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햇빛 때문이랍니다. 봄 햇살을 잘 받을 수 있는 남쪽 방향으로 향한 겨울눈의 생장호르몬이 더 왕성하게 분비되어 더욱 빨리 자라나 벌어지게 되니 자연스레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해 굽은 것이지요. 알고 보면 간단한일이죠. 백목련의 꽃봉오리 방향을 한번쯤 눈여겨보는 일, 혹은 백목련과 목련을 구별해 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하얀 꽃이 피는목련 종류도 있지만 꽃잎의 겉만 자줏빛이고 안은 하얀 자목련‘이나겉과 안이 다 자줏빛인 자주목련‘ 도 요즘 많이 피어나지요. 우리가 흔히 보는 목련은 몇 종류 안 되지만 목련 집안에 속하는 식물은 그 종류가 세계적으로 400여 종이나 된답니다. 이처럼 사소한 듯하지만 자연에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이 봄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 P14
그러고 보니 봄에 꽃을 피우는 풀들은 유독 키가 작습니다. 아무리 풀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더 크게 자라는 풀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말합니다. 왜 봄꽃들은 키가 작을까요? 바로 살아가는 전략 때문입니다. 세상에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꽃들도 사실은 공정하고 엄격한 자연속에서 서로 경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빛을, 때론 수분을, 때론 양분을... 높이 자란 나무들이 아직 잎을 내지 않아 봄볕이 그대로 쏟아지는 봄의 숲 속은 이 작은 풀들에게 아주 유리한 시기이지요. 그러니 서로 키를 올려가며 볕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데필요한 전략은 키를 키우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다른 경쟁자들이 숲 속에 - P22
출현하기 전에 빨리 꽃을 피우고 결실까지 끝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곤 느긋하게 잎을 내고 천천히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에 저장하기도 하죠. 물론 성격이 급한 식물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백두산 같은 고산지역이나 여름이 아주 짧은 툰드라 지역에 사는 식물들도 작은 키로 짧은 여름동안 일제히 꽃을 피우지요. 그런데 늦은 봄이나 여름철에 꽃이 피는 풀들은 대부분 잎을 내고 키를 충분히 키운 후에 꽃이 달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자라는 경쟁식물끼리 좀더 많은 볕과 공간을 차지하려고 자꾸 키를 높이기도 하고 또는 우거져서 눈에 띄지 않는 꽃을 곤충들이 잘 찾아오게 하려고 색깔을 화려하게 하거나 짙은 향기를 뿜는 등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느라 애를 씁니다. 키 작은 봄꽃들에게는 불필요했던 노력이지요. 그러고 보니 봄꽃들의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면 더욱 어렵고,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하면 성공이 더욱가깝다고 하죠. 사람 살아가는 이치와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 P23
자운영을 아십니까? 토끼풀처럼 생긴 짙은 분홍빛 꽃이 피는 풀 말입니다. 특히 남부지방이 고향인 분들 중에는 그 아름다운 빛깔의 꽃무리를 기억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예전에 그리도 흔했는데 왜 지금은 보기 어려울까요? 우리의 논과 밭이 금비(화학비료)로 덮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운영의 고향은 중국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들어와 심정적으로 우리 꽃이 되어 버린 콩과 식물입니다. 예전에는 벼농사가끝나고 나면 녹비(풀이나 나뭇잎 따위로 만든 거름) 작물로 자운영을심었습니다. 그리 되면 땅이 비옥하게 변해 이듬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의 영양생장을 돕는 것이 질소입니다. 그래서 농작물에는 질소비료를 많이 줍니다. 공기 중에는 질소가 80%나있어 가장 많지만 식물들이 이용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무용지물이지요. 그 - P39
런데 자운영을 비롯한 콩과식물의 뿌리에 혹처럼 붙어사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에 있어 사용하지 못하던 질소를 쓸모 있게 고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운영과 뿌리혹박테리아는 서로 공생합니다. 자운영이 광합성으로 만들어 낸 탄수화물을 얻어 쓴 대신 뿌리혹박테리아는 자운영에게 필요한 흙 속의 질소를 고정하여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 질소가 비료의 역할을 하므로 보통농사를 짓고 나서 가을이 되면 자운영 씨앗을 뿌립니다. 싹이 터서 겨울을 난 자운영이 이듬해 봄에 잘 자라 오르면 갈아엎고 모를 심게 됩니다. 요즘은 아름다운 자운영의 꽃 무리를 볼 수 없는 것도 아쉽지만, 제초제와 화학비료로 죽어가는 땅이 아닌, 흙 속의 작은 박테리아와 자운영이 지혜롭게 서로 도우며 기름지게 만든 살아있는 땅에서 키웠던 그때의 깨끗한 곡식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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