을 보여주고, 다른 가능했던 서사들의 무한하고 가벼운 공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나는제임스의 소설을 통해 이런 뒤섞인 아름다움을 처음 접했다. 마찬가지로 울프의 글이 이제 내가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울프는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과정에서세상에 대해 증언한다. 울프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움직이는 것 - P272
으로 만들고, 그러면서도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알아보고확인한다. 울프만큼 그런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전달하는 이도없기 때문에 나 또한 여기서 멈추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울프가 백 년 전에 낸 음은 지금도 들을 수 있다. 성급하게 달려들다가도 갑자기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울프의 리듬은 사회성과 이미지의 흐름이 위태롭게 질주하는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리듬이다. - P273
한순간의 선택이 다른 선택을 배제한다는 자각, 그 어떤 순간도다른 순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자각, 한순간의 의미는 그로 인해 포기하는 모든 것이라는 자각만큼 중대한 깨달음의 순간도없다. 그것이 향상의 순간이다.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젊은 시절은 예외지만, 상실에서 탄생한다. 마지막 자각은 그런 상실에 대한 자각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관념은 청소년기의 고통이자 위안의 출처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 유일한 이득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유일한 정의는 실재,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세계의 진실, 그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고통과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리 카벨 Stanley Cavell, 『눈에 비치는 세계 The World Vie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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