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우리는 떠나고 나서야 영혼의 장소에 고마움을 느낀다. 때는 1723년이었고, 프랭클린은 일감이 부족해서 불만족스러웠다. 지루해서 엉덩이가 들썩이기도 했다.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의 인쇄소에서 괴팍한 주인과 함께 일하고 있던 어느 날 펜실베이니아의 부총독인 윌리엄 키스가 옷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인쇄소를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부총독이 보러 온 사람은 키머가아닌 프랭클린이었다. 보스턴에서 온 10대 소년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듣고 근처 술집에서 질 좋은 마데이라 와인을 함께 마시자고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의 필라델피아는 이런 곳이었다. 야심은 가득하지만 학교는 겨우 2년밖에 못 다녔고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는 젊은 도망자가 동네 술집에서 식민지 부총독과 질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그런 곳. 키스는 어린 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직접 인쇄소를 차려 - P111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벤은 배를 타고 보스턴으로 돌아가겸허하게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이 계획이 탐탁지않았던 아버지는 프랭클린의 부탁을 거절했다. 윌리엄 키스 부총독은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프랭클린을 구슬려 런던으로 가라고 권했다. 자신의 신용으로 새 인쇄소에 필요한 장비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1724년 11월 5일 열여덟 살의 벤 프랭클린은 희망찬 런던 (이 이름이 역설적이라는 사실을 그는 곧 깨닫게 된다)이라는 이름의 범선에 올라 델라웨어강이 멀어지며 델라웨어만으로 바뀌고, 델라웨어만이 곧 광활하고 험난한 북대서양으로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도가 거칠고 날씨가 험악했다. 희망찬 런던은6주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영국해협에 진입했다. - P112
벤과 나 사이의 공통점. 우리 둘 다 어린 나이에 여행병에 걸렸다. 나는 1970년대 볼티모어에서, 벤은 1710년대 보스턴에서 나는 프렌드십 공항(현재는 볼티모어-워싱턴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을 고개 들어 바라보며 조종사를 꿈꿨다. 벤은 보스턴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바라보며 선원을 꿈꿨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어린 벤은 아버지가 비좁은 집 벽에 붙여놓은 세계지도 네 개를 들여다보고 여행기를 읽고 보스턴 항구에 내린선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머릿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곧 벤은 아버지의 허락 없이도 여행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평생에 걸쳐 6만7600킬로미터를 이동했다. 체신장 - P112
관 대리로서 북동부 전역을 여행했고 일흔 살의 나이에 몬트리올로 향하는 고된 여정을 떠났다. 일흔여섯에는 마차 여행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는 여행에 자부심이 대단해서 그간 이동한 거리나 자신의 강철 같은 위장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다른승객들이 먹은 것을 배 밖으로 게워낼 때도 그의 위장은 끄떡없었다. 프랭클린에게 여행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매년 여름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 데버라에게 보낸한 전형적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소처럼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잘 지내고 있지만 슬슬 여행이 고파서 며칠 안으로 떠날 예정이오." 프랭클린은 여행 덕분에 청교도 보스턴과여전히 비좁았던 필라델피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여행은 "삶을 연장하는 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는 올바른 마음가짐만 있다면 파리에서 보내는 2주가 다른 곳에서 보내는 여섯 달만큼 길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P113
벤은 여행을 통해 잠시 속도를 늦추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가장 훌륭한 글과 실험은 길 위나 바다 위에서 탄생했다. 그가 식민지 연합이라는 명석하고 통찰력 있는 계획을 떠올린 것은 1754년에 필라델피아에서 뉴욕 올버니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였다. 훗날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유명한 "아브라함 신부의 연설을 쓴 것은 1757년 런던으로 가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할 때였다. - P113
여행이 우리의 지평을 넓힌다는 말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자명한 이치가 대개 그렇듯 이 말은 어느 정도까지만 사실이다. 여행은 실제로 우리의 세상을 확장하지만 그건 여행이 우리의 삶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길 위의 삶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된다. 이것이 내가 여행에 그토록 끌리는 이유다. 나에겐 축소된삶이 더 낫고 더 행복하다. 여행의 은밀한 비밀은 여행이 그럴싸한 농간이자 심리전이라는 것이다. 길 위에 있는 우리는 집에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파리에서 더 낭만적인 사람이 된 것 같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더느긋한 사람이 된 것 같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도시들이 아무리 멋지다 한들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순 없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 P114
우리는 여행지에서 낭만적이거나 느긋하게나, 하여튼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될 자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된다. 우리가 여행 중에 경험하는 모든 것은사실 집에서도 전부 경험할 수 있다. 그저 훨씬 힘들 뿐이다. 약간의 농간과 자기기만은 도움이 된다. 존 애덤스가 "늙은 마술사"라고 불렀던 프랭클린만큼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애덤스의 이 말은 칭찬이 아니었지만(그는 프랭클린의 이중성을 언급한 것이었다) 벤은 분명 이 별명을 듣고 빙긋 웃었을 것이다. 프랭클린은 어릴 때부터 까탈스러운 여행자였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트립어드바이저가 있었다면 프랭클린은 모든 호텔 주인에게 최악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는 극히 사소한 문제로 여관 주인들과 입씨름을 했 - P114
다. 영국에서는 포츠머스 호텔을 편지지마저 조악한 "끔찍한 여판으로 묘사했다. 영국 도시 그레이브젠드는 주민들이 능수능란하게 여행자의 돈을 훔치는 "저주받은 악랄한 곳"이었다. 프랭클린은 그곳에서 물건을 사면 그들이 부르는 값의 절반만 줘도 제값의 두 배를 내게 된다"고 말한 뒤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정말 다행이다, 내일이 떠나는 날이어서."
프랭클린이 언제 부총독 키스의 약속을 의심하게 되었는지는정확히 알기 어렵다. 어쩌면 선장이 영국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는 키스의 신용장을 보여줄 수 없다고 말했을 때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신용장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때인지도 모른다. - P115
런던에서 만난 상인들이 키스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는커녕 그의 이름을 듣고 욕설을 쏟아냈을 때 아마 프랭클린은 본인이 속았음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키스가 자신에게 신용장을주지 않은 이유는 신용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없었다. 벤은 부총독이 왜 기구한 청년을 속이려고 한 건지 궁금했지만 그에게는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당시 벤저민 프랭클린의 입장이 되어보자. 당신은 열여덟 살이다. 인구가 1만 명이 넘는 도시에는 가본 적이 없다. 당신은 믿었던 어른에게 속아 불안한 영혼이 50만 명도 넘는 메트로폴리스, 디포가 말한 "거대한 괴물"에 와 있다. 직업도 돈도 없다. 어떻게하겠는가? 나는 대다수가 어떻게 해서든 필라델피아로 가는 다음 배표를 - P115
손에 넣으리라고 생각한다. 프랭클린은 아니었다. 후츠파(저돌적인 담대함과 배짱을 뜻하는 히브리어-옮긴이)라는 단어를 그가 알았는지, 이 단어가 그때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바로 프랭클린이 보여준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구슬려 인쇄소 일자리를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구했다. 그는 작가이자 철학자인 버나드맨더빌을 비롯해 런던의 가장 저명한 사상가들을 만났다. 그리고자신의 지위를 ‘이국적인‘ 식민지 개척자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신대륙은 18세기의 암호화폐였다. 버지니아의 담배. 자메이카의 럼. 안티과의 설탕, 전부 새로운 것, 그러므로 좋은 것이었다. 모두가 한몫 챙기고 싶어 했다. 위험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위험했지만 투자자들은 질문을 그리 많이 던지지 않았다. 잠재적 수익이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신대륙에서 온 골동품도 수요가 많았다. 자신감이 어마어마하고 이국적인 물건이 가방에 최소 한개는 처박혀 있던 필라델피아에서 온 젊은 인쇄공보다 이 사실을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먼저 그는 이 거대하고 가혹한 도시를 가진 것 없이 홀로 헤쳐 나가야 했다. - P116
어떤 여정은 분자 수준에서 우리를 뒤바꾼다. 우리는 떠날 때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꼭 마법 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마법이 아니다. 무언가 다른 일이 벌어진다. 여행하는 행위. 이동하는 행위는 우리를 뒤바꾼다기보다는 더욱 단단하게 굳힌다. 길 위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기대에서 자유로워지고, 전에는산산이 쪼개져 있던 우리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전체가 된다. 이런 일이 갈라파고스에서 찰스 다윈에게, 남아프리카에서 마하트마 간디에게, 갠지스 강둑에서 조지 해리슨에게 일어났다. 이들 모두 작가 로버트 그루딘이 말한 "돌연한 깨달음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 P131
조금 더 걷다가 멈춰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프랭클린의일기를 읽는다. 필라델피아로의 귀향길을 기록한 이 일기는 귀한자료다. 그는 좀처럼 일기를 쓰지 않았다. 솔직히 약이 오르지만벤을 탓할 순 없다. 그는 자신의 유명 전기 작가인 칼 밴 도렌의말마따나 "철학을 쓰기보다는 철학자가 되는 것을 더 좋아했고", 마찬가지로 여행자로 사느라 너무 바빠서 여행 일지를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여정에서 프랭클린은 시간을 선물받았다. 진정한 선물이 으레 그렇듯 이 선물도 처음에는 선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선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벤 프랭클린의 이 바다 횡단은끔찍하고 지독한 데다 좋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아주 운수 나쁜 여정이었다. 버크셔호가 런던에서 출항한 순간부터 문제가 발 - P136
생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분다 해도 잘못된 방향으로 불었다. 배는 망연자실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느리게 나아갔다. 한번은 배가 뒤로 움직였다. 배에 탄 거의 모두가 (프랭클린은 제외하고 뱃멀미에 시달렸다. 상어 한 마리가 배 주위를 맴돌아서 벤은매일 하던 수영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배 안에는 부주의한 요리사와 카드게임 사기꾼이 타고 있었다. 아주 좋은 점도 하나 있었다. 벤에게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시간을 활용했다. 그는 과학(자연사와 항해술, 수학)뿐만아니라 마음의 문제인 심리학과 도덕에 대해서도 사색했다. 또한그는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때의 일기는 좀처럼 자기내면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 은밀한 남자의 정신과 마음을 보여주는 진귀한 창문이다. 벤이 탁 트인 바다를 느릿느릿 나아가는 배위에서 닫힌 마음을 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속도는 우리를 유혹하지만 진정한 돌파구는 삶이 느려진 순간에, 막간의 휴식 시간에 나타난다. - P137
프랭클린이 살던 시대에 사람들은 이동과 변화를, 변화의 구체적 형태가 아닌 변화라는 개념 자체를 깊이 성찰했다. 진보의 세기였던 18세기의 산물 중 하나는 영원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었다. 현재는 과거보다 더 낫고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을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발전 개념은 적어도 과학과 기술에 한해서는 매우자명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300년 전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파리의 살롱에서 태어난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순조롭게 탄생하지 않았다.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목소리는 철학자 장 자크 루소에게서 나왔다. 그는 "인간 이성에 진정한 진보란 없다. 우리가 얻은 것은 다른 방향에서 보면 우리가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영국해협을 헤엄쳐서 건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수영장을 돌며 기운을 소진할 뿐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40
거리 음악가의 기타 연주와 노래를 듣는다. "오늘 밤 어디서 잘 건가요……." 젊지는 않은데 그래도 실력이 좋다. 그때 생간이 멈춘다. ‘그래도 ‘라니? 왜 나이 들면 능력이 감퇴할 거라고생각하지? 프랭클린의 능력은 감퇴하지 않았다. 적어도 중요한 능력들은 그랬다. 나이 들면 좋거나 나쁜 성격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벤이 와이트섬의 전 총독이었던 조지프 더들리를 만나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어디에서나 멸시받았다. 고약한 사람이 늘 그렇듯 더들리는 자신의 고약함을 감추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프랭클린은 그를 보며 한 가지 자명한 진실을 깨달았다. 그가 평생을 품고 살았던, 그리고 그의 간결한 표현 덕분에 우리 역시 평생을 품게 된 그 진실은 바로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었다. - P141
나는 아무리 악마처럼 간교한 사람도 정직한 사람이라는 이름을무덤까지 가져갈 만큼 간교함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으며 결국이런저런 우연으로 누군가에게 그 본성을 들키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진실함과 정직함은 고유의 독특한 광채가 있어서 결코 완벽하게 위조할 수 없다. 그림으로 똑같이 묘사할 수 없는 불이나 화염과 마찬가지다.
프랭클린도 나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카우즈를 떠났다. 솔직히말하겠다. 나는 지금 나이 듦의 망령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 P141
나이 듦이 무섭다. 죽음도 무섭지만 나이 듦이 더 무섭다. 죽음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어가는 시간은 끝이 있는 경험이다. 자연은 절대 그 시간을 오래 끌지 않는다(느끼기엔 한없이 길 수 있지만). 나이 듦은 얘기가 다르다. 죽어가는 시간과 달리 나이 듦은 오래도록 계속될 수 있고 규칙도 더 불분명하다. 죽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나이 든 사람은…… 뭐지? 더 늙어야 하나? 젊은 척해야 하나? 정답이 뭔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 P142
바다에서 13주라는 길고 긴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프랭클린의 귀에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 들려왔다. 망보는 사람이 외쳤다. "육지다! 육지가 보인다!" 승객들이 갑판 위로 몰려들었다. 곧대다수 승객이 "나무숲처럼 보이는 동부 연안의 윤곽을 분간할수 있었다. 프랭클린은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그의 시력에는 아무문제가 없었다. 그는 "두 방울의 작은 기쁨이 차올라 눈이 흐릿해졌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집에 돌아온 벤 프랭클린의 말이 옳았다. 여행은 실제로 삶을 연장한다. 그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따금 바람이 변덕을 부리고 파도가 거칠게 몰아칠 때, 속도가 휴가를 떠나고 발생 가능한 모든 문제가 현실이 될 때 여행은 삶에 깊이까지 더한다는 것이다. - P147
프랭클린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은 거의 18세기 전체에 걸쳐계몽주의 시대와 나란히 이어졌다. 이 과학적, 철학적 진보의 시기가 거둔 수확이 어찌나 풍성하고 다채로웠는지,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그 산물을 즐기고 있다. 병원에 가거나 국제 엠네스티에돈을 기부하거나 불을 켜거나 커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프랭클린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물론 풍작은 거저 발생하지 않는다. 근면 성실한 농부와 질좋은 씨앗, 풍성한 햇빛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다. 계몽주의의 토양은 말과 글의 형태를 띤 언어였다. 계몽주의 시대는 대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기나긴 대화는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파리의 살롱에서, 학식 넘치는 왕립학회와 애덤 스미스가 여러 경제 이론을 개발한 글래스고의 시끌벅적한 조선소에서 이루어졌다. - P157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는 것은 자기 의견과 신념을 삼킨다는뜻이 아니다. 프랭클린은 의견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의견을 곤봉처럼 휘두르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의 의견은 뽁뽁이에 싸여서 도착했다. 누가 어떤 주제에 관해 의견을 물으면 프랭클린은 보통 상대에게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대화상대를 소외시키기보다는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답하곤 했다. 프랭클린의 입장을 추측할 수는 있었지만 그는 아무리 확고한 의견이 있어도 결코 그 의견 때문에 갈등을 빚지 않았다. 그에게는 우점을 지키는 것이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사사건건 따지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유용한 진실이다. "그들은이따금 승리를 거두지만 본인에게 더욱 유용한 호의는 절대 얻지못한다." 프랭클린은 말했다. 벤에게는 언제나 관계가 문제보다 더 중요했다. - P160
이성의 시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바츨라프 하벨이 "서사의 위기"라고 부른 불안하고 어수선한 시대를 살았다. 오래된 생각은 쓸려 내려가고 새로운 생각은 아직 밀려들지 않았다. 강한 물살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몰아쳤다. 벤은이 흐름에 맞서 싸우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파도를 탔다. 서퍼라면 다들 알겠지만 서핑은 보드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보드 위에 단단히 자리 잡는 것이다. 습관은 벤이 그럴 수 있도록 돕는 접착제였다. 프랭클린에게 습관은 전기만큼이나 강력한 힘이었다. 습관은선한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고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원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선하거나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습관과 선한 습관 모두 오랜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형성된다." - P167
덕 있는 삶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고 프랭클린은 말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덕 있는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악한이라도 이루 말할 수 없는행복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 선하게 행동할 것이다. 최근의 연구가 이 생각을 뒷받침한다. 이타적 활동에 정기적으로참여하는 사람들은 행복과 만족감, 삶의 의미를 더 많이 느낀다. 그러나 미덕의 인기는 점점 줄고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인내와 친절, 감사, 용기, 정직"처럼 미덕이나 품성과 관련된 단어는 20세기 들어 사용 빈도가 가파르게 줄었다. 프랭클린의 터무니없는 발상 중 하나는 전 세계의 덕 있는 사람을 환영하는 미덕 연합당을 창립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비웃음을 살지 몰라도 그는 농담을 한 것이 아니었다. 프랭클린은미덕이 행복뿐만 아니라 진보로 향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 P172
1. 절제, 배부를 때까지 먹지 말 것. 취할 때까지 마시지 말 것. 2. 침묵. 자신이나 타인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삼갈 것. 하찮은대화는 피할 것. 3. 질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둘 것. 모든 일에 시간을 정할 것. 4. 결단. 해야 할 일은 실행하기로 결심할 것. 결심한 일은 반드시실행할 것. 5. 절약. 자신이나 타인에게 도움되지 않는 지출은 하지 말 것. 즉절대 낭비하지 말 것. 6. 근면, 시간을 버리지 말 것. 늘 쓸모 있는 일을 할 것. 불필요한행동은 전부 끊을 것. 7. 진실. 거짓말로 상처 주지 말 것, 순수하고 올바르게 생각할것. 말한 것은 지킬 것. 8. 정의. 남을 다치게 하거나 마땅히 줘야 할 혜택을 빠뜨리지 - P173
말것. 9. 중용. 극단을 피할 것. 아무리 그럴 만하다고 느끼더라도 분노하며 해를 가하지 말 것. 10. 청결, 몸과 의복, 거처의 불결함을 용납하지 말 것. 11. 평정, 사소한 일, 흔하거나 피할 수 없는 사건에 흔들리지 말것. 12. 순결, 성교는 주로 건강이나 자식을 위해서만 할 것. 몸이 굼떠지거나 약해지거나 자신 또는 타인의 평화나 평판을 해칠 만큼 하지 말 것. 13.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따를 것. - P174
벤의 목록에 없는 미덕은 관용이다. 나는 이것이 실수였다고생각하지 않는다. 벤에게 자비는 덕 있는 삶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였다. 왜 13개일까? 고대 그리스의 사추덕인 지혜, 정의, 용기, 절제는 왜 안 될까? 어쨌거나 벤은 단순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말이다. 벤은 그 커다란 미덕을 작은 크기로 자르면 숙달하기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미덕이 13개인 또 다른 이유는 철저히수학적이다. 벤의 계획은 한 덕목당 4주씩 할당하는 것이었고, 그러면 13개 덕목을 완성하는 데 딱 1년이 걸린다. 미덕의 순서도 중요했다. 한 덕목이 그다음 덕목으로 이어졌다. 절제를 맨 처음에 놓은 이유는 "머리가 맑고 냉철해지지 않으면" 나머지 12개 미덕에 덤벼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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