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기억이 너무도 많지만, 꼭 언급할 필요가없는 건 모두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어떻게, 왜 성매매에 유입되었는지 보여주는 데 있어 시시콜콜 묵은 이야기들을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어린이가 겨울밤에 1그램의 무게마다 수치스럽게 느껴지던 가벼운 짐들을 손에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돌아가는 이 풍경은 중요하다. 인생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큰 역경들을 겪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랄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수 있게 한다.
때때로 원통할 때면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나의 어머니‘라는 다른 이들의 확신에 모욕감을 느낀다. 과대망상 조현증을 가진 사람에 의해 양육되는 경험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경건한 체 내뱉는 말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상한 크림에 설탕을 넣어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설탕을아무리 많이 넣은들 그 크림이 상해 신맛이 나는 건 어쩔수 없다. 어머니가 항상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화가 난다. 나는 그렇다. - P57

원만하게 무르익은 정서적 성숙도 측면에서 보자면 많은 면에서 내가 소녀였을 때 어머니도 나와 같은 소녀였고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렇다고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더이상 서로 만나지 않는데 슬프게도 현재로서는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것이 최선이다. 책망으로 가득 찬 씁쓸한 감정에서는 멀어졌다. 부모를 단순히 부모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때가 온다고들 하는데, 자신에게 느꼈던 연민이 부모님에게 이동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부모님을 떠올리면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이다. 그저 슬픔과 연민뿐이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때 놀랐다.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늘 어머니를 측은해했지만, 뼈가 부러졌을 때 팔이나 다리를 구부리지 않듯이 그저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 P58

어린 자녀가 어머니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판단할 정도로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따르지 않기는 어렵다.

-누알라 오페레인, 
『당신은 그 누군가인가.』

성매매 유입이 부모님 탓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두 분은 아프셨지만 나쁜 분들은 아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 성매매 유입을 조장하고, 그 환경은 때로 부모들의 도덕적 실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내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부모님이 내 인생 방향에 부정적으로 영향을미치는 선택들을 하셨지만 유일한 원인이지는 않았다. 당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다른 요인들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정신 질환, 중독 그리고 가난이 우리 가정 내 역기능을 조장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요인이었고,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 그 어떤 부모들도 구태여 익숙해지거나 바라거나 불러들이고 싶지 않은 일련의 경험들이었다.
얼마간의 역경을 겪고 난 뒤 나름대로 괜찮게, 비교적 정서적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아낸 똑똑한 자녀 다섯 명을 키워내셨으니 어머니, 아버지께서 잘못하신 일이 있었더라도 뭔가는 잘하셨음에 틀림없다. - P61

다섯 명의 아이를 둔 가정에서 겪는 가난이란 우울증을 주요 정신질환으로 길러내기에 완벽한 바탕이 되고, 우울증을 겪는 중독자는 중독성 있는 물질로 우울 증상을 완화시키려 하지만상태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가난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욕구가 생겨나고, 이 욕구는 중독을 부추기며, 정신 질환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여 취업이 어려워지고 빈곤을 고착화한다.
하루 종일 이 연결 고리를 짚어가며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를 배양해냈는지 상세히 밝혀낼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부모님의 문제들이 수그러들줄 몰랐던 것은 당연했다. 나를 사랑했던 두 분이 미궁에빠져 허우적댔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라고 화가 나서 간절하게 울부짖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실적이고 차가운 낮은 목소리로 되돌아온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라고말이다. - P63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일같이 학대당했다. 부모님의 고의가 아닌 질환의 결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실이 학대로 인한 상처를 완화시키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인생 초반 14년 내내 들이닥치는 태풍을 받아들이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끊임없는 긴장 상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그래왔던 방식으로 혼란속에서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옮겨가기 얼마나 쉽겠는가? 이런 방식과 이유로 성매매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들보다 내게 훨씬 더 가까웠다.
그 모든 긴장감과 스트레스 요인들을 유년기에 겪었지 - P63

만 형제들 중에서 내가 운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 어머니는 좌절감을 쏟아낼 수 있는 상대, 당신을존중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위치에있었고, 내 ‘자리‘를 고수하려고 인내심와 교활함이 특이하게 섞인 불온한 요령을 터득했다. 역기능적으로 작동하는가정 내에서 정신 질환이 있는 여성을 상대로 유리한 자리를 얻어내는 건 실제로 기술이었고 나에게는 매일이 피할수 없는 연습 기회였다. - P64

인간은 지극히 구성적 동물이라서 사회적으로중요롭다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필요하고 쓸모있다는 느낌 외에 그 어떤 감정도 우리에게 더큰 기쁨을 줄 수 없다. 반대로, 필요 없고 쓸모없다는 느낌만큼 절망을 야기하는 감정은 없다.
-모건 스콧 펙, 『거짓의 사람들]

사람들 대부분이 ‘노숙‘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지못한 채 사용한다. 노숙도 성매매처럼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경험이 아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정이 있는 사람은 연민으로 노숙인을 동정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실감할 수 없다. 경솔하게 선을 그으려는 건 아니지만 노숙이란 실상 소파가 없고, 의자가 없고, 테이블이 없고, 텔레비전이 없으며, 냉장고가 없고, 밥솥이 없고, 샤워할 곳이 없고(끔찍한 상황), 침대가없는 최악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숙‘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뜻 결여된 것이 집 한 가지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개별적 결핍들 간의 결합이다. 감정적인 측면이 가장 힘들지만, 육체적인 어려움부터먼저 언급해보겠다. 육체적인 면을 말해보자면 노숙에서는극심한 피로가 가장 힘들다. 잠이 부족한데 배도 고프고, 어느 때고 계속해서 옮겨 다녀야만 하는 상황을 비롯해러 가지 요인들이 체력을 소진한다. - P79

너무 피곤한 나머지 맥도날드 매장이 아침식사 메뉴인 에그 맥머핀를 팔려고 새벽에 문을 열자마자들어갔다. 적어도 화장실 칸에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 잠이 깼고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들어온 직원에게 쫓겨나면서 노숙을 통해 겪을수 있는 절실하고도 가장 깊은 상처를 경험했다. 그건 바로 외로움이었다. 내 존재가 전혀 쓸모없다는, 모든 상황과 장소에서 내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경험이었다.
노숙인은 어디를 가진 환영받지 못한다. 노숙자는 사회적의미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 없고 필요 없는 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사람, 추방된 자, 외부인이며 자신과 함께 짊어지고 다녀야만 하는 그들의 몸은 어디를 가든지 침입이 되어환영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이다.
불필요함이 신체로 구체화되었다. 모든 노숙인들이 그렇다. 피할 수 없다. - P84

노숙 경험 중 거리에서 지낸 첫날의 느낌은 가장 이상하면서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 궁핍은 저항하기 힘들만큼 유혹적인 즐거움으로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유약한 것이었으며 견딜 수 없이 추운 한겨울의 작은 새처럼 죽어갔다. 마음속에서 빈궁을 자유로 탈바꿈했지만 그 꾀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일랜드 날씨는 끔직하게 변덕스러웠고 추웠다. 날씨가 급변해 비와 진눈깨비가 번갈아 공격하고 갑자기 나타난 해가 젖은 옷을 데우고, 다시 강철 같은 회색빛 구름이 뻥 뚫린 지붕 위로 몰려왔다.
나의 자율성은 취약했고, 내 자신은 더욱 취약했기에 그땐 자유가 빈궁으로 탈바꿈했다고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고, 수치심 때문에 어쨌거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겠지만 뼛속 깊숙이 느꼈다. - P91

간밤에 내가 변했나? 가만 보자. 오늘 아침일어났을 땐 내가 그대로였나? 좀 다른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치만 내가 그대로가 아니었다면, 다음 질문은 "대체 내가 누구라는거지?"인데, 아, 그거야말로 커다란 수수께끼네.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91년 8월 중순, 따뜻하고 해가 좋은 오후에 성매매여성이 되었다. 그 오후는 이후 7년간의 하루하루를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놓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많든 적든 그 모든 날들에 영향을 미칠 터라 그날의 경험이머릿 속에 각인된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스물한 살이댄 애인의 제안을 놓고 몇 시간 동안 갈등했는데 어느새 그제안이 갑자기 실현 가능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더니 심지어어떤 점들은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졌다.
‘내가 저 여자일 수도 있어‘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할 정도로 충분히 강할지도 몰라. 잠자리가 소파일지 벤치일지도 모르는 이 방황에 끝을 낼 수 있어. 빌어먹을 음식이나 담배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걸 할 수 있을 만큼 강하기만 하다면 다 끝낼 수 있어.‘ 그런 방식으로 성매매를 용기의 문제로 변형시켰고 그 후로 돌이킬 가망이 없어졌다.
남자친구는 나처럼 노숙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성매매로 잘 알려진 벤허브 거리에서 몇 분 떨어진 인퍼머리 길가까이에 위치한 친구 집에서 숙박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을 시점이었다. - P93

요즘에는 거리 성매매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91년엔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구강 성교 시 콘돔을 썼다. 콘돔을사용하는 하지 않든, 구강 성교를 해야 하는 현실이 역겨웠지만, 손과 입을 사용한 유사 성행위를 거의 매일같이 했다. 이런 상황이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삽입 성교 성매매를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날에 대한 기억은 흩어지고 깨져 있다. 예닐곱 번 성매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은 남자친구에게 차에서 내렸다고 알리기 전에 다른 차에 올라탔다. 남자친구는거리 저 끝에 서 있었는데 마지막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른차 한 대가 바로 내 옆에 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내가 돌아오자 남자친구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놀라서 극도로 겁을 집어먹은 채 화가 나 있었다. 남자친구는 아마도 자신이처벌당할까 봐 더 염려했겠지만, 당시엔 순진해서 이런 행동을 배려라 해석했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남자친구 옆에 누웠을 때,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내 안의 어떤 곳에서 눈물이 나왔다. 아프게 하는 그것을 뭐라고 부를지 몰랐다. 그날 아침 잠에서깼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으로 잠드는 느낌이었고 정확히많은 면에서 그게 바로 일어났던 일이었다.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장마차


사는 것보다
살려고 마음먹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강력하게 주정하기 위해
포장마차는 망하지 않고 있어요
반은 무직 반은 외상객,
다 웬수의 단골들이죠

콩자루에서 쏟아져나오는 콩알들을 놓치는 손끝처럼
생은 대략, 난감한 것이지만
난감의 모세혈관들이 아토피같이 마른 몸에 번져가도
편안한 사신을 꼼짝도 하기 싫은
전사 직전이지만

여기, 슬픈 독이 있어요.
들어가 태우면 어디선가 덜덜덜
쓰레기 같은 힘이 솟구치는,
불의 잔이 있어요.

우린 우릴 졸업했어요

우린 우릴 닥쳤어요. 그렇지만
이따위로 살면 안돼
살면 안돼
고함치는 곳
여기, 슬픈 발광이 있어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
패잔병들도 전쟁중이라는 것

그러니까, 사는 건 결코 어렵지 않아요
살려고 마음먹는 것보다는
살아보려고 마음먹을 때까지 생이
받아주지도 버려주지도 않는 것보다는

곤충처럼 팔팔한 포장마차가 폭삭 망해
불을 끄고,
불을 뿜으며,
잠든 황야로 질주해가는 것보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선 위에서 떨다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문(門)


가지 말아야 했던 곳
범접해선 안되었던 숱한 내부들
사람의 집 사랑의집 세월의집
더럽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
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

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무엇보다도, 그대의 텅빈 바깥에 있다

가을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지리산


강의 동쪽 하동에서 토지문학제 현수막을 봤다
악양 지나 화개 가는 길 양옆으로
감나무밭이 한창이다
보퉁이를 든 초로의 여인들이 탔다가 내렸다가 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들도
버스도 11월도 덜덜덜 떨면서 춥다
최참판댁을 물었더니 운전사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어디일 거라고 한다 유명하다
시절은 수상하여 당사주에나
악양의 명도에게나 역마살 묻고 싶은 날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서 섬진강은 어둠을 벗고
모래 위를 등뼈 하나로 밀고 가는 목선 한 척을 그려 낸다
용이와봉순이와 길상이를 실어 나르던 강물최서희가 한 세월 뒤 김서희가 오르던 물결
단풍져 수척해진 산굽이를 돌아간다
섬진강은 거슬러 흐르는 강
저 나룻배에 구름처럼 올라 쓴 소주에

문어 다리나 씹고 싶은데
역사 속으로도 역사 소설 속으로도 들어오지 못하고
저렇게 산으로 갔을 어둔 이름 숨죽인 발자국들이
모래밭을, 모래알을, 모래알로 부서진 꿈을
헐벗은 전신으로 다져주고 간다
시절은 하 수상하여,
제 나라의 오지로 유배 가는 자들 끊이지 않고,
구례 경계 넘어 허허한 가을 들판 지날 때
나는 문득, 토지 가라오께, 간판을 본 것 같다이곳은 토지면이며 다시 환란의 시대가 온다고
만주에서 막 돌아온 홍이 같은 표정으로 운전수가
돌아보며 말했다 이럴 수가, 나는 잠에서 깨어나
내가 너무 깊이 들어와버려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된
대지의 저주받은 산, 지리산 생각이 났다

해설


이영광의 유비적 사고

황현산



이영광은 유비적으로 사고하는 시인이다. 그는 세상의 사물이 제 마음의 한 표정이거나 제가 지녀야 할 심정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물의 본질과 제본성을 함께보고 싶어한다. 이는 그가 견고한 삶을 처음부터 원했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그 견고함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다른 여러 젊은시인들이나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해답이 늘 뒤로 연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삶의 단단함을 확인해줄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확실한 근거와 연결되어 있고 제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가풍요로운 의미에 닿아 있기를 바라지만, 그의 작업과 생

존 자체가 불확실한 토대 위에 얹혀 있어, 견고한 의지를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자주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다.
삶이 중간지대에서 서성이 있다는 것은 최초의 순결한 의지가 죄와 부정으로 왜곡되어 제 길을 올곧게 짚어가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신과 세상에 바쳐야 할 성의가 여전히 부족함을 어쩔 수 없이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 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도 아마 이때일 것이다.
그것은 있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있는 것이 왜 하필 그 자리에 있는가를 묻게 되면서 시작될 터이다.

한 인간의 유비적 사고는 그에게 불확실한 것들 너머에서 확실한 것을 엿보게 하고, 그의 신산한 삶을 어떤거룩하거나 순결한 뜻에 연결시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그의 본성을 왜곡과 부정으로부터 복성시키는 계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굳게 믿는다. 그러나 유비적 사고가 사람을 항상 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그는 사물의 담장 위로 올라가 사물 너머를 잠시 보았는데, 거기에서 본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며, 그 자리는지금 이 자리와 다름없는 폐허일 수 있다. 그가 광휘의정원을 보았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찬란한 꽃

나무들은 그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와 무관하게 거기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비루한 삶을 조롱하기 위해거기 있다. 그가 그것들을 어쩌다 손에 쥔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품과 매음의 형식으로 그것들이 벌써 타락한 다음의 일이기 십상이다. 이때 그가 본 것은 그 찬란함이아니라 그 몰락의 시작이다. 이영광의 유비적 사고에는삶의 진실에 닿으려는 열정이 짙게 배어 있지만, 그의 언어로 유비되는 것은 어떤 진실의 얼굴이 아니라 그것을향한 진행의 힘겨움이며, 바로 이점에서 그의 시는 이런저런 자연친화적 시나 지혜나 자연을 내세운 온갖 깨달음의 시와 구별된다.

음의 시와 구그의 유비는 어떤 깨달음이나 발견의 결과가 아니라유비의 노력을 유비하며 유비 그 자체를 유비할 때가 많다. 첫 시 「직선 위에서 떨다」에서 시인은 "고운사 가는같‘의 아름다운 벼랑 끝에서 외나무다리 하나를 건너간다. 이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은 한 인간의 정신을 그 예기로 관통하는 단호한 의지의 길이면서 동시에 그의 크고 작은 상처를 보상하여 위로하는 길이다. 그러나,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직선 위를 걸어가는 사람보다 먼저 스스로 떨고 있는 직선은 곧고 엄혹한 것에 대한 한 개념이 자연의 본질로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정신이 부단한 연습과 단호한 실천으로 얻어내야 할 것임을 말한다. 시인이 자기보다 앞서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갔을 사람이 부들부들었을 것이라고 믿으려 하는 것도 어떤 소심함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엄숙한 길을 건너가는 자가 지불해야할 용기를 다시 확인하기 위함일 뿐이다. 

옛 사람이 갔던길이 여기 있지만 앞사람의 떨림이 뒷사람의 떨림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 또 다시 자기 책임으로 그 직선을 건널 때만 위험하고 여유없는 길을 엄정한 길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길이 건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건념의 용맹이 길을 길답게 한다. 숨은 진실이 유비를 요구하는 것이아니라 진실을 욕구하는 마음이 유비를 만든다. 숨은 진실 같은 것은 거기 없을지 모른다. 유비되는 것은 곧은길이 아니라 거기에 진실한 유비가 있기를 곧게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이 점에서 이영광의 유비는 영감받은 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이가 사회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소소한방식들은 수도 없이 많다. 나의 경우엔 이런 기억들이 있다. 학교에서 연필이 없어 항상 연필을 빌려야 했고, 하나있다고 하더라도 잘근잘근 씹은 자국이 난 5센티미터도 안되는 몽당연필이라 놀림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경험.
책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른아이의 책을 같이 보거나 잠시 다른 아이의 책을 들여다봐야 해서 나라는 존재는 방해가 되며, 다른 친구들을 성가시게 한다는 죄의식과 모욕감이 같이 부대꼈던 감정들. 늘상입을 속옷이 없어 특히 학교 운동장에서 아무도 알아채지못했으면 하고 바랐던 순간들, 양말이 없어서 아버지의 양말을 신고 발목 한참 위로 올라온 큰 양말 때문에 체육 시간에 신발을 벗어야 할 때면 수치심으로 시들고, 선생님이전 학급 앞에서 가지고 있지도 않은 학교 스웨터를 1월 중순인데 왜 입고 있지 않냐고 물었던 경험, 지각할 때 모든눈이 나에게 쏠릴 창피함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교실 문밖에서 10부터 거꾸로 세었던 순간들.  - P47

경험들을 통해 내가 반 친구들과는 다르고 다른 학생들과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 경험을 정확하게 명명할 수 없었다. 단지 명백하게 합당한 이유들로 동네 이웃과 학교에서내가 다르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나의 환경에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생각은 옳았지만, 내가 그 그릇됨의 한 부분이었다고 믿은 것은 실수였다.
성인이 되어 범죄학과 사회학을 공부했지만 그 내용들은 책을 통해 알기 오래전부터 이미 삶에서 접했던 것들이었다. 이후에 그런 상황들과 분리된 환경에서 이런 주제들을 공부하니 이상하고 초현실적이었다. - P48

나의 성배배 유입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로 조장되었다. 경제ㆍ사회적 결핍은 보통 남성과 여성에게 약간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두 젠더 모두 범죄에 끌리지만 젠더이 따라 구체적인 범죄 형태는 달라진다. 경험상 마약의 경우 남성들은 거래를, 여성들은 운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철도의 경우 남성은 무장 강도가 되는 경향이 좀 더 높고내가 알던 소매치기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성매매에도젠더 차가 있는데,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팔기보다는 포주의 역할로 이윤을 챙기고 통제를 시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건이지만 내면에 스며드는 범죄성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극빈한 상태와 경제적 궁핍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많이도 목격했다. 탈성매매한 지 몇 년 뒤 학업을 시작하고 1년쯤 되었을 때의 예를 하나 들 수 있겠다. 파넬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는데, 한 노숙인이 내게 다가왔다.
꾀죄죄하고, 누더기를 입은 채 엉겨 붙은 수염이 더럽고 길었다. 그는 적어도 40세, 아니 45세 정도로 보였다. 그 사 - P48

람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그 말이 충격적이어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레이첼, 너 나 기억 못 하니?
나야, 존!" 그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면서 말을 했다. 나를만나 무척 기뻐했다. 수염과 지저분함, 거친 피부를 넘어그의 눈을 보았다. 똑같이 날카로운 푸른색이었고, 눈 뒤에숨은 활기 그대로 즐겁고 장난기 어린 빛을 뿜어냈다. 정말존이었다.
존과 나는 1990년 여름 동안 청소년을 위한 정신 질환심사 센터에 있었다. 당시 우리는 둘 다 열네 살이었다. 나는 그때 쉼터에서 유예 처분을 받고, 위탁 가정에서 쫓겨난채로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했는데 이 모든 일이 몇 주 만에한꺼번에 일어나서 그곳에 배치되었다. 열두 명 정도 되는아이들이 수용 시설에 있었지만 존과 나는 잘 통했다. 우리는 항상 웃었다. 시설 안에 방 하나로 만든 학교가 있었는데 우리 둘은 눈만 맞았다 하면 웃어서 선생님께 혼나 수업시간에 억지로 존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 P49

결국엔 정신 질환 심사에 질려 그곳을 나와버렸다. 그날 이후로존을 보지 못했고, 파넬 거리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10년이흘렀다. 10년. 존은 서른이 되었다. 열여덟 살 이후로 쭉 노숙을 했다고 말했다. 정부 보호를 받는 아동이 열여덟 살이되면 자립하리라 기대한다. 존은 가라앉거나 헤엄칠 수 있었다. 존이 그랬듯 많은 이들이 가라앉았다.
족히 몇 분간 얘기를 나눈 뒤 존이 포옹 인사를 하려고팔을 내밀었다. 존을 안자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일었는데바로 죄책감이 들었다. 걸어오면서 나는 울었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진 그날, 존은 그게 뭐가 됐든 이제까지 그가 살아오던 방식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비슷하게 - P49

절망적인 처지에서 내가 그랬듯이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훔치고 사기 쳤으리라.
범죄 발생은 경제적 결핍이나 사회 배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단순히 악의 존재로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을들은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존과 같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고, 나 또한 그러한 청소년이었다. 우리를 그자리로 데려다 놓았던 일들은 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 P50

그녀는 자연적이고 치유가 되는 수많은 영향력을 피해 은둔했기에, 창조주가 지정한 순리를 모든 마음들이 거스르듯, 거슬러야만 하듯, 거스를 것처럼 음울하고 고독한 그녀의 마음은 질병으로 번졌다.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가장 눈에 띄는 어머니의 병세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당신 자신과 아이들 모두를 염려했다. 아이 다섯의활동 영역을 집으로 제한하고, 학교와 동네 가게 외 다른곳에는 거의 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이웃집 아이들과 놀거나 사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이웃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어머니 말씀을 무시하는 행동이어서 물론 당신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살던 더블린 북쪽 시내에 위치한 주거 단지를 드나들 때 조용히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자랐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가 입고 있던 더럽고 낡은 옷들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의 눈에 띄어 더 구별되었다. 이웃집 아이들도 우리를 그렇게 대했는데(그 아이들이 정말로 알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매일 같은 놀림은 잔인했고, 소외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은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어머니의 성향을 부채질했다. 질환의 한 현상이었을 뿐이었는데, 갈수록 더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다. - P53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은 마치 살아 있는 척도와도 같았다. 불안정한 마음의 진행을 재는 불가사이하게 정확한측정 방법 말이다. 여덟아홉 살 무렵 짧은 시간 안에 꽤 심각해졌던 말더듬증을 예로 들어 볼 수 있겠다. 운 좋게도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언어 교정 방법으로 내가 말을 더듬을 때마다 얼굴을 힘껏 때렸고 나는 아픔과 함께 전기 불빛이 크게 파열하듯 눈이 부시게 번쩍이는 빛을보며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도 효과적이었다고인정해야겠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말더듬증을 놀래서 쫓아냈고 그 이후로 재발하지 않았다. 가장 잔혹한 유년 시절기억 중 하나는 부엌문을 열었을 때 엄청나게 커다란 피 웅 - P53

덩이 속에서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일이다. 당시 나는 아홉 살쯤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피가 어머니 몸 사방으로 1미터 넘게 퍼져 있어 작은 호수같이 보였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며칠 후 그때 입고 있던 코트를 그대로입고 집에 오셨는데 코트는 밤색이 된 마른 피로 범벅이었고 만성 빈혈로 피 2리터를 수혈받아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셨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어머니가 자살 시도를 했고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는 진실을 언급하지않았다. - P54

문제 가정의 균열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가족이 형성되기 전부터 시작된다. 상처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만남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가 이 파괴력이 잠재된 사랑으로 창조된 아이들을 통해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그렇듯 부모님 두 분 모두 사랑이 주는 위로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안타깝게도 그 손이 서로를 향했다. 결함이 있고 균열됐을지라도 사랑이 존재했기에 내가 이 자리에서 그 결과를 기록할 수 있고 물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인생이그렇듯 고단했고 유년 시절 감정적으로 고되었지만 내 인생이었고, 나는 언제나 인생을 사랑했다. 삶을 살아가는 일보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 사랑했던 때가 있었을지라도 삶을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한 날은 드물었다.
문제 가정을 설명하는 말들이 우리 가족에게 꼭 들어맞지 않기도 한다. 와해, 퇴보, 악화와 같은 단어들은 한때 건강했거나 온전했음을 전제한다. 우리 가족은 와해되지 않았고, 태생부터 깨져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기 14년 전인 열여덟 살에 처 - P54

신경쇠약을 경험했고, 어머니도 10대부터 이상하하기 시작해 아버지를 만나기 전 10년 정도의 기간계속 정신 질환을 앓던 중이었다. 심각한 정신 질환에을 받은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짝이 됐을 때 어머니는스플릿, 아버지는 서른들이었다.
아버지는 신경쇠약을 처음 겪었을 때 성 브렌든 정신병에 갔는데 그때 조울증을 진단받았다. 아버지 가족은 아버지가 인생을 함께할 여자는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조현증을 앓던 딱한 어머니는 더블린을 통틀이 가장 적합하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나서 결혼했고 어머니 질환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현되어 결혼 생활과 우리 형제들의 유년기 내내 우리 귀에 바다처럼 포효했다. - P55

어머니 질환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버지가 자살한 지 하루 이틀 후 저녁에 나와 오빠를 아버지의단칸 셋방으로 보내 소지품 중 쓸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모아 오게 했다. 우리 나이는 그때 열셋열넷이었다. 아버지가 세 들어 살던 집은 도시 남쪽에 위치한 라스마인이라는곳이었다. 동네 중심가는 번쩍이는 스완 쇼핑센터 간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날 그 쇼핑센터 간판을 처음 봤는데, 그 이후로 그 간판만 보면 깜깜했던 11월 밤의 기억이 되돌아온다. 저녁 8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하늘은 어두웠고, 이에 비해 간판 불빛이 너무 밝아 실내 상점이 밀집한 통로에 놓인 비디오 게임과 핀볼 기계가 떠올랐다.
아버지 단칸 셋방에 가보니 한쪽 구석엔 작은 싱크대를, 다른 쪽 구석엔 침대를 놓아 공간을 구분해보려고 볼품없는 시도를 했건만 예전에 봤던 원룸들과 다를 바 없이 가 - P55

축우리 같았다. 부모님이 별거할 때마다 아버지가 새로운방을 구하는 일이 자주 있어서 수년간 비슷한 원룸을 많이봐왔다. 그때가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물리적으로 갈라섰던때였는데 가족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버지는 없어도 되는구성원이라고 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방식이 가족 갈등에서 내가 기억하는 잔인함이다. 그렇기에 나는 별거하는 아버지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무거운 짐처럼 늘 짊어지고다닌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지 알기 쉽다.
오빠와 나는 그 단칸방에 서서 둘러보았다. 여기에는와본 적이 없었다. 그곳은 유별나게 작았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라 그런지 우울함 같은 특별한 기운이 있었다. 죽음만이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최후의 느낌과밀접하게 연관된 수모와 수치스러운 가난의 냄새가 밴 애처로운 슬픔의 감정. 그곳엔 유독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요소들 외에도 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무겁고 암울한 최후를 품어내는 향기가 있었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거나 가치가 있는 것이면 모두 가져오라고 했지만 실제로 가져갈 것이 별로 없었다. 오빠와 나는 거기 있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마치 우리 행동이 아버지께 모욕이 되는 양 매우 조용하게 말했는데, 어른이 된 나의 눈으로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아버지께서 더 모욕감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 P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눈


두 시간 강의하려고 세 시간 기다리는
지방 사립대학 휴게실 창 너머 첫눈 내리는 날
태화산 팔부능선을 천천히 지우고
문득, 눈발은 사라졌다가
산기슭의 페어웨이를 휩쓸어온다
달아오른 찻잔을 만지며 나는
눈발을 움직이는 힘이
보이지 않는 바람이었음을 안다
그래, 눈보라는 바람의 알몸과
알몸을 불에 덴 듯 날뛰게 하는
막무가내의 마음을 보여준다
눈앞에 죽음이 어른거리는데도
비명 지를 수 없는 병자처럼
유리창을 움켜쥐는 바람의 손바닥들
오늘은 그가 아무리 작게 두드려도
심하게 흔들릴 것만 같다
사람 기다리는 일, 정처 없어도 깊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시간 묻는 취객처럼
깜짝 찾아왔을 뿐인 기다림
뜨거웠던 찻잔을 식히고
휴대폰 진동 신호음에 놀라는 마음의
떨림은 오후 수업 끝나면 방전되어
저 산 어딘가에 지친 눈발들을 조용히 눕히고 있으리라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자고 난 뒤 돌아앉아 옷 입던 사람의 뒷모습처럼
연애도 결국은,
지워지지 않는 전과로 남는다
가망 없는 뉘우침을 선사하기 위해
사랑은 내게 왔다가, 이렇게
가지 않는 거다
증명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교정의 단풍나무 아래 앉아 있는 동안
이곳이 바로 감옥이구나, 느끼게 만드는 거다사람을 스쳤던 자리마다
눈 감고 되돌아가 한번씩 갇히는 시간
언제나 11월이 가장 춥다
모든 외도를 지우고
단 한사람을 기다리는 일만으로 버거운 사람에게
이 추위는 혼자서 마쳐야 하는 형기?
출감확인서 같은 졸업증명서를 기다리며
외따로 선 나무 아래 외따로 앉아 있는

추운 날
붉고 뜨거운 손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혼자 불타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타오르는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순간이 있고
떨어져서도 여전히 화끈거리는 단풍잎과
멍하니, 갇힌 사람이 있고
인간의 습성을 비웃으며 서서히 아웃되는 새떼들이 있다

단풍


산들도 제 고통을 치장한다

저 단풍 빛으로 내게 왔던 것
저 단풍 빛으로 날 살려내던 것

열려버린 마음을 얼마나
들키고 싶었던가
사랑의 벗은 몸에 둘러주고 싶었던가

불난 집처럼 불난 집처럼 끓어
마침내 잿더미로 멸한다 해도




산을 보면, 들어가고 싶어진다
산에는
안이 있다

그곳에서,
돌들은 뜨겁게 달아
알이 되고
몸은 묻혀, 천년의 영혼이 된다

역사보다도 더 오래고 질긴 바람,
악써 반음 높여 노래하던 길들은
어떻게 산 속으로
사라졌을까

너무 먼 길 가다
철퍼덕
주저앉았을 때 들던 생각,

망가진 생을 견인해 가려는 듯
불끈 엎드린 길을
껴안고 싶을 때 들던 생각,

몹쓸, 인간의 바깥에도
멀고 먼 안이 있다
들어오라는 듯
들어오지 말라는 듯,
산에는
문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