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카이사르는 특히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그 자신 때문에 그렇다. 그만큼 그는 다른 누구보다 완벽하고 뛰어나다. 살루스티우스도 그런 축에 들지만. 물론 나는 사람들이인간의 작품을 읽을 때 갖는 보통의 존경심보다 조금 더 큰 경의를 품고 카이사르를 읽는다. 때로는 그의 행위들과 기적과도 같은 그의 위업에 입각해 그 사람됨을 고찰하면서, 때로는 키케로가 말했듯이 그 어떤 역사가도 능가할 뿐 아니라 어쩌면 A 키케로마저도 능가하는 문장의 순정함, 그 흉내 낼 수 없는 우아미에 감탄하면서, 그의 치명적인 야망에서 나온 비열한 흑심을 감추기 위해가짜 색깔들을 덧입혀 놓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자기 적들에 관해 쓰면서도 그토록 신실한 판단을 하는 것을 볼 때, 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결점이란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말을 아꼈다는 것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기 글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자질을 쏟아 넣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위업을 이룩할 수는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 P146

탁월한 역사가는 알아 둘 만한 사실을 골라 낼 수 있고, 두 가지 전언 중 더 참다운 하나를 선별할 수 있다. 그는 왕공들의 사정이나 기질을 참작하고 그들의 속마음을 파악해서 그들에게 그들이 했음 직한 말을 부여한다. 탁월한 역사가는 자기가 믿는 바를우리도 믿게 하는 권위를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자들(이 경우가 가장 흔한데), 그들이 우리를 다 망쳐 놓는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꼭꼭 씹어 주려 든다. 스스로에게 판단의 권리를 부여하고, 그 결과 역사를 자기 생각에 맞춘다. 일단 어느 쪽으로 판단이 기울면 서술을 그 방향으로 굽히고 비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아 둘 만한 것들을 골라 낸답시고, 우리를 더 잘 깨우쳐 줄 어떤 언행이나 사적인 행동들은 은폐한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서, 또 어떤 것은 아마도 좋은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쓸수가 없어서 빼 버린다.  - P147

덕이란 우리 안에서 생기는 선(善)의 경향과는 다른, 더 고상한 무엇인 것 같다. 저절로 잘 조절되고 천성이 훌륭한 사람들은 유덕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따르고 행동에서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덕에는 축복받은 천성으로 인해 온화하고 평온하게이성이 이끄는 대로 자기를 맡기는 것보다 뭔가 더 위대하고 더능동적인 울림이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온유함으로 모욕을 당해도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는 대단히 아름답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리라. 하지만 급소를 찌르는 모욕으로 분이 솟아오를때, 복수하고 싶은 맹렬한 욕망에 맞서 이성으로 무장하고 크나큰갈등 끝에 마침내 자기를 제어한 사람은 의심할 나위 없이 훨씬더 장하리라. 전자는 잘한 것이요, 후자는 덕을 실천한 것이리라.
한 행동은 선이라 불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덕행이라 불릴 것이다. 덕이란 명칭은 어려움, 그리고 상반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적수없이는 행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은 선하시고, 강하시고, 자유로우시며 정의롭다고 하지 유덕하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분이 행하시는 바는 전적으로 자연스러우니, 애써 하시는 것이 아니다. - P153

플라톤의 말이나 이런 예들은 우리가 사랑 때문에건 어쩔수 없어서건 결국 하느님을 믿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무신론은 타락하고 해괴한 주장이며, 인간의 정신에 수립하기 힘들기도하거니와 궁색한 제안이다. 아무리 인간 정신이 건방지고 제멋대로라고 해도 말이다. 그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생각, 세상을 바꿀견해를 가졌다는 허영과 자부심에서 그것을 주장하는 척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지만, 그들은 상당히 미치기는 했을망정 자기 양심에까지 그런 생각을 심어 두기에 상당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가슴에한방 세게 칼을 맞으면 바로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두려움이나 병이 이 변덕스러운 성미의 방자한 열정을무너뜨리면 곧장 일반인들의 신앙으로 돌아와 보통 사람들이 하는대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진지하게 곱씹어 자기 것으로 만든 사상은 별개의 문제이다.
비틀거리는 정신의 방종에서 생겨나서 확신도 없으면서 지각없이 상상 속을 헤엄치는 저 표피적인 견해들은 그런 사상이 아니다. - P190

우리의 판단과 의지를 묶어 주고 우리의 영혼을 껴안아 우리 창조주와 결합시켜 줄 매듭은, 그 얽어 묶는 힘을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이성이나 정념이 아닌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포옹에서 얻는 매듭, 하느님의 권위와 은총이라는 단 하나의 형태 단 하나의얼굴과 광휘만을 갖는 매듭이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혼은 신앙의 지배와 명령을 받게 되므로, 신앙이우리의 다른 기능들을 그 능력에 따라 신앙의 목적에 봉사하도록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기계(우주) 전체가 저 위대한건축가의 손이 찍어 놓은 어떤 표적을 갖고 있지 않다거나, 세상의 사물들에 그것을 짓고 만든 이와 닮은 모습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분은 이 고매한 작품들에 당신 신성의 특징을 남겨 놓았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어리석음 탓이다. 그분 자신이 이 점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활동, 그것을 보이는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신다고.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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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턴

어떤 서평가는 「다들 어디 있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색하고, 불편한 웃음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독한 술을 두어잔 마셨어야 했다고 했고요. 작가님의 유머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안 그런가요?


카버

그게 인생이에요. 아닌가요? 많은 경우에 유머는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머에 웃는 건, 웃지 않으면 닭살돋게 하려는 얘기는 아니지만 웃지 않으면 울 것 같으니까 그런 거란 말이죠. 아무튼 제 이야기들에서 누군가 유머를 발 - P250

견했다니 반갑네요. 『대성당에 들어 있는 「신경써서 라는작품은 귀에 귀지가 꽉 찬 사내 이야기인데, 그 사내는 아주 암울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지난달에 처음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읽었는데, 다들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어떤 부분들이 그렇게 웃긴 모양이더라고요.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는 웃지 않았지만, 어떤 부분들은 정말웃겼어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종류의 유머는 아니고, 다크 유머인 거죠. - P251

제 생각에는 「대성당』에 수록된 작품들이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훨씬 더 풍성하고 흥미로워요. 물론 저한테 그렇다는 말이지만요. 예를 들어 「열」이라는 작품에서는 아내가 떠나고 남편에게 아이들이 남겨져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어린아이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예요.
제 인생이 바뀌었고 그래서 제가 좀 더 낙관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제 작품들에서 그 사실을 읽어낸 것이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제가 젊었을 때 저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 수많은 것으로 계속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다른 인생이던 시절에 일어난 일들로 돌아가 재료를 찾는 거죠. 지금 제가 사는 환경은 당시와 물론 많이 다르지만, 그 시절의 일들은 제게 아직도 크나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 P252

이야기라는 건 물론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어디엔가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런 면에서 제가 쓰는 모든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다루는 소재들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거나 어디선가 얻어들은 것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증인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좋은 작가들 누구나가 그러듯이, 상상하고, 기억하고, 그것들을 뒤섞습니다.
전적으로 자전적인 걸 쓸 수는 없어요. 그렇게 했다가는 이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책이 나올 겁니다. 그게 아니라 여기서는 이런 걸 끄집어내고 저기서는 저런 걸 끄집어내어 눈사람을 만들 듯이 언덕 아래로 굴리는 겁니다. 굴러 내려가는 과정에서 다른 모든 것-우리가 들은 이야기, 눈으로 본 것, 직접 겪은 것이 달라붙게 되죠. 그렇게 이런 토막 저런 조각을 붙여서 어떤 일관성 있는 전체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 P253

제 생각에는 음악에서 작곡가의 고유성이 느껴져야 하는 것처럼, 글에서도 작가의 고유성이 느껴져야 합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몇 소절 들어보면 그게 누구 곡인지 알기 위해 계속 들어보지 않아도 된단 말이죠. 제가 쓴 소설에서 작가 이름을 보지 않은 채 몇 문장이나 한 문단만 읽고 나서도 그게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심지어 그 이야기가 런던에 살면서 브뤼셀로 출퇴근을 하는 이야기 같은, 제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이야기라도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좀 이상한 거죠. 저는 기대치가 아주 낮은 상태에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의 마음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카버 소설, 이것에 대해서는 아마 제가 제일 놀라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주 기쁘고 행복해요. 예. - P254

제가 쓴 단편소설들이나 시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제가 쓴 글들 모두가 현실 세계에 각자의 출발 지점을 두고 있어요. 이야기들은 허공에서 뚝 떨어지지 않아요. 어디엔가 구체적인 출발 지점이 있어요. 상상력과 현실성, 약간의자전적인 요소와 풍부한 상상이 결합돼서 나오는 거죠.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걸 다루는 제 의도에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전환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틀이 잡히게 됩니다. 대개의 작가들이 그렇게 하고,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작가로부터 기대하는 건,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대해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작가를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 하고, 이를테면 작가의 손에 자기를내맡기고 함께 떠나고 싶어 합니다.
제가 살았던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제가 쓴 그런특정한 이야기들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 정도의재미와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이야기를 썼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 P259

그렇진 않았어요. 최소한 생각하시는 그런 모방은 아니었어요 프랭크 오코너가 기 드 모파상 흉내를 냈다거나 단편소설이라는 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려고 모파상을 연구했다거나, 심지어 베껴 쓰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요.
서머싯 몸도 자기 스타일을 개선하고 다른 작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걸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장을 베껴 썼다고 하죠.
저는 그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 중요했고, 여전히 그런 작가들이 여럿 있어요. 몇 사람만 꼽자면체호프, 헤밍웨이, 톨스토이, 플로베르 같은 이들이죠. 이작가들의 장편과 단편들을 읽었고, 이 작가들 흉내를 내려고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좀 더 조심스럽게 쓰긴 했죠. 더 잘쓰려고 했고요. 이 작가들은 제가 존경하는 종류의 사람들이었거든요. 하지만 특정한 작가를 다른 작가들 위에 놓거나 하진 않았어요. 체호프를 제외하면요. 제 생각에 체호프는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단편소설 작가들 중 최고예요. 이사크 바벨도 또 다른 뛰어난 작가죠. 바벨은 두세 페이지만 가지고도엄청나게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 P264

제 생각에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는 누구나 자기에게 재능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아니면 자기가 해야 하는 걸 할 수가 없을 거거든요. 자신을 지탱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모든 작가는 자신을 믿어야만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저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지내다가, 존 가드너를 스승으로 만나면서 의문의 여지없이 삶이 바뀌었어요. 그 사람은 제게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 P266

저는 무척 흥분했어요. 전에는 작가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없었거든요. 그때 제 나이가 열아홉인가 스물이었는데, 단 한번도 작가를 본 적이 없었어요. 가드너는 당시만 해도 출판된작품은 없었지만 작가였어요. 제가 그때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어요. 저에게는 큰 도움을줬어요. 저는 그때 제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그런 시점에 있었는데, 그런 저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곧장 제 핏줄로 흘러들었고, 제가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꿨어요.
그는 제가 무언가를 열 단어로 말할 수 있다면, 스무 단어 대신 열 단어로 말하는 게 맞다는 걸 이해하게 해줬어요. 제게정확하라, 그리고 간결하라고 가르쳤어요. 그런 것들 말고도많은 걸 가르쳐줬어요. 그에게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제생활은 여전히 제 몸 하나 움직이기도 어려운 처지였는데, 그때당장 써먹기 어려운 것들도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그때 배운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어요. - P267

그랬죠. 그리고 같은 에세이에서 저는 에즈라 파운드가 "진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이야말로 글쓰기가 요구하는 단 하나의 윤리다"라고 한 말도 인용했습니다. 이건 어느 것 못지않게 훌륭한 시작점입니다. 여기에서 출발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윤리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걸 써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운이좋을 경우, 작가에게서 흘러나오고, 그 작품에서도 흘러나오는 선율이 있게 됩니다. 확실한 건, 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그 뒤에 지적인 연결이 이어져야한다는 겁니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고 감동을 받았을 때, 그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나서 감동을 받거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고감정적으로 동요된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무언가가 언어를,
심지어 1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다가오고 마음을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 P270

이상적으로는 이야기가 저를 선택하는 건데, 이미지가 오고 감성적인 틀이 그 뒤를 따릅니다. 저는 작가들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직접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부족 탓일 수도 있고, 지식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개입의 부족도 원인이 될 수있죠. 저는 젊은 정치가는 물론이고 늙은 정치가, 혹은 변호사, 혹은 대형 금융이나 패션 같은 것에 대해서는 쓸 능력이전혀 없어요.
이건 이야기가 되고 이건 안 된다를 판별해주는 필터가 항상 작동 중이죠. 아마도 자그마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어요.
어떤 종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성장하기 시작하는 아이디어의 배아 같은 거요. 이상적인 건 이야기가 작가에게 오는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그물을 던져놓고 무언가 쓸 거리를찾아다니는 건 좋지 않아요. - P279

어조는 객관화해서 말하기 아주 어려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작가의 어조란 단순히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작가의 고유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 어조가 아닌건 말할 수 있습니다. 비아냥거리는 건 절대로 제 어조가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도 않고, 기발하거나 현란하지도 않습니다. 제 어조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진지하지만, 당연히, 어떤이야기들의 어떤 부분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 - P296

에어조란 작가가 대충 조합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작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진행 중인 작업에 그 관점을끌어들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조는 그 작가가 쓰고 있는 거의 모든 문장에 스며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기술은 교육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해야 할 것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누구나배울 수 있습니다. 문장을 더 잘 쓰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작업에 접근하는 태도로서의 어조는그런 식으로 다뤄질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작가가 자신의 어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어조나 철학을 차용하려 든다면 그건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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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야드는 아마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수리비 60달러 때문에 수리공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험이 없어서 의사한테 가지 못하고, 치과에 가야 할 때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서 이가 완전히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이런 게 저한테는 비현실적이거나 인위적으로만들어낸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런 그룹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둔다는 점을 두고 보자면, 제가 다른 작가들과 그리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체호프는 100년 전에 바닥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단편소설 작가들은 늘 그런 작업을 해왔어요. 체호프가 그렇게 바닥에 가라앉고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작품만 써온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단편을 제가 언급한 이런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의사며 사업가며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썼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주었단 말이죠. 체호프는 그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낸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에 대해 쓴다는 면에서 보자면 제가 그리 대단하게 색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거죠. - P215

작가나 예비 작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몇 가지를 가르될 수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 시늉을 내지 않고 솔직해야 할절대적인 필요성도 가르칠 수 있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연주,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는 것처럼글쓰기에서도 어떤 것들은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들 대부분이 대가들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대가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 모두 위대한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 아니면 위대한 작가가 될 거라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최소한 그렇게 될 수 있는 길 위에는 올려놔주는 거죠. 미켈란젤로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성장해서 시스티나성당 작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다른 화가의 조수로 7년 동안 일했단말이죠. 베토벤도 하이든을 비롯한 다른 작곡가들 밑에서 작곡 공부를 했어요. 이건 오래되고 고귀한 관계예요. 글을 쓸능력이 없는 누군가를 위대한 작가는 물론 쓸 만한 작가 정도 - P245

로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가르치고 전달해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 저에게서 배운학생들 중 몇몇한테 그런 것들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전달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나 음악, 사진, 건축, 아니면 다른 어떤 장르도 그걸 가르쳐서 젊은 예술가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남기 때문에 또 그게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건 우리시대에 일어난 현상이고, 아마도 여태까지 일어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문학적인 혁명일 수도 있습니다.  - P246

 예이츠는 에즈라파운드로부터 많은 걸 배웠고, 파운드는 예이츠뿐만 아니라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가르쳤습니다. 기 드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서 배웠습니다. 플로베르는 모파상의 소설을 원고 상태에서 읽어보고는 아냐, 아냐, 아냐, 이걸로는 절대 안 될 거요. 라고 말했어요. 마침내 기 드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 「비곗덩어리」를 보여줬죠. 플로베르는 그걸 보고 바로 이거요, 해냈군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비공식적인가르침은 늘 있어왔던 겁니다. 요즘 행해지고 있는 건 그걸 공식화한 거죠. - P246

저는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면서 제가 아주 좋지 않은 방식으로, 제게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제 삶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우선책을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불가능했어요. 그냥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삶을 사는건 불가능했던 거죠. 제 생각에 문학은 우리에게 부족한 걸자각하게 하고, 우리가 사는 과정에서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들, 여태 위축시켜온 것들의 정체를 깨닫게 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다워지는지, 실제보다 더 크고 더 나은 존재가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은, 우리가 삶을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펼치면서 살아오지 못했다는사실을 깨닫게 해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문학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생각하면 기분은 좋겠죠. 어쩌면 단편소설이 됐든 장편소설이 됐든, 그걸 읽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정서적인 삶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만약에 이런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일종의 삼투 과정이 있게 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죠.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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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Agua Viva는 단어 그대로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로 번역되고, 일반적으로는 해파리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뼈대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은 뼈대 즉 특정한 형태를 강제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자유로운 세계이며, 그 살아 있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해파리는 그 세계와 가장 닮은 개체다. ‘아구아 비바‘라는 제목은 이 둘을 동시에 지칭 혹은포괄한다.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것, 심지어 세계인 동시에 개체인 것을 그리기, 즉모든 구조와 경계를 넘어선 그 무엇을 기록하려는 (불가능한) 시도. 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리스펙토르가 늘 추구하던 목표를 집약한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뉴디렉션스판 영역본은 ‘삶의 흐름 Stream of Life‘이라 번역되었던 이전 영역본(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9)의 제목 대신에 원어 제목을 그대로 옮겼다. 본 번역본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원어 제목을 그대로 옮겼음을 밝힌다.

형상 ㅡ 혹은 물체 ㅡ 에 대한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이 존재할 것이며, 그것은 음악처럼아무것도 묘사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어떤 신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그림은 표현할 수 없는 정신의 왕국들을 그저 불러내기만 할 것이다. 거기서 꿈은 생각이 되고, 거기서 선은 존재가 된다.
-미셸 쇠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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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엔 너무 많은 결함이 있고 너무도 무력합니다. 멸시당하기 꼭 알맞은 노년에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식구들의 애정과 사랑입니다. 명령과 두려움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아주 강압적이던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그런대로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때리고물어뜯고 욕질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요란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걱정하고 감시하느라 속을 끓입니다. 그 모든 것이 온 식구가 공모하고 있는 소극(劇)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락에서 지하창고에서, 심지어 그의 지갑에서도 가장 좋은 몫은 다른 자들이 빼먹고 있습니다.  - P109

그가 허리 전대에 열쇠들을 자기 눈보다 소중하게 간수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가 절약하면서 검소한 식사에 만족하고 있는 동안 방탕의 도가니가 된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선잔치판, 놀음판이 벌어지고, 돈이 흘러넘치며, 늙은이의 쓸데없는역정과 노심초사를 조롱하는 대화가 만발합니다. 모두가 그를 경계합니다. 어쩌다 마음 약한 하인이 그를 따르며 헌신할라치면 그하인은 즉각 그의 의심을 사고 맙니다. 의심이란 늙은이들이 제풀에 걸려들곤 하는 특성이지요. 그는 자기가 식구들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고, 그래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는 복종과 존경을 받고 - P109

있다고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릅니다. 자기 일은 너무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나요.


그 혼자만 아무것도 모른다.
테렌티우스


타고나야 하는 것이든 배워 익혀야 할 것이든, 통솔력을 견지하는 데 적합한 자질을 이분보다 더 많이 지닌 사람을 나는 알지못합니다. 그런데도 이분은 어린아이처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기에 같은 상황에 빠져 있는 여러 사람 중에서도이분을 제일 좋은 예로 든 것입니다. - P110

내겐 내 글들을 질서 있게 정리해줄 부관(副官)이라고는 행운밖에 없다. 공상이 떠오르는 대로 쌓아 놓을 뿐이다. 때로 그것들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때로는 열을 지어 이어진다. 나는사람들이 자연스럽고 예사로운 내 행보를 있는 그대로, 흐트러진모습으로 보기를 바란다. 나는 생긴 대로의 나를 드러낸다. 게다가 여기서 다루는 제재들은 모르면 큰일 나거나, 되는대로 가볍게말하면 안 될 것들도 아니다.
물론 사물들을 보다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내 계획은 남은 생애를 기분 좋게, 힘들지 않게 넘기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도, 설령 학문을 위해서라도 머리를 쥐어짜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도 말이다. 나는 책에서 소박한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몰두하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또는 책을 통해 무슨 공부를 한다쳐도, 거기서 구하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을 알게 해주는 지식, 내게 잘 죽고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줄 지식뿐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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