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 폴란드 1927.10. 16.~
소설, 시, 희곡 등 다방면의 작품을 썼다. 직설적인 시대 비평이 특징이다. 대표적 장편소설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폴란드의 랑푸우르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슬라브계 소수민족인 카슈바이인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 청소년기를 보낸 그라스는 후일 십 대 시절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54년 서정시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같은 해 새로운 문학적 방향을 모색하는 전후청년 문학의 대표적 집단인 ‘47 그룹‘에 가입했고, 1959년 양철북』을 출간했다. 이후 양철북』으로 게오르크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문학상을 수상했다. 1963년 개들의 시절을 출간해 양철북」, 「고양이와 쥐까지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미국,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감독했으며 국부마취」, 「납치」, 「텔크테에서의 만남, 같은 대작들을 출간했다. 1995년엔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인 ‘아득한 평원을 출간했으며, 1999년 그의 전 생애를 갈무리하는 나의 세기」를 발표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도 ‘무당개구리 울음 게걸음으로 가다』 등을 발표하며 최근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 작가가 되신 건가요?
귄터그라스 제가 자란 사회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겁니다. 저회 가족은 중하층 계급이었어요. 방이 두 개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살았지요. 누이와 저는 방을 따로 갖지 못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공간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실의 창문 두개 너머에 좁다란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제 책이 쌓여 있었고 수채화물감 같은다른 물건들이 보관되었지요. 종종 필요한 것들을 상상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책 읽는 법을 매우 일찌감치 배웠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와 그림 그리는 일을 어린 나이에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낳은 다른 결과로 이제 저는 방을 모읍니다. 서로 다른 네 장소에 서재가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 딸린 한쪽구석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두렵거든요. - P264
어린 시절 첫 소설 쓰기에 실패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라스 첫 책에는 시와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쓴 시의 초고는 언제나 그림과 시가 결합된 방식입니다. 때로는 이미지에서 때로는 단어에서부터 시작되지요.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 타자기를 살 만한 여력이 생겼을 때는 두 손가락으로만 타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양철북』의 초고는 타자기로 썼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동료들이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요즘은다시 손으로 초고를 씁니다. 『쥐』의 첫 판본은 인쇄소에서 받은 줄이 없는 종이로 만든 커다란 책이었습니다. 책이 출판될 무렵, 항상다음 작품을 쓸 수 있는 빈 공책 한 권을 청합니다. 요즘에도 첫 원고는 그림을 곁들여 손으로 씁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타자기로고쳐 쓰지요. 책을 마무리하려면 고쳐 쓰는 과정을 세 번 거쳐야 합니다. 대개는 수정을 많이 한 네 번째 원고도 있기 마련입니다. - P266
소설과 비소설을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그라스 ‘소설과 비소설‘이라는 구분은 당치 않습니다. 장르로 책을분류하는 서적상들에게는 유용하겠지만, 제 책이 그런 식으로 범주화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서적상들이 모임을 갖고 어떤 책은 소설로 어떤 책은 비소설로 구분하는 것을 언제나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구분 자체가 허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P268
실천적인 정치관을 시각예술이나 글과 어떻게 조화시키시나요?
그라스 작가들은 그들의 내적이며 지적인 삶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 P268
삶의 과정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글과 그림과 정치적인 활동, 이세 가지는 제가 별개로 추구하는 일입니다. 각각은 나름대로 강렬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생활하는 사회에 특히 잘 적응하였고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글과 그림 모두 언제나 정치와 섞여 있습니다. 제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상관없이요. 쓰고 있는 글에 정치를 도입하려고 계획하고 일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서너 번 이상정치 현실을 직접 다루기를 주저하다가 역사에 의해서 망각된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특정한 정치 현실만 다루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삶에 거대하고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는 정치에 대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지요. 정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삶의 모든 측면에 배어듭니다. - P269
그래서 다시 캘커타에 갔습니다만,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한마디도 쓸 수가 없었어요. 이런 순간에 그림이 중요해겠습니다. 캘커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또 다른방법이었지요. 그림의 도움으로 마침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책의 첫 부분이 되었는데, 일종의 에세이라고 할 수있을 겁니다. 그 후에 저는 세 번째 부분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부분은 열두 개의 절로 이루어진 한 편의 긴 시입니다. 이는 캘키타에대한 도시의 시City Poem 입니다. 산문과 그림과 시를 함께 본다면, 이들이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캘커타라는 도시를다룬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셋은 아주 다르지만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지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라스 저에게만 한정해서 말씀드리자면, 시가 제일 중요하다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으로 한 편의 소설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없지만, 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게는 출발점으로서 시가 필요합니다. - P271
당신의 활동 반경은 정치뿐만 아니라 환경까지 포함하며 이를 작품에서도 다루시지요.
그라스 지난 몇 년간 독일과 다른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죽어가는 오염된 세계를 그림으로 그렸지요. 당시 아직 동독이었던 지역과서독 국경의 죽어가고 오염된 곳을 목격하고 그린 그림책 『숲의 죽음』을 출판하였습니다. 정치적인 통일 이전에 독일 통일은 그곳에서 죽어가는 숲의 형식으로 먼저 발생했습니다. 이는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의 산악 지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대학살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본 대로 그렸습니다. 그림은 설명이라기보다는 주석이라는 느낌을 주도록 의도한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기가 실려 있지요. 이런종류의 주제를 다룰 때 그림은 글과 동등하거나 아니면 더 큰 무게감을 줍니다. - P288
문학은 변화를 가져올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도 마찬가지고요. 현대예술의 영향으로 우리들은 세상을 보는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거의 알지못했던 방식으로 말입니다. 입체파의 독창성은 새로운 관점을 도입한 데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 내적 독백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이란 존재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문학이 일으킨 변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책과 독자 사이의교류는 평화적이고 익명성을 띠지요. 책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을 바꿀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많이 알지 못합니다. 책이 저에게는 결정적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뿐입니다. 어린 시절, 전쟁이 끝나고 제게 중요했던 많은 책 중의 하나는 카뮈가 쓴 작은 책인 시시포스 신화였습니다. 산의 바위-반드시 바닥으로 다시 굴러떨어지는 굴려 올리는 벌을 받은 유명한 신화적 영웅인 시시포스는 전통적으로 진정한 비극적인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 P289
그러나 카뮈는 그의 운명을 행복한 것으로 새롭게해석하였습니다. 그는 떨어지는 돌을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일을계속하지만 이 쓸모없는 듯이 보이는 행위는 실제로는 그의 실존을만족시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서 돌을 빼앗아간다면 그는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최종적인 목표를 믿지 않습니다. 돌이 산꼭대기에 가만히 있을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 신화는 비록 독일관념론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이상주의와 이데올로기에게 적대적인 입장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인간의 조건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서양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궁극적인 목표, 즉 행복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약속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 - P289
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그 돌은 항상 우리로부터 미끄러져 내려가서 다시 굴려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 돌은 우리로부터 떼어내려고 해보아야떼어낼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그라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한 어떤 종류의 미래든 미래는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 말로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말씀드리기는 어렵겠네요. 게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드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쥐』‘암쥐‘ ‘라테사‘란 책을 썼지요. 그 밖의 대답을 원하십니까?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저의 긴 대답입니다. - P290
엘리자베스 개프니Elizabeth Gafney 소설가이자 편집자이다. 바사 대학교를 졸업했고, 브루클린 대학교에서 소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퍼블릭 스페이스와 파리 리뷰의 편집자로 일했다. 작품으로「메트로폴리스」, 「세계가 어렸을 때가 있다. - P290
토니 모리슨 미국, 1931, 2, 18,~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31년 미국 오하이오 주 로레인에서 태어났다. 하워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코넬 대학교에서 월리엄 포크너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편집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0년 첫 작품인 ‘가장 푸른 눈을 발표했으며, 19731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 『술라가 전미도서상 후보에오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솔로몬의 노래』가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토니 모리슨은 1988년 『빌러비드」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로버트 케네디 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빌러비드』는 2006년 뉴욕 타임스] 북리뷰가 선정한 지난 25년간 최고의 미국 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93년에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들으며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 아홉번째 소설 『자비를 발표했고, 이후 희곡 「데스데모나」,소설 ‘고향』을 잇따라 출간했다. 현재 잡지 『네이션』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쓸 때 독자들을 염두에 두시나요?
모리슨 저 자신만 염두에 두고 씁니다. 확신이 서지 않는 곳에서는등장인물들에게 의지하지요. 그때쯤이면 그들의 삶을 그리는 일에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저에게 이야기해줄 만큼 그들과 친해지지요. 하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결국 이건 제 작품이니까요. 잘하든 못하든 제게 모든 책임이 있습니다. 못하는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못해놓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여름 내내 아주 인상 깊은 작업을 해놓고 겨울까지 다시 손대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50쪽가량 쓴 글이 최상의 수준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매 쪽마다 형편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었어요. 다시 시도해볼 수도 있었지만, 처음에 그렇게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떨쳐버릴 수가 없더군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두려운일입니다. - P308
여기란 어디를 의미하나요?
모리슨 이 세상이지요. 끔찍한 폭력, 고집스러운 무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려는 욕망 등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좋은 친구와 식사하거나 책을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세상의 이러한 상황을 의식하지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가르치는 행위가 문제를 풀려고 애쓰게 하기보다는 순응하거나 방심하도록 할 수도 있거든요. 저를 바로 여기, 이 세상에 속해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은 교수, 어머니, 혹은 연인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글을 쓸 때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때는 제가 이 세상에 소속되어 있으며, 뿔뿔이 흩어져서 화해가 불가능한 여러 가지가 유용하게 연결될 수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럴 때면 전통적으로 작가들이 한다고 하는 일, 즉 혼돈에서 질서를 끌어내는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무질서를 생산해내더라도 그 시점에서 작가는 주권자 Sovereign가 됩니다. 작품을 쓰면서 분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은 저에게 - P309
는 작품을 출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다면 아마도 혼돈이……
모리슨 그렇다면 저 역시 혼돈의 일부가 되겠지요.
혼돈에 대해서 강의하거나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해답이 되지 못할까요?
모리슨 그쪽에 재능이 있다면야 그렇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책을 읽거나 쓰거나 편집하거나 비평하는 것뿐입니다. 본격적인 정치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곧 흥미를 잃게 될 테니까요. 정치가가 될 재주나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을 조직해서 뭔가를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아마도 곧 따분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 P310
작가의 재능이 있다는 걸 언제 분명히 깨달으셨는지요?
모리슨 아주 늦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해주곤 해서 늘 제가 글 쓰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제 기준이 될 수는 없지요. 그래서 남들이야 뭐라고 이야기하든 관심이 없었지요. 의미가 없으니까요. 세번째 책인 『솔로몬의 노래를 쓸 때쯤에 글쓰기를 제 삶의 핵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여성 작가들이 말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만, 사실 여성으로서 "나는 작가다."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모리슨 글쎄요. 더 이상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 P310
하지만 저에게는, 제 세대나 계급 또는 인종의 사람에게는 확실히어려웠지요.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많은 경우 젠더역할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여성들은 ‘엄마‘라든가 ‘아내‘로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노동 시장에서는 ‘교사‘라거나 ‘편집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작가‘가 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직업인가요? 아니면 먹고사는 방편인가요? 작가가 된다는 건익숙하지 않고 속해 있지 않은 영역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일입니다.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성공한 여성 작가가 전혀 없었어요. 작가가 되는 건 남성의 영역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주변부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가라도 되기를 바랐습니다. 허가라도 얻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요. - P311
여성 작가의 전기나 자서전, 또는 어떤 여성이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 그들에게 누군가가 그것을 허락한 순간에 대한 일화가 등장합니다. 엄마이거나, 남편이거나, 선생님이거나, 하여간 누군가가 "좋아, 글을 써보렴.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거지요. 남성 작가들에게 그런 순간이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특히 그들이 아주 젊을 때 어떤 멘토가 훌륭하다고 칭찬해주면 그 순간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제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아,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 P311
당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관련 있나요?
모리슨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너무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제 삶과 미래를 절대로 남자들의 변덕에맡기지 않을 거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직장 내에서든 밖에서든요. 남자들의 판단은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저의 생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 이혼하고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지요. 실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떤 남성이 저보다 현명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데는신경이 쓰입니다. 그전에는 제가 아는 모든 남자가 저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아버지와 선생님들은 모든 것을 잘 아는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한테 아주 중요하고 똑똑하지만 저보다 현명하지는 못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 P313
분명 재즈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모든 새로운 음악이 그렇듯이요. 너무나 관능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이유 등으로요. 그러나 몇몇 흑인들에게 재즈는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다시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오랫동안 소유의 대상이었고, 어린시절에 노예였으며 부모님도 노예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사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블루스와 재즈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물론 그래서 그 음악은 과도한 경향이 있지요. 마치 행복한 결말이 재즈의 영광과 맛을 앗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재즈에서의 비극을 즐깁니다. 요즘 광고주들은 텔레비전에서 진정성과 현대성이라는 분위기전달을 위해서 재즈를 이용합니다. ‘나를 믿어요. 혹은 ‘최신 유행‘ - P332
이라는 거지요. 요즘에도 도시는 재즈 시대에 가졌던 흥미진진한 특징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지 요즘에는 흥미를 다른 종류의 위험과 연결시키지만요. 우리는 노숙자들에 대해서 경악해서 끝없이 떠들고 비명을지르고 시끄럽게 합니다. 우리의 거리를 되찾고 싶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노숙자에 대한 인식과 그 문제를 다루는 고용 전략에서 우리는 도시의 느낌을 갖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소외된 것, 낯설고폭력적인 것과 만났을 때 관여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와방어막, 결단력, 힘, 강인함, 영리함을 갖춘 것처럼 느끼는 것이 도시삶이 갖는 의미의 일부입니다. 사람들이 노숙자에 대해서 소위 ‘불평할 때 실제로는 자랑하는 겁니다. 뉴욕은 샌프란시스코보다 노숙자가 더 많아요. 아니요,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더 많다니까요. 아니지요. 디트로이트가 더 많아요. 이런 식이지요. 우리는 우리의관용에 대해서 거의 경쟁적입니다. 그 점이 우리가 노숙자를 그렇게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랍니다. - P333
하지만 흑인음악을 들으면 듀크 엘링턴, 시드니 베체트, 루이 암스트롱, 혹은 마힐스 베이비스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지요. 그들은 서로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흑인 연주자라는 것을알지요.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어떤 특징이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 점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전통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의 일부이지요. 어떤 흑인 여성 가수도 팝송이나 재즈, 블루스를 서로 비슷하게 부르지 않습니다. 빌리 홀리데이는 어리사 프랭클린이나 니나 시몬 혹은 사라 본처럼 노래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다릅니다. 그들은 실로 강렬하게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다른 가수들과 비슷하게 노래를 불렀다면 가수가 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해줄 겁니다. 만일 누군가 엘라피츠제럴드처럼 노래한다면 사람들은 "아! 우리는 이미 그런 가수가 있어요."라고 할 겁니다. 이 여성 가수들이 어떻게 그다지도 뚜렷하고 명확한 이미지를 가졌는지 생각해보면 흥미롭습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명확하게 나만의 것이면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통에 부합하고, 다음으로 문학 전체에 걸맞는 그런소설을 말입니다. - P338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보다는 문학의 위대한 대변인으로 알려지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모리슨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작품이 다른 집단이나 더 커다란 집단으로 동화될 수있다면 더욱 좋지요. 하지만 말씀하신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조이스는 그런 요청을 받지 않았지요. 톨스토이도 그렇고요. 그작가들은 러시아, 프랑스, 아일랜드, 혹은 가톨릭에 뿌리를 둔 작가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출신에 근거를 두고 글을 썼습니다. 저도그렇습니다. 단지 저에게는 그 공간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것뿐입니다. 가톨릭일 수도 있고, 중서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중서부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실들이모두 다 중요하지요. - P339
엘리사 샤펠Elissa Schappell
소설가이자 편집자, 수필가이다. 2000년에 출판된 첫 번째 소설은 열 개의 단편을 모은 책으로 펜클럽 상과 헤밍웨이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파리 리뷰의 선임 편집자였고, 문학 잡지 「틴 하우스의 선임 편집자이자 공동 설립자이다. - P346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 1922.11.16.~2010.6.18.
독재 치하 공산주의 정당에서 활동하다가 추방된 후 소설가, 시인,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인간의 운명과 약점을 깊이 있게 다른 독창적이고 다층적인 작품들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1998년 포르투갈어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계공,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위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47년 소설 『죄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오랜 시간 한 편의 소설도 쓰지않고, 우파 독재자 살라자르 시절 내내 정치 칼럼니스트 활동 등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6년 시집가능한 시들』을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시, 소설, 희곡, 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문학적 명성을 공고히 한 작품은 1980년 출간한 「바닥에서 일어서서였다. 전성기를 연 작품은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이 작품으로 사라마구는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 예수복음,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 「눈뜬 자들의 도시』 등이 있다.
이 믿음은 제게 지금 사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게합니다. 제가 상상하는 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혁명입니다. 저의 이상적인 비전을 부디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선Goodness 으로 하나가 되는 거죠, 만일 우리 중에서 두 사람이 깨어나 "오늘 누구도 해치지않겠다."라고 말하고, 다음 날 다시 말하고, 실제로 이런 말을 지키면서 산다면 세상은 빠른 시일 안에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 모든 것이 ‘이런 세계에서 이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절 이끌었습니다. 제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주제들이 문학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 P370
눈먼자들의 도시가 당신 소설 중에서 가장 쓰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이유는, 백색 질병이라는 유행병이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동족에게 표출한 명백한 잔인성과 이러한 행동에 대한 글을 쓰면서 겪게 된불안함 때문인가요? 당신은 궁극적으로는 낙관주의자이신가요?
사라마구 저는 비관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제 머리에 총을 쏠 정도는아닙니다. 언급하신 잔인함은 단지 소설에서만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백색 질병이라는 전염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실명은 인간의 이성이맹목적임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입니다. 이 행성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아무런 갈등 없이 저 행성의 바위 형성과정을 조사하려고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냅니다. 우리는 눈이 멀었거나 미친 거지요. - P371
비평가들의 의견이 중요한가요?
사라마구 중요한 것은 제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겁니다. 잘했는지그렇지 않은지는 순전히 저만의 기준에 따르지요. 그리고 제가 쓰고싶은 대로 책을 쓰고 있다는 점이고요. 책이 제 손을 벗어난 뒤에는인생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똑같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낳고 아이에게 최선이길 희망하지만, 그 인생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이의 것이지요. 아이는 자신의 삶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도 그럴텐데, 확실한 건 그 삶이 결코 어머니가 꿈꾸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제 책을 대단히 좋아해 주리라는 꿈은 아무소용도 없습니다. 독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73
가끔씩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이 결코 지구에서 떠날 수 없어야 한다고요. 왜냐하면 우주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해왔던 것과 다르게 행동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정말로 우주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사실 인간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아마도 전 우주를 감염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이 지상에서만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일종이겠지요. 언젠가 초신성과 그 폭발에 대한 글을 읽고 난 뒤 인간이 우주로 흩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대해 안심했습니다. 그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긴 빛이 약 3~4년 전에 지구에 도달하였는데, 지구에 도달하 - P375
는 데까지 16만 60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두려워할 필요 없겠군. 우리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없을테니‘ - P376
돈젤리나바호주Donzelina Barroso 로버트 F. 와그너 대학원에서 행정학, 뉴욕 대학에서 공공사업, 버나드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에 대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 건강, 빈곤층 구조에초점을 맞춘 국제 기금을 조성했고, 현재는 포르투갈에서 사회복지 정책과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르투갈-미국 상공회의소의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 자선기금 네트워크 운영위원회의 구성원이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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