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카이사르는 특히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그 자신 때문에 그렇다. 그만큼 그는 다른 누구보다 완벽하고 뛰어나다. 살루스티우스도 그런 축에 들지만. 물론 나는 사람들이인간의 작품을 읽을 때 갖는 보통의 존경심보다 조금 더 큰 경의를 품고 카이사르를 읽는다. 때로는 그의 행위들과 기적과도 같은 그의 위업에 입각해 그 사람됨을 고찰하면서, 때로는 키케로가 말했듯이 그 어떤 역사가도 능가할 뿐 아니라 어쩌면 A 키케로마저도 능가하는 문장의 순정함, 그 흉내 낼 수 없는 우아미에 감탄하면서, 그의 치명적인 야망에서 나온 비열한 흑심을 감추기 위해가짜 색깔들을 덧입혀 놓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자기 적들에 관해 쓰면서도 그토록 신실한 판단을 하는 것을 볼 때, 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결점이란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말을 아꼈다는 것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기 글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자질을 쏟아 넣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위업을 이룩할 수는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 P146
탁월한 역사가는 알아 둘 만한 사실을 골라 낼 수 있고, 두 가지 전언 중 더 참다운 하나를 선별할 수 있다. 그는 왕공들의 사정이나 기질을 참작하고 그들의 속마음을 파악해서 그들에게 그들이 했음 직한 말을 부여한다. 탁월한 역사가는 자기가 믿는 바를우리도 믿게 하는 권위를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자들(이 경우가 가장 흔한데), 그들이 우리를 다 망쳐 놓는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꼭꼭 씹어 주려 든다. 스스로에게 판단의 권리를 부여하고, 그 결과 역사를 자기 생각에 맞춘다. 일단 어느 쪽으로 판단이 기울면 서술을 그 방향으로 굽히고 비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아 둘 만한 것들을 골라 낸답시고, 우리를 더 잘 깨우쳐 줄 어떤 언행이나 사적인 행동들은 은폐한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서, 또 어떤 것은 아마도 좋은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쓸수가 없어서 빼 버린다. - P147
덕이란 우리 안에서 생기는 선(善)의 경향과는 다른, 더 고상한 무엇인 것 같다. 저절로 잘 조절되고 천성이 훌륭한 사람들은 유덕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따르고 행동에서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덕에는 축복받은 천성으로 인해 온화하고 평온하게이성이 이끄는 대로 자기를 맡기는 것보다 뭔가 더 위대하고 더능동적인 울림이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온유함으로 모욕을 당해도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는 대단히 아름답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리라. 하지만 급소를 찌르는 모욕으로 분이 솟아오를때, 복수하고 싶은 맹렬한 욕망에 맞서 이성으로 무장하고 크나큰갈등 끝에 마침내 자기를 제어한 사람은 의심할 나위 없이 훨씬더 장하리라. 전자는 잘한 것이요, 후자는 덕을 실천한 것이리라. 한 행동은 선이라 불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덕행이라 불릴 것이다. 덕이란 명칭은 어려움, 그리고 상반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적수없이는 행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은 선하시고, 강하시고, 자유로우시며 정의롭다고 하지 유덕하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분이 행하시는 바는 전적으로 자연스러우니, 애써 하시는 것이 아니다. - P153
플라톤의 말이나 이런 예들은 우리가 사랑 때문에건 어쩔수 없어서건 결국 하느님을 믿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무신론은 타락하고 해괴한 주장이며, 인간의 정신에 수립하기 힘들기도하거니와 궁색한 제안이다. 아무리 인간 정신이 건방지고 제멋대로라고 해도 말이다. 그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생각, 세상을 바꿀견해를 가졌다는 허영과 자부심에서 그것을 주장하는 척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지만, 그들은 상당히 미치기는 했을망정 자기 양심에까지 그런 생각을 심어 두기에 상당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가슴에한방 세게 칼을 맞으면 바로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두려움이나 병이 이 변덕스러운 성미의 방자한 열정을무너뜨리면 곧장 일반인들의 신앙으로 돌아와 보통 사람들이 하는대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진지하게 곱씹어 자기 것으로 만든 사상은 별개의 문제이다. 비틀거리는 정신의 방종에서 생겨나서 확신도 없으면서 지각없이 상상 속을 헤엄치는 저 표피적인 견해들은 그런 사상이 아니다. - P190
우리의 판단과 의지를 묶어 주고 우리의 영혼을 껴안아 우리 창조주와 결합시켜 줄 매듭은, 그 얽어 묶는 힘을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이성이나 정념이 아닌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포옹에서 얻는 매듭, 하느님의 권위와 은총이라는 단 하나의 형태 단 하나의얼굴과 광휘만을 갖는 매듭이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혼은 신앙의 지배와 명령을 받게 되므로, 신앙이우리의 다른 기능들을 그 능력에 따라 신앙의 목적에 봉사하도록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기계(우주) 전체가 저 위대한건축가의 손이 찍어 놓은 어떤 표적을 갖고 있지 않다거나, 세상의 사물들에 그것을 짓고 만든 이와 닮은 모습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분은 이 고매한 작품들에 당신 신성의 특징을 남겨 놓았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어리석음 탓이다. 그분 자신이 이 점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활동, 그것을 보이는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신다고.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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