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위에서 떨다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문(門)
가지 말아야 했던 곳 범접해선 안되었던 숱한 내부들 사람의 집 사랑의집 세월의집 더럽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 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
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무엇보다도, 그대의 텅빈 바깥에 있다
가을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지리산
강의 동쪽 하동에서 토지문학제 현수막을 봤다 악양 지나 화개 가는 길 양옆으로 감나무밭이 한창이다 보퉁이를 든 초로의 여인들이 탔다가 내렸다가 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들도 버스도 11월도 덜덜덜 떨면서 춥다 최참판댁을 물었더니 운전사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어디일 거라고 한다 유명하다 시절은 수상하여 당사주에나 악양의 명도에게나 역마살 묻고 싶은 날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서 섬진강은 어둠을 벗고 모래 위를 등뼈 하나로 밀고 가는 목선 한 척을 그려 낸다 용이와봉순이와 길상이를 실어 나르던 강물최서희가 한 세월 뒤 김서희가 오르던 물결 단풍져 수척해진 산굽이를 돌아간다 섬진강은 거슬러 흐르는 강 저 나룻배에 구름처럼 올라 쓴 소주에
문어 다리나 씹고 싶은데 역사 속으로도 역사 소설 속으로도 들어오지 못하고 저렇게 산으로 갔을 어둔 이름 숨죽인 발자국들이 모래밭을, 모래알을, 모래알로 부서진 꿈을 헐벗은 전신으로 다져주고 간다 시절은 하 수상하여, 제 나라의 오지로 유배 가는 자들 끊이지 않고, 구례 경계 넘어 허허한 가을 들판 지날 때 나는 문득, 토지 가라오께, 간판을 본 것 같다이곳은 토지면이며 다시 환란의 시대가 온다고 만주에서 막 돌아온 홍이 같은 표정으로 운전수가 돌아보며 말했다 이럴 수가, 나는 잠에서 깨어나 내가 너무 깊이 들어와버려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된 대지의 저주받은 산, 지리산 생각이 났다
해설
이영광의 유비적 사고
황현산
이영광은 유비적으로 사고하는 시인이다. 그는 세상의 사물이 제 마음의 한 표정이거나 제가 지녀야 할 심정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물의 본질과 제본성을 함께보고 싶어한다. 이는 그가 견고한 삶을 처음부터 원했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그 견고함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다른 여러 젊은시인들이나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해답이 늘 뒤로 연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삶의 단단함을 확인해줄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확실한 근거와 연결되어 있고 제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가풍요로운 의미에 닿아 있기를 바라지만, 그의 작업과 생
존 자체가 불확실한 토대 위에 얹혀 있어, 견고한 의지를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자주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다. 삶이 중간지대에서 서성이 있다는 것은 최초의 순결한 의지가 죄와 부정으로 왜곡되어 제 길을 올곧게 짚어가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신과 세상에 바쳐야 할 성의가 여전히 부족함을 어쩔 수 없이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 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도 아마 이때일 것이다. 그것은 있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있는 것이 왜 하필 그 자리에 있는가를 묻게 되면서 시작될 터이다.
한 인간의 유비적 사고는 그에게 불확실한 것들 너머에서 확실한 것을 엿보게 하고, 그의 신산한 삶을 어떤거룩하거나 순결한 뜻에 연결시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그의 본성을 왜곡과 부정으로부터 복성시키는 계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굳게 믿는다. 그러나 유비적 사고가 사람을 항상 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그는 사물의 담장 위로 올라가 사물 너머를 잠시 보았는데, 거기에서 본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며, 그 자리는지금 이 자리와 다름없는 폐허일 수 있다. 그가 광휘의정원을 보았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찬란한 꽃
나무들은 그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와 무관하게 거기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비루한 삶을 조롱하기 위해거기 있다. 그가 그것들을 어쩌다 손에 쥔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품과 매음의 형식으로 그것들이 벌써 타락한 다음의 일이기 십상이다. 이때 그가 본 것은 그 찬란함이아니라 그 몰락의 시작이다. 이영광의 유비적 사고에는삶의 진실에 닿으려는 열정이 짙게 배어 있지만, 그의 언어로 유비되는 것은 어떤 진실의 얼굴이 아니라 그것을향한 진행의 힘겨움이며, 바로 이점에서 그의 시는 이런저런 자연친화적 시나 지혜나 자연을 내세운 온갖 깨달음의 시와 구별된다.
음의 시와 구그의 유비는 어떤 깨달음이나 발견의 결과가 아니라유비의 노력을 유비하며 유비 그 자체를 유비할 때가 많다. 첫 시 「직선 위에서 떨다」에서 시인은 "고운사 가는같‘의 아름다운 벼랑 끝에서 외나무다리 하나를 건너간다. 이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은 한 인간의 정신을 그 예기로 관통하는 단호한 의지의 길이면서 동시에 그의 크고 작은 상처를 보상하여 위로하는 길이다. 그러나,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직선 위를 걸어가는 사람보다 먼저 스스로 떨고 있는 직선은 곧고 엄혹한 것에 대한 한 개념이 자연의 본질로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정신이 부단한 연습과 단호한 실천으로 얻어내야 할 것임을 말한다. 시인이 자기보다 앞서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갔을 사람이 부들부들었을 것이라고 믿으려 하는 것도 어떤 소심함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엄숙한 길을 건너가는 자가 지불해야할 용기를 다시 확인하기 위함일 뿐이다.
옛 사람이 갔던길이 여기 있지만 앞사람의 떨림이 뒷사람의 떨림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 또 다시 자기 책임으로 그 직선을 건널 때만 위험하고 여유없는 길을 엄정한 길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길이 건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건념의 용맹이 길을 길답게 한다. 숨은 진실이 유비를 요구하는 것이아니라 진실을 욕구하는 마음이 유비를 만든다. 숨은 진실 같은 것은 거기 없을지 모른다. 유비되는 것은 곧은길이 아니라 거기에 진실한 유비가 있기를 곧게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이 점에서 이영광의 유비는 영감받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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