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은 어릴 때부터 의심이 많았다. "나는 요한계시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종교 전통을 친근하게 조롱하곤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식사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올리자 벤이 유익한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아버지, 제 생각에는 음식통 앞에서 감사기도를 한 번에 끝내면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사이아 프랭클린은 목사가 벤처럼 꾀바른 회의주의자를 절대 받아주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교육의 목적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이제 벤저민의 교육은 무의미했다.
프랭클린의 교육이 도중에 중단되었다는 사실(대다수 건국의 아버지들에 비해 훨씬 부족했다)은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이 사실은 나만큼이나 깊은 벤저민의 한을 설명해준다. 그가 라틴어와 고대그리스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관습을 왜 "돌팔이 문학"이라고 비난했는지 설명해준다. 그가 속물적인 우월의식의 기미만 보여도 알레르기를 일으킨 이유를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기민 - P45

하고 지략이 풍부한 그의 지성을 설명해준다. 벤을 학교에서 빼낸 조사이아 프랭클린의 결정은 지금 돌아보면 벤저민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섭리를 의심하지 말지어다.
삶은 되돌아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앞을 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비디오를 되감듯 우리 삶을 거꾸로 돌아볼 때 섭리를 더욱 잘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섭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섭리의 솜씨에 감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거리는 오로지 시간만이 제공해준다. - P46

벤 프랭클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은 책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쓰고 사고팔고 빌리고 빌려주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선물하고 수집하고 사랑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미국 최초의 관외대출 도서관을 세웠다. 그곳에서 매일 최소 한두 시간 독서했고 "그렇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교에 다니다 도중에 중단된 교육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1790년에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집에 책이 4276권 있었다. 젊은 국가인 미국에서 가장 대규모의 개인 장서중 하나였다.
당시 출판업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구어를 제외하면 출판물이 유일한 정보 전달 매체였고 글쓰기가 유일한 의사소통 형태였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직접 가서 듣거나 관련도서를 읽어야 했다. 무엇을 읽느냐가 곧 그 사람을 정의했고 벤저민 프랭클린만큼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 P48

 어릴 때부터 가능성주의자였던 그는 창조적재능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는 성격적 특성, 바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랭클린에게는 독서가 곧 경험이었다.
프랭클린은 책을 사랑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설명할 때 그는 친구들의 직업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전부 독서 애호가였다고만 말한다. 책은프랭클린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뉴욕의 왕립총독은 벤이 인상적인장서 목록을 가졌다는 말만 듣고 젊은 벤을 만났다.
벤은 책에 너그러워서 빌린 책을 잘 돌려주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선뜻 책을 빌려주었다. 영국인 친구인 조너선 시플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어떤 책을 더 빨리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그 책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난다네." 이런 일이 빈번했다. 한번은 자신이 소유한 신문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자기책을 빌려간 사람은 책을 돌려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싣기도 했다. 관대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벤 프랭클린은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했다. - P53

프랭클린의 가장 기발한 실험 중 하나는 물과 기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기름을 약간 넣으면 격렬한 물살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 날 한 연못에서 그는 의심 많은 남자를만났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합니까? 그러자 프랭클린은 화려한쇼맨십을 선보이며 그 ‘마술‘을 직접 실연했다. 남자는 깜짝 놀라서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선생님." 남자가 버벅대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무엇을 얻어야 할까요?"
"딱 하나, 직접 본 것만 얻어가세요." 프랭클린이 대답했다.
이게 바로 경험주의다. 프랭클린에게 경험은 얄팍하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경험은 지식의 한 형태였다. 책은 우리를 멀리데려가지 못한다. 경험은 다르다. 책의 타당성은 의심할 수 있지만경험의 타당성은 그렇지 않다. 책은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은 그럴 수 없다. - P65

벤은 인쇄소에서 다양한 책뿐만 아니라 런던의 흥미로운 잡지인 애디슨과 스틸의 <스펙테이터> 같은 정기간행물도 접할 수 있었다. 벤은 특별한 독학 방식을 개발했다. 바로 짧은 글을 읽고 문장을 마구 뒤섞은 다음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모방을 통해 배우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었다. 그는 저자의 글쓰기 기법을 흉내 낸 다음 자기만의 미사여구를 추가했다. 훗날 벤은 "선인을 모방하는 것과 선인을 가장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모방은 선인을 영광스럽게 한다. 가장은 선인을 모욕한다.
비록 벤보다 늦은 나이였지만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글쓰기를 배웠다. 먼저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잰 모리스, 피코 아이어, 이탈로 칼비노, 존 스타인벡, 폴 서루. 그리고 그들처럼 문장을 구성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비슷했다. 나는 그들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만들어낸 문장들은 비슷하긴해도 그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 문장들은 내 것이었다. 나는 그들 - P73

을 모방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발표한 글은 뉴저지 매디슨 적십자 지부의 뉴스레터에 실렸다. 헌혈 캠페인이나, 아니면 홍수 대비 요령에 관한 글이었을 것이다. 완성된 결과물을 처음 바라보며 느꼈던 기쁨의 전율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기 내 글이, 나의 것이 내 이름과 함께 실려 있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는데, 프랭클린의 기준에는 노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 벤은 겨우 열두 살 때 두 편의 시를 썼다. 둘 다 바다가 주제였다. 하나는 악명 높은 해적인 검은 수염의 생포와 처형을 노래했다. 다른 하나는 ‘등대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발라드로, 등대지기와 그 가족이 익사하는 음울한 이야기였다. 열두 살에게는 다소 어두운 소재였지만 그때도 벤은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지 잘알았다. - P74

철학자이자 1960년대의 구루였던 앨런 와츠는 이 형이상학적 미로의 출구를 제시했다. 더 이상 진정한 자기라는 환상 때문에초조해하지 말고 "진실한 가짜"가 돼라." 진실한 가짜는 사기꾼도 아니고 착각에 빠진 것도 아니다. 진실한 가짜는 자기 역할, 아니 역할들에 너무 깊이 몰입해서 배역과 사람, 가면과 얼굴이 하나가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가면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가면이 우리 얼굴에 얼마나 잘 맞느냐다. 벤 프랭클린의 가면은 그의 얼굴에 잘 맞았다. 그는 진실한 가짜였다.
프랭클린은 ‘마치‘의 철학을 지지했다. 자기 삶을 마치 좋다는듯이 살아가다 보면 삶은 어느새 정말로 좋아져 있다. 동료 인간을 마치 좋은 사람처럼 대하다 보면 언젠가 그들은 정말로 좋은사람, 아니면 적어도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프랭클린이 자기 가면중 하나인 리처드 손더스를 통해서 한 말처럼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제대로 연기해야 한다." - P87

좁은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니 관광객으로 붐비는 구시가지에서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로 갑자기 내던져진 느낌이다. 가죽 앞치마의 지역이다. 허름한 가게가 보이고("미스터 바 스툴, 재고 수천개보유) 둥근톱과 망치 소리를 박자 삼아 살사 선율이 흐르는 건설 현장이 나타난다. 이들이 프랭클린의 사람들이다. 부자에 전세계적 유명인이 되었을 때도 프랭클린은 본인을 가죽 앞치마로여겼다. "기술을 소유한 자가 재산을 소유한다."
프랭클린과 필라델피아는 꼭 맞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둘 다젊고 다급했다. 둘 다 너그러운 정신과 대단한 수완을 지녔다. 둘 - P106

다 꾀죄죄하고 세련미가 없었다. 둘 다 질서를 열망했으나 얻지는 못했다.
필라델피아는 프랭클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바로 익명성을 제공했다. 형과의 도제 계약을 깨버린 프랭클린은 엄밀히 말하면 도망자였고 체포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그 누구도 어디 출신이고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았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필라델피아 주민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곳은 교회가 삶의 방식을 결정하지 않는 곳이었다. 돈 한 푼없는 꾀죄죄한 도망자들을 환영하는 곳이었다. 선행이 필요한 곳이었다. 이곳은 새롭게 출발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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