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로마를 방문하고 2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는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땐 예상을 못했지만 두 형은 살아서 출소했고 나는 글쟁이가 되어 대학에 직장도 얻었다. 전에는 언제나혼자서 여행을 떠났지만 15년 정도 전부터는 F라는 동행도 생겼다. 나 개인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1990년대 이후로는 점점 불만 없는일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평안을 찾지 못한다. 내가 이런 안정을 얻은 것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의 덕이라는 의식, 과거 언젠가의 시점에 가혹하고무참한 운명 속으로 떠밀렸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 레비식으로 말하자면, 좀 더 어울리는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실제 내가 아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혹한 운명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러 우연이 겹쳐진 결과로 나자신은 30년가량의 세월을 이렇게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과 인간은 조금도 나아진 바 없다는 생각이 늦가을의 그림자처럼 하루하루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 P19

원래 전설 속 메두사는 여성이지만 여기에 그려진 대상은소년이다.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물론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렸겠지만) 목을 내려친 순간 자기의 표정을 어떻게 자신의 눈을 통해 보고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물며 눈을 맞추면 돌이 되어버린다는 그런 대상을 무엇보다 이렇게 무섭고도 처참한 자화상을 그리고자 했던 자는 대체 어떤 자의식을 지닌 사람이었을까?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와 이탈리아에서 본 아름다운 것들을 회고하려 할 때마다, 그 이상한 이미지가 떠올라 나를위협했다. 막 잘려나간 목이 내지르는 금속성 섞인 외침이 언제나 귓가를 울렸다. 그 후로도 서양 각국의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많이 봐왔지만, 정작 로마는 오랫동안 찾아가지 못했다.  - P25

카라바조의 초기작 중에는 「카드 사기꾼」과 「여자 점쟁이라는 그림이 있다. 모두 우의화지만 현실 그 자체를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400년 이상 전에도(아마 그보다 훨씬 전에도)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에도 로마 체류 중에 계속 이러한 종류의 ‘피곤함이 따라다녔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보르게세 공원 근처에 있던 고급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와 아무 생각없이 영수증을 확인했더니 주문도 하지 않고 먹은 적도 없는샴페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나와 F는 얼굴을 맞대고 "치러야할 대가, 대가......"라고 중얼거렸다. - P31

카라바조는 전 생애에 걸쳐 약 열두 점에 이르는 목이 잘린사람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그렸다. 참수에 매혹된 화가라고 해도 좋겠다. 나폴리에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에 등장하는 골리앗은 자화상이다. 두 눈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왼쪽 눈에는 생명의 잔광이 느껴지지만 오른쪽 눈은 이미 흐릿해져버렸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을 철저히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자아‘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이점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얼마나 혹독하며 무참한가.......
카라바조라는 인물이 잔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타협 없는그의 묘사가 인간의 잔혹함, 현실 바로 그대로의 잔혹함과 길항하고 있는 것이다. - P47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은 이탈리아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가인가와시마 히데아키 선생의 저서 『이탈리아 유대인의 풍경』(이와나미쇼텐, 2004년)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유대인의 흔적을 찾은 후, 프리모 레비의 무덤을 세 번째로 방문하여 여정을 마무리하는것이었다.
프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이었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였다. 레비는 수용소에서 생환한 후 곧바로 이것이 인간인가』(에이나우디, 1947년)라는 제목으로 증언을 묶어냈고 마지막 작품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이나우디, 1986년)를간행한 이듬해 토리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6년 1월, 나는 프리모 레비의 자살 현장이자 마지막까지살았던 집, 그리고 그의 묘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토리노를 방문했다. 그 첫 번째 토리노 여행 경험을 기초로「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박광현 옮김, 창비, 2006년,
원서는 아사히신분샤, 1999년)를 썼다. 이 책의 일본어 원서가 초판을 발행한 지 15년이 지난 2014년에 개정판이 나오게 되어 다시토리노를 찾아 한 꼭지를 덧붙이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 P49

1980년과 1983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후처음으로 유럽 여행에 나섰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부모님 나이를 넘고 말았다. 60세가 지나 다시 이 그림 앞에 서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변함없이 비관적이지만 그 비관의 성질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나 자신이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있고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느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거치고 이토록 수많은 잔혹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관한다. - P53

저녁 무렵에는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 작은 교회의 지하에서 만돌린과 통주저음 연주를 들었다.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의 작품을 비롯한 17~18세기 악곡가운데 총 여섯 곡과 앙코르 한 곡. 머리가 벗어지고 살집이 있던 만돌린 연주자는 시종 우울한 표정이었다. 통주저음 연주자는 선생님같이 착실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아주잘 맞아서 수수하면서도 좋은 연주를 들려줬다. 17세기의 이탈리아, 이 올곧고 우아한 악곡과, 카라바조와 푸생이 그린 잔혹함이 공존하는 세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듯해 이해할 길이 없으면서 또한 매혹적이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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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엽서는 너무나 낱장이고 자신을 보호해줄그 어떤 보호막도 없는 채로 우체통에 담겼다. 속도가 생명인 소식이거나 유실되면 큰일날 말들이라면 애초에 엽서에적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엽서는 태생적 불안을 끌어안은 존재다. 언제든 틈새에 빠지고 빗물에 젖을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잉크로 쓴 글씨라면 더더욱 벼랑 끝이다. 그럼에도 엽서는 번번이 나를 설득시켰다. 한 번만 더 나를 믿어보지 않을래? 내가 너의 확률이 될게.
놀랍게도 그 위태로운 약속들은 미래의 나에게 속속들이 도착해주었다. 심해로 가라앉아버린 시간도 없지는 않았으나 통통배로도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증명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100퍼센트의 환희는 아니어도 0퍼센트의 절망은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귀국 전 마지막 도시에서 보낸 엽서는 여행의 여운과 그에 따른 부작용- 현실 부정으로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나에게 부적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 P86

엽서 위에 엽서는 두둑이 쌓여간다. 그건 당신에게 꺼내보일 내 사랑의 선택지가 늘어간다는 뜻. 이 엽서들이 영영 서랍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어떤 마음은 보내지 않음으로써 완성되기도 하니까. 아무려나 오늘도 나는 당신을 위한 마음을 고른다. 통통배로도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물가에 선다. 밤낮없이 톱니가 돌아가고 있다. - P90

8월 한 달간 곶감 단지에서 곶감을 꺼내 먹듯 존 버거의 책을 아껴 읽었다. 참여중인 독서모임에서 존 버거의 노동 3부작을 함께 읽기로 했는데 그중 첫 권인 『끈질긴 땅」(열화당,2019)부터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평소 책에 밑줄을 긋거나 낙서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어떤 경우에는자발적으로 책에 감상을 적어넣을 때가 있다. 이번 책을 읽고 나서도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다시 책의 맨 앞장을 펼쳤고 ‘어느 페이지를 펼치는 죽음이 있고 울부짖음이있다‘라는 문장을 연필로 적어넣었다. 울부짖음. 내게 이 책은 울부짖음의 동의어로 기억될 것 같다. - P112

존 버거의 소설을 경유하고 난 뒤의 하모니카는 이전과 달랐다. 그의 소설 속 하모니카 연주는 내게 악기와 음악의 본질을 깨우쳐주었다. "모든 음악은 살아남는 일에 관한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바치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악기를다룰 자격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부여하거나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악기에 내재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나의악기로 말미암은 수천수만의 음악이 어디로 향하는가. 누구에게 고이는가. 연주자가 바라봐야 할 지점은 오직 그뿐이라는 것을. - P118

내가 알아차리지못한 위험 신호가 있었을까. 그저 잠시 주변과 연락을 끊고혼자 있고 싶은 거라면 괜찮지만 혹 긴급하게 도움을 필요로하는 상황이라면 어쩌지. 명랑은 자기 이야기를 자주 하는친구가 아니었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것에 서운함을 느낀 적은 없다. 그것이 명랑의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검은 천으로 뒤덮인 상자를 마주한 기분이다. 지금껏 내가 알아온 건 무엇이었나 싶다. 한 사람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그의 생김새나 이름, 주소지를 안다고 해서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나. 나는그의 무엇을 보고 있었나 생각을 털어내려 고개를 젓는다. 명랑에게는 그저 외부와 단절될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되뇐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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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이런 거짓도 있다. 아빠 돌아가시던 날, 막내 외삼촌에겐 두 가지 미션이 있었다. 늦은 밤 병원 주차장에 세워진삼촌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린 자매를 집에 데려다놓고 앨범에서 매형의 영정 사진을 꺼내올 것. 그리고다음날 사돈어르신(할머니)과 어린 조카들을 빈소로 다시 데려올 것. 그날 밤 나는 눈에 졸음이 가득한 채로 가족 앨범이어디 있냐고 묻는 삼촌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돈어르신오늘은 일단 주무세요. 자세한 사정은 내일 말씀드릴게요. 그런 말들이 차례로 오가던 것을 기억한다. 진실을 유예하는 - P36

것도 거짓의 일종일까. 결국 삼촌은 할머니가 빈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아빠의 죽음을 선고하지 않았다. 할머니라고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어느 쪽도 먼저 말하거나 듣지 않은 채로 건너온 그 하룻밤이 내게는 일생일대의 거짓으로 남아 있다. 그 밤, 우리가 머문 곳은 비눗방울로 만들어진 방공호 안이었다. 곧 터져버릴것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안전했다. 돌아오지 않는 막내아들을 불안 속에서 기다렸을 할머니도, 앨범 위치를 묻는 삼촌말에 아빠의 죽음을 직감했다는 겨우 열 살짜리 언니도, 혼곤한 잠에 빠져 있던 어린 나도 그 밤만큼은 거짓의 비호를받았다. 그다음은 예견된 대로였다. 밀려들었고, 휩쓸렸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떠내려갔다. - P37

거짓의 쓸모를 필요와 불필요로 단순하게 가를 수는 없을것이다. 거짓에는 수천수만의 층위가 있음을 삶이 내게 가르쳐주었으니까. 어떤 거짓은 붉고 어떤 거짓은 서글프다. 어떤 거짓은 축축하고 어떤 거짓은 창백하다. 악랄하고 섬뜩한 거짓 앞에선 몸이 굳기도 할 테지만 귀여운 거짓 앞에선 사랑이 건너가기도 할 것이다. 맥주를 마실 수는 없지만 맥주 - P37

한 모금이 절실한 사람에게 논알코올맥주의 존재는 진실을능가하는 거짓이듯이.
고백하자면 딱 한 번, 논알코올맥주를 사 마신 적이 있다. 밤길이 자꾸 나를 유년의 골목으로 데려다놓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 어느 쓸쓸했던 밤의 귀갓길에서 말이다. - P38

다만 무언가를 먹는 일이 그것을 잘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사인 시인의 시 「먹는다는 것」(「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먹는다는 것은 "내 안을 허락하는 행위인 동시에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입을 탐욕스럽게 벌리겠지만,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인 까닭에 "죽음처럼 아찔한 기억을 남긴다고,
나는 내 입안으로 들어온 그 아찔한 죽음들을 잊지 않으려한다. 굴을 먹는다는 건 굴을 둘러싼 바다를, 굴의 탄생과 슬픔, 그늘과 가난까지를 끌어안는 일, 내 몸은 수많은 죽음의 정거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오늘도 식탁에 앉는다.  - P65

칼라디움은 꽃은 거의 피지 않고, 대신 잎의 아름다움을마주하는 관엽식물이다. 개량된 것까지 포함하면 수천 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잎의 색과 모양이 워낙 다채롭기로유명한데 붉은 기가 강하게 도는 것도 있고 허여멀건 창백한쪽도 있다. 처음에는 잎의 아름다움에 홀린 것이 맞지만 여러 날을 함께하다보니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칼라디움은 정말 예민하다는 것. 잎 하나가 지면 잎 하나가 반드시나는데 새 줄기는 이전 줄기 안에서 줄기를 가르며 올라온다는 것. 그걸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안에 있어. 바깥이아니라 안에 있어.
내게 없는 것을 밖에서 억지로 구할 때마다 칼라디움은 말했다. 애쓰지 마. 결국엔 흘러가게 되어 있어. 그건 하엽 지는 시간이란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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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져요.

지난겨울 언니와 나는 짬을 내어 공주를 찾았다. 길게는아니고 다른 일로 지방을 다녀오던 길에 반나절 정도 잠시선로를 이탈한 것이다. 이번 공주 방문에는 소기의 목적이있었다. 이름하여 아바타 여행. 우리 자매를 뒤에서 조종한이는 다름 아닌 엄마였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공주는 엄마와 아빠가 대학 시절을 보낸 곳이자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잡고 달밤을 걷다 평생이고자 약속한 곳. 그로부터 사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시간의 증거인 두 딸은 엄마 아빠의 가장 예뻤을때를 만나러 물살을 거슬러오른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교대 정문으로 들어가면사제동행상이 있으니 일단 거기서 사진을 한 장 찍어. 정문둥지고 왼편에 음악실이 있었어. 음악실에서 풍금 연습하고시험도 보고 그랬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빠를 거기서 처음 만났어. 풍금 시험 낙제해서 재시험 보러 온 몇 학번 위 선배들이 있었는데 아빠가 그중 하나였던 것 같아. - P19

그날 밤의 차창에서 마주한 것은 내 부모의 그러한 시절이었다. 몸은 반환점을 돌아 기차에 실려왔으나 마음은 아직그곳에 남아, 어떤 고통에도 침식당하지 않고 침식당해서도안 되는 얼굴을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그땐 살아 있었던 아빠를.
이 악물고 운동장을 달리던 엄마를.
풍금 재시험을 보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온 무리 속에서 두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내가 저 먼 우주로부터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을 때. - P23

첫 캔은 식전주 느낌으로 써머스비나 버니니 레몬이 좋지. 두번째 캔은 향긋한 IPA. 세번째 캔은 역시 깔끔한 라거여야 할 테고, 마무리는 부드러운 흑맥주로화룡점정을 이루리라. 편의점에서 집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2분. 가끔은 그 2분이 못 견디게 길어 골목에서 맥주캔을 따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목이 말랐던 건지 하루가 말랐던 건지. 그럴 때 맥주는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기쁜날에도 슬픈 날에도 맥주는 맥주로서 맥주의 일을 한다. 맥주의 쓸모에 대해서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쓸모,쓸모는 내게 무척 중요한 단어다. 
용도, 기능, 소용등 유의어는 여럿이지만 쓸모는 그중에서도 가장 품이 넓은 단어 같다. 호주머니의  쓸모, 울타리의 쓸모, 침묵의 쓸모, 밤의 쓸모......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의 쓸모가 있고 그것을일깨우는 것이 쓸모의 쓸모다. 시인에게도 쓸모는 있을 것이다. 시인의 쓸모를 생각하면 이런 문장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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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햇빛 때문이랍니다. 봄 햇살을 잘 받을 수 있는 남쪽 방향으로 향한 겨울눈의 생장호르몬이 더 왕성하게 분비되어 더욱 빨리 자라나 벌어지게 되니 자연스레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해 굽은 것이지요. 알고 보면 간단한일이죠.
백목련의 꽃봉오리 방향을 한번쯤 눈여겨보는 일, 혹은 백목련과 목련을 구별해 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하얀 꽃이 피는목련 종류도 있지만 꽃잎의 겉만 자줏빛이고 안은 하얀 자목련‘이나겉과 안이 다 자줏빛인 자주목련‘ 도 요즘 많이 피어나지요. 우리가 흔히 보는 목련은 몇 종류 안 되지만 목련 집안에 속하는 식물은 그 종류가 세계적으로 400여 종이나 된답니다.
이처럼 사소한 듯하지만 자연에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이 봄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 P14

그러고 보니 봄에 꽃을 피우는 풀들은 유독 키가 작습니다. 아무리 풀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더 크게 자라는 풀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말합니다. 왜 봄꽃들은 키가 작을까요? 바로 살아가는 전략 때문입니다. 세상에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꽃들도 사실은 공정하고 엄격한 자연속에서 서로 경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빛을, 때론 수분을, 때론 양분을...
높이 자란 나무들이 아직 잎을 내지 않아 봄볕이 그대로 쏟아지는 봄의 숲 속은 이 작은 풀들에게 아주 유리한 시기이지요. 그러니 서로 키를 올려가며 볕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데필요한 전략은 키를 키우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다른 경쟁자들이 숲 속에 - P22

출현하기 전에 빨리 꽃을 피우고 결실까지 끝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곤 느긋하게 잎을 내고 천천히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에 저장하기도 하죠. 물론 성격이 급한 식물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백두산 같은 고산지역이나 여름이 아주 짧은 툰드라 지역에 사는 식물들도 작은 키로 짧은 여름동안 일제히 꽃을 피우지요.
그런데 늦은 봄이나 여름철에 꽃이 피는 풀들은 대부분 잎을 내고 키를 충분히 키운 후에 꽃이 달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자라는 경쟁식물끼리 좀더 많은 볕과 공간을 차지하려고 자꾸 키를 높이기도 하고 또는 우거져서 눈에 띄지 않는 꽃을 곤충들이 잘 찾아오게 하려고 색깔을 화려하게 하거나 짙은 향기를 뿜는 등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느라 애를 씁니다. 키 작은 봄꽃들에게는 불필요했던 노력이지요.
그러고 보니 봄꽃들의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면 더욱 어렵고,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하면 성공이 더욱가깝다고 하죠. 사람 살아가는 이치와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 P23

자운영을 아십니까? 토끼풀처럼 생긴 짙은 분홍빛 꽃이 피는 풀 말입니다. 특히 남부지방이 고향인 분들 중에는 그 아름다운 빛깔의 꽃무리를 기억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예전에 그리도 흔했는데 왜 지금은 보기 어려울까요? 우리의 논과 밭이 금비(화학비료)로 덮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운영의 고향은 중국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들어와 심정적으로 우리 꽃이 되어 버린 콩과 식물입니다. 예전에는 벼농사가끝나고 나면 녹비(풀이나 나뭇잎 따위로 만든 거름) 작물로 자운영을심었습니다. 그리 되면 땅이 비옥하게 변해 이듬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의 영양생장을 돕는 것이 질소입니다. 그래서 농작물에는 질소비료를 많이 줍니다. 공기 중에는 질소가 80%나있어 가장 많지만 식물들이 이용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무용지물이지요. 그 - P39

런데 자운영을 비롯한 콩과식물의 뿌리에 혹처럼 붙어사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에 있어 사용하지 못하던 질소를 쓸모 있게 고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운영과 뿌리혹박테리아는 서로 공생합니다. 자운영이 광합성으로 만들어 낸 탄수화물을 얻어 쓴 대신 뿌리혹박테리아는 자운영에게 필요한 흙 속의 질소를 고정하여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 질소가 비료의 역할을 하므로 보통농사를 짓고 나서 가을이 되면 자운영 씨앗을 뿌립니다. 싹이 터서 겨울을 난 자운영이 이듬해 봄에 잘 자라 오르면 갈아엎고 모를 심게 됩니다.
요즘은 아름다운 자운영의 꽃 무리를 볼 수 없는 것도 아쉽지만, 제초제와 화학비료로 죽어가는 땅이 아닌, 흙 속의 작은 박테리아와 자운영이 지혜롭게 서로 도우며 기름지게 만든 살아있는 땅에서 키웠던 그때의 깨끗한 곡식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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