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BAJO) 러시아, 1899. 4. 22.-1977. 7. 2.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면서 동시에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십대 초반 소녀에 대한 중년 남자의 성적 집착을 묘사한 ‘롤리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곤충학자이자 나비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180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다방면에 걸쳐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나, 1917 년 러시아혁명으로 망명한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스위스를 전전하며 평생을 집 없는 떠돌이로 살았다. 첫 망명지인 영국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며 러시아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22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블라디미르 시린‘이란 필명으로 러시아어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마셰카』, 『킹, 퀸, 잭」, 루진의 방어』 등으로 가장 뛰어난 젊은 망명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1936년 『절망』을 출간하며 확고한 작가적 명성을 얻는다. 나보코프의 러시아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는 『절망은 그의 서사와 유희의 마법이 충만하게 펼쳐진 초기 대표작이다. 1937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다가 1940년 첫 영어 소설 ‘세바스찬 나이트의 참 인생을 들고 미국으로 재차 망명길에 오른다. 코넬 대학과 하버드대학 등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시린‘이 아닌 ‘나보코프라는 이름으로 미국 작가로서의 삶을 개척한다. 1955년 ‘롤리타 신드롬‘을 일으킨 소설 『롤리타』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강의를 접고 문학에 전념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지만 여전히 집 없는 떠돌이였던 그는 1977년 스위스의 작은 휴양도시 몽트뢰에서 생을 마감했다.
작가로서 두드러지거나 눈에 띄지 않는 비밀스러운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보코프 자연스러운 어휘의 부재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고백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가진 두 가지 언어 중 하나인 모국어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지요. 그 이유는 제게 러시아어를 쓰는 독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940년 영어를 쓰기 시작한 이후 러시아어라는 언어가 주는 모험의 흥분이 점차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수단인 영어는 항상 사용하고 있지만, 뻣뻣하고 인위적입니다. 일몰이나 곤충을 묘사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겠지만, 창고와 가게 사이의 가장 빠른 길을 필요로 할 때, 통사적인 빈곤과 자국 언어 감각의 결핍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래된 롤스로이스를 평범한 지프보다 항상 선호하지는 않지요. - P139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나보코프 좀 더 일찍 미국에 오지 못한 일입니다. 제게는 1930년대에 뉴욕에서 살았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때 제 러시아어소설들이 번역되었더라면 소련이라면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교훈을 주었을 겁니다.
당신이 지금 누리는 유명세에 큰 타격을 입으셨나요?
나보코프 『롤리타가 유명한 것이지 제가 유명한 게 아니지요. 저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무명의, 그것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에 불과하지요. - P140
허버트 골드 Herbert Gold 미국의 소설가이다. 풍자와 향수어린 작품이 특색이다. 작품으로 그러니까대담하여라, ‘우리의 앞날」, 「조상들」 등이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후임으로 잠시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 P140
초이스 캐럴 오츠 미국, 1938. 6,16.~
현재 미국의 가장 강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이다. 1964년첫 소설 ‘아한 추락과 함께 발표한 후 지금까지 10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소설, 시, 신문, 비평, 희곡 등 분야를 넘나들이 활동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춰 평단과 일반 독자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
1938년 미국 뉴욕 주 록포트에서 태어났다. 시러큐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 때 대학 단편소설 공모에 ‘구세계에서」로 입상했고, 위스콘신 대학교에서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디트로이트 대학교에 재직했고, 1968년부터는 캐나다의 윈저 대학교에서, 1978년에는 프린스턴 대학교로 옮겨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1964년 아찔한 추락과 함께 데뷔한 후 50편이 넘는 장편소설과 1000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했다.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찬 20세기 후반 인간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해왔다. 1970년 그들로 전미도서상, 1996년 좀비로 브램스토커 상, 2003년에 문학 부문의 업적으로 커먼웰스 상과 케니언리뷰 상을, 2005년 폭포로 페미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블랙워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블론드로 세 차례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2006년에 시카고 트리뷴 평생공로상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단편 「화석 형상」으로 세계환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현재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멀베이니 가족』, 『여자라는 종족. 사토장이의 딸』 등이 있다.
소설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대기하던 다른 소설이 새로온 일이 되나요? 아니면 보다 충동적으로 선택하시나요?
오츠 완성하고 나면 그 작품을 일단 치워두고 다른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또 다른 장편소설을 시작하지요. 장편을 완성하고 나면 먼저 써둔 작품으로 돌아가서 많은 부분을 다시씁니다. 그러는 동안 두 번째 소설은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지요. 때로는 두 편을 동시에 작업하기도 합니다. 대개 한 편의 소설을작업하는 중에는 다른 한 편이 배경으로 밀려나지만요. 이런 식의글쓰기 리듬, 즉 쓰고 수정하고 쓰고 수정하는 방식이 저에게 아주잘 맞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정이라는 예술에 푹 빠질 것 같습니다. 어쩌면 수정 작업과 사랑에 빠져서 소설 쓰기 자체를 포기할까 봐 두려워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지요. 예를 들어 다음 소설인지독한 사랑을 차일드올드』와 비슷한 시기에 썼는데 차일드올드를 완성한 뒤에 수정했지요. 그리고 지난봄과 여름에 다시 수정했습니다. 제가 글을 빨리 또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관계부터 매우 까다로운 수정까지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 수정은 확실히 예술 그 자체이거나, 그렇게 되어야만 해요. - P152
하지만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스스로를 망명객으로 느끼지 않나요? 고향인 뉴욕 주의 밀러포트로 돌아가서 근처 록포트를 방문할 때면, 너무나 많이 변해서 제가 이방인처럼 여겨집니다. 시간의흐름 자체가 우리를 망명객으로 만든 거지요. 그 상황은 사실 희극적입니다. 변화하는 지역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힘을 확인해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걸 비극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윈저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고 안정된 곳입니다. 그리고남편과 저는 이상하게도 이곳이 어떤 곳보다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 P156
당신 작품의 유머나 패러디에 대해서는 비평에서 거의 다루어진 적이 없지요. 비싼 사람들」이나「배고픈 유령들이나 원더랜드」의 일부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신 작품은 부조리한 유머의 면에서 마치 해럴드 핀터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핀터에게서 영향을 받았나요? 스스로를 희극 작가라고 생각하시나요?
오츠 제 작품에는 처음부터 일종의 유머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억제되고 담담하게 그려졌죠. 핀터가 희극적이라고는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사실 비극을 쓰지 않았나요? 이오네스코를 좋아한 적이 있습니다. 카프카도요. 디킨스도요. (카프카는 디킨스에게서 어떤 인상을 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물론 그는 다른목적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지만요.) 저는 영국의 풍자가 마음에 듭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부조리 작품이나 ‘우울한‘ 유머나 ‘냉소적인‘ 유머 같은 것들이죠. 비극적이지 않은 것은 희극적인 정신에 속합니다. 소설은 비극과 희극 양자에 의해서 자양분을 얻고 양쪽을 다 탐욕스럽게 받아들이죠. - P163
여성 작가로서의 이점은 무엇일까요?
오츠 이점이라고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요.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비평가들이 언론에서 작가들을 일류, 이류, 삼류로 나누는 목록에 진지하게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에 대한 의식도 별로 없고 관심도 없거든요. 헤밍웨이나 그의 아류인 노먼 메일러가링 위에서 다른 재능 있는 사람과 전투를 벌인다고 말할 때 그것이무슨 의미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예술작품은 결코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살아 있는 사람과도 경쟁하지 않습니다. - P176
여성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일종의 불가시성을 허용합니다. 램프 엘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 Invisible Man 처럼요. (지금 몇벽 쪽에 달하는 제 긴 일기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여자‘입니다. 여성은 너무나 기계적으로 외모에 의해서 판단되기 때문에 그 안에 숨을 수 있는 이점이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그럴 거라고 상상하는 것과 달리, 절대적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제 외모와 아무런 연관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과연 어떤 남자ㅡ작가든 아니든ㅡ가 이런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궁금해하곤 했지요.)
남성의 시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 인물만큼 남성 인물에게도 공감을 느낍니다. 저는 여러 측면에서 몇몇 남성 등장인물과 기질적으로매우 유사합니다. 예를 들면 ‘아침의 아들』에서 네이선 비커리가 그렇습니다. 그들과 절대적인 유대감을 느낍니다. 내면이 중요한 법이지요. - P176
글쓰기를 즐기시나요?
오츠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아주 좋아하지요. 한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에 몰두하기 전에는 어쩐지 불안하고 목적을 잃은듯하고, 바보같이 감상적이 되면서 세상과 연결이 끊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글 쓰는 사람들 전부는 일종의 공동체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거라는 확신으로 작업합니다. 제 역할이 글을 쓰는 것이든 읽는것이든, 글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든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플로베르는 신비주의자들이 신 안에서 서로 사랑하듯 우리는 예술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창작을 존중함으로써, 서로를 깊이 연결하면서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글쓰기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수없이 많은 활동 중 하나에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 중 몇몇이 마치 운명인 듯 그것에 몰두하 - P177
게 되는 그런 일처럼 보입니다. 저는 무의식의 과정과 지혜에 많은믿음을 가지고 있고, 자아의 판단과 불가피한 의심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결코 그런 의심에 대답하려고 얽매이지 않습니다. 삶은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에너지는 창조력이지요. 개인으로서의 작가는 사라져도 에너지는 예술작품에 담기고, 그 안에 갇혀서 누군가시간을 내서 다시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릴 겁니다. - P178
로버트 필립스 Roler Philips 미국의 시인이자 휴스턴 대학 교수이다. 그는 작가이자 다수의 시, 소설, 시비평 도서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 P178
도리스 레싱 페르시아(현재 이란) 1919, 18. 22.- 2013. 11. 17
전후의 가장 중요한 영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는 인종차별부터, 페미니스트 활동으로 이어진 여성 권리의 문제, 사회에 있어 가족과 개인의 역할까지 20세기의 다양한 문제들에 집중되어 있다.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 황금노트북으로 20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19년 이란의 커만샤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함께 남아프리카로 이주하여 이후 런던에 자리 잡기까지 25년정도를 로디지아(현재 짐바브웨)에서 지냈다. 영국인으로서 영국의 식민지인 로디지아의 대농장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그녀에게 인종차별과 여성의 권리 문제 이념간의 갈등 등에 깊이 천착하게 했다. 1942년 공산당에 참여했고, 1950년에 첫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했다. 이후 시, 희곡, 소설을 포함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페미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혀왔다. 생존자의 회고록』, 『마사 퀘스트」, 「황금 노트북』을 비롯해 후기작인 ‘선한 테러리스트」, 「다섯째 아이까지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서머싯 몸 상, 메디치 상, 유럽문학상, W. H 스미스 상, 데이비드 코언 영국문학상 등20세기 후반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는 오랫동안 후보로 이름이 거론돼오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어릴 때 주변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셨나요?
레싱 아닙니다. …… 아프리카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에게는 그들과 어울리는 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의 삶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었지요. 어릴 때 경이로울 정도로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사는 것은 백인 아이에게는 결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현재 저는 영국에 있는 ‘스토리텔러 대학‘이라는 곳에 소속되어있습니다. 3년 전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스토리텔링‘을 예술로 부활시키려고 했지요. 그 계획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후원자일 뿐이고, 몇몇 모임에 나갔습니다. - P189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농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곳에 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줘야 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를 마치 집단적 대화 치료처럼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진짜 이야기꾼도 몰려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왔지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전통을 물려받은 이야기꾼들이거나 그 전통을다시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그렇게 계속되었습니다. 활기 넘쳤어요. 런던이나 다른 곳에서 스토리텔링 수업이 진행되면 훌륭한 청중들이 참여합니다. 인기 드라마를 보거나 - P189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굳이 그 수업에 온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요.
영국에 돌아왔을 때 어떠셨습니까? J. G. 밸러드는 상하이에서 처음 돌아왔을때 아주 답답했고 모든 게 너무나 작고 뒤처진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레싱 아. 맞아요! 끔찍하게 답답했습니다. 모든 게 아주 뿌옇고 축축하며 갇혀 있는 느낌이고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았지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런던이 아주 예쁘다고도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조직화되어 있지요. 영국에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손대지않은 풍경은 전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도 야생 그대로의 풀밭은 없을 겁니다. - P190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 아프리카의 풍경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이나 소망이 있으신가요?
레싱 그러고 싶어도 그 풍경 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안그렇겠어요? 과거 같지 않을 테니까요. 짐바브웨 독립 2주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저는 과거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이 아주 분명했습니다. 현재 제 역할은 일종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저는 ‘성공한 동네 소녀‘였거든요. 백인 정권하에서 저는 아주 나쁜 아이였습니다. 아무도 저에 대해서 좋게 말하지 않았어요. 제가얼마나 나쁜 애로 여겨졌는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은 사람이겠지요.
흑인들에 대한 태도 때문에 나쁜 사람으로 여겨졌나요? - P190
레싱 저는 백인 통치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인종장벽이 심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인종 장벽‘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지요. 당시 흑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하인들과의 관계뿐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의식 있는 아프리카인들과 만나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흑인들은 통행금지 때문에 아홉 시면 집에들어가야 했지요. 특히 흑인들은 가난하고 우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 P191
요즘에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동시대 소설을 읽으시나요?
레싱 엄청 많이 읽습니다. 고맙게도 독서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인데, 그렇지 않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출판사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보내주거든요. 일주일에 여덟, 아홉에서 열권 정도의 책을 받는데 아주꼼꼼하게 읽는 편이기에 크게 부담이 됩니다. 첫 번째나 두번째 장만 읽고 나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음에들면 계속 읽어나갑니다. 불공평하긴 하지요. 독자로서의 제가 기분이 나쁜 상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일에 완전히 빠져 있어서 몰입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존경하는 작가들의 최근 책은항상 읽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들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책을 읽고 있는 셈이지요. - P200
최근에 논픽션을 쓰기 시작하셨지요.
레싱 네,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한 짧은 책을 썼습니다. 그곳에 가서 난민 캠프를 둘러보았어요. 대개 남자들이 신문기사를 쓰러 그곳에 갑니다. 그런데 이슬람 사회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했지요. 책제목은 『바람이날려보낸 우리의 말입니다. 이 말은 그들의 전사 중 한 명이 한 말을 인용했습니다. "당신들에게 도움을 달라고 외치지만 바람이 우리의 말을 날려보냅니다."라고요. - P212
잠시 동안 방문했을 뿐인 국외자로서 그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지 염려해보신 적이 있나요?
레싱 신문기자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글에 어떤 권위가 있을지 걱정하나요? 저는 대부분의 언론인보다 이 여행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람들을 알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해 동안 연구했고 (책에서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밝혔지요.) 페르시아어를 아는 사람들과 살았지요. 이 점은 다른 언론인들이 갖지 못한 유리한 점입니다. - P212
이 르포에서 사용한 방법 때문에 미국 저널리스트들에게 비판받으셨지요. 그들은 당신이 친아프가니스탄 조직에서 후원받아서 그 여행을 했다고 비난하더군요. 여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레싱 좌파 쪽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신경을 거슬리는 비판입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길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비판이지요. 책에서 그 여행이 정치 조직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걸 분명히 밝혔거든요. 그 여행은 저와 친구들이 만든 아프가니스탄 구호 단체를 위해서 간 겁니다. 그 단체는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몇 사람을 도왔지만 돈을 대준 것은 아닙니다. 전 제 여행 경비를 댔고, 함께 간 사람들도 자신의 경비를 지불했지요. 아프가니스탄 구호 단체는 망명 중이거나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투쟁 중인 그곳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런던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고문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 개인적인 친구들입니다. ‘정치적 친구들이 아니라요. 아프가니스탄 구호 단체는 운영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습니다. 이곳과 파키스탄에서 있는 기금 모금은 전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거든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아무도 아프가니스탄 구호 단체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제외하고는요. - P213
토머스 프리크 Thomas Frick 작가, 편집자, 출판 컨설턴트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으며 단편소설과 에세이로 여러 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 ‘아이언 보이가 있다. - P21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1936, 3, 28,~
마르케스 푸엔테스 등과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편집자와 저널리스트 등으로 일했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났다. 1952년 열여섯살에 문단에 데뷔한 뒤, 리마의 산마르코스 대학교에서 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에스파냐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도시와 개들을출간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1966년 발표한 녹색의 집으로 페루 국가소설상, 에스파냐 비평상, 로물로 가예고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1994년 에스파냐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다. 2005년 미국과 영국의 유명 시사 잡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명‘에 뽑혔고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 정치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대통령 선거에도출마했다. 요사는 남미의 저항 작가로 불릴 만큼 초기에는 군사 독재를 비판했고, 1960년대 사회주의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을 옹호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우파로 정치적 입장을 바꾸어 신자유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나는 훌리아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세상 종말 전쟁」,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염소의 축제, 나쁜 소녀의 짓궂음등의 소설과 자서전 『물속의 물고기』 등이 있다.
그가 만들어낸 세상이 가장 독창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독창성을 제쳐놓더라도 그는 명백히 자신의 것이 틀림없는 거대한 상상력과 문화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보르헤스만의 언어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언어는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을 단절하고 새로운 전통을 열었습니다. 에스파냐어는 원기 왕성하고, 무성하게 퍼져나가고, 그 의미가 매우 풍부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세르반테스로부터 오르테가 이 가세트, 바예잉클란이나 알폰소 레예스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어를 사용한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장황합니다. 그렇지만 보르헤스는 그 반대입니다. 그의 언어는매우 명료하고 경제적이고 정확하지요.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작가 중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의 수만큼 많은 사상을 갖고 있는작가는 보르헤스뿐입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 P225
네루다는 인생을 찬미했습니다. 회화, 예술, 책, 희귀본, 음식과 음료 등 모든 것에 열광적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그에게는 거의 신비 체험이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지요. 물론 스탈린을 찬양했던 그의 시를 잊을 수만 있다면요. 그는 봉건제도와 흡사한 세계에 살았는데, 여기서는 모든 것이 인생의 즐거움과 넘칠 만큼 많은 달콤함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지요. 제게 이슬라 네그라‘sla Negra 에서 주말을 보낼 수 있는 멋진행운이 있었습니다. 아주 놀라웠어요! 그의 주변에는 사교적인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듯합니다. 항상 요리하고 일하는 사람들과 많은 손님들이 득실거렸습니다. 매우 재미있고 대단히 생기 넘치지만, 지적인 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모임이었지요. 네루다는보르헤스와는 정반대였습니다. - P227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떻습니까?
요사 우리는 친구였습니다. 2년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이웃으로 지냈습니다. 같은 지역에 살았어요. 나중에는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멀어졌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사상적 신념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개인적인 문제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사상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그의 정치관은 글처럼 양질의 것이 아닙니다. 작가로서 그의 작품을 매우 숭배한다는 말씀만 드리지요.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 대해 600쪽에 이르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만큼 그를 개인적으로 존경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의 정치관도요. 그건 그리 진지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기회주의적이며 여론 지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P229
책의 주제를 고르시나요? 아니면 주제가 당신을 선택하나요?
요사 저의 경우 주제가 작가를 선택한다고 믿습니다. 쓰기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 근본적인 경험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설명하기 힘듭니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리마에 있는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제게 글을 쓰고 싶은 진정한 욕구 또는 강렬한 욕망을 주었습니다. 커다란 트라우마가 될 만한 경험이었지요. 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어린 시절이 끝났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제조국이 매우 폭력적인 사회이며 쓰디쓴 괴로움으로 차 있고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인 파벌로 가득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여 종종 잔인한 싸움에 휘말린다는 걸 재발견했지요. 이 일이 제게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제게 창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커다란 욕구를 주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 P230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할 때 플롯의 전반적인 윤곽은 이미 잡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플롯을 끝까지 고수해본 적은 없습니다. 플롯은 글을 써나가는 동안 완벽해지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과정이 저로 하여금 글을 시작하게 만듭니다. 소설을 시작할 때는 문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같은 장면을 쓰고 또 쓰면서, 완벽하게 반대되는 상황을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원재료가 저를 돕기도 하고 확신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가 글을 쓰는 과정 중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입니다. 그 단계에 있을때 저는 매우 신중하게,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나아갑니다. 초고는 진짜로 걱정을 많이 하면서 써요. 초고를 마치는데 가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 P233
『세상 종말 전쟁』의 초고를 마치는 데 거의 2년이나 걸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단 초고를 끝내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때 저는 제가 마그마라고 부르는것에 이야기가 묻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혼돈 상태이지만 소설은 거기 죽은 요소들의 덩어리 속에, 즉 나중에 사라질 쓸모없는 장면과 다른 관점과 다른 등장인물들에 의해 여러번 반복되는 장면 속에 묻혀 있지요. 그때 소설은 매우 혼돈스럽고, 저에게만 의미가 통하지요. 그렇지만 이야기는 바로 그곳에서 태어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야기를 나머지로부터 떼어내고, 정돈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품을 쓰면서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그때 이후로는 초고를 쓸 때 느꼈던 불안감이나 긴장감을 갖지 않고 훨씬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 자체라기보다는 - P233
쓴 글을 고쳐 쓰고, 편집하고, 수정하는 일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글쓰기의 가장 창조적인 부분입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언제 끝낼 수 있을지 결코 알지 못합니다. 몇 개월 안에 끝낼 수있다고 생각했던 글이 수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끝내지 못하면 그것이 저를 압도할지도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소설 쓰기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물이 날 지경이되었을 때,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이야기 쓰기가 끝나지요. - P234
글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다른 직업을 고르려 했지요. 그 결정이 제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후로 저는 글을 쓸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그 변화 덕분에 문학이 단순한 직업이라기보다 크나큰 열정으로 여겨졌습니다.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이 제 직업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더라도, 저는 여전히 계속해서 글을 썼을 겁니다. 문학은 삶의 방편Modus Vivendi 그 이상입니다. 작품에 헌신하려는 결정, 여러 고려 대상중 하나로 보는 대신에 문학에 모든 것을 바치려는 결정은 작가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을 다른 것에 헌신한 인생을 보완해주거나 장식적인 활동으로, 혹은 명성과 권력을 얻는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 P241
문학은 복수합니다. 자유롭거나 대담하거나 독창적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에 절대적으로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은 말이지요. 그런 결심을 했을 때, 저는 힘든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으로는 잘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잘사는 건 기적과 같은 일로 보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을쓰기 위해 제 삶에서 근본적인 어느 하나 희생한 건 없습니다. 매우 좌절하고 불행했을 때는 글을 쓸 수 없을 때였습니다. 유럽에 가기전 페루에서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기 때문에 어떤 직업이든 얻어야 했습니다. 한때는 일곱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글 쓰는 건 불가능하더군요. 일요일, - P241
공휴일에 글을 썼지만 대부분은 문학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따분한일을 해야만 했고 끔찍할 만큼 낙담하였습니다. 요즘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때로, 지금은 제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면서 살며, 더군다나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잘살고 있다는 생각에 경탄을금치 못합니다.
글을 써서 부자가 되셨나요?
요사 아니요, 저는 부자가 아닙니다. 작가와 사장의 수입을 비교해보거나, 한 전문 분야에서 유명해진 사람, 페루 투우사나 최고 운동선수의 수입과 비교해보면 작가는 여전히 수입이 많은 직업이 아닙니다. - P242
몇 편의 글에서 매우 염세적으로 보이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1982년에는 "문학은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 작가는 정치의 위험한 계획에 맞서서 이를 제대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정치에 연계되어야만 한다."고 쓰셨습니다. 정치는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염세적인 비전이 아닌가요?
요사 아닙니다. 문학은 정치보다 훨씬 지속적으로 작동한다는 것과 작가는 작가로서 실패하지 않고 정치가로서도 실패하지 않은 채 문학과 정치를 동등한 지위에 둘 수는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문학이지속적인 면이 있다면, 정치적 행동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작가는 현재를 위한 책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작품이 미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그 역할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행동은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언제나 정치적 풍토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요. - P251
그리고 쓴 글이나 한 일에 의해 정치에 연루되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특히 페루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고, 경제적이나 사회적 상황이 가끔 극적인 면을 갖는 나라에서는 작가가 정치에 관련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작가가 이런저런 방식으로문제 해결에 공헌하기 위해 비판하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상상력을 활용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예술가들처럼 작가들 역시 다른 누구보다 자유를 강하게 감지합니다. 때문에,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는 작가들이 자유의 중요성을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우리 모두는 정의가 지배하길 바라 - P251
는데, 정의는 결코 자유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극좌로부터나온 전체주의자나 극우로부터 나온 반동주의자들이 어떤 경우엔자유가 사회정의나 국가 안전이라는 명분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들은 이 점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매일매일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은 공정한 임금이나 일할 권리처럼 그들의 자유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지켜야만 합니다. - P252
작가로서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장점과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사 제일 큰 장점은 인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열심히 일할수 있고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결점은 자신감 부족입니다. 이것이 저를 엄청나게괴롭힙니다. 소설 한 권을 마치는 데 3년 내지 4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저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전혀 나아지지 않던데요. 오히려 점점 더 자기 비판적이 되고 자신감은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보면 허영심은 없는 듯합니다. 글을 쓰려는 의지는 매우 확고합니다.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제 본성입니다. 일에 따라서 인생을 살고 있지요. 글을 쓰지 못한다면, 한 점의 의구심도 없이 제 머 - P253
리를 날려버릴 것입니다. 저는 더 많은 책을 쓰고 싶고 더 좋은 책을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흥미롭고 놀라운 모험을하고 싶습니다. 제 전성기가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허락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증거를 들이밀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사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행과 싸우는 한 방법이지요. - P254
수재너 휴뉴웰susanman Hunnewel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 타임스에서 일했고, 파리 리뷰』에서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리카르도 아우구스토 세티 Ricardo Augusto Set)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 ‘호르날 두 브라질의 기자로활동했고, 브라질 4대 신문에 수백 개의 기사를 실었다. 1984년 「월드 프레스 리뷰의 올해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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