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는 오케스트라만의 공연이었고, 2부에 정경화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1부 내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정경화가 나오길 기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그런데 나의 인내심도 모르고 오케스트라연주는 길어지기만 했다. 급기야 오케스트라는 원래 계획에도 없던곡까지 연주를 했다. 정경화가 나와야 하는데, 정경화는 왜 안 나올까.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리고 정경화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이올린도 없이. 맨손으로, 정경화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이올린을 잡는 대신 마이크를잡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정경화가 말을 했다. 오늘 오전에 갑자기손에 마비가 왔다고. 연주를 하는 대신 말을 했다. 연주를 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 P136
그때 2층에서 내려다본 정경화는 작았고, 머리숱도 적었다. 나의 영웅 정경화가. 내 롤모델이 나를 그토록 울렸던 그 위대한 연주가가 작았고 적었고 마비가 왔다. 2005년의 일이었다.
***
그 후로 나는 정경화의 비발디 <사계> 공연을 보러 성남에 갔고 바르톡 공연을 보러 인천에도 갔다. 나는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을 해야 했다. - P137
그리고 2012년. 명동성당에 정경화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를 들고 나타났다. 명동성당과 정경화와 바흐의 조합이라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이 어디 있을까. 길고 딱딱한 성당 나무의자에 앉았다. 이런 분위기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까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정경화는 드레스 대신 하얀 셔츠를 입고 성당 제단 앞에 섰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차림이 또 어디 있을까. 누구보다 기품있었고,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1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이라 했다. 관객들도 숙연해졌다. 그 시절 한국에서 정경화라는 바이올리니스트도 모자라 정명화, 정명훈까지 길러낸 그 어머니. 모를수는 있어도, 알고 난 후에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 어머 - P137
니에게 그보다 더 흡족한 제사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진공상태와도 같은 침묵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그 공기를 뚫고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그 소리가 명동성당의 높다란 천장을 돌아 뒷벽에 부딪혀 내 귀로 들어왔을 때 나는 우주의 탄생을 귀로 듣는 느낌이었다. 먼 소리가 둥글게 지금의 나에게 도착하고 나는 먼 소리를 지금의 소리라 착각하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소리를좋았다. 높은 소리는 신생 별이었고 낮은 소리는 오래된 별이었다. 활과 바이올린 사이에는 공기가 흘렀고 지구와 달처럼 그 공기는 아득했고 멀리서 도착한 빛과 소리는 아름다웠다. - P138
그리고 <파르티타>. 그리고 무려 <샤콘느>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흐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인 <샤콘느>. 연주가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곡. 하지만 그만큼 연주가의 깊이를 들키기 쉬운곡. 그래서 브람스는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젊은 연주가의 <샤콘느>는 깊이가 없고, 늙은 연주가의 <샤콘느>에는 기교가 부족하기 십상이다. 너무 젊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그 팽팽한 긴장감의 나이에 <샤콘느>를 위한 나이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이 정경화의 <샤콘느>가 아닐까? 어느새 나는, 20년 전 그때처럼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턱에고였다. 닦을 생각도 못하고 펑펑 울어버렸다. 1974년, 정경화가 아 - P138
주 어렸을 때 녹음한 바로 그 바흐 <샤콘느> CD를 수십 년 동안 성경처럼 간직하며 들어온 나였다. 그런 내 앞에서, 예순도 넘은 정경화가 그 나이만큼 단정한 셔츠를 입고, 바흐를 연주하고 있었다. 작지 않았고 적지 않았고, 유연했고, 거대했고, 전부였다.
***
한때 정경화처럼 연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때때로 정경화의 CD를 틀어놓고 정경화의 선율을 따라서 연주해보곤 했다. 물론단 한 음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늘 몇 음 따라 하다 말고 바이올린을 내리고 정경화의 연주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 예쁘고 작고 예민하기 짝이 없는 바이올린은 나에게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 P139
안다. 타고난 기억력의 소유자인지라 나는 그 곡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곡의 제목조차 알지 못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키스 자렛의 곡들을 다시 찾아서 들어봤지만 비슷한 곡도 찾아내지 못했다. 실은 한 소절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할 기준조차 없다. 아마 다시 그 곡을 들려줘도 나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혹은 음악이 너무 좋다며 이게 무슨 곡이냐고 물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곡을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꼭 기억하고 싶다. 피아노와 새들의 합주를 피아노가 멈추는 순간 시작되었던 새들의 독주를 새들의 독주를 듣기 위해 멈춘 피아노를, 그제야 들리고 보이고 만져졌던 보석들을 그 보석들을 지금 우리가 오롯이 누리고 있다는 깨달음을. 행복에 정수리까지찌릿찌릿해지던 순간을, 그 순간의 나를. 우리를. - P148
카메라라는 걸 손에 쥐고 처음 나간 순간을 기억한다. 안보이던 게 보였다. 방금 있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고, 지금의 빛은 1분 후에 다른 빛이 되는 걸 보았다. 나는 경이에 차 있었는데,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 옆을 지나갔다. 노을이 지고있는데, 저렇게 노을이 지고 있는데, 노을빛 때문에 이 벽이 이렇게아름답게 빛나는데. 그때 깨달았다. 나는 카메라를 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쥐게 되었다는 걸.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는 걸. - P153
외국 여행을 갈 때에도 언제나 이 카메라부터 챙긴다. 무겁고, 귀찮다. 하지만 이 카메라가 없는 순간이 두렵다. 너무 찍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이 카메라가 없어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른 카메라를 탐낸 적은 없다. 다른 렌즈를 사고 싶어 한 적도없다. 비싼 라이카도 최신식 카메라도 나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장비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다만 다른 사진에대한 욕심은 많다. 끝도 없다. 남들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사진과 비교하며 초라해진다. 어쩜 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 탄복을 하면서 그 실력에 욕심을 낸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로 이 욕심은 더해가기만 할 뿐 줄어들진 않는다. 아마 평생 그렇게 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평생 잘 찍지 못할 것이다. 평생 잘 찍는 누군가의 사진을보며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평생 찍을 것이라는것을. 그렇게 찍는 순간은 어쨌거나 나만의 순간이 된다는 것을. 대단하진 않을지라도 나만의 시선은 끊임없이 버려지리라는 것을. - P156
처음부터 의도는 없었다. 의도가 있었다면 이토록 성실할수 없었을 것이다. 늘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멀리서도 보였고, 다가갈수록 가슴이 뛰었다. 찍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랬다. 기분이 너무 좋아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실했다. 좋은 기분을 위해 성실했다. 아니, 어쩌면 성실하다는 표현은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마음을 따라갔을 뿐이다. 마음의 움직임에 몸의 움직임을 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에게는 수많은 나라들의 수많은 도시들의, 수많은 벽의 기억이 생겼다. - P159
사진을 배우고 난 후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은 사람만큼 사진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요소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진 앞에서도 사람의 눈은 신기하게도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낸다. 아무리 구석에 있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어김없다. 어떤 사진 앞에서도, 어떤 사람이라도 똑같다. 덕분에 사람이 없는 사진은생기가 없기 십상이다. 물론 사람 하나 없이도 눈을 사로잡는 위대한 사진도 많다.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내 경우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나는 사람이라는 피사체가 필요했다. 그 순간, 그 표정, 그 몸짓, 그러니까 그때가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그 사람을 찍고 싶었다. 그 - P167
래서 사람을 중심으로 찍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벽 사진만은 예외였다. 벽 사진에는 사람이 필요치 않았다. 누군가가 신경 써서 가꿔놓은 창가, 창문마다 다르게 걸려 있는레이스 커튼들, 거리낄 것 없이 다 내보이는 창문들, 해를 향해 가슴을 열어젖힌 빨래들, 해가 넘어간 뒤에도 바람에 걸려 있는 빨래들, 벽에 무심하게 기대 있는 자전거, 새 칠을 입은 벽, 한 번도 칠해지지않은 벽, 지금 막 누가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벽, 폐허에 홀로 남은벽, 노란 벽, 파란 벽, 주황색 벽, 그 모든 색이 다 섞인 벽 등, 벽은언제나 그 자체로 완벽한 모델이 되어주었다. - P169
하지만 그런 걸 감히 꿈이라 불러도 되나. 그건 그저 욕망이라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나는 늙어버렸으면좋겠다고 생각했다. 10대엔 10대라 힘들었고, 20대엔 20대라 너무힘들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무정형이지. 왜 이렇게 나는 휘청일까. 사소한 상처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나이가 분명 있을 텐데. 울음이멈추는 나이가 나에게도 분명 올 텐데. 그건 또 언제인가. 60이 되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고요한 시간이 드디어 내게도 찾아올 것 같았 - P180
다. 어떤 자극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고요하게. 60이 되고 싶었다. 그게 꿈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그저 늙어가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냥 늙고 싶은 건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60살이 된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고요한 얼굴이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풍파도 감히 박살낼 수 없는 깊고 따뜻한 얼굴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그저 늙는 것이 아니라잘 늙어야 했다. 그때면 얼굴에 모든 것이 다 새겨져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간과 만남과 선택과 마음이 모두 새겨져 있을 텐데, 그얼굴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잘 늙고 싶다는 것도 꿈으로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모든 취업 원서에 ‘잘 늙기‘를 꿈으로 써냈다. 50군데 원서를 내고도 50군데에 다 떨어진 건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 P181
물론 이제는 안다. 내가 어릴 적 꿈꾸었던 그런 말짱한 나이는없다는 걸. 60이 되어도 내가 꿈꾸는 것처럼 무심하게 고요할 리 없다는 걸. 오늘은 여기가 아파 우울할 것이고, 내일은 저기가 골칫거리일 것이다. 내가 괜찮은 어떤 날에는 남편이 말썽일 것이다. 그때내게 일거리가 있다면 그 일이 하기 싫어 몸부림일 것이고, 그때 내가 백수라면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의 가계가 걱정일 것이다. 전세계를 여행하고도 남을 시간이 있지만 돈이 없을 수도 있고, 돈이 있더라도 몸이 안 따라줄 수도 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일 없이 산다‘라는 친구의 말이 제일 부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 별일이 없다니. 난 아직도 순간순간이 별일이라 미치겠구먼. 어쩌면 루르마랭의 그할아버지도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지긋지긋해 혼자서 여행을 온•걸지도 모른다. 나름의 방법으로 도피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아무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의 60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젊음의 형광빛보다는 늙음의 희미한 빛 - P188
에 끌린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배 나온 할아버지들의 나뭇둥걸 색깔을 좋아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가 서로를 챙겨줄 때의 빛바랜노을색은 늘 찡하다. 골목골목 수다를 떨고 있는 할머니들의 하얀머리를 보면 경쾌해진다.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회색표정도 꽤 귀엽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으로 차려입고, 할아버지에게도 분홍색 니트 티셔츠를 입힌 할머니를 봤을 때는 가던 길을 되돌아갔다. 할머니를 붙잡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그 색깔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60살의 나를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모든 세월을 통과한 노인들을 볼 때면 늘 뛰어가서 사진을 찍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 각각의 시간을 사진으로 찍으며 막연하게 나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걸지도 모른다. 60이 되었을 때 나의 색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핑크빛으로 두근거린다. - P190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물론 이미 카피라이터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나의 마지막 나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또 어떤 나무가 뿌리를내리기 시작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나무를 키우기로 결심을 한다면, 잘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비옥한 토양을 가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토양을 가꿨는데도 아무나무도 안 자란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비옥한 토양은 남을 테니까. 그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 그 토양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도리가 없으니까. - P200
영어, 독일어, 라틴어, 희랍어, 일어, 불어, 사람들은 내 언어 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하나라도기억하는 언어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같다. 기역할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단어를 외우는 뇌세포가 없다. 그런데왜 그렇게 많은 언어에 욕심을 냈느냐고? 모르겠다. 언어에 유독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그냥 배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열망, 어쩄거나 확실한 것은 뭔가를 배울 때의 나는 확실히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즐거워하고,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기어이 짬을 내서 배우러 달려간다. 그러니 나에게 ‘배운다‘ 라는 말은 장밋빛 미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장밋빛 현재를 위한 말이 된다. - P209
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였다. 흙을 만지는 시간만큼은정직해지는 느낌이었다. 흙이 정직했으니까. 무게를 실어 미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흙은 나갔다. 흙이 달라지면 결도 색깔도 결과물도 달라졌다. 같은 흙이라고 해도 날씨에 따라 성질이 달라졌다. 흙끼리 붙일 땐 끝에서부터 한 땀 한 땀. 절대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해야 했다. 공기가 들어가면, 가마 속에서 흙이 터졌다. 약간이라도 갈라진 곳이 있으면, 어김없이 가마 속에서쩍 하고 갈라졌다. 흙은 정직했다. - P214
하지만 엄마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탈춤반 공연을할 때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걸 보면 내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를 굳이 탈춤반에서 찾지는 않은 것 같다. 떨어지는 성적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내가 공부를 점점 못 따라가는 거지. 방목, 완전한 방목. 엄마는 나를 방목했다. 이제 와서 엄마는 그걸 엄마의 교육철학이라고 말하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동생도알고 모두가 안다. 그걸 철학이라고까지 포장할 순 없다. 엄마는 나를 방목했지만, 동생에 대해선 전혀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방목을 해놔도 나는 울타리 밖으로 안 나가는 아이였기 때문에 방목을 했던 것이고, 동생은 아무리 묶어놔도 어느새 울타리를 뛰어넘는아이였기 때문에 그냥 각자에 맞게 반응을 했을 뿐이다. - P242
어떤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은 신앙에가까운 측면이 있다. 정말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방치에 가까운 방목아니냐면서 내가 엄마를 놀리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그 방목이 아니었다면, 나는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울타리만 넘어가면 더 풍성한 풀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울타리 안에서 먹을 풀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믿음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멀리멀리 떠나보낸다. 그래도된다는 용기를 준다. 내 맘대로 해도 결국 엄마는 나를 믿을 거니까. 엄마는 그럴 거니까. - P245
오스카 와일드 다음은 누구를 이야기하실까 궁금해하던 찰나, 최근 팀장님은 우리가 써간 카피를 보시고는 "너무 인문학이 많은거 같아."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멍한 나에게 "요즘 스무 살처럼 써. 걔들은 이런 말투 아니야. 이런 논리로 말안 해, 인문학을 버려."라고 첨언을 하시더니 급기야 "인문학은 개뿔."이라는 말을 하셨다. 인문학으로 광고하시는 분의 입에서 "인문학은 개뿔"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물론 그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문학‘이 주어였으니 인문학으로 광고한 게 맞긴 맞지만, 팀장님은 ‘인문학으로 광고하신다. 그런 팀장님 밑에서 10년을일했다. 이러다가 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으로 카피 쓰는 방법‘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 P253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도 언제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쓸 수 있어 진실로 다행이다. - P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